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 이대로 괜찮을까?

식대 인상을 넘어 생협의 오랜 구조적 문제 봐야

  지난 3월 17일에 열린 2022년 제1차 생활협동조합(생협) 이사회에서 식대 인상안이 통과됐다. 그 결과 4월부터 학생 식당의 세트 메뉴 식대가 1,000원씩 인상됐다. 생협 측은 누적된 적자가 경영을 위협하는 수준이었다며 식대 인상이 불가피했다고 설명했다. 생협의 적자 운영은 지속적으로 있어온 문제다. 2020년에도 식대 인상안이 논의됐고, 당시 적자 해소를 위해 생협 직영 매점이 프랜차이즈 편의점으로 바뀌기도 했다.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빚어진 노사 갈등 역시 생협이 오랜 기간 안고 있던 문제다. 일례로, 18년 만에 벌어진 2019년 생협 총파업과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파업도 노동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발생했다.

  고질적인 적자 운영과 노동 문제는 생협의 지속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학교의 재정 지원 확대, 나아가 학생 식당의 직영화가 해법으로 제기돼왔지만 학교의 입장은 회의적이다. 생협 문제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서로 다른 시각들을 살펴봤다.

서울대에 생협이 만들어지기까지

  생협은 대학 구성원들이 조합원으로 참여해 출자·운영하는 비영리 법인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대학 생협은 80년대 후반 활발해진 ‘대학 생협 운동’에 연원을 두고 있다. 대학 생협 운동은 교원, 직원, 학생 등의 대학 구성원이 학교 내 복지를 스스로 해결하자는 움직임이다. 

  과거 대학에서는 복지 시설을 영리 목적의 외부 업체에 위탁해 운영했는데, 이로 인해 식사의 질이 하락하는 문제가 있었다. 식당 판매가를 높게 책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외부 업체는 식사의 질을 낮추는 식으로 수익을 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소비자인 학내 구성원이 주축이 돼 조합을 만들었다. 이 조합에서 복지 기능을 담당하게 함으로써 복지를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려 했다.

  서울대 생협은 기존에 식당 등을 운영하던 생활복지조합(복지조합)이 대학 생협 운동을 거치며 생협으로 전환된 것이다. 생활복지조합 이전에는 서울대학교 소비조합(소비조합)이 식당 운영을 담당했다. 1975년에 캠퍼스종합화 계획에 따라 흩어져있던 단과대학이 관악캠퍼스로 이전해오면서, 학교 측에서 당해 2월 소비조합을 만들었다. 소비조합이 복지조합으로 재편된 것은 1990년이다. 복지조합은 독립적으로 직원을 고용하고 재정을 운영했지만, 법인격을 갖추지 못한 서울대 내 임의기구였다. 따라서 회계 처리가 모호하다는 문제가 있었다.

  한국대학생협연합회 정선교 조직교육 팀장은 “대학 생협 운동이 확대되면서 정부가 대학 생협 확대를 위한 조치를 취하라는 요구도 늘어났다”며 “정부도 국공립 대학 내 구성원 복지를 담당하는 임의조직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할 방안이 필요해 동조했다”고 설명했다. 국공립 대학 소비조합은 당초 교육지원시설을 운영한다는 이유로 국유재산인 대학 부지를 별도의 입찰 경쟁 없이 무상으로 사용해왔다. 하지만 ‘경쟁의 방법에 의하지 않은 국유재산(토지)사용이 국유재산법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에 교육부는 소비조합을 생협으로 전환하면 국유재산을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으로 생협 전환을 독려했다. 그렇게 서울대 생협은 2002년에 「소비자생활협동조합법」에 근거해 생협의 형태를 갖추게 됐다.

