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덮친 2년 동안,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대학이 펼쳐졌다.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이 소통하는 대신 줌(zoom)으로 수업을 듣게 됐고, 수많은 동아리와 학생 단체로 북적이던 캠퍼스는 적막해졌다. 개강총회, MT와 같은 오락 행사부터 학생총회 등의 정치적 행사까지 학생들 간의 대면 교류는 모두 비대면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비대면으로 침체된 학생사회에서도 꾸준히 목소리를 내온 학생들이 있다. <서울대저널>은 지난 2년간 학회, 동아리, 학생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해 온 4명의 학생들과 집담회를 진행했다. 집담회 참여자들은 비대면 상황이 학생사회 내 소통 부재를 가져왔다는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비대면 수업의 장점과 다가올 대면 학생사회 전환에 대해 다양한 전망을 제시했다.

<그림 1> 집담회 참여자 인적사항
수업
비대면 수업은 코로나19가 대학에 가져온 가장 큰 변화다. 서울대학교는 2020년 2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전면 비대면 수업 방침을 실시했고, 이에 따라 지난 2년간 일부 실험·실습 수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뤄졌다. 4명의 집담회 참여자들에게 비대면 수업의 장단점과 특징을 물었다.
참여자들의 수강 경험은 각자 달랐지만, 수업 유형에 따라 비대면 형식이 끼친 영향이 다르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코로나19 유행이 본격화된 20학번인 조민우 씨(가명)는 “비대면 수업의 이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수업을 듣자는 생각에 강의식 수업을 많이 수강했다”고 말했다. 문제 풀이와 강의 중심의 수업의 경우 온라인 수업이 편리하다는 평가가 많았다. 강의를 반복해서 돌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들은 교수자와 학생, 학생과 학생 간 활발한 소통이 필요한 토론형 수업에서는 비대면 상황이 걸림돌이 됐다고 입을 모았다. 임현정 씨(가명)는 “얼굴을 봐야 더 솔직하고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 같다”며, “토론식이나 참여형 수업의 경우 대면이 훨씬 좋았다”고 말했다. 신아연 씨(가명)는 비대면으로 ‘인문학 글쓰기’ 강좌를 함께 수강한 사람과 직접 만났던 경험을 언급하며, “대면 만남을 통해 온라인상에서 느꼈던 단편적인 인상을 넘어서서 그 사람의 종합적 인상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 그 사람의 글을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비대면 강의가 수업의 참여도를 높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최은영 씨(가명)는 학생 모두가 활발하게 참여했던 비대면 토론 수업을 예로 들며, “비대면일 때 학생들의 부담이 줄어 토론이 활성화된 것을 보면, 대면이냐 비대면이냐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 씨는 “대면 상황에서는 교수와 학생 간 위계와 참여자의 개인적 특징이 더 크게 느껴진다”며, “비대면 상황에서는 이런 부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대면 수업이 주는 감각적인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에는 참여자 전원이 동의했다. 임현정 씨는 “대학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수업에 늦었을 때 학생들이 조심스럽게 들어가는 모습이라든가 교수님이 해주셨던 사적인 이야기”라며, “비대면 수업에서는 그런 추억이 사라진 것 같다”며 아쉬워했다. 20학번으로 입학해 비대면 수업만을 주로 수강해 온 신아연 씨도 마찬가지였다. 신 씨는 “‘숲의 이해’라는 강의에서 관악산을 오르게 됐다”며, “숲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을 듣고 직접 몸을 움직여 보는 경험이 기억에 남았다”고 말했다. 대면 수업의 경우 강의 현장에서의 감각적인 경험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참여자들은 지난 2년간 대학 수업에서 무엇을 배웠다고 생각했을까. 이들은 공통적으로 전공지식의 획득보다는 논리적 사고와 소통 능력의 발전에 의미를 뒀다. 외교학을 부전공한 임현정 씨는 “졸업 학년이 됐지만 전공지식 수준이 올라갔다기보다는 체계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배운 게 크다”고 말했다. 최은영 씨는 “수강생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새로운 생각이나 관점을 접한 것이 큰 수확”이라고 평가했다.
