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초 중부지방 폭우로 인해 전국에서 사유시설 3,879건과 공공시설 656건의 손실이 발생했고, 서울특별시에서는 10명이 넘는 사람이 죽거나 실종됐다. 해당 폭우로 인해 서울대 관악캠퍼스도 풍산마당 주변 도로가 파손되고 배수 시설이 확충되지 않은 사범대, 인문대, 공대 등의 건물이 침수됐다. 수해 정도가 극심했던 인문대와 사범대는 2022년 가을학기 개강일인 9월 1일까지 수해 복구가 완료되지 않아 일부 강의가 비대면으로 전환됐다. 서울대 역시 기후 재난에서 예외가 아닌 셈이다. 기후위기를 넘어선 기후재난 시대, 서울대학교의 노력은 어떠한지 알아봤다.
시대적 과제가 된 기후재난 대응, 온실가스 배출을 줄여라
2018년, 유엔 안토니우 구테흐스 사무총장은 유엔 연설에서 ‘기후위기(climate crisis)’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기존에 주로 사용되던 단어인 ‘기후변화(climate change)’가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기후 문제가 위기에 접어들었다는 문제의식에 따른 것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현재,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climate catastrophe)’이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폭염, 폭우 등과 같은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가 더 자주, 심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8월 파키스탄 몬순 홍수로 인해 1,1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국제적으로 기후 문제를 지칭하는 표현으로 기후재난이 보편화됐다.
세계기상기구(WMO)와 유엔환경계획(UNEP)에 의해 설립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는 1990년부터 기후변화에 대한 전세계 연구 결과를 종합해 「IPCC 평가보고서(IPCC Assessment Report)」를 발간하고 있다. IPCC의 보고서는 교토 의정서, 파리 협정 등 주요 기후 관련 국제협약의 근거자료로 사용돼왔다. 2021년부터 올해에 걸쳐 발간된 「IPCC 제6차 평가보고서」는 기후재난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온실가스 증가를 지목했다. 인간 활동으로 인해 대기 중 온실가스가 늘어 기온이 상승하고, 이에 따라 이상기후의 빈도와 강도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IPCC는 지구 기온이 상승할수록 기후재난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질 것을 예상하며, 지구온난화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을 강조했다. 「IPCC 제6차 평가보고서」에 의하면 지구 평균 기온이 1.5℃ 상승할 경우 기존에 10년에 한 번 수준으로 발생하던 이상기후가 폭염은 4.1배, 폭우는 1.5배 더 자주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인류 생존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상황을 막으려면 지구 평균 기온 상승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 이하로 제한해야 하며, 그를 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43%, 2050년까지는 84% 감축해야 한다’는 것이 제6차 평가보고서의 요지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서울대의 노력
대학도 기후재난 대응 주체로서 적극적인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세계 대학사회에 퍼지고 있다. 서울대가 처음 온실가스 감축을 목표로 세운 것은 14년 전인 2008년이다. 2008년 10월, 이장무 전 총장은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Sustainable SNU)’을 발표했다. 선언의 배경에는 같은 해 6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렸던 국제대학정상회담(G8 University Summit)이 있었다. G8 국가의 주요 대학 관계자들이 모인 2008년 국제대학정상회담의 주제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대학의 책임이었다. 당시 ‘삿포로 지속가능성 선언(SSD)’에 참여한 서울대는 이를 이행하기 위한 후속 조치로서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을 발표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은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연구·교육·실천 ▲지역·지구사회와의 협력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캠퍼스 환경관리 ▲친환경적 캠퍼스 조성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관리와 운영 체제 정비의 5개 분야와 하위 17개의 실천목표로 구성됐다. 이후 세부적인 추진방안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재학생 연구진에 의해 “녹색캠퍼스 추진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 사이의 소통을 증진시킨다”라는 실천목표가 추가돼 18개로 늘어났다. 18개 실천목표에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절반으로 감축하고, 흡수량은 두 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도 포함됐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은 향후 서울대의 지속가능성 관련 활동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밑그림 역할을 했다. 서울대는 선언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추진방안연구를 통해 86개의 실천과제를 수립했고, 이들을 하나씩 실행해 나갔다. 서울대가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2009년에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을 추진·관리할 목적으로 본부 직속 ‘아시아 에너지 환경 지속가능발전연구소(현재 지속가능발전연구소)’를 설립한 일이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추진방안연구’에 참여한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정혜진 연구교수는 “해외 대학들은 학내에 지속가능발전을 전담하는 기구가 있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에서는 (지속가능발전연구소가) 거의 유일한 사례”라며 “(지속가능성 관련) 활동을 추진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고, 이런 활동들을 꾸준히 할 수 있게 제도를 명문화한 것이 (선언의) 가장 중요한 성과인 것 같다”고 평가했다. 지속가능발전연구소는 현재도 그린리더십 교과과정 운영,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지속가능발전 관련 연구 지원 등 서울대의 지속가능성 관련 활동을 주관하고 있다.
