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출연자가 마음에 드는 상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데이트를 마친 이들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서로를 평가하고, 스튜디오에서 영상을 시청하는 연예인 패널들은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지 따져본다. 최근 TV와 OTT, 나아가 유튜브까지 점령하고 있는 연애 프로그램에서는 이러한 선택과 평가, 그리고 경쟁의 과정이 반복된다.
2014년 종영한 <SBS> 《짝》 이후 다소 잠잠했던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 열풍은 2018년 방영된 <채널A> 《하트시그널 2》 이후 다시 콘텐츠 시장의 트렌드로 자리했다. 연애 프로그램은 일반인 출연자의 꾸며내지 않은, 진짜 있을 법한 현실적인 연애 이야기를 담아내며 시청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하지만 동시에 상업적이고 획일화된 플롯과 ‘옳다/그르다’, ‘연애/비연애’의 이분법에 갇힌 채 ‘연애는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선언을 끊임없이 생산하고 있다. 정형화된 연애가 방송에서 재현되는 방식과 그 속에 담긴 문제들을 짚어봤다.
연애, 꼭 해야 할까?
일명 ‘짝짓기 예능’이라 불리는 연애 리얼리티 프로그램은 2022년에만 스무 편 이상 방영됐다. 쏟아지는 경쟁작 중 흥행하는 작품은 소수에 불과하기에 각 프로그램은 출연자의 연령층을 확대하거나, 자극적인 키워드를 활용하는 등 전략을 다양화하고 있다. 다수의 출연자가 20대였던 기존 연애 프로그램과 달리 20대부터 40대까지 출연자의 나이대를 확대한 <ENA플레이> 《나는 SOLO》, 이별한 연인이 함께 출연하는 <티빙> 《환승연애》, 이혼 경력이 있는 출연자로만 구성된 <MBN> 《돌싱글즈》가 그 예다. 덕분에 다양한 시청자들이 연애 프로그램에 몰입하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의 성공에 힘입어 미디어 속 연애와 이별, 재회는 일상 대화 주제까지 점령했다. 대학생 A씨는 “연애 자체에는 관심이 없지만, 친구들이 《환승연애》 얘기를 많이 해서 처음 보게 됐다”며 작년부터 연애 프로그램을 즐겨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프로그램 얘기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친구들의 실제 연애로 대화 주제가 넘어갈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나도 연애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놀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이자연 대중문화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며 연애와 이별 등의 주제가 일상에 스며들다 보니 연애와 자신의 삶을 연결 지어 볼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연애 프로그램이 연애를 주된 대화 주제로 끌어오는 것을 넘어 삶의 필수 요소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많은 연애 프로그램에서 연애하지 않는 삶은 비정상적인 삶으로 묘사되며, 연애 경험이 없는 ‘모솔’은 결함 있는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한 연애 프로그램에선 제작진으로부터 “직업이 이렇게 좋은데 여태 독신인 이유가 뭐예요?”라는 질문을 받은 출연자가 “내가 독신일 수밖에 없는 단점을 말하라는 이야기로 들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작진이나 다른 출연자뿐 아니라 독신인 출연자 본인이 스스로에게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는 사례도 흔히 방영된다.

《나는 SOLO》 스틸컷
이자연 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에서 “‘연애는 인간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행위’라는 의미를 담은 매우 상징적인 담론이 발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에서의 ‘모솔 담론’은 연애하지 않은, 또는 하지 못한 이유를 찾게 만든다”며 “이러한 논의가 반복되면 연애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무엇인가 결핍된 존재가 되기 마련”이라고 비판했다. 개인의 가치와 장점이 연애 여부에 따라 쉽게 가려지고,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개인을 판단하려는 위험한 시도가 미디어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여성학협동과정에서 대중문화를 연구하는 김수아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연애 프로그램이 연애가 필수적인 것, 연애 상태만이 정상적인 것이라는 ‘정상 연애 담론’을 강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연애하지 않는 사람이 무능하고 불쌍하다는 인식을 재생산함으로써 그들이 연애가 규범화된 사회에서 배제되고, 저평가받게 되는 상황을 만드는” 정상 연애 담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연애를 ‘누구나’, 또는 ‘당연히’ 하는 것이라 묘사하는 프로그램과 이후의 담론은 시청자에게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연애하지 않는 사람은 이상하고 실패한 사람이라 낙인찍는 사고방식이 우리 마음속에까지 자리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볼 때다.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는 걸까?