최은영 씨는 “노동자에 대한 관점이 뚜렷한 편이라 생각했지만 대면 수업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들으면서 관점이 많이 변화했다고 느꼈다”고 회상했다. 조민우 씨는 “고등학교 때는 근거보다 주장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는데, 대학 강의에서 다른 사람에게 내 의견을 설득하고 다양한 의견을 접하면서 논증의 과정에 익숙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다양한 관점을 접하고 자신의 가치관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만들어가는 방법을 배웠다는 것이다.
관계 형성
대학은 학생들이 학업을 수행하고 미래를 계획하는 동시에, 여러 구성원들이 관계를 형성하는 장소다. 참여자들은 대학에서 친구와 정서적 교류를 하거나, 학내 단체에서 함께 일하는 동료와 공적인 공간에서 의견을 나누는 등 다양한 종류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비대면 상황에서 관계 형성의 새로운 양상과 대학 내 인간관계의 특별함을 물었다.
참여자들은 고등학교와 달리 대학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람을 사귈 계기가 없다’고 의견을 모았다. 고등학교처럼 학생들이 일률적인 환경에 함께 놓이지 않기에 관계를 맺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대면 상황에서 관계 형성이 더 어려워졌다는 데 참여자 전원이 동의했다.
비대면 상황에서도 학생회장을 하며 학생회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는 조민우 씨는 “많은 사람들과 접점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친해진 사람들은 특정한 계기가 있거나 기숙사에 같이 거주하는 친구였다”고 말했다. 선후배 관계도 비대면 국면에서 느슨해졌다. 임현정 씨는 “선후배 관계가 특히 돈독한 소수 학과에서도 선후배 간 네트워크가 많이 침체됐음을 느꼈다”며 “만남에 적극적인 사람과 아닌 사람 간의 교류 가능성이 훨씬 더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대면 활동이 활발한 학내 단체에 소속돼 있거나 대면 행사에 참여한 참여자의 경우 관계 형성이 비교적 수월했다. 학내언론에서 활동한 신아연 씨는 과보다 학내 언론 활동을 통해 가까워진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신 씨는 “과에서도 몇 번 모임이 있었지만 일회성으로 끝났고, 학내 언론 사람들과는 오랫동안 기사 마감을 함께하며 서로를 의지하는 과정에서 돈독해졌다”고 설명했다. 임현정 씨는 “코로나19 이후 활동했던 동아리에서 친해진 사람들은 대면 행사를 같이 진행한 소수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비대면 상황에서도 결국 친밀감을 쌓기 위해서는 대면 활동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대면으로 만나진 못해도 활발한 SNS 활동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한 경우도 있었다. 최은영 씨는 “SNS로 관계를 맺고 자신의 의견을 표명하는 글을 쓰는 것이 학과의 문화로 자연스럽게 자리잡았다”며, “코로나 이후 입학한 학생들도 SNS 계정을 통해 친밀감을 형성하는 과정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최은영 씨와 임현정 씨는 다양한 의견을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대학 내 인간관계는 다양한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점이 특별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최은영 씨는 “대학에서는 나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 생각이 아예 다른 사람 모두와 공존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며, “학과 학생회장을 하며 다른 관점을 어떻게 존중하고 합의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양한 층위의 관계를 골고루 경험하게 됐다는 의견도 있었다. 임현정 씨는 고등학교 때 친구관계를 ‘기가 맞는 친구들’이라고 표현했다. 마음이나 성격이 잘 맞는 사이에서만 친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임 씨는 대학에 와서 다양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며 다른 형태의 관계맺음도 경험해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동아리, 학회, 학생회 등 다양한 공동체에서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점이 대학 인간관계의 가장 특별한 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생사회
지난 10월, 오세정 총장은 총장 직속 담화문을 통해 대면수업 정상화를 발표했다. 제62대 총학생회 선거에 출마한 ‘자정’ 선본은 대면사회 복귀를 핵심 슬로건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대면 사회가 곧 정상화’라는 인식은 비대면 상황에서 침체된 학생사회에 대한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선거로 꾸려진 학생회나 실질적으로 운영되는 동아리가 적은 상황에서 학생들 간 소통은 ‘에브리타임’ 등 비대면 플랫폼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참여자들도 비대면 상황에서 소통 부족을 학생사회의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들에게 현 시점에 ‘학생사회’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대면으로 전환될 경우 어떤 문제가 생겨날 것이라 보는지 물었다.