사진 설명 시작. 가장 첫 행에는

대학 소비조합의 생활협동조합 전환에 관해 교육부에서 송부한 공문 ⓒ경희대 생협

  생협은 학교와 분리돼 독자적으로 운영하는 법인이지만, 학교와 전적으로 별개의 관계는 아니다. 정선교 팀장은 “생협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직접적인 대상이 대학의 구성원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고려해 학교로부터 간접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학 부지의 임대료나 공공요금을 감면해주거나, 대학 차원에서 생협의 물건을 입찰 없이 구입해주는 식이다. 서울대의 경우 생협에게 카페나 식당 같은 학내 편의시설의 관리 위탁 권한을 일부 위임해 위탁 업체가 납부하는 수수료로 재원의 상당 부분을 마련할 수 있게 했다.

생협은 왜 적자를 보게 됐을까

  이번 식대 인상은 서울대 생협의 재정난이 심화되면서 이뤄졌다. 재정난의 원인으로는 이윤을 내기 어려운 단체급식 사업의 특성과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침체가 꼽힌다. 통상적으로 학교 단체급식은 이윤을 내기 어렵다. 서울대 생협도 지난 20년간 식당에선 매년 적자를 내왔다. 이용자 수의 변동 폭이 큰 데 비해 식당 인력의 고용을 유연하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학에는 식당 이용자 수가 절반 이상 줄어든다. 생협 FS사업본부 김태수 팀장은 “최근 노동시장에서는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규범적인 요구도 있을뿐더러, 관악 캠퍼스는 교통이 불편해 지원하는 사람이 적어서 계약직도 아주 단기로는 고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서울대 생협은 식당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카페나 문구점 등 다른 부서 수익으로 메워 왔지만, 코로나19 유행으로 인해 이용수가 급감하면서 다른 매장의 운영도 어려워졌다. 그러나 교직원이나 일부 학생이 여전히 학교에 나오기 때문에 식당·매장 운영 자체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최소한으로 운영하더라도 이용자가 많을 때를 대비해 설계된 시설이라 고정적인 운영 비용이 상당했다. 생협 재무 지표에 따르면 비대면 학사 운영 기간이었던 2020년에는 15억, 2021년에는 5억 가량의 영업이익 적자가 발생했다. 

사진 설명 시작.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년간 영업이익이 꺾은선 그래프로 표시돼있다. 단위는 백만원이다. 이하 각 연도별 영업이익 수치. 2017년 623, 2018년 491, 2019년 133, 2020년 -1,540, 2021년 -549. 사진 설명 끝.

지난 5년간 생협 영업이익

  서울대 생협은 코로나19 유행 초기 2년간 기존에 모아둔 자금으로 적자를 감수했다. 그러나 이 방식도 한계에 부딪히자 식대 인상을 제안하게 됐다. 생협 FS사업본부 정용철 본부장은 “올해도 11억의 적자가 예상돼 있었는데, 이것마저 모아둔 자금으로 충당할 경우 생협의 경영이 너무 악화될 것으로 봤다”며 “경영 지속을 위해 식대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이사회에 알렸다”고 설명했다.

식대 인상, 본질에 닿지 못하는 해법

  이번 식대 인상은 일차적으로는 코로나19로 발생한 손해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생협을 가까이 지켜본 이들은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 의한 일시적 재정 악화가 문제의 본질은 아니라고 봤다. 생협의 집행 이사로 활동했던 이봉의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지금의 생협 문제는 생협이라는 조직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과정에서 재정과 노동조건 문제가 겹쳐져 심화됐다고 설명했다. 

  생협은 협동조합으로서 조합원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학내 구성원 전체의 복지를 책임지는 학교의 일부 조직처럼 기능하고 있다. 생협 정관은 “면학 분위기 조성과 구성원들의 복지향상”을 설립 목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서울대 생협은 조합원과 비조합원인 일반 구성원에게 거의 동일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조합의 사업 및 시설 이용 대상을 조합원에 국한하는 일반 생협과 달리 대학 생협은 구성원 모두 생협의 사업을 이용할 수 있다. 대학 생협이 외부와 분리된 공간에서 사업을 운영한다는 특징 때문이다. 조합원과 비조합원이 같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면서 조합원들에게만 할인이나 적립 혜택, 배당금을 주는 등 조합원과 일반 구성원의 사용 혜택을 차별화하는 게 보편적인 대학 생협의 운영 방식이다. 하지만 서울대 생협에선 흑자가 나더라도 조합원에게 배당이 이뤄진 적이 없으며, 조합원과 일반 구성원의 식사 가격도 동일하다. 

