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에 ‘손 하나 까딱’하다

이태원 참사, 그리고 한국의 재난 관리를 돌아보다

  찰나 혹은 억겁 같은 시간 동안 참사를 둘러싼 팽팽한 긴장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책임론에 난색을 표한 행정안전부(행안부)와 여당은 국정조사에 불성실하게 응하고 있으며, 한 달이 넘어서야 정치인과 만난 유가족은 오열했다. 참사 당일 마약 단속과 집회·시위에 집중된 경찰 배치, 특별수사본부(특수본)의 현장 실무자 구속, 유관 공무원들의 잇따른 사망을 두고 국민의 감정도 격양됐다.

  참사를 풀어나가기보단 마찰만이 거세진다. 적절한 후속대응과 재발방지대책을 세우는 것이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이대로도 괜찮은가. 한국 사회는 과연 재난을 관리할 수 있는가. 필연적인 질문이 떠오른다.

재난에 국가를, 시스템을 호출하는 이유

  한국에서 재난 관리가 가능할 것인가. 이태원 참사의 책임을 두고 공직자들은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지자체)가 참사와 관련된 정보 공개를 회피하고 피해자들 간의 만남을 제한한 정황 역시 지속적으로 포착되고 있다. <한겨레>에 따르면 용산구청은 ‘이태원’, ‘핼러윈’ 등 키워드가 포함된 문헌을 비공개 처리했다. <노컷뉴스>는 서울시청 시민건강국이 유족 담당 공무원들에게 ‘다른 환자 및 보호자와의 연락은 개인정보 사항이라 공개 불가능함을 안내 부탁한다’고 교육한 사실을 보도했다. 정부는 참사의 해석도 독점하고 있다. 정부는 이태원 ‘사고’, ‘사망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공공기관에 조의문 없는 근조 리본을 다는 지침을 하달했다. 

  이와 같은 행보에 대해 박종희 교수(정치외교학부)는 “국가가 참사에 대해 깊이 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해석한다. 국민은 국가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다. 박종희 교수는 국민이 선출한 국가와 시스템의 책임을 논했다. 국가는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이 작동하지 못했기에 국가가 이태원 참사를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국민이 세금을 내는 이유는 대통령에서 총리, 부처와 실무 공무원까지 하달되는 신속하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만들 것에 대한 기대 때문”이라며 “이태원 참사에서 그 시스템이 최대치로 작동했는지 돌이켜본다면, 분명 그렇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박종희 교수는 “정치는 재난을 공동의 문제로 상정해, 정치를 통해 재난을 해결해야 한다”며 현 정부와 여당의 회피적인 태도를 비판했다. 박 교수는 “책임에서 벗어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적극적으로 진상을 규명하는 것으로, 문제 제기를 받아들이고 또 다른 참사를 막을 수 있도록 장기적인 시스템 점검에 돌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패를 분석하다

  시스템 이론으로 재난을 분석해온 이재열 교수(사회학과)는 “한 사람의 과오나 실수로 발생한 돌발적 사고가 아니라 여러 사람과 조직이 연관돼 발생한 재난은 시스템의 실패”라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의 시스템에는 시민, 경찰, 소방, 의료, 지자체 등 수많은 주체가 연관됐다.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안전을 도모해야 할 시스템은 인파가 몰릴 게 분명했던 핼러윈의 이태원을 통제할 책임이, 사고에 신속 정확히 대응할 책임이 있었다. 그리고 철저히 실패했다. 

  이재열 교수는 “재난 이후 시스템의 실패를 돌아보고 사각지대를 채워나가는 학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 교수는 “2015년 메르스 대응 실패 이후 질병관리청이 실패 요인을 분석하고 매뉴얼을 수립한 백서를 만든 것이 코로나19 초기대응에 도움”이 됐듯, “재난으로부터 학습한다면 유사한 재난은 골든아워(Golden hour)를 놓치지 않고 대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재난 후속 대응의 최종 목표는 참사의 반복을 막는 것이고, 시스템 분석은 그 근본이다. <서울대저널>이 이재열 교수와 함께 이태원 참사의 재난 관리 시스템을 분석했다. 

사진 설명 시작. 이태원 참사 유관 재난 관리 시스템 구조도. 정치, 지자체 행정, 경찰, 소방, 보건 부문의 기능, 사전 사후 대응이 나타나 있다. 사진 설명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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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유관 재난 관리 시스템 구조도 ⓒ장하엽, 강다겸

  이태원 참사의 재난 관리 시스템의 부문과 각 주요 기능은 다음과 같다. ▲경찰: 교통 통제, 질서 유지, 범죄·폭력 등 돌발상황 사전 예방 ▲소방: 사고 처리, 구조, 이송 등 사후 대응 ▲의료: 응급 이송, 치료, 병상 배분 및 장례 등 행정 ▲지자체: 각 기능이 작동할 지역으로서 각 부문과 협력 

 ① 초기대응을 지연한 시스템 통합 실패

  

  이재열 교수는 이태원 참사에서 “각 부문이 재난을 예방하고 대응하는 하나의 시스템으로 조율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오류”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18시 34분 최초 신고 이후 20시 37분, 21시 1분 단 2건의 신고만을 소방 관할의 서울종합방재센터로 전달했다. 소방은 최초 신고를 22시 15분에 접수하고, 22시 56분에서야 서울소방재난본부가 서울경찰청에, 소방청이 경찰청에 공동대응을 요청했다. 

