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포경은 불법이다. 하지만 고래를 잡는 것이 불법일 뿐, 유통은 합법인 상황으로 인해 고래 포획 뉴스가 종종 보이고, 고래고기를 판매하는 식당들은 여전히 건재하다. 고래는 어떻게 계속해서 죽어가고 있을까. 사라지지 않는 고래 포획에 대해 다뤄봤다.

계속되는 불법 포획, 사라지는 고래들
포경이 전 세계적으로 금지된 것은 1986년 세계포경위원회(IWC)가 상업포경을 금지하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 역시 ‘고래자원의 보존과 관리에 관한 고시(고래고시)’를 통해 고래의 상업적 포경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를 어길 경우 수산자원관리법에 따라 처벌된다.
이에 따라 현재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유통될 수 있는 고래는 다른 어류를 조업하던 중 우연히 혼획된 고래 뿐이다. 그러나 해양활동가들은 더 많은 불법 포획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추측한다. 해양환경단체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공동대표는 “고래고기가 식당에서 판매되는 양을 합쳐보면 한국에서 매년 유통되는 고래는 100~200마리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며 “해경 자료에서 확인된 합법적으로 유통 가능한 수는 50~60마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나머지는 불법 포획되거나 불법 수입된 밍크고래라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우리나라 해역에서는 심심찮게 불법 포경 어선이 적발된다.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2015-2020년 사이 우리나라 해역에서 불법 포획된 고래는 총 54마리다. 2021년엔 6건의 불법 포획이 적발됐고, 총 10마리의 고래가 사망했다. 불법 고래 포획이 주로 발생하는 곳은 울산을 중심으로 한 동해안 해역이다. 과거 포경의 중심지였던 울산 장생포가 있을 뿐만 아니라, 불법 포획의 주 대상인 밍크고래가 주로 서식하기 때문이다.
우연히 잡힌 고래 유통은 합법이라고요?
어민들은 고래를 ‘바다의 로또’라 부른다. 의도적으로 고래를 포획하는 것은 불법이지만, 우연히 고래가 혼획되면 엄청난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혼획되는 고래인 밍크고래는 한 마리당 5천만 원에서 1억 원 사이에 거래된다. 지난 한 해 동안 국내에서는 1,065건의 고래 사망이 신고됐다. 이 중 혼획된 고래는 절반 정도를 차지한다. 혼획은 조업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른 나라에 비해 혼획 발생률이 높다.
우리나라에서 혼획되는 고래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혼획은 일반적으로 고래들이 지나다니는 바다의 통로에 설치된 그물로 인해 발생한다. 그러나 해양생태 전문가들은 우연히 고래들이 그물에 걸리는 것이 혼획의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환경운동연합 김솔 활동가는 “우리나라는 어업 밀집도가 높아 어촌 지역에 그물이 많이 설치돼있다는 점도 있지만, 불법인 고래 포획과 달리 고래고기 유통은 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래사체를 유통하면서 얻는 경제적 이득을 노리고 혼획을 가장한 불법 포획을 한다는 것이다.
설령 고래가 우연히 혼획됐다고 하더라도 고래를 거래하기 위해 방류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실,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고래고시 개정 1년 실효성과 개선 방향 토론회’에서의 제주대 김병엽 교수에 따르면 “정치망(한 자리에 고정해 두고 어류를 잡는 그물)으로 인한 혼획이 전체 밍크고래 혼획량의 41.3%를 차지하고 있는데, 정치망에 혼획된 고래는 간단한 방식으로 방류되면 생존 확률이 90%”라고 말했다. 고래사체를 유통할 수 있는 현재의 구조는 생존할 수 있는 고래를 그물 안에 그대로 두게 만든다는 것이다.