  그러나 학교는 생협이 조합원의 이익을 증진하는 독립적인 조직으로서 학교와는 별개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봉의 교수는 실제로 학교와 생협의 분리가 이뤄지는 중이라고 봤다. 일례로 생협의 학내 편의시설 관리위탁권이 학교에 순차적으로 반환되고 있다. 앞으로는 생협이 직접 학교가 제공하는 공간을 임대받거나 학교가 직접 외부 업체에 임대해 사업을 하게 된다. 이봉의 교수는 “코로나로 인해 생협의 재정 상황이 악화됐을 때도 본부는 임대료 감면 등 최소한의 지원을 할 뿐이었다”며 “본부가 생협의 생존을 어느 정도 보장해주던 구조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생협의 정체성이 모호한 상황으로 인해 재정적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이다. 생협이 구성원 복지 명목으로 대학 측에 출연해온 발전기금이 과도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일반적으로 대학 생협은 사업을 하고 남은 잉여금을 학내 구성원 복지를 위해 쓴다. 하지만 서울대 생협은 경영 수지 악화로 그간 생협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재원이 부족한 상황에서도 상당한 금액의 기금을 출연해왔다.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평균적으로 실질 순이익의 약 71.4%가 발전기금으로 출연됐다. 송호현 지부장은 “생협이 수익금의 일부를 학교의 장학, 학술연구 지원에 환원하는 것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지만, 어디까지나 생협 구성원의 이익과 안정적인 재정 운영이 담보되는 선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정적 어려움은 생협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개선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노후한 시설 등 조리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 문제가 오랫동안 지적돼왔지만, 생협 측은 재정 상황을 이유로 들며 노동환경 개선에 미온적이었다. 송호현 지부장은 “시설 투자 비용이 없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건강을 갉아가면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재정 악화로 인해 인력을 줄이면서 노동강도는 더욱 높아졌다. 2019년부터 퇴사자를 충원하지 않는 방식으로 감원이 이뤄졌는데, 2020년 코로나 확산 이후에는 탄력근무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인건비 상승은 미미한 상황에서 노동강도가 극심해지자 노동자들의 반발도 심해졌다. 2019년부터 최근까지 이어진 노사 갈등도 이런 이유로 벌어졌다.

사진 설명 시작. 행정관 앞 파란색 조끼를 입은 노동자들이 열을 이뤄 서있다. 맨 앞 줄 사람들이 들고 있는 플랑에는

2019년 생협 총파업 당시 집회

  노동 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인력 충원도 어렵다는 것도 문제다. 이봉의 교수는 “외부 업체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구성원의 새로워진 수요에 맞춰 사업을 개편하거나 신규 사업을 시도해야 하지만, 인력이 없어 여의치 않다”고 설명했다. 학교 측에서 외부 업체가 나간 자리에 새 식당을 열 것을 생협에게 제안했지만 식당에서 일할 사람이 없어 무산되기도 했다. 적자 운영 타개를 위해서 수익성을 높일 자구책을 마련하려 해도 사람이 부족해 시도하기 어렵고, 근로 조건 향상은 더욱 요원해지는 악순환인 것이다.

생협 문제, 직영화가 답?