 

  시스템의 기능 간 협력이 적고 늦었을 뿐 아니라 책임을 상호 전가한 상황도 확인됐다. 소방은 경찰이 전달한 두 건의 신고를 ‘현장 교통 통제와 질서 유지’가 경찰의 담당이며 ‘구급차가 필요하지 않다’는 이유로 경찰에 다시 전가했다. 경찰은 소방으로부터 되돌아온 신고를 ‘다수 신고자에 의한 중복 신고’로 처리해 대응하지 않았다. 소방의 교통 통제 요청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는 의료진들의 현장 진입에 큰 장애로 작용했다. 출동 요청을 받은 14개 거점병원별 재난의료지원팀(DMAT) 중 자정 전에 도착한 팀은 고대안암병원뿐이었으며, 구급차 진입이 어려워 의료진이 장비를 직접 들고 현장으로 뛰어간 상황도 발생했다.

  재난 대책 시스템의 각 부문은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고, 서로의 기능을 구분했으며, 참사가 발생하고 나서야 황급히 협력했다. 통합되지 못한 시스템은 상부 보고도 지연했다. 남화영 소방청장 직무대리는 22시 52분에, 윤희근 경찰청장과 이상민 행안부 장관은 소방청으로부터 23시에 보고를 받은 윤석열 대통령보다도 늦게 상황을 파악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22시 51분 이태원 상인에게 문자를 받고 참사를 인지했다. 

  이재열 교수는 “각 부문이 참사 당시 곳곳에서 발생한 위험 신호를 감지해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자원을 투입했다면 사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 평했다. 이 교수는 이어 “행안부 장관, 용산구청장, 경찰서장 모두 자기 책임이 아니고 막을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도 ‘하나의 시스템으로 작동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 강조했다. 

② 소통 실패

  구성원들의 실책을 보완할 시스템 내의 소통 매체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행안부 산하 재난안전관리본부에는 ‘재난안전통신망’과 ‘소방·경찰 긴급신고 통합시스템’이 설치됐다. 재난안전통신망은 현장에 투입된 인원 모두가 무전을 사용해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장치고, 소방·경찰 긴급신고 통합시스템은 접수자가 버튼을 눌러 양측이 신고 내역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재난 발생 시 신속한 신고 접수와 공동대응을 위한 시도다. 

  <시사IN>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시 재난안전통신망은 최초 신고로부터 5시간 11분, 참사 발생으로부터 1시간 30분이 지난 23시 45분에야 처음 쓰였다. 총 활용 시간도 195초에 불과했다. 늦은 소방·경찰 투입에 대해 <내일신문> 등에서 “공동신고 시스템을 활용한 소통이 없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자 행안부는 “동 시스템을 통해 공동대응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나, 공동대응 요청에 실제로 현장에 출동했는지 등은 시스템상으로는 확인할 수 없다”라는 설명자료만을 내놓았다.

  이재열 교수는 한국 사회의 대형 재난에서 통일된 소통 매체가 여전히 정착되지 못한 상황을 비판했다. 이 교수는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경찰·소방·지하철 각각의 신고 주파수가 통일되지 않아 구조가 지연됐다”며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이태원 참사 때도 동일한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의료계는 참사 이후 소통 체계의 비효율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현 제도상 DMAT는 119상황관리센터와 중앙응급의료센터 두 기관을 거쳐서 지원 요청을 받는다. 의료계에서는 골든아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현 요청 체계의 간소화를 요구했다. 당일 파견된 의료진들은 경찰의 신분 확인 절차를 거치느라 현장 진입이 지연된 것에도 아쉬움을 표했다. 에 따르면 의료진이 DMAT 조끼를 입고 있음에도 진입 통제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최재원 용산보건소장은 경찰에 신분이 확인되지 않아 보건소로 돌아가 신속대응반 출입증을 챙겨 복귀해야만 했다. 그 결과 보건 부문 총괄자의 현장 지휘가 30분 지연됐다.

