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례 1. 5513 시내버스를 탄 A씨는 자연대 정류장에서 하차하던 중 위쪽에서 내려오던 전동 킥보드와 부딪힐 뻔 했다. A씨가 전동킥보드를 금방 발견했고, 킥보드 운전자도 뒤늦게나마 속도를 줄였기에 큰 피해는 없었지만 자칫하면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위험한 상황이었다. A씨는 “킥보드 운전자도 헬맷을 쓰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만약 조금만 판단이 늦었다면 둘 다 크게 다쳤을 것”이라 회상했다.
사례 2. 관악02 노선의 노천강당 정류장은 버스가 진입한 후 유턴을 해야 정차할 수 있다. 하지만 유턴을 완전히 하지 않고 정차할 경우, 멈춘 버스가 하차하는 승객들의 시야를 가려 뒤에서 진입하는 차량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인문대 학생 B씨는 “수업이 늦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어가는 경우 차가 갑자기 튀어나와 아찔한 상황을 자주 경험했다”고 말했다.
관악캠퍼스의 도로는 혼잡한 교통으로 교통사고가 끊이지 않을 뿐 아니라, 산지라는 지리적 특성 때문에 다양한 교통 문제가 발생한다. 캠퍼스 내 안전을 해치는 요인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안전한 캠퍼스 환경을 위해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짚어봤다.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위험한 서울대 도로 환경
가장 큰 문제는 빈번한 교통사고다. 서울대 관악캠퍼스 내 잦은 교통사고는 2015년 국정감사를 비롯해 서울대 안팎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됐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관악캠퍼스에서 일어난 차 대 사람 교통사고 건수는 16건이며, 그 중 보행자가 중상을 입은 경우는 4건이나 된다.
본부 캠퍼스관리과에 따르면 서울대 내 교통문제의 핵심 원인은 과도한 차량 진입이다. 서울대는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2호선 서울대입구역, 낙성대역)과도 도보로 30분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어 접근이 불편하고, 캠퍼스 부지도 타 대학에 비해 몇 배는 넓어 차량으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5대의 시내버스, 교내·교외 셔틀버스, 배달 오토바이, 물류 보급 트럭에다 학내 구성원과 방문객의 차량까지 통행한다.
자동차 통행량에 비해 도로는 좁고 주차 공간은 부족하다. 2022년 4월 기준 서울대 주차 정기권을 등록한 차량의 일평균 입차 수는 5,139대였지만, 간이주차장과 비공식 주차면수를 포함한 전체 주차면수는 5,704면에 불과했다. 정기권을 등록한 차량을 위한 주차면수도 겨우 충족시키는데, 정기권을 등록하지 않았지만 정기적으로 오가는 차량과 배달 차량 등을 포함해 계산해보면 실제 통행량에 비해 주차면수가 현저히 부족하다. 캠퍼스 내 차량이 많은 2-3시경이면 주차선이 그어져 있지 않은 곳에 노상 주차된 차량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오후에는 주차면이 그려지지 않은 곳에도 주차하는 노상주차가 심각하다.
주차면수 부족으로 인한 노상주차는 교통사고의 위험성을 높인다. 관악캠퍼스 내 순환도로는 왕복 2차선이어서, 노상 주차가 있을 경우 차량 통행로가 매우 좁아지기 때문이다. 캠퍼스 내 안전사고의 초동 조치를 담당하는 캠퍼스안전반 이성재 주무관은 “무분별한 노상 주차는 차량의 원활한 통행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주차된 차량이 장애물 역할을 해 보행자와 운전자의 시야를 막는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순환도로와 학교 내부의 도로들이 교차돼 있는 환경도 교통사고의 원인이 된다. 서울대에는 캠퍼스를 둘러싼 순환도로와 캠퍼스 내부 진입로가 교차하는 삼거리가 많다. 두 도로가 교차하는 삼거리에서는 여러 방향에서 많은 차량과 오토바이가 진입해 운전자와 보행자 모두 늘 주의를 기울여야만 한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정문과 총운동장 부근, 자연대 및 농생대 앞에서만 각각 7건 이상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는데, 이 구간들은 모두 순환도로와 학교 내부 진입로가 교차하는 삼거리 지점이었다.
고립된 산지에 위치한 관악캠퍼스의 지리적 한계도 문제가 된다. 본부 캠퍼스관리과 김성욱 주무관은 “캠퍼스 내 대부분의 교통 문제는 산지라는 점에서 출발한다”고 지적했다. 경사도 때문에 차도에서는 과속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차량이 주로 통행하는 순환도로는 정문부터 사회대 인근까지의 구간을 제외하면 평지가 없다. 특히 ‘공대폭포’라고 불리는 유전공학연구소(105동) 앞은 Y자 모양의 삼거리면서 경사도도 심해 교통사고가 자주 발생한다. 김성욱 주무관은 “공대 폭포 구간은 도로 경사가 심해 버스 기사들도 시야가 제한된다고 호소할 만큼 위험하다”고 설명했다.