  일부에서는 생협의 재정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학교의 지원 확대, 나아가 학생 식당의 직영화를 얘기한다. 하지만 학교의 재정적 책임을 확대하는 방안이 적절한가를 두고는 입장이 갈린다. 우선 직접 재정 지원에 회의적인 입장이 있다. 학교 재정 투입이 법적으로 어렵고, 본래 생협의 운영 원칙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봉의 교수는 “본부와 생협은 별개의 법인인데, 법인 간 돈을 움직이는 일은 여러 법적인 문제 소지를 안고 있다”며 “본부가 직접 재원을 투입해 적자를 메꾸는 방법은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정선교 팀장은 “협동조합은 자율과 독립이라는 원칙에 바탕해 운영되는 자생적 조직이므로 학교로부터 지원을 받는 게 바람직하다고 보진 않는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에서는 학교의 지원이 일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정선교 팀장은 “정부의 집합금지 조치 등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업장에게 보상을 해주듯, 대학 생협이 비대면 학사 운영 방침으로 피해를 입은 부분에 대해서는 대학이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경희대 생협의 경우 올해 경희대로부터 교비를 일부 지원받았다. 경희대 생협 관계자는 “코로나라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어려움이 발생했다는 부분을 학교 측에서 고려해 수도광열비(수도료, 전기료, 가스비 등) 명목으로 지원을 해줬다”고 설명했다.

  직영화는 재정 지원에서 한발 더 나아간 요구다. 사실상 생협을 해체하고 학교가 식당을 비롯해 여타 편의시설을 운영하는 주체가 되라는 것이다. 직영화를 요구하는 측에서는 구성원 복지를 위해 생협이라는 방식을 도입한 결과가 성공적이지 못했다고 평가한다. 생협이 전체 구성원의 복지에 초점을 맞춰 운영되는 한 적자가 발생할 수밖에 없으니, 직영화로 운영 방식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송호현 지부장은 “구성원 복지 향상은 대학 당국이 맡아야 할 의무”라며 “복지를 외주화하는 게 아니라 서울대가 직접 책임져야 한다”고 역설했다. 

  생협을 유지하되 운영 방안을 보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직영화의 실현 가능성은 낮고, 대학이 직접 복지에 나설 개연성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선교 팀장은 “학교가 자체적으로 자금을 투여해 식당을 운영하는 게 제일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면서도 “사실상 학교에서 할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이용자들이 직접 복지를 해결하는 생협이 현실적으로 가장 나은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조합원이 소유해 자율적으로 운영하는 생협의 특성상 학교가 직영하는 것보다 조합원의 의견을 잘 반영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생협의 사정을 가까이에서 봐온 이봉의 교수는 서울대 생협이 전체 구성원에게 동등한 복지를 제공해 온 기존의 운영 방식에서 벗어나, 본래 협동조합의 원리에 맞게 운영돼야 한다고 봤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선 발전기금의 출연도 재검토돼야 한다고 봤다. 인력 확충과 신규 투자를 위한 재원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리하게 기금 출연을 지속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더불어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 인력이 외부에서 유입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진 설명 시작. 강의실 단상에 책상 세 개가 놓여있고 각 책상마다 사람이 한 명씩 앉아있다. 가장 좌측에 있는 중년 여성이 마이크를 들고 발언하고 있다. 강의실 좌석 쪽에는 사람들이 듬성듬성 앉아있다. 사진 설명 끝.
지난 5월 열린 생협, 대학본부, 학생들 간 간담회 모습 ⓒ홍원준 사진기자

  생협이 운영되는 방식에 대한 조합원들의 관심도 필요하다. 경희대 생협 관계자는 “생협은 좋은 취지로 출발했지만 어떻게 운영되느냐가 관건”이라며 “생협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원인을 조합원들이 살펴보고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모든 대학 생협은 소비자생협법을 따르고 있지만, 세부적인 운영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이익이 발생했을 때 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구성원과 조합원에게 협동조합의 혜택을 얼마나 차별적으로 제공할 것인지 등의 세부사항은 조합원의 민주적인 의사결정을 통해 정해지기 때문이다. 정선교 팀장은 “생협 사무처는 조합원 대의기구에서 의결된 사항을 이행할 뿐”이라며 “조합원으로 가입했다면, 조합의 운영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 생협은 구성원 복지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다. 현재 생협이 마주한 문제를 풀어나가야 하는 이 역시 생협 운영 주체인 조합원과 혜택의 대상자인 학내 구성원이다. 안정적인 식사를 보장받고 싶다면, 서울대 생협의 역사와 오랜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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