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사라지다

위기의 지방대학에 닥친 대학기본역량진단

  교과서에서 매년 읊어지는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지금 이 순간 각 대학의 생존을 좌우하는 현실이다. 물론 모든 대학이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다. 대학의 위기는 대학 서열화를 철저하게 반영한다.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지방에 있는 대학들은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수십 년간 인구 감소를 막지 못했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대학의 위기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은 학생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대학의 정원을 줄이는 것이다. 2021년 교육부는 대학들을 상대로 생존을 결정하는 시험을 실시했다. 시험은 과연 공정했을까. 위기의 지방대학이 놓인 현실과 이들에게 닥친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살펴봤다. 

“학생 한 명 한 명이 절박하다”

  인구 절벽의 도래로 학생들은 줄어들었지만, 대학들이 선발하는 인원은 그만큼 줄어들지 않았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추계한 2021학년도의 대학 입학가능인원은 41만 4천 명이다. 반면 334개 국내 대학의 입학 정원은 49만 2천 명으로, 무려 7만 8천 명이 더 많다. 학생들이 전부 대학을 간다고 해도, 정원이 미달되는 대학이 생기는 것이다. 대학의 정원을 모두 채우기 위해선 다른 대학들과 치열하게 경쟁해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끌어와야 한다. 

  모든 대학이 정원 미달의 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수도권 대학은 100%의 학생 충원율을 보인다. 오히려 선발인원을 늘린 대학들도 있다. 2023년도 ‘대입 전형계획’에서 4년제 대학의 선발인원은 2022년도보다 2,571명 증가했는데, 이 중 96.3%인 2,220명이 수도권 대학에 해당한다. 

  반면 대부분의 지방대학은 매년 눈에 띄게 학생들이 줄어들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올해 대학의 신입생 미충원 인원 약 4만 명 중 75%는 비수도권에서 발생했다. 강원도 소재 대학 관계자 A씨는 “수도권 대학의 정원이 모두 채워지고 난 다음에야 지방대학에 학생들이 충원된다”며 수험생들의 지방대학 비선호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학생들의 지방대 비선호는 신입생 충원율뿐 아니라 중도 탈락률에도 영향을 미친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9년 비수도권 대학의 중도탈락률은 5.4%로, 수도권 대학에 비해 약 2%p로 높았다. 대전시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B씨는 “대학교 이름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며 “안정적으로 취업을 하더라도 좋은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반수(대학에 다니다 다른 대학 입시를 보는 것)’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말했다. 신경아 교수는 “지방대학을 가면 실패자라고 생각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있다”며 지방대학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지적했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의 부족한 인프라가 중도 탈락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전라북도 소재 대학을 진학 중인 C씨는 “대외활동·공모전 등이 서울 중심으로 이뤄지다보니 지방에 있는 학생들은 참여 기회가 적다”며 지방에서 취업 관련 활동이 제한된다고 지적했다. 

  지방대학은 학생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 홍보를 펼치고 있지만, 미달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다. 홍보는 주로 단기적, 물질적 혜택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지방대학은 신입생 모집 광고에서 현금, 전자기기, 영어시험 지원비 등 갖가지 혜택을 내세운다. 그러나 기자가 이 같은 광고를 내세운 대학 6개교를 살펴본 결과 모두 올해 신입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채 모집을 마감했다. 

  학생을 충원하기 위해 지방대학이 마련한 또다른 대책은 외국인 유학생 유치다. 2014년 교육부는 2019년까지 각종 사업을 통해 3만 명 이상의 외국인 유학생을 지방대에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각 대학들이 적극적으로 국제교류사업에 나선 결과 2014년 약 8만 5천 명이던 외국인 유학생은 2019년 약 16만 명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최근 2년간 코로나19의 여파로 유학생 모집이 제한되면서, 2021년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9년보다 약 1만 명 급감했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외국인 유학생이 지방대 충원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다. 강원도 소재 대학 관계자 A씨는 “외국인 학생들도 국내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지방보다 서울에 소재한 대학을 선호한다”며 유학생들의 대학 선호도 차이가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유학생 규모 격차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A씨는 “지방대학에 온 유학생들 중에서도 대학 인근에 일자리가 없어서 다른 대도시로 가는 학생들이 다수 있다”고 덧붙였다. 

  지방대학의 학생 감소는 재정 위기로 이어진다. 등록금은 대학 운영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한국사학진흥재단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사립대학에서 등록금 대비 인건비 비율은 평균 73.7%다. 정부가 인건비를 지원해주는 국립대와 달리 사립대학의 경우 인건비의 대부분을 등록금으로 충당하는 것이다. 강원도 소재 대학 관계자 D씨는 “교수·직원의 인건비는 줄일 수 없는 부분”이라며 “사실상 등록금으로 대학이 운영되는 상황에서 현재 충원율이 낮다고 정원 자체를 줄이는 것은 큰 부담”이라고 말했다. 학령인구가 감소했다고 자체적으로 정원을 줄일 학교는 아무도 없다는 말이다. 