유전공학연구소 앞 삼거리에 진입하는 차량은 누가 먼저 지나갈지 ‘눈치싸움’을 해야 한다.
심한 경사도는 전반적인 보행환경 개선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인권센터의 <서울대학교 학내 장애인 이동환경 조사사업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관악캠퍼스 보행로 대부분의 경사각도는 20°에서 30° 사이인데, 7° 이상의 경사각도는 일반인이 오르기 힘든 경사다. 김성욱 주무관은 “경사도 문제는 땅을 대대적으로 깎지 않는 이상 개선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고가 일어나기 쉬운 교통 환경도 위험하지만, 보행 친화적이지 않은 캠퍼스 환경도 문제다. 캠퍼스 환경의 문제점과 발전 방향을 정리한 <2022-2026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학내에는 폭이 좁거나 보차분리가 되지 않은 노후화된 보행로가 많다. 음미대와 220동 사잇길, 행정관 및 자하연 주변 등 학교 곳곳에 보차분리가 되지 않은 보행로가 많다.
최근에는 개인형 이동장치(PM)도 서울대 도로의 새로운 위험 요소로 등장했다. 넓은 캠퍼스를 쉽게 이동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인형 이동장치는 인도와 차도를 모두 이용해 보행자에게는 더욱 위험하다. 자동차에 비해 운전자의 사고 위험도 크다. 2017년부터 2022년 사이 관악캠퍼스 내에서 개인형 이동장치에 의해 일어난 교통사고는 4건이다. 이성재 주무관은 “개인형 이동장치가 처음 도입됐을 때 우려했던 만큼 사고가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교내 보행자 안전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도로 외 구역, 서울대 도로
캠퍼스관리과는 서울대 도로가 “도로의 모양을 갖춘 거대한 주차장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서울대 도로는 ‘공도’가 아니라, 교통 활동이 발생하지만 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도로 외 구역’이기 때문이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공도는 과속방지턱이나 신호등과 같은 도로 시설의 설치와 교통시설안전진단 규정, 과속이나 불법 주차까지 법적 규제를 받는다. 반면 대학이나 아파트 내 도로는 ‘도로 외 구역’으로 규정돼 도로교통법의 규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일각에서는 관악캠퍼스의 보행자 안전을 위해 서울대 도로가 도로교통법 체계로 편입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캠퍼스가 산지에 위치한 지리적 요인은 개선하기 어렵더라도, 서울대 도로의 법제화를 통해 과속 및 무분별한 노상 주차가 보행자의 안전을 해치는 문제는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8년 한국소비자원은 한국교통안전공단, 국회 정무위원회 김병욱 의원과 함께 실시한 <전국 대학의 교통안전실태 및 설문조사> 보고서에서 대학 내 도로에도 도로교통법 적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학 도로는 ‘도로 외 구역’이므로 교통사고 통계에서 제외돼 실태 파악이 어렵고, 음주·약물운전 등을 제외한 12대 중과실(상해사고)의 경우 합의하거나 보험 처리했을 때 형사처벌을 할 수 없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내용이다.
이에 총학생회 <자정>은 서울대 도로를 도로교통법상의 도로로 편입시키는 방안을 관악구청장 후보와 논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도로 편입을 통해 도로 운영 사항을 관악구청과 협의하고, 경찰이 학내 불법 주차, 과속 등을 직접 단속할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다. ‘도로 외 구역’에서는 단순 교통법규 위반과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행정처분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관악경찰서 교통조사계는 “관악캠퍼스 내부 도로의 주차나 속도 제한 규제는 경찰의 권한이 아니며 무면허·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 시에도 벌점 부과 등의 행정처분이 불가하다”고 설명했다. 조재현 총학생회 중앙집행위원장(자유전공 20)은 “관악구의원과의 면담에서 도로화의 실현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인 답을 받았고, 새 관악구청장과의 간담회에서 해당 내용을 논의해 볼 예정이다”고 밝혔다.
한편 도로 법제화가 서울대 교통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인가를 두고서는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이 엇갈린다. 일부에서는 도로 법제화가 도로 정체를 심화시킬 것이라고 주장한다. 현재도 퇴근길 정문과 후문 부근 통행 차량과 학교를 빠져나가는 차량이 만나 생기는 교통 정체가 심각한 상황이다. 김성욱 주무관은 “고속도로에서 지나친 서행이 통행에 도움이 안 되듯이, 좁은 도로에서 규제가 강화될 경우 정체가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제도의 문제보다는 운전자 및 보행자의 안전 의식 부재가 학내 교통 문제의 본질적인 원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성욱 주무관은 “과속방지턱, 횡단보도, 중앙선, 정지 표시판 및 일시정지 표시 등의 서울대 도로의 안전 시설이 부족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운전자나 보행자가 조금만 주의해도 사고 발생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 봤다. 이성재 주무관은 “학내 교통사고 현장에 출동해 보면 쌍방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가 가장 많다”고 말했다. 운전자는 과속하거나 횡단보도에서의 일시정지 의무를 지키지 않고, 보행자는 이어폰을 끼거나 횡단보도가 그려지지 않은 곳을 주의 없이 건너가는 등의 문제가 비일비재하다는 설명이다.

