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건복지부 학대 피해 아동보호 현황에 따른 아동학대 증가 추이 Ⓒ송나윤
보건복지부의 「전국아동학대현황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아동학대 건수는 3만 905건이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개선 교육과 캠페인이 실시되면서 신고율이 증가한 탓도 있지만, 2018년 2만 4604건, 2019년 3만 45건과 비교했을 때 유의미하게 증가한 양상을 보인다.
학대 피해 아동은 학대 순간뿐 아니라 신고 이후의 조사과정과 그 이후의 성장 과정에서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현재 아동보호전문기관들에 배정된 예산으로는 고작 15%의 학대 피해 아동과 가정에만 심리치료 지원이 가능한 실정. 외면받는 학대 피해 아동의 마음을 돌보는 데 필요한 노력은 무엇일지 살펴봤다.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 왜 필요한가
아동학대는 피해자의 정신 건강에 후유증을 남긴다. 서울특별시 아동복지센터에 따르면, 아동학대는 언어발달을 비롯한 아동 성장 발달 지연, 자아 기능 손상, 위축, 대인 기피로 인한 인간관계 형성 어려움 등의 악영향을 끼친다.
아동학대의 기억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아동학대 피해 당사자인 국가안전경호협회 고현석 회장은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뉴스레터에서 ‘아동학대의 기억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우울증이나 무기력, 스스로에 대한 비관으로 나타나며, 지속적인 불안으로 남게 된다’며 제때 적절한 심리치료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난 2021년 이모 부부가 조카를 사망에 이르게 한 용인 조카 아동학대 사건에서는 가해자였던 이모 역시 과거 아동학대 피해 경험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아동학대의 반복과 재생산에 관한 문제의식이 제기된 바 있다. 학대 피해 아동이 적절한 심리치료를 받지 못해 피해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하고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는 셈이다.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공혜정 대표는 “아동학대 가해자의 70%가량이 과거 아동학대 피해를 겪은 것으로 밝혀졌다”며 학대 피해의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관리하는 심리치료가 학대의 재생산 방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심리치료는 피해 아동이 자신의 피해 사실을 인지할 때 받는 충격을 완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아동학대 피해 대응 과정에서 꼭 필요하다. 장애인권법센터 김예원 인권변호사에 따르면 학대 피해 아동은 부모의 학대 행위를 애정 표현 방식으로 착각하는 등 자신의 피해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기 어렵다. 꾸준히 아동 인권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김 변호사는 “피해자들에게는 자신이 겪은 일들이 아동학대 범죄임을 인지하는 경험 자체가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며, 이는 “자신이 당연하게 누리고 여기고 있던 것에서 멀어지거나 단절되는 경험과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이때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심리치료는 필수적이다.
또 다른 상처를 만드는 조사과정
학대 피해 아동에게 적절한 심리 치료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피해 아동은 지속적으로 심리 문제에 노출된다. 학대 피해 아동들은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한 신고, 사건 접수 과정에서부터 또 다른 상처를 입기도 한다.
아동학대 사건을 조사하는 방식이 사건 당사자로서의 학대 피해 아동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하고 있다. 피해 아동은 조사과정에서 불안감을 주는 환경에 홀로 남겨진다. 조사과정에서 아동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학대 가해자를 제외한 아동의 보호자나 아동과 신뢰 관계에 있는 사람에 한해 동행이 허용되나, 여기에 심리 전문가는 포함되지 않는다. 아동의 심리를 관리해줄 전문가가 부재할 뿐만 아니라 본격적인 진술 시에는 어떤 사람도 아동과 함께 있을 수 없다. 진술이 동반인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홀로 자신의 피해 사실을 진술해야 하는 상황은 아동에게 큰 불안감을 유발해 유효한 진술을 어렵게 만든다. 공혜정 대표는 “조사과정에서 발생하는 2차 가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진술 과정에 심리 전문가가 동행하거나, 조사 직후 적절한 심리치료가 즉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아동의 진술은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의심받아 수사 기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수사와 학대 판단에 있어서 가장 우선돼야 할 피해 당사자 아동의 진술과 의견이 합당치 못한 이유로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최근 변화한 조사 절차로 인한 피해 아동의 심리적 어려움이 커진다는 지적도 있다. 지난 2020년 3월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전까지 아동학대 범죄의 조사는 형사 사건 절차가 필요한 부분만 경찰이, 현장 조사나 응급조치 등 대부분은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이 담당했다. 그러나 개정안 시행 이후 신설된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에게 조사 업무가 이관됐으며, 아동보호전문기관은 심층 사례관리전담기관으로 전환해 전문적인 사례관리와 아동학대 예방 등의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이 같은 변화는 아동학대 사건의 중심적 역할을 전담 공무원이 수행함으로써 피해 아동에 대한 공적 책임을 강화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김예원 변호사는 “개정안 통과 이후 사건에 개입하는 주체가 하나 더 늘어나면서 사건을 조사하는 경찰, 아동보호전문기관 직원,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간의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학대 아동이 자신의 피해를 불필요하게 여러 번 진술해 큰 압박과 상처를 받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며 우려했다. 개정된 조사과정으로 인한 정서적 어려움을 보살필 방안은 아직까지 마련돼 있지 않다.
