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톱니바퀴 길들이기

청년노동자, 사실은 이렇습니다

  뜨거웠던 주 69시간제 논의에서 가장 많이 호출된 집단은 다름 아닌 ‘MZ세대’. SNS를 중심으로 그들의 반대 여론이 빠르게 번지자 이를 달래주기라도 하듯 발언 정정과 정책 재검토가 이어졌다. 청년에 대한 정책적 오진이었음이 드러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 소환하기’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어쩌면 보편의 단어 아래 청년의 노동이 뭉뚱그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톱니바퀴를 깨끗이 닦아 빛낸다 해서 다른 무엇이 되는 게 아니다. 여전히 톱니바퀴일 뿐이다. 노동 정책 변화의 중심에서 그려지는 MZ세대 노동자와 실제 사이, 그 간극을 살폈다.

또 한 번 변하는 노동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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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개편안이 해결해줄 수 있을 근로자의 고민을 대화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페이스북

  고용노동부가 3월 6일 입법 예고한 법안 중 근로기준법 일부개정법률안에는 ‘선택적 근로시간제’가 포함돼 있다. 노사 간 합의를 통해 연장 근로시간의 단위기간을 1개월, 3개월, 6개월, 1년으로 정할 수 있다는 것이 주 내용이다. 법안에 따르면, 단위기간이 3개월 이상인 경우 월 연장 근로시간이 총량 52시간을 넘지 않는다면 다른 주에는 총량 12시간을 넘기는 게 가능해진다. 개정안에는 근로일 간 11시간 이상의 연속휴식을 부여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는데, 이를 고려하더라도 업무가 몰리는 시기에는 한주에 최대 69시간까지 일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근로시간 개편안이 ‘주 69시간제’로 불리게 됐다.

  ‘주 69시간제’로 불리는 근로시간 개편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을 논의하기 위해 출범한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작년 12월 내놓은 권고문으로부터 시작한다. 권고문에서는 3월 발표된 개정안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볼 수 있다. 권고문은 근로시간 단축과 노동의 질 개선을 위한다며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화를 보장하는 ‘근로시간 선택제’를 제시하고 있다. 기존 노동시간 제도가 공장처럼 노동자 대부분이 획일화된 노동 환경에서 일했던 시대에 제정된 탓에, 개인마다 업무 환경이 다각화된 오늘날의 노동시장에 맞추기엔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권고문은 이러한 상황이 근무 생산성을 저하할 원인이 될 가능성도 있다며 근로시간 제도의 개편을 촉구하고 있다. 

  또한, 근로시간 선택권 부여를 뒷받침하는 세부과제로 연장 근로시간의 관리단위 개편을 제시하고 있다. 권고문은 현행 제도에서는 연장 근로시간을 1주 단위로 관리하는데, 이를 월·분기·반기·연 단위까지 넓혀 관리하자고 제안한다. 관리단위 확장에 따라 연장 근로시간의 총량을 비례적으로 감축할 것을 권장하면서 궁극적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하겠다는 것이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 권고문에 있어 주목할 점은 직접 “‘MZ세대’의 노동시장 진입과 함께 다양화돼가는 일하는 방법과 문화, 생활세계의 가치에 따른 노동 환경의 변화 필요성”을 피력하며 젊은 노동자와 대비되는 낡은 제도를 개혁하겠다는 게 요지일 만큼, 청년노동자를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정작 권고문을 기반으로 정부가 내놓은 ‘주 69시간제’는 특히 청년층을 중심으로 반발이 일었다.

  그 이유는 현 노동 환경에선 도무지 이뤄질 수 없는 기대 효과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권고문과 개편안을 보면 집중근무 후에 다른 주에는 40시간씩 일하거나 휴가를 받는 등, 근로시간 관리단위가 폭넓어짐에 따라 전체 근로시간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누릴 수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실질적으로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연구원은 권고안이 “일방적이거나 불규칙한 노동시간 배치가 일어날 가능성을 커지게 해 오히려 현행 제도의 결함을 강화할 위험이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 노동현장은 노동자가 자유롭게 업무 시간과 양을 조율하거나 건강을 위할 수 있는 환경이라 보기 어렵다. 202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만 19~34세 청년층을 대상으로 진행한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54.6%의 청년들이 자신의 노동시간을 회사가 결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노동시간의 선택은 가능하지만, 그 선택의 폭은 정해져 있다는 응답은 28.4%였다. 노동자의 업무 자율성이 결코 높다고는 볼 수 없는 결과다. 2021년 고용노동부의 「일 가정 양립 실태조사」에 따르면 연차 소진율도 평균 58.7%에 그쳤다. 법적으로 강력하게 보장하고 있는 연차조차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분위기에서 노동자의 근로시간 선택이 유연하고 융통성 있게 이뤄지리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래시장노동연구회 권고문 및 정부 개편안은 근로시간 개편을 통해 근로자의 건강권을 강화하고 근로시간 또한 투명하게 관리해 장시간 근로를 줄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연장근로 시 근로일 간 휴식을 부여하거나 총량을 제한하는 등 제도적 뒷받침도 제시하고 있으나, 오히려 노동자 건강의 침해로 이어질 것이란 우려 역시 제기된다. 

