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콘텐츠 플랫폼은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생활 속 우리의 무료함을 달래고, K-콘텐츠가 전세계에서 눈부신 성과를 얻는 데 도움을 줬다. 플랫폼은 문화산업의 거인이 돼가지만, 준비 없는 성장에는 늘 혼란이 따르는 법이다. 마냥 ‘효자’로 보이는 플랫폼에 어떠한 잡음도 없을까? 문화콘텐츠 향유의 즐거움에 가려져 고찰되지 못한 플랫폼의 어두운 면을 들여다봤다.
피할 수 없는 거대플랫폼의 독점
바야흐로 플랫폼의 시대다. 문화산업의 중심은 전적으로 플랫폼으로 넘어왔다. 2021년 기준 한국 성인의 스마트폰 보급률이 95%에 달하는 지금, 인터넷 서비스를 기반으로 한 플랫폼은 오프라인으로 문화콘텐츠를 유통하던 기존 창구들에 비해 언제 어디서나 훨씬 많은 이용자를 불러모을 수 있다. 인터넷 비즈니스의 특성 덕에 플랫폼은 문화산업을 주도하며 높은 수익을 얻는다. 이에 네이버·카카오 등 전통적 IT 기업, CJ·SKT 등 문화산업의 큰손인 대기업들, TV의 경쟁력 약화로부터 재도약하려는 방송 3사, 쿠팡·아마존 등 거대 이커머스 기업, 왓챠·리디 등 신생 문화콘텐츠 기업들까지 저마다의 차별화 전략을 펼치며 플랫폼 시장 경쟁에 참여하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문화콘텐츠가 물밀듯이 쏟아져나오는 ‘콘텐츠 전성시대’가 도래했으나, 필연적으로 일부 거대플랫폼의 독점체제가 구축될 것이 예측된다. 플랫폼 간 서비스의 수준과 기술력 차이가 적어, 콘텐츠를 조달할 자본력의 차이가 시장 내 우위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막대한 자본공세를 펼치는 글로벌 거대플랫폼이 독점사업자의 지위를 거머쥘 것으로 예견한다. 미디어미래연구소 이찬구 미디어커머스 부문장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의 제작비가 약 254억 원, 수익은 약 1조 원을 넘어섰다”며 “거대플랫폼 입장에서는 콘텐츠에 아무리 큰 금액을 투자하더라도 결국 막대한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남는 장사’다”라고 말했다. 이 부문장은 “플랫폼 간 경쟁이 점점 치열해질수록 막대한 자본을 투자할 수 있는 거대플랫폼은 더욱더 많은 콘텐츠를 수급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 관측했다.
플랫폼 간 자본력 차이로 인해 영세한 플랫폼은 문화산업의 기본이 되는 콘텐츠 유치마저 어려워진다. 스타트업에서 출발한 국산 OTT 왓챠의 위기가 그 예시다. <바이라인 네트워크>에 따르면, 왓챠가 2021년 콘텐츠 확보를 위해 사용한 투자금은 약 360억 원이다. 2021년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OTT산업과 K콘텐츠 수출」 보고서상, CJ 산하 티빙이 3년간 4천억 원, SKT 산하 웨이브가 2025년까지 1조 원, 카카오 산하 카카오TV가 3년간 3천억 원의 금액을 투자할 것을 선언한 데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다. 대기업을 모기업으로 둔 타 플랫폼에 비해 왓챠가 경쟁에서 살아남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왓챠는 2021년 248억 원의 영업 손실을 봤으며 지속적으로 다른 플랫폼으로의 인수·합병설에 휩싸이고 있다. 왓챠를 애정하는 일부 누리꾼들은 “왓챠가 아니면 홍콩영화·독립영화 어디서 보냐”, “왓챠만큼 영화를 다양하게 들여와주는 곳이 없어 떠났다가도 돌아온다”, “왓챠만큼 일 잘하고 볼 거 많은 OTT가 어디있다고… 《해리포터》도 데려오고 ‘왕가위 영화 컬렉션’에 ‘내 예상 별점’, 이게 얼마나 환상적인데” 등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거대플랫폼의 독과점을 제어할 방안이 마땅히 없는 상황에서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플랫폼 하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대기업 자본을 바탕으로 한 국내 플랫폼도 글로벌 거대플랫폼의 독식 체제에서 마냥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이찬구 부문장은 “넷플릭스가 한 해 콘텐츠에 투자하는 비용이 2020년 기준으로 약 19조 원, 2021년에는 20조 원으로 예측되는데, 2020년 국내방송시장 전체가 거둬들인 수익은 18조 원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 부문장은 “한 사업자의 투자 규모가 국내 방송 시장 전체 매출을 상회한다”며 “넷플릭스보다 모기업 규모가 더 큰 디즈니플러스, 콘텐츠 사업 외의 주축 사업이 존재해 더 큰 자본을 투입할 수 있는 애플TV+ 등과의 경쟁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평했다.