2010년 서울대는 국내 대학 최초로 온실가스 인벤토리*를 구축했다. 학내의 온실가스가 어디에서 얼마나 배출되고 있는지 대학 중 처음으로 파악한 것이다. 같은 해 지속가능성을 위한 서울대의 노력을 정리하고 향후 계획을 제시한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백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2011년에는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이 개설됐다. 그린리더십 교과과정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인재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과과정으로, 현재 ‘기후변화와 건강’, ‘녹색경제의 이해’, ‘생태철학과 환경윤리’ 등의 교과목이 개설돼 있다. 2013년에는 국내 대학 최초로 기후변화대응 이행계획을 발표했고, 2014년부터는 매년 온실가스 배출 현황과 감축 활동을 정리한 「그린레포트」를 발간하고 있다. 2017년 환경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을 인정해, 그린캠퍼스 조성 최우수 대학으로 서울대를 선정했다. 2019년에는 서울대가 그린캠퍼스 지원 사업에 선정됐다. 그린캠퍼스 지원 사업은 대학의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환경부가 재정과 기술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선정 대학은 3년간 총 3억 6천만 원을 지원받는다.
학생 차원에서도 다양한 단위가 에너지 절약, 쓰레기 문제 해결 등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친환경 학생단체인 ▲씨알 ▲방과 후 그린 사업(방그사) ▲GEMA ▲SNUCSR ▲AIESEC in SNU ▲그린인어스 등이 그 사례다. 서울대는 지속가능발전연구소를 중심으로 친환경 학생단체들을 꾸준히 지원하며, 학생 차원의 기후위기 대응 운동을 옹호하고 있다. 작년에는 지속가능발전연구소의 주도로 위의 6개 단체를 회원으로 하는 서울대학교 환경 동아리 연합회의가 출범한 바 있다.
*온실가스 인벤토리: 온실가스 배출원을 파악하고, 각 배출원별 배출량을 산정하여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설정하기 위한 근거자료로 활용된다.
출처: 국립수산과학원
감소하지 않은 서울대 온실가스 배출량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21년 서울대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14만 1,334톤으로, 11만 4,415톤이었던 2010년에 비해 약 3만 톤 가량 증가하였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내 온실가스 배출량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① 낮은 감축 잠재량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정혜진 연구교수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결국 연구 활동이 많기 때문”이라며 “공과대학의 경우, 기저 부하율**이 70%가 넘는다”고 말했다. 그만큼 연구 활동 시 고정적으로 요구되는 에너지 사용량이 많아, 감축 잠재량이 많지 않다는 얘기다. 서울대 지속가능발전연구소 「2021년 그린레포트」에 의하면, 단과대·기관별 온실가스 배출량을 분석했을 때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한 곳은 공과대학이었고, 자연과학대학과 공학계열연구소가 그 뒤를 이었다. 건물별 단위면적당 에너지 소비량을 분석했을 때도 반도체공동연구소,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슬로싱실험동, 유전공학연구소 신관 등 24시간 실험과 연구를 진행하는 이공계열 건물들이 에너지 소비량 상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서울대 내 온실가스가 대부분 이공계열 연구와 실험에 사용되는 기기를 작동하는 과정에서 배출된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재 서울대는 온실가스 배출 저감을 위해 냉난방 및 조명 효율 개선, 사용량 제한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고정적으로 배출되는 에너지 소비량에는 영향을 거의 미치지 못한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원인인 연구에 사용되는 에너지는 사용을 제한하거나 효율을 개선하는 것이 쉽지 않고 실제로 감축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② 늘어나는 건물 수
지속적인 건물 효율화 사업을 통해 서울대의 단위면적당 온실가스 배출량은 조금씩 줄고 있다. 그럼에도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하는 것은 새로운 건물이 계속해서 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이 대부분 기저 부하율이 높은 이공계 연구 시설이라는 점도 온실가스 저감을 어렵게 한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큰 실험이나 국가 사업을 위해 건물이 생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AI, 빅데이터와 같은 산업들이 서버 장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새로 지어지는 시설은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③ 학생 주도 친환경 활동에 소극적인 학교
본부와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차원에서 환경 관련 학생 단체들을 지원해 오고 있지만 개별 단과대학이나 기관의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캠퍼스 개선 활동이 무산되는 경우도 많다. 2022년 1학기 음식물쓰레기 수거함 설치와 교내 카페 텀블러 사용 활성화를 목표로 활동한 환경동아리 씨알의 신예경 대표(기계 19)는 “(문제에 대해) 크게 공감하지 않는 분들과 대화하게 되면 활동에 지장을 겪었다”며 “(씨알의 활동을) 교내 환경 문제 개선으로 보지 않고 부담스러운 변화나 어려움으로만 보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같은 시기 투명 페트병 수거 사업, 이면지 순환 사업 등을 진행한 환경동아리 방그사의 하신희 부대표(산림 21)도 학생 주도 환경 활동의 어려운 점으로 “학교와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꼽으며 “(이면지 순환 사업 관련하여) 설치물을 설치하기 위해 모든 단과대에 연락을 했는데 답변이 오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언급했다.