  현장에서의 소통 문제도 지적된다. 보건복지부의 ‘재난응급의료 비상대응매뉴얼’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 현장 대응은 용산보건소장이 응급의료소장을, 용산소방서장이 현장통제단장을 맡고 그들의 지휘에 따라 파견 의료진들이 협력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협력을 통해 효율적인 현장 구조, 이송 작업이 이뤄지긴커녕 의료진을 제외하곤 응급상황에서 기초적인 대응 매뉴얼을 숙지한 부문은 거의 전무했다. 10월 29일 밤 용산구청, 소방, 보건복지부, 중앙응급의료센터, DMAT, 거점병원 등이 참여한 모바일 상황실에선 사망자를 병원 이송하겠다는 소방 측의 메시지들에 의료 측이 “응급환자 포함 생존자부터 이송하라”, “이러지 말라”며 다급하게 답장한 것이 확인됐다. 가장 우선순위로 이송돼야 할 중환자들이 먼 거리의 병원으로 이송되고, 사망자보다 후순위로 이송돼 피해를 가중했다는 점은 11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지적됐다. 이재열 교수는 부문 간의 소통 실패와 매뉴얼 미숙지에 대해 “각자 자기 상급자의 말만 따랐기 때문”이라며 “참사 시 세심한 대응에도 방해됐을 것”이라고 평했다.

③ 질서 유지 기능에 소홀해진 경찰

  외적으로 경찰이 질서 유지 기능에 소홀해지는 조건도 조성됐다. <시사IN>에 따르면 핼러윈 당일 경찰은 대형 집회·시위가 신고된 광화문, 여의도, 용산과 서초 윤석열 대통령 자택에 경찰 기동대 총 14부대, 840여 명을 배치했다. 반면 이태원에 투입된 경찰 인력은 137명이었으며, 대부분이 마약 단속 업무 담당으로 질서 유지 업무와 무관한 부서 소속이었다. 시위 업무를 마치고 나서야 2부대의 기동대가 이태원에 추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당일 경찰이 질서 유지 기능에 투입한 자원은 다른 기능에 비해 현저히 적었다. 

  이재열 교수는 용산구의 경찰력에 이태원 인파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될 조건이 형성됐음을 지적했다. 이 교수는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오며 용산 경찰서에 기존 업무에 경호, 교통 통제 등의 업무가 과중한 상태였을 것”이라 분석했다. 그는 “조직은 비용을 최소화하고자 하고, 예산과 인력이 충원되지 않는 이상 구성원은 노력을 최소화하게 된다”며 “새로운 업무를 위해 질서 유지를 위한 기존 노력을 축소했다고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가는 잘 대응하고 있나

  참사 예방과 초기에 철저히 실패한 재난 관리 시스템, 후속대응이라도 잘해낼 수 있을까. 4.16재단 박성현 나눔사업팀장은 “재난 사후대응의 제1원칙은 피해자 중심”이라고 강조했다. 박 팀장은 이태원 참사에 대해 “초기에 CCTV를 분석해 가해자를 찾겠다고 선언하는 등 피해자에 대한 정의부터 잘못됐다”며, “자신이 가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존자들, 더 살리지 못했던 죄책감에 빠졌을 이태원 상인과 시민이라는 피해자조차 가해자로 만들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특히 유가족에 대한 대응이 문제가 되고 있다. 박성현 팀장은 유가족에게 “시신과 유품을 인간적으로 인도받고 장례를 치를 권리, 사회적인 애도와 사과를 받을 권리, 참사 발생 원인에 대한 규명과 나아가 규명된 원인을 바탕으로 제도 개선의 과정을 안내받을 권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허나 유가족에 대한 후속대응은 초기부터 꼬였다. 유가족들은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 없이 낯설고 먼 병원, 장례식장을 배정받았고, 희생자가 안치된 장소를 정확히 안내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정부와 지자체는 유가족 간의 소통을 막고, 유가족의 의견을 듣지 않은 채 장례를 일방적으로 추진했다. 

사진 설명 시작. 이태원 관할 용산구청사의 모습. 사진 설명 끝.
▲이태원 관할 용산구청

  정치권이 유가족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도 속속들이 관찰된다. ‘유가족 협의회 준비모임’을 대리하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의하면, 11월 24일 이태원 유가족 원스톱 통합지원센터는 문자메시지로 ‘6시까지 답장이 없으면 의견이 없는 것으로 간주하겠다’는 일방적인 연락을 취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비공식적으로 일부 유족과의 만남만 추진했던 사실도 밝혀졌다. 12월 1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국회 국정조사특별위원회와 유가족들의 간담회에도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불참했다.  

  실무자 중심의 법적 처벌로 마무리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끊임없이 제기된다. 11월 11일에는 인파 관련 보고서를 삭제할 것을 지시했던 용산경찰서 정보계장이 특수본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했다. 용산 소방서장이 피의자로 입건됐고, 의료진들도 특수본 수사 대상이 됐다. 반면 이태원 참사에 관한 부적절한 언행으로 비판받은 이상민 장관, 한덕수 총리, 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 등에 대해서는 어떤 인사조치도 없어, ‘하위 공무원 꼬리자르기’로 대응이 종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불안이 증폭되고 있다. 