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앞서 제시한 2021년도 보고서에서 ‘국내 문화콘텐츠 창작 인력이 기업 규모가 큰 글로벌 거대플랫폼에 몰려, 국내 콘텐츠 제작사가 자율적으로 작품을 생산하기는커녕 글로벌 플랫폼에 공급할 콘텐츠를 만들 하청기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시한 바 있다.
문화산업, 플랫폼의 자산으로 전락하다?
플랫폼은 문화산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국내 문화콘텐츠는 136조 4천억 원의 수익을 올렸으며, 수출액은 약 135억 8천만 달러로 집계된다. 일회성의 콘텐츠 흥행에 그치지 않고 지식재산권(IP)을 최대한 활용해 추가적인 이익을 도모하고도 있다. 웹소설의 웹툰화, 웹툰의 드라마·영화화, 드라마·영화의 웹툰화·게임화 등 2차 콘텐츠를 만들거나 OST 등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그 일환이다.
문제는 플랫폼이 문화산업을 사적인 자산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플랫폼들은 콘텐츠를 통해 얻은 수익을 문화산업에 공정히 분배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작품의 소유권도 독점하려 하고 있다. 전국여성노조 디지털콘텐츠창작노동자지회 이수경 지회장은 “플랫폼이 웹소설을 웹툰화하거나 웹툰을 영상화하는 데 굉장히 공을 들이고 있으나, 작가에게 2차 저작권을 제공하기는커녕 사전에 저작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만 돈을 지불한다”며 “이는 재가공을 통한 수익을 독점하는 전형적인 매절 계약”이라고 비판했다.
올해 1월에는 한국성우협회가 OTT 계의 불공정계약을 폭로했다. 한국성우협회 이연희 이사장과 최재호 사무국장은 당시 <한겨레>·<경향신문> 등과의 인터뷰에서 성우들이 디즈니플러스로부터는 작업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플랫폼에 양도하고 참여 사실이 명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한 계약서를, 넷플릭스로부터는 넷플릭스 작품 더빙에 참여한 사실을 언급하지 말라는 안내를 받았다고 밝혔다. 창작자들은 분명 플랫폼과 문화산업에 함께 참여하는 주체임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에 의해 그 사실 자체를 부정당할 처지에 놓였다.
플랫폼의 자산으로 종속되는 것을 경계해 의도적으로 플랫폼에 지식재산권을 넘기는 것을 피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문화사회연구소 이종임 이사는 “최근 방영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제작사는 넷플릭스로부터 지적재산권을 팔라는 제안을 받았지만 지적재산권이 완전히 양도되는 것을 우려해 방송사 ENA를 통한 유통을 선택했다”며, “플랫폼에 지적재산권을 넘기지 않은 덕에 제작사가 웹툰·뮤지컬화를 통해 수익을 재창출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플랫폼은 상업성을 문화산업의 기준으로 삼으면서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디콘지회 이수경 지회장은 “2017년 레진코믹스가 수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에 웹소설 사업 자체를 철수하고, 웹소설 작가과 공모전 수상자의 연재 자체를 무산시키는 일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 지회장은 “그럼에도 플랫폼 없이는 유의미한 수익을 얻을 수 없으니 작가들이 그야말로 플랫폼에 쩔쩔맨다”고 표현했다.