연애 프로그램은 ‘연애할 수 있는 사람’을 규정하기도 한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외모, 직업 등 일부 요소만을 바탕으로 상대를 평가하고 연애 대상으로서 적합한지 따져보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자연 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의 이런 특성이 ‘연애할 만한 사람’을 가려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이 주 시청층인 2030의 흥미를 끌 만한, 또 내 남자친구·여자친구의 직업으로 자랑할 만한 소수의 ‘힙한’ 직업만을 참가자에게 부여하고 있다”며 “직업을 멋들어지게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연애의 자본주의화, 시장화를 이끈다”고 비판했다. 시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처럼 연애 시장에서 어떤 사람이 가장 잘 팔리는지를 프로그램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연애 상대로서 내세울 만한 지점을 정형화한다는 설명이다.

연애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는 ‘스펙’에 따라 상품화된다. 출연자는 재산, 나이, 출신 지역 및 학교, 직업 등의 스펙을 스스로 소개하고, 다른 출연자와 패널은 이를 토대로 출연자를 평가하고 줄 세운다. 김수아 교수는 “최근 들어 연애가 능력주의와 결합하는 양상을 보이는데, 연애 프로그램이 이러한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출연자의 스펙을 강조하는 건 연애가 마치 ‘급이 맞는’ 사람들 간 합의에 따라 교환되는 상품처럼 여겨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나는 SOLO》에서는 한 출연자가 자신의 지난 연애를 설명하며 “퀄리티가 낮은 사람과 사귀었다”고 발언해 시청자의 질타를 받기도 했다. 연애 프로그램은 연애를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상대를 이해하고 갈등을 조율하는 과정보다는, 가치가 매겨진 사람들이 사고 팔리는 행위로 만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출연자들의 스펙을 나열하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연애 프로그램의 플롯이 현실에서 재현될 것을 우려했다.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개인을 평가하는 장면이 지속해서 송출돼 현실에서도 몇 가지 단편적인 요소만을 가지고 상대를 평가하거나 연애하기에 적절한 사람을 규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자연 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이 출연자를 보여주는 방식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연애 상대를 찾는 당사자인 출연자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만, 당사자가 아닌 패널이나 연출·편집하는 제작진까지 평가와 줄 세우기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사람들이 생각하고 상호작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디어가 연애를 다루는 방식에서도 그 힘을 인지하고 책임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연애하는 방법에 정답이 있는 걸까?
연애 프로그램은 어떻게 연애해야 하는지도 규정한다. 연애 프로그램은 연인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기대되는 남녀의 역할을 재현하거나 연애 관계에서의 정답을 제시하려 한다.
숙고 없이 노출되는 구시대적 젠더관은 연애 프로그램의 주된 비판 요소다. 여전히 많은 프로그램이 연인 관계에서 남녀의 역할을 고정적으로 묘사하거나 출연진의 차별적 발언을 그대로 담
아내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을 시청하려 했으나 그때마다 1화를 넘기지 못했다는 대학생 B씨는 “여성 출연자가 캐리어를 옮길 때 남성 출연자가 돕는 장면을 강조하고, 여성 참가자들끼리의 기 싸움을 부각하는 등의 모습에서 프로그램이 젠더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만들어졌다고 느꼈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나는 SOLO》에서는 한 출연자가 “예쁜 여자와 다니니 어깨에 뽕이 들어갔다”와 같이 자신과 데이트한 여성을 자랑거리로 삼는 듯한 발언으로 비판받기도 했다.