임현정 씨는 “캠퍼스에 와서 직접 수업을 듣고 학교에 목소리를 내야 학생사회라는 것이 실존한다고 체감하지 않겠느냐”며, “대면 사회가 돌아올 경우 학생사회 전반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질 것”이라 예측했다.
다가올 대면 사회가 ‘대학 문화’가 실재함을 보여줄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신아연 씨는 지금은 코로나19로 대학 공동체가 약화돼 각자도생하는 문화가 퍼져 있어, ‘대학 문화’의 실체를 체감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신 씨는 “개강·종강 파티 같은 대학 공동체에서 영위할 수 있는 대학 문화들이 다시 생겨나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신아연 씨는 대면 사회에서는 대학 문화를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대면 환경이 사회적 소수자의 가시화를 위해 필수적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조민우 씨는 입학 당시 새맞이 교육 자료에 담긴 인권 관련 내용과 에브리타임 내 소수자 비방 글 사이의 괴리에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조 씨는 “대면 사회가 돌아올 경우, 다시 대학 사회 내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합의된 인권의식이 전면에 드러날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을 품었다.
임현정 씨는 개인이 사회적 소수자의 입장에 공감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다는 측면에서 대면 전환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임 씨는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있던 동안 체험한 배리어프리 캠퍼스나 젠더프리 화장실을 예로 들었다. 그녀는 “대면 전환도 자연스럽게 소수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들을 존중하는 태도를 내면화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면 사회에서도 학생사회의 문제점이 크게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도 있다. 조민우 씨는 “학생사회가 커뮤니티화 됐다”며, ‘에브리타임’ 자유게시판에서 익명으로 유통되는 허위사실이나 혐오 담론들을 언급했다. 조 씨는 “발언에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에브리타임의 가장 큰 특징인데, 대면 사회가 된다고 해도 에타에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유포되는 경향이 줄어들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참여자들은 대면은 학생사회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임현정 씨는 침체된 학생사회를 복원해 나가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임 씨는 “코로나19로 인해 이미 학생회, 동아리 등 많은 단체들의 명맥이 끊긴 상태이지 않느냐”며, “코로나19 이후 입학한 학번들은 학생사회에 대한 이해도가 낮아 학생사회가 더 침체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예상했다.
노동과 인권 관련 단체에서 활동해 온 최은영 씨도 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최 씨는 “학내 이슈에 대해 코로나19 이전 학번과 이후 학번들의 이해도가 현저히 다르다”며, “20 이상 학번들이 학생사회의 주축이 될 경우 주도적으로 의제를 제시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대학의 의미
집담회의 마지막 질문으로, 참여자들에게 대학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물었다. 참여자들의 답은 아래와 같았다.

참여자들이 말하는 대학의 의미
대학은 다층적이다. 학업, 진로, 인간관계 등의 많은 기능을 수행하고, 다양한 취향과 정체성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게 된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집담회 참여자들은 대학이 단순히 학문을 습득하고 개인의 진로를 탐색하는 공간을 넘어, 나와 다른 사람들과의 공존하는 방법을 배워가는 곳이라고 정의했다. 코로나19 상황이 완화되고 완전한 대면 사회로의 복귀가 머지않은 시점에서, 대학 사회는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