한양대 평화연구소 김수철 교수는 “문화산업 플랫폼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작가·성우·기술진 등 참여자들은 점점 거대하고 다양해지는 데 비해 그 수익을 독점하는 것은 소수의 사적 기업인 점”이라며 “앞으로 문화산업이 소비자들과 사회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반영한 혁신적인 작품을 내놓기보단 ‘얼마나 미래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가’라는 금융적 판단에 좌우될까 우려된다”고 주장했다.
플랫폼이 꼭 더 나은 문화생활을 제공하진 않아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향유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소비자들도 있다. 문화콘텐츠 향유를 즐기는 D씨는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완결난 웹소설을 웹툰으로 연재하는 작품에 ‘뒷내용이 궁금하다면?’이란 팝업창을 띄워 웹소설도 읽도록 유도하기도 한다”며 “마케팅은 아닌지, 편리하긴 한데 소비자를 플랫폼 내에서 머물도록 파리지옥처럼 잡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다”고 증언했다.
D씨가 느낀 바와 같이, 문화산업에서 소비자의 플랫폼 의존성은 이미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이종임 이사장은 “소비자들이 플랫폼의 자동화 및 최적화된 기술을 통해 향상된 편의를 제공받는다고 느껴, 플랫폼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이사장은 “플랫폼이 소비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더 나은 문화경험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소비자를 종속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이사장은 플랫폼을 통한 콘텐츠 감상이 주체적인 것인지 의문을 던져야 한다는 주장도 펼쳤다. 그는 “플랫폼이 소비자의 활동을 기록하고, 그 데이터에 기반해 작동시키는 알고리즘 추천 기능이 소비자 입장에서는 편리하더라도 플랫폼이 기술과 소비자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음에 경각심을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플랫폼 내에서의 감상하는 콘텐츠가 정말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것인지, 플랫폼과 정보·기술을 소유한 이들의 의도가 반영되는 것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소비자가 즐길 수 있는 콘텐츠들이 플랫폼에 독점돼가는 모습도 관찰된다. 국내 최대 스포츠 중계 플랫폼 스포티비는 8월 무료로 제공되던 손흥민 선수의 경기를 돌연 유료 중계할 것이라 공지했다. 당시 스포티비 이용자들은 “이러다 올림픽도 유료중계하는 것 아니냐”며 불평을 터뜨렸다. 스포츠는 물론, 코로나19로 관객을 동원할 수 없던 뮤지컬 및 공연계도 플랫폼에 의존해 콘텐츠를 유통하기 시작했다. 콘텐츠를 감상하려면 무조건 플랫폼을 거쳐야만 하는 날이 도래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찬구 부문장은 “플랫폼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여러 콘텐츠를 독점화하는 이상, 소비자들은 콘텐츠를 감상하려면 필연적으로 여러 플랫폼을 이용하고 큰 비용을 지불해야만 한다”며 “플랫폼에 콘텐츠가 공급되는 양에 비해 실제 이용자의 콘텐츠 이용 접근성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과도기를 넘어, 플랫폼과 문화산업이 균형을 이루려면
거대플랫폼 독점체제로 인한 문화산업의 종속, 플랫폼에 사유화되는 콘텐츠, 소비자의 플랫폼 종속 등 여러 논란이 제기되고 있으나 플랫폼이 분명 문화산업에 기여한 점도 있다. 플랫폼은 소비자들에게 국내·외 다양한 콘텐츠들을 공급하고, 알고리즘 분석을 통해 효과적인 문화 향유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는 “글로벌 OTT 플랫폼이 적극적으로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모습이 국내 문화산업에 좋은 자극이 될 것”이라며 “글로벌 콘텐츠를 감상한 소비자들이 적극적으로 소비자 운동을 전개하면 국내 콘텐츠도 다양성을 상식적으로 추구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희망연대노조 방송스태프지회 박지혜 조직국장은 “플랫폼의 등장 이후 아주 환경이 열악한 촬영현장에 가는 일은 줄었다”며 플랫폼 등장 이후의 긍정적 변화를 인정했다.