**기저 부하율: 최대 에너지 사용량 대비 24시간 내내 고정적으로 요구되는 에너지 사용량의 비율. 기저 부하에 해당하는 에너지 사용은 감축이 어렵다.
출처: 정혜진 연구교수
기후재난 대응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세계 주요 대학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을까? 2021년 서울대 시설관리국과 지속가능발전연구소에서 발간한 <서울대학교 온실가스·에너지 인포그래픽스> 71호에 따르면 대학 평가 기관 QS에서 평가한 대학 평가 상위 50개 대학 중 32개 대학이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와 연도를 가지고 있다. 국내 대학 중에서는 고려대가 지난 6월 ‘더 늦기 전에 2045 탄소중립 선언식’을 열고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40% 감축하고, 2045년까지 학내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그에 비해 서울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와 연도를 명시한 자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없다. 2008년 발표된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은 2030년까지 온실가스의 5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지만, 그를 위한 구체적인 이행 계획은 제시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서울대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안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정혜진 연구교수는 “현재 (환경 관련) 중장기적 계획은 없는 상태”라며 “2008년에 발표한 내용을 조금 업데이트할 필요는 있다”고 말했다.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
올해 발표된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에서는 기후위기를 ‘서울대가 당면한 현안’으로 인식하며, ‘친환경 탄소중립 캠퍼스 조성’을 목표로 삼는 내용이 포함됐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내용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2007-2025 장기발전계획에 비교하면 큰 변화다. 서울대학교 장기발전계획위원회 위원으로 중장기발전계획 작성에 참여한 환경대학원 박인권 교수는 “과거에는 대학이 기후변화나 탄소중립을 거의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며 “(환경에 대해)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 대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장기발전계획이 환경 문제를 대하는 태도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있다. 여전히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제시하지 않고 있으며, 전체 보고서 중 환경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분량서 중 환경 관련 내용이 차지하는 분량도 적다는 것이다. 방그사 김보희 대표(식물생산 21)는 “중장기발전계획에 실린 환경 관련 내용은 극히 적고, 대부분의 내용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내용 뿐”이라며 “세부적인 계획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박인권 교수는 “멀티캠퍼스 분과에서는 훨씬 더 풍부한 내용을 만들었지만 (전체적인 관점에서) 조정하다 보니 불가피하게 줄여진 부분이 있다”며 중장기발전계획은 캠퍼스 개선 방안뿐만 아니라 교육, 연구, 봉사 등 다양한 주제를 포괄하는 계획이기 때문에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내용을 상세하게 다루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2008년의 지속가능한 친환경 서울대학교 선언은 온실가스 인벤토리 구축, 지속가능발전연구소 설립, 그린리더십 교과과정 개설, 「그린레포트」 발간 등 서울대가 국내 최초로 시행한 다양한 활동들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하지만 14년이 지난 현재까지 새로운 목표는 갱신되지 않았다. 건물별, 시간대별로 상세하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측정하고 그 결과를 정리하여 공개하는 점, 다양한 학생 자치단체의 활동이 활발한 점은 서울대의 장점이다. 이제는 그 장점에 더해, 온실가스를 적극적으로 감축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