사진설명 시작. 2021학년도 일반대학 신입생 충원율 및 정원 내 신입생 경쟁률을 지역별로 나타낸 지도이다. 자료 출처는 유기홍 의원실과 대학알리미다. 충원율이 96에서 100%인 지역은 수도권, 충남, 대구광역시,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다. 충남과 일부 광역시를 제외한 비수도권 지역은 모두 95% 이하의 충원율을 보인다. 사진설명 끝.

심판대에 오른 대학

  대학의 자율적인 정원 감축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교육부는 2021년 대학 구조조정의 일환으로 대학기본역량진단을 실시했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은 대학의 교육 여건을 평가하며, 진단에서 탈락한 대학들은 향후 3년간 일반재정지원이 중단된다. 일반재정지원 미선정 대학은 일반대학 25개교, 전문대학 27개교로 총 52개교다. 총 전국교수노동조합 등 6개 고등교육단체는 입장문을 통해 “하위 대학을 폐교로 내모는 정책”이라며 “대학평가가 정원감축 압박과 폐교를 위한 수단으로 도구화됐다”고 비판했다. 

  지방대학은 진단에 활용된 지표가 지방대학에게 불공정하게 책정됐다고 말한다. 대학기본역량진단은 정량평가와 정성평가로 나뉜다. 정량평가에서 가장 큰 배점을 차지하는 것은 학생 충원율(20%)이다. 강원도 소재 대학 관계자 A씨는 “수도권과 지방대학의 충원율을 동일선상에서 평가하면, 지방대학은 일방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며 대학 서열화에 따른 충원율 격차가 평가에 반영되지 않았음을 비판했다. 충원율에 근거한 일괄적인 평가가 대학 역량 강화라는 평가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반면 정성평가에서 가장 큰 배점을 차지하는 것은 교육과정 운영 및 개선(20%)이다. 정성평가를 정량화하는 과정에선 평가자의 주관이 개입한다. 세한대 이동수 기획부처장은 지난 8월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학마다 모두 교양교과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공 수업의 경우 학과별로 특성이 전혀 다르다”며 교육과정 평가의 어려움을 지적했다. 

  교육부는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수도권과 지방대학의 격차를 고려해 권역별로 지원대학을 선정했다는 입장이다. 권역별 산정이란 전국을 5대 권역으로 나눠 일반재정지원대학의 90% 내외를 권역별로 선정 후, 나머지 10% 내외를 전국 단위로 점수가 높은 순서대로 선정하는 방식이다. 권역별 선정은 지방대학에게 집중될 타격을 어느 정도 완화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한편, 수도권 대학을 역차별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서울총장포럼 총회는 입장문을 통해 “충원율 등 정량평가에서 수도권 대학이 모두 좋은 점수를 받은 가운데 정성평가에서 아주 근소한 점수 차이로 미선정 대학이 갈렸다”고 지적했다. 

  진단의 불투명한 시행 과정으로 인해 대학이 진단에 대비하거나 추후 결과를 반영할 수 없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진단이 실시될 당시 각 대학은 평가 기준을 상세히 알지 못해 자체적으로 준비해야 했다. 강원도 소재 대학 관계자 D씨는 “진단에 쓰일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으로 컨설팅 업체를 고용했다”며 진단 준비가 대학의 재정에 끼친 부담을 지적했다. 진단결과가 발표된 이후에도 각 대학은 자신이 받아든 점수를 납득하지 못했다. A씨는 “지표별 점수가 통지됐을 뿐 대학의 어떤 부분이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인지 고지받지 못했다”며 “결과에 대한 이의신청이나 이후의 대학 운영 개선에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진단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자 국회 교육위원회는 대학기본역량진단에서 탈락한 대학 중 50%에 해당하는 27개교를 재구제하겠다는 예산안을 의결했다. 교육위원회는 대학기본역량진단 점수를 기준으로 상위 50% 대학을 재구제하겠다는 방침이지만, 공정성이 의심되는 진단 결과를 재사용을 반대하는 대학도 존재한다. A씨는 “진단에서 탈락한 25개의 일반대학의 점수가 불과 4점 차이로 몰려있다”며 대학이 수용할 만한 공평한 평가 기준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험으로 대학 정원을 줄인다면 마지막에 남는 건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대학뿐이다. 인구 절벽이 지방대학을 벼랑 끝으로 내몰도록 놔둬도 괜찮을까. 지방대학을 포기하지 않는 건 90%의 한국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지방대학의 생존은 우리 모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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