  박종희 교수는 “실무자 법적 처벌 중심의 대응은 앞으로 재난 상황에서 실무진들의 태도를 소극적으로 만들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교수는 “책임이 자신에게만 돌아온다면 법과 권한을 초월해서라도 시민을 구하려는 동기가 줄어든다”며 “재난 상황에서 시민의 생존이 각자에게 달리게 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는 “초동 대응자에게 전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안전에 극도로 민감한 태도를 보이는 실무자들을 상급자가 보호해 안전을 철저히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월 2일 특수본은 브리핑에서 행안부, 용산구청, 서울경찰청, 서울시청 등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 밝혔다. 직급·지위에 구애받지 않는 공정하고 철저한 문책이 이뤄질 수 있을까.

사진 설명 시작. 참사 현장 인근 통제 중인 경찰 버스와 공무집행차량. 사진 설명 끝.
▲참사 현장 인근은 여전히 경찰이 통제 중이다.

  한 가지 긍정적인 상황은 11월 13일 대통령실에서 ‘국가배상 검토’를 언급한 것이다. 세월호 생존자들의 국가배상소송을 담당했던 최정규 변호사는 “국가가 나서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재난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주도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최 변호사에 따르면, 여러 차례의 신고와 참사를 언급한 경찰 무전에도 적절한 초기대응이 취해지지 않은 등 국가가 특정 행동을 하지 않은 ‘부작위’ 요건이 충족돼 국가배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최정규 변호사는 “특히 국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의 과정은 지난하고 정신적 압박도 크며 배상에 대한 시민들의 시선도 피해자를 압박한다”며, “피해자들이 소송의 늪에 빠지기 전에, 국가의 태도가 또 다른 트라우마를 낳기 전에 국가가 먼저 나설 것”을 촉구했다.

재난에 ‘손 하나 까딱 않는 사회’로 갈 것인가

  이태원 참사와 함께 한국의 재난 관리 시스템의 여러 측면을 분석했지만, 결론은 하나다. 시스템이 재난을 관리할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전망은 다소 어둡다. 이재열 교수는 “수십 년 동안 유사한 참사들이 반복됐음에도, 맞물리는 시스템 전체를 손보겠다고 누구 하나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개탄했다. 

  이재열 교수는 앞으로는 한국 사회는 앞으로 더 복합적인 위험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교수는 “대구 지하철 참사,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까지 사회적 재난들은 오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과거형 재난이었지만, 최근 기후 문제로 예상치도 못한 형태로 발생한 여러 수해처럼 ‘블랙스완’같은 미래형 재난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며 재난 관리 시스템을 반성 없이 방치하는 것에 경각심을 표했다. 

  누적되고 누적되는 위험, 한국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 4.16재단 박성현 팀장은 “재난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앗아가지만 안전한 미래를 만들어가는 발판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성공의 발판은 철저한 학습이다. 이재열 교수는 참고 사례로 영국의 사례를 꼽았다. 이 교수에 따르면 1989년 ‘힐스버러 스타디움 참사’ 이후 영국은 철저한 군중 관리 매뉴얼을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 행사의 종류, 발생할 수 있는 사고, 인원별로 긴급 상황 시 연락해야 할 곳에 대한 매뉴얼이 정리돼 공공에 배포되고 있다.

  비슷한 재난이 발생하지 않을 사회적 합의로 나아가는 정치의 역할도 중요하다. 박종희 교수는 방향성으로 2004년 미국 허리케인 카트리나 후속대응을 제시했다. 2004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후, 부시 행정부도 초기에는 책임을 물은 언론 보도를 통제하는 등 회피적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여론이 악화되자 부시 행정부는 보도 통제를 철회했으며, 모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했다. 사회적인 문제 해결도 이뤄졌다. 진상조사 결과 피해자 대부분이 대피 수단이 없거나 무력감에 빠진 빈곤층이었던 것이 밝혀졌고, 미국 여야는 합심해 재난구조청을 개혁하고 빈곤 퇴치 사업을 확장했다. 재난에 대응할 수 있는 정치만의 힘이었다.

사진 설명 시작. 이태원 참사 유가족이 국회 간담회에서 손을 맞잡고 있다. 연합뉴스 출처. 사진 설명 끝.
▲12월 1일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유가족 간담회에서 유가족이 서로 손을 잡고 있다. ⓒ

<연합뉴스>

  예측할 수 없는 재난보다, 몸담고 있는 사회가 재난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없을 것이란 불안이 더 참담하다. 시스템은 재난에 ‘손 하나 까딱’해선 안 된다. 절박하게 움직이는 손으로, 온몸으로 재난을 관리하고 대응하는 사회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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