아동이 수사 과정에서 충분히 존중받는다고 느끼지 못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그에 따른 부정적 정서를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김예원 변호사는 “조사과정에서 피해 아동이 충분히 존중받는다는 감각 하에 증언과 진술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아동의 권리 보장을 위해 조사과정에 참여하는 이들이 아동의 언어를 기준으로 사안을 다루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변호사는 “수집된 아동의 증언이나 진술이 여타 다른 사건의 진술과 같은 중요도를 가져야” 하며, “아동에게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제대로 제공해 아동의 의견과 동의 여부가 왜곡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제대로 된 심리치료 기대하기 어려워
현재 국내 아동학대 피해 아동에 대한 심리치료는 수적·질적 문제에 모두 직면해 있다. 공혜정 대표에 따르면 심리치료가 효과를 보이기 위해서는 최소 24회의 상담이 필요하다. 이는 아동이 상담사와 친밀감, 신뢰 관계를 형성해 자신의 이야기를 무리 없이 나누기 위해 요구되는 최소한의 시간이다. 허나 현재 국가에서는 학대 피해 아동에게 심리검사 결과에 따라 10회 또는 20회의 심리치료만 지원해 형식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 이상의 추가 치료를 받으려면 개인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데,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많은 피해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상담사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서 기인한다. 공혜정 대표는 “전문심리상담사가 수적으로 많아야 적절한 상담 제공이 가능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사 1인이 평균적으로 약 76건의 사례를 담당하고 있다.
이는 상담사의 노동 강도를 고려한 정부의 권고 수준인 1인당 최대 32건보다 2배 이상 많고, 상담사 1인당 최대 15건 내외를 담당하고 있는 미국의 사례와 비교해볼 때도 훨씬 큰 수치다. 상담사 부족은 심리치료의 질도 떨어뜨린다. 한 명의 상담사가 맡아야 하는 업무의 양이 과중하면 충분한 횟수의 내실 있는 상담 지원이 어렵다.

개별 상담사뿐만 아니라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치료·피해 경험 회복을 담당하는 아동보호시설인 학대피해아동쉼터의 수 역시 크게 부족하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전국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총 98곳이다. 쉼터 한 곳당 정원은 5~7명으로, 국내 전체 수용 인원은 700여 명 정도다. 실제로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 수가 연간 3만 건을 넘어간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는 턱없이 적은 숫자다. 학대피해아동쉼터가 부족하니 대부분의 피해 아동은 학대 경험에 관한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청소년 시설이나 아동 생활시설로 보내진다.
고통에서 벗어나려면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적 어려움을 보살피기 위해선 국가 예산 확보가 첫 번째 과제다. 공혜정 대표는 국가 예산 확대를 통해 학대피해아동쉼터 수를 늘리고 쉼터에서 제공하는 심리치료 횟수를 늘릴 것을 주장했다. 현재 쉼터 추가 건립 관련 예산, 심리 치료비, 상담 교육비 등은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 2023년 보건복지부의 ‘아동학대 예방 및 피해 아동 보호’ 예산은 413억 500만 원으로, 보건복지부가 정부에 요구한 527억 9,900만 원에 못 미치는 숫자다. 아동학대 사례가 3만여 건에서 3만 7천여 건으로 21.7% 늘어나는 동안 피해 아동보호 예산은 381억 원에서 413억 원으로 고작 8.3% 증액에 그쳤다. 아동보호전문기관 신규 설치 예산의 경우 42억 원에서 24억 원으로 오히려 줄어들었고, 학대피해아동쉼터 한 곳당 배정된 사업비는 4천 592만 원으로 고정됐다. 필요한 금액보다 적은 예산으로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상황. 피해자를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한 적절한 예산 편성과 분배가 절실한 시점이다.
단순 상담이나 놀이치료, 모래치료 정도에 그치고 있는 학대 피해 아동 심리치료를 다각화할 필요도 있다. 공혜정 대표는 “학대 아동 심리치료에 가족치료, 짝 치료 등 다양한 상담 방식 도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치료 방법에 따라 그 효과가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공 대표는 “아이들 여럿을 짝지어 치료하는 짝 치료의 경우, 아이들이 개인 상담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털어놓기도 한다”며 예를 들었다. 유사한 경험을 가진 또래와의 대화가 학대 피해 경험을 얘기할 때의 심리적 저항을 줄여준다는 것이다.
학대피해아동쉼터 운영의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세이브더칠드런 국내사업부문 사업관리팀 홍용균 매니저에 따르면, 국내 학대피해아동쉼터는 학대 가해자로부터의 분리 및 보호를 위해 비공개로 운영된다. 이러한 특성상 학대피해아동쉼터는 외부 치료 센터와의 연계가 어렵고, 쉼터 내 심리치료를 담당하는 시설이 없어 피해 아동 심리를 위한 환경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는 지난 2020년부터 국내 학대피해아동쉼터를 전수 조사해 실태 및 문제점을 파악하고, 전문적이고 표준화된 ‘학대피해아동쉼터 지원사업 운영매뉴얼’을 개발했다. 시설의 설치 기준부터 아동보호, 사례관리, 안전 가이드, 종사자 교육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매뉴얼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 매뉴얼에 따라 노후화된 쉼터 환경을 개선하고, 아동의 심리 상태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치료를 지원했다. 사업을 담당한 홍용균 매니저는 “사업 이후 학대 피해 아동의 자아존중감과 행복감이 유의미하게 높아지고, 아동의 우울감과 공격성은 감소한 것으로 파악됐다”며 그 성과를 밝혔다.
홍용균 매니저는 “현 정부가 아동복지법 개정과 정부 차원의 쉼터운영매뉴얼 개발에 소극적”이라고 평가했다. “정부가 학대피해아동쉼터의 개선 필요성을 인지하고, 중요한 과제로 여겨야 한다”며 학대 피해 아동의 심리·정서 관리에 대한 정부의 다각적인 지원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아동학대에 대한 인식이 제고되고 있는 지금, 학대 피해 아동의 내면까지 돌보는 사회로 나아갈 때다. 아동학대를 근절해야 한다는 모두의 염원에서 시작된 노력이 학대 피해 아동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에 닿을 때까지 지속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벗어나고 싶은 기억으로부터 건강한 미래를 회복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