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할 수 있는 일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사실을 세상에 알리는 일일 것입니다. 사실은 기자가 기사를 짓는 재료입니다. 사실은 힘이 강합니다. 사실에서 나오는 힘이 있기에 기사는 가려진 문제를 드러낼 수도, 소외된 대상을 조명할 수도 있습니다. 처음 저널에 들어왔을 때는 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이 가진 힘으로 제가 속한 사회에 기여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차례 기사를 쓰면서, 기사가 할 수 없는 일이 많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177호의 커버 기사를 준비할 때는 기사가 할 수 없는 일이 특히 크게 느껴졌습니다. 기사는 인권헌장 제정을 앞당길 수도, 혐오 발언으로부터 구성원을 보호할 수도 없습니다. 인터뷰이를 만나 이야기를 들을 때는 열정을 불태우다가, 인터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회의에 빠지는 날들의 반복이었습니다. 인권헌장이 3년째 제정을 위한 관문인 평의원회에 안건으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있는 현실 앞에서, 사실이 가진 힘은 무력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기사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세상에 알릴 사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권헌장이 갖는 가치가 무엇인지, 공적 영역에서의 혐오가 왜 문제인지 알리고자 했습니다. 무엇보다 인권헌장에 대한 다양한 주체들의 목소리를 기사에 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기자의 일이 아닙니다. 177호가 세상에 나가도, 인권헌장을 둘러싼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기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겠습니다. 성실히 취재하고 치열하게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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