고래 포획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
국제적 흐름에 따라 고래 보호 규정이 만들어졌지만, 한국은 고래 보호에 다소 소극적이다. 2018년 브라질에서 열린 세계포경위원회 67차 총회에서 일본은 포경 관련 소위원회를 신설하고 국가별 쿼터를 설정해 상업적 포경을 재개하자는 안건을 제출했다. 결과적으로 안건은 전체 68개국 중 41개국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한국은 기권표를 던졌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해양수산부 국제협력총괄과 임성규 사무관은 ‘상업포경 재개에는 반대했다. 하지만 포경위원회 설치는 찬성했기 때문에 결정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국은 같은 총회에서 상정된 남대서양 고래보호구역 지정 안건, 고래를 영구히 보호하자는 내용을 담은 ‘플로리아노폴리스 선언’ 채택 건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급진적 고래 보호 정책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미국이 수산물 수입 관련 규정을 개정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미국은 2017년 해양포유류보호법을 개정해, 어업 활동 중 해양포유류의 우발적 사망이나 심각한 부상을 일으키는 어업으로 생산된 수산물과 그 가공품의 수입을 금지했으며, 미 해양대기처에서 금지한 방법으로 어획된 수산물 수입도 금지했다. 대미수출되는 우리나라 수산물이 증가하는 상황에서 조업방식 규제가 진행된다면 전반적인 수산물 수출 산업에 큰 타격이 발생하게 된다. 혼획된 고래의 거래 역시 같은 방식으로 타격받게 된다. 이에 한국에서 역시 국가적 차원의 어업 방식 개선을 위한 규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해 5월 고래고시가 개정됐다. 개정안은 ▲좌초(암초에 부딪혀 사망)·표류(해안가에 고립돼 사망)된 고래류의 판매 불법화 ▲혼획 고래는 판매 가능 유지 ▲불법포획고래류 판매는 불법화의 내용을 담고 있다. 좌초, 표류, 혼획 고래 모두 판매할 수 있었던 기존 규정보다는 나아졌지만, 거래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혼획 고래 거래는 여전히 허용되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고래고시 개정의 효과는 미미하다. 고래고시 개정 토론회에서 박선호 연구원은 “고래고시 개정 1년 후 고래류 혼획고래 거래 현황을 살피면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많아졌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해양경찰청에 따르면 개정 후 올해 1분기 혼획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 192마리에서 205마리로 증가했고, 판매된 고래 수도 160마리에서 195마리로 증가했다. 혼획된 고래의 유통이 금지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인 고래 보호 효과가 없는 것이다. 핫핑크돌핀스 조약골 공동대표 또한 “고래고시 자체가 고래를 판매할 자원으로 간주하고 만들어진 제도이기 때문에, 고래고시 개정만으로 고래 보호를 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고래고시 개정이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또 다른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우리는 고래를 지킬 수 있을까
지난해 시민환경연구소가 1,500명의 전국 6대 광역시 성인 남녀를 대상으로 해양포유류 보호에 관한 국민 인식을 조사한 결과, 85.5%가 ‘해양포유류 보호를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으며, 응답자의 72.9%가 ‘고래고기 판매에 반대’했고 76.3%가 ‘고래고기를 먹는 식문화를 중단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미온적인 정부의 태도와 법적 보호망에 반해, 고래 보호에 대한 시민적 공감대는 형성돼있는 것이다.
고래 보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에 호응한 정부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환경운동연합 김솔 활동가는 “판매 금액을 개인이 아니라 국가가 환수하는 방식으로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에게 이익이 돌아가지 못하면 혼획되는 고래 역시 줄어들 거라는 의미다. 고래고기 수요가 높고 혼획 및 불법 포획의 주요 대상이 되는 밍크고래를 보호종으로 지정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으로 제시된다. 보호종으로 지정되면 상업적 거래가 전면 금지되기 때문이다. 현재 상괭이를 비롯한 12종의 고래가 포획금지종으로 지정돼 있지만, 밍크고래는 보호종으로 지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보호종 지정이 전부가 될 수는 없다고 말한다. 보호종에 대한 관리가 미흡하다보니 보호종인 상괭이 역시 혼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해양환경단체인 시셰퍼드코리아 김혜란 활동가는 “보호종으로 지정된 후에도 철저한 사후 관리가 진행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점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입장이다. 고래고시 개정 토론회에서 해양수산부 임태호 수산자원정책과장은 “여전히 고래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감안하고 국제적인 추세도 맞춰가면서 노력하겠다”라고 전했다.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정부에, 최근 환경운동연합은 해양포유류보호법 제정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보호법을 제정해 혼획을 유발하는 어업 방식을 금지하고, 혼획된 고래 판매를 금지하자는 것이다. 수산업법 아래에서 고래가 수산 자원으로 관리되는 현행법과 달리, 해양포유류보호법은 고래 같은 해양포유류를 보호 대상으로 지정·관리한다.
핫핑크돌핀스 역시 지난 4월 25일부터 5월 6일까지 2주간 경복궁역 근처에서 ‘밍크고래 보호종 지정’과 ‘고래류 사체 유통 금지’를 촉구하는 릴레이 일인 행동을 진행했다. 고래 보호에 대한 정부의 움직임을 요구하는 것이다. 동물 보호 활동에 10년간 참여해왔다고 밝힌 이미애 씨는 “혼획을 조장하는 듯한 애매모호한 법 때문에 고래가 잘 보호되지 않고 있다”며 “고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지능이 높은 동물이고, 이들을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 높였다.
인간의 욕심으로 고래들이 죽고 있다. 고래를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에 공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질적인 제도 개선은 더디기만 하다. 고래고시 개정 토론회에서 박선호 연구원은 “2019년 진행한 토론회와 오늘 진행하는 토론회의 자료가 크게 다른 것이 없어 놀랐다”는 말로 발제를 시작했다. 3년 뒤의 토론회에선 더 나은 논의를 이어가기 위해, 죽은 고래가 유통 가능한 현실을 돌아봐야 한다. 말뿐인 고래 포획 근절을 넘어 이제는 정말로 우리가 고래를 아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