학내 통행 차량 중 규정속도인 30km/h를 준수하는 차량은 거의 없다.

서울대 도로에 적혀 있는 일시정지 표시
보행자 중심 캠퍼스를 위해
서울대는 5년마다 캠퍼스의 중장기적 발전계획 수립과 이행 상황을 점검한 <캠퍼스 마스터플랜>을 내놓고 있다. 캠퍼스 발전계획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차도의 법적 규제를 넘어서 보행자 중심의 캠퍼스를 구축하는 것이 서울대 교통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라 주장했다. 최근 <2022-2026 캠퍼스 마스터플랜> 연구에 참여한 김세훈 교수(환경대학원)는 “고립된 캠퍼스 위치 때문에 차량을 이용하는 추세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중점 관리 구역을 선정해 보행 친화적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마스터플랜의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고 말했다.
작년부터 진행된 정문 개선사업과 잔디광장 신축도 보행자 중심 사업의 일환이다. 두 사업 모두 차량 통행로와 보행로를 분리시켜 보행자 안전을 확보하고 경관을 개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본부 기획과는 2020년 11월부터 본부 직원들과 건축환경 전문가가 참여한 ‘문화관-정문-잔디광장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사업 추진 과정에서 통일성 있는 환경 개선을 추진해왔다. 기획과 나경훤 선임주무관은 “공모전을 통해 전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했고, 재경·기획·캠퍼스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설기획과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였던 보행 안전 및 주차 공간 확보라는 목표를 이룰 것이라 기대한다”고 밝혔다.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라 보행환경 개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정문과 잔디광장 사업에 한정돼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전반적인 보행환경 개선사업의 실행률은 여전히 저조하다. <2022-2026 캠퍼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지난(2017년) 마스터플랜에서 계획됐던 보행환경 개선사업의 종합 실행률은 22.6%로, 동일 보고서에서 계획된 신규 건축사업의 실행률(50%)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2017-2021 캠퍼스 마스터플랜>에서 계획된 보행환경 개선사업 중 행정관 주변을 제외한
개선 사업은 거의 이행되지 않았다. ⓒ<2022-2026 캠퍼스 마스터플랜>
공간계획 전문가들은 캠퍼스 개발 계획에서 보행자보다 차량 이용자의 편의가 중시되고 있다는 점을 낮은 보행환경 개선사업 이행률의 원인으로 짚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오성훈 연구원은 “주차 공간과 보행 공간은 하나를 늘리면 하나를 줄여야 하는 관계”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특정 단과대학에서 추가적인 주차공간 확보를 밀어붙여 녹지나 보행자 공간으로 쓰여야 할 곳이 주차장이 되어버린 사례도 있다. 오 연구원은 보행자 중심의 캠퍼스를 만들기 위해 “주차수요를 장기적으로 줄여나간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체교통수단의 확충 및다변화 방안을 지속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주차 공간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주차장을 충분한 계획 없이 신축할 경우, 주차가 불편해 대중교통을 이용했던 사람들까지 다시 차량을 이용해 추가적인 주차 수요가 촉발될 가능성이 있다. 마스터플랜 연구팀은 이에 “주차부족도 지수를 도출해 특정 지역에 거점 주차장을 만들고, 그 외의 노상, 노외, 순환도로 주차를 흡수해 그 공간을 다시 보행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며 구체적인 개선 방향을 제시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캠퍼스 개발 계획을 관통하는 일관성 있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세훈 교수는 재원을 가진 단과대나 기부자에 의해 초기 개발 계획이 충분한 논의 없이 변경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성훈 연구원도 “캠퍼스 개발에 관한 의사결정 구조에서 보행 안전이라는 공적 목표보다 투자자나 차량 이용자의 의견이 우선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했다. 외부의 개입에 휘둘리지 않고 당초 계획의 목적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보행자 중심 캠퍼스’라는 목표를 일관성 있게 추진할 거버넌스 체계의 확립도 필요하다. 현재 캠퍼스 개발은 개별 단과대학과 기관 및 본부에서 필요에 따라 신규 사업을 발의한 후, 캠퍼스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시설기획과가 집행하는 구조다. 마스터플랜은 ‘발의 기관의 시설사업 계획이나 수요에 관한 논의가 캠퍼스 마스터플랜에서 제시하는 방향과 정합적이지 않다는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 다원화된 의사결정 구조에서 캠퍼스 개발을 시행하는 과정이 마스터플랜의 방향성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에 김세훈 교수는 ‘캠퍼스 개발 사업의 전 과정에서 마스터플랜의 수립, 집행 및 모니터링을 담당할 상설 기구 설립’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오성훈 연구원은 “공간 계획의 핵심은 누구에게 공간의 이용권을 우선적으로 줄것이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전반적인 캠퍼스 발전 계획에서 보행자 집단을 우선적으로 두고 나머지 문제를 조율해 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관악캠퍼스는 보행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극복하고 보행자 중심 캠퍼스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