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월 6일, 박진 외교부 장관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2018년 대법원의 배상 판결로 발생한 일본 기업의 채무를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지원재단)’이 대신 변제한다는 방안이다. 지원재단의 재원은 국내 기업들의 기부금으로 충당된다.
일본 기업의 배상 의무를 한국 정부가 없애 주는 형식이 되자, ‘굴욕 외교’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 다음날,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1532개 시민단체는 시국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의 해법이 “일본 우익과 일본 정부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들인 꼴”이라며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굴욕감을 줬다”고 비판했다. 2018년 대법원 판결을 사실상 무력화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강제동원 사죄 및 전범기업 직접 배상 촉구 의원모임’ 소속 의원 53명은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강제동원의 불법성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반헌법적인 국기문란 행위, 삼권분립 훼손 행위, 민주주의 파괴행위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당사자인 피해자들도 제3자 변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강제동원 배상 판결의 원고 중 생존 피해자는 총 세 명이다. 이들은 3월 13일 ‘제3자 변제 방식의 배상금을 수령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내용증명을 지원재단 측에 전달하며 제3자 변제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시민사회와 피해자들의 반발에도, 정부와 여당은 제3자 변제안을 계속해서 밀어붙이며 ‘한일관계 개선과 경제 협력 정상화를 위한 결단’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제3자 변제안 발표문에서 “2018년 대법원 판결 이후 경색된 한일관계가 사실상 방치되어 왔다”며 제3자 변제안이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나가고자 하는 의지”라고 주장했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 언론과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도 사용된 표현이다.
윤 정부는 제3자 변제안에 대한 비판이 오히려 ‘국익’의 관점에서 어긋난다는 취지의 발언을 반복하고 있다. 박진 장관은 “국익 차원에서 국민을 위해 (한일관계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말했고, 국민의힘은 “강제동원 해법이 또 다른 정쟁의 도구가 돼선 안 된다”며 “맹목적인 반일 정서는 국익에 치명적 해악을 초래할 뿐”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윤석열 정부의 ‘국익’에 국민의 자리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