맥락을 삭제하거나 자극적인 장면을 강조하는 연애 프로그램의 편집이 연애에서 상호 이해보다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것을 중요하게 만든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특히 일반인이 출연자로 등장하는 만큼 시청자와의 심리적 거리가 가까워 연애 프로그램들은 후속 대담이 활발하다. 연애 프로그램의 흥행과 함께 SNS와 커뮤니티에 ‘C처럼 행동하는 사람의 특징’, ‘D 같은 사람은 오래 연애 못 함’ 등의 제목을 가진 게시물이 우후죽순 게시되기도 하고, 현실 대화 속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거 E 같아서 별로야’ 등의 발화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담화에 대해 이자연 평론가는 “단편적인 장면만을 토대로 출연자의 행동과 태도를 거리낌 없이 평가할뿐더러 연인 관계에서 더 잘못한 사람을 찾아내고 연인 간의 행동에 절대적인 규범을 만드는 시청 태도가 일반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편집을 거쳐 방송에서 드러난 모습만으로 출연자를 평가하고 이를 하나의 인간 군상으로 만들어 현실에 적용하는 시청 태도는 출연자에 대한 평가를 넘어 현실의 관계에서도 생각과 행동의 다양성을 제한할 수 있다.
이자연 평론가는 “개인의 특성과 연인들 간의 맥락이 삭제된 채, 절대적으로 좋은 또는 나쁜 행동을 만들어내고 이를 현실의 관계맺음과 연애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매우 섣부른 시청 방식”이라 비판했다. 연애 프로그램은 자극적이고 정답이 정해진 연애 담론이 아니라 서로 다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다양한 연애 방식과 이해라는 가치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제3의 선택지를 향한 길
연애 프로그램이 다양한 연애 방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연애하지 않는 사람을 존중하는 콘텐츠가 되기 위해선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전문가들은 프로그램 구성을 바꾸는 것이 우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자연 평론가는 연애 프로그램이 “출연자가 예민하고 감정적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해 연애의 자극적인 민낯만 보여주는 유희적인 프로그램”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수아 교수는 “여러 사람이 등장해서 서로 평가하고 경쟁하며 연애 상대를 선택하는 포맷이 바뀌지 않는 한 연애와 소비문화, 능력주의가 연결되는 상황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 설명했다. 결국 연애라는 소재를 대하는 제작진의 태도와 프로그램 구조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옳다/그르다’, ‘연애/비연애’의 이분법에서 벗어나려는 시도가 없는 것은 아니며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사례도 있다. 《환승연애》 출연자 코코는 마지막 회에서 최종 선택 이후 커플이 되지 못했음에도 “행복했다, 혼자여도 괜찮았다”며 자신의 성장을 칭찬하고 과거 연인과의 관계를 매듭지었다. 나만의 길을 가는 모습 또한 연애의 결말일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연애와 연애하지 않음 외에도 제3의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이 방송에서 표현된 것이다.

연애 프로그램은 연애와 결혼을 바라보는 전통적인 시각의 변화를 반영해 충분히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최근 방영된 《남의 연애》와 《메리 퀴어》에서는 다양한 성적 지향을 가진 출연자들이 등장했고, 이성애 중심 연애관과 구시대적 젠더관을 극복하려는 시도로 주목받았다. 물론 출연자만 퀴어로 바뀌었을 뿐 연애 상대를 재고 따지며, 연인 간의 역할을 답습하고 요구하는 기존 포맷을 따르는 한계는 여전했다. 하지만 사회의 담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미디어의 잠재력을 보여줬고, 개선될 수만 있다면 연애 프로그램은 충분히 연애에 대한 대안적인 담론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연애 프로그램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시청자에게 남겨진 과제도 존재한다. 시청자들이 대체로 연애 대상으로 어떤 사람에 열광하느냐에 따라 제작진은 출연자를 모집하고 평가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부합하는 장면을 송출한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제작진이지만, 결국 그 내용을 현실 연애에 적용하는 것은 시청자다.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도 현실의 관계에서도 한정된 요소만을 가지고 상대의 수준을 나누고 구분 짓는 태도를 갖추고 있진 않은지, 단편적인 장면을 바탕으로 출연자를 비난하거나 연애 관계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이 필요하다. 연애가 꼭 해야 하는 규범적 활동이 아니며, 연애하는 방식 또한 다양하다는 시청자의 비판적인 태도가 연애 프로그램의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미디어가 보여주는 연애의 모습이 절대적이라 여길 순 없다. 연애와 사랑은 개인의 자유에 따라 수많은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연애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마음이 우리 모두에게 자리 잡을 때 더 다양하고 안전한 연애 프로그램도, 사랑의 방식도 정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