허나 플랫폼의 성공이 곧 문화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실현되기까진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찬구 부문장은 “플랫폼-콘텐츠 거래 관계가 공정하게 개선돼야 콘텐츠 사업자가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고, 그 수익이 콘텐츠 제작에 재투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문장은 “콘텐츠가 좋아지면 플랫폼이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결국 플랫폼에 유입되는 이용자도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플랫폼이 앞으로 수지타산을 따지기만 할 게 아니라 진정으로 볼 만한 콘텐츠를 확보할 전략을 추진해야 하며, 콘텐츠에 지급하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비용이 아닌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산업을 대하는 정부의 태도도 중요하다. 앞서 언급된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21년 하반기 및 연간 콘텐츠산업 동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K-콘텐츠는 2020년 기준 직간접 수출효과 105억 달러, 생산유발효과 21조 원, 부가가치 유발효과 10조 원 등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 국가적 차원에서도 콘텐츠 진흥은 몹시 중요한 과제인 것이다.
이찬구 부문장은 현재 정부의 콘텐츠 정책이 기술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음에 아쉬움을 표출했다. 이 부문장은 “정부의 글로벌 OTT 5개 육성안은 정부의 콘텐츠 정책이 기술 개발에 치중했음을 보여준다”며 “글로벌 거대플랫폼과 경쟁할 길을 터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K-콘텐츠의 경쟁력은 창작자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기억하고 콘텐츠 제작·기획 단계에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의 상황 플랫폼의 확산속도를 법과 제도가 따라잡지 못하는 과도기라고 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산업 진흥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차우진 대중문화평론가는 “‘플랫폼 대 창작자·소비자’라는 이원적인 대립 관계에 갇히기보단 복합적인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그는 “하루에 수만 곡, 일 분에 수만 곡이 쏟아져나오는 플랫폼의 시대에 창작자에게 필요한 건 적극적인 유통과 마케팅인데, 뮤직비디오 제작을 지원해주거나 쓰고 나면 사라져버리는 제작 위주의 지원이 이뤄지는 것이 아쉽다”며 “당장의 실적과 제작 위주의 지원을 넘어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문화산업을 플랫폼의 것에서 사회 전체의 것으로 돌리려는 다양한 논의도 있다. 이종임 이사는 “플랫폼 기업이 이용자에게서 얻은 데이터에 누진세를 적용해 비영리·비상업적인 미디어 조직이나 공공미디어 서비스 분야의 예산으로 활용하자는 의견, 이용자 전체에게 분배하자는 플랫폼 협동주의나 데이터 기본소득 등의 의견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종임 이사는 플랫폼과 문화산업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의 책임만큼이나 소비자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이 이사는 “문화콘텐츠의 주요 소비자인 대중이 꾸준히 대안을 찾으려 목소리를 내야만 정책과 법안 등 대안 마련에 대한 담론이 형성된다”며 “정책과 법안 등이 왜 필요한지 논의하고, 또 평가하면서 플랫폼과 문화산업에 대해 소비자 자신이 깊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문화 콘텐츠 없는 지루한 삶을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작품에 꿈과 이상, 재능을 녹여내는 창작자들과 이 세상의 수많은 문화콘텐츠들을 전달해주는 플랫폼, 그리고 더 윤리적인 문화산업 향유를 바라는 소비자들. 플랫폼과 문화산업의 동행이 과도기를 넘고 행복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