  이미 한국 사회의 업무 부담은 상당하다. 2021년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과로사 조사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1년까지 과로사 사망자는 2,503명으로 한 해 평균 500명을 넘겼다. 통계적인 유의미성을 위해 최소치를 추정한 것임에도 그 숫자는 뼈아프게 크다. 과도한 업무에 시달리는 노동자가 여전히 많다. 

  한편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하종강 교수는 이미 “현행 근로시간의 명칭부터 ‘주 최대 52시간제’가 아니라 연장근무를 당연한 전제로 한 ‘주 52시간제’로 불리는 실정에 이번 노동시간 개편은 오히려 건강에 직접적인 악영향을 주는 야간노동과 불규칙한 노동 병행을 허용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에서 한 걸음 더 멀어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라는 비판이다. 노동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정책이 진정으로 누구의 지지를 불러오고자 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자꾸만 호출되는 ‘MZ’, 누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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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당시 대통령 예비후보의 홍보 영상 스틸컷 ⓒ유튜브 채널〈윤석열〉

  윤석열 정부 노동 개편안에 대한 현실성 부족이 지적되자 3월 6일 정부 브리핑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요새 MZ세대들은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를 외친다”며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주 69시간제의 제도 악용 가능성을 일축했다. 불합리한 노동구조 해결을 청년세대의 특성에 맡겨버리면 된다는 식의 태도다.

  이처럼 윤 정부 노동개혁의 흐름에서 가장 많이 호출된 것은 일명 ‘MZ세대’였다. 고용노동부는 주 69시간제의 기대 효과를 설명하는 SNS 카드뉴스에서 최근 20~30대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제주 한 달 살이’를 언급하기도 했다. MZ세대가 꿈꾸는 노동 환경을 마련할 수 있는 개편안임을 어필하는 논조다. 최근 몇 년간 새로운 소비문화로 두각을 나타내며 주목받아 온 MZ세대는 새로운 시대의 주역, 미래를 여는 청년 등의 수식어구와 함께 노동시장에서도 소환되기 시작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윤자호 연구위원은 MZ세대가 주로 “톡톡 튀고, 자유분방하고, 말 안 듣는, 조직의 기존 관성과 문화를 아무렇지 않게 거스르는 이미지로 묘사”되고 있다고 봤다. 큰 인기를 끌었던 《SNL 코리아》의 「MZ 오피스」 시리즈가 대표적인 예다. ‘막내가 커피 사 와야지’와 같은 기존 연공서열 문화에 개의치 않는 모습이나 개인주의적 문화를 추구하며 사적 영역을 지키는 모습 등이 묘사됐다. 관행보단 자신의 권리를 중시하고, 권위에 크게 짓눌리지 않으려는 청년층의 모습을 실감나게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기술 발전이나 가치관의 변화로 청년노동자의 성향이 이 기성세대와 궤를 달리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한다. 청년노동자는 직장인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Blind)’로 발언하거나 교류하는 등 디지털 기술을 접하며 자라난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의 면모를 보여왔다. 최근 ‘블라인드’를 기반으로 서로의 불만을 공유하다 노조를 결성하게 된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LG전자 ‘사람 중심 사무직 노조’가 대표적이다. 2021년 10월에 있었던 스타벅스 트럭 시위도 마찬가지로 ‘블라인드’에서 익명으로 모인 노동자들이 오프라인에서 집단행동을 벌인 경우다. 기성세대와는 분명 다른 양상이다. 

  하지만 세대론으로 오늘날 모든 청년노동자를 설명할 수 있을까. 세대론은 항상 특수성의 문제를 일축할 위험을 동반한다. 전문가들은 ‘MZ세대’로 불리는 청년노동자가 특정 집단에 국한된다고 분석한다. 하종강 교수는 “주로 그려지는 MZ세대는 ‘대기업 정규직 화이트칼라’ 집단에 해당하는데, 이들과 전혀 다른 정서를 지닌 비정규직, 제조업, 하청, 플랫폼 등 종사자의 목소리가 삭제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MZ 오피스」뿐 아니라 유튜브 채널 〈너덜트〉의 「야근, 야근, 야근, 야근, 야근, 병원, 기절」 등 다양한 MZ세대 노동을 묘사한 콘텐츠는 주로 사무실을 배경으로 사무직 노동자만을 다룬다. 정규직 화이트칼라로 포섭되지 않은 노동 집단은 노동 현실의 묘사에서조차 그 모습을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윤자호 연구위원도 같은 맥락에서 세대론의 위험성을 살폈다. 윤 연구위원은 “50인 이상의 기업에 들어가는 청년은 소수”라며, “대학을 나오지 않은 노동자, 비정규직 청년들, 아르바이트, 생산직, 유통 판매 서비스 분야 노동자도 배제되고 있다”고 보았다. MZ세대 담론에서 삭제된다는 것은 “취약계층 청년의 고통도 삭제되는 것”이라며 세대론이 불러오는 보편화의 위험성을 짚었다. 

  시대마다 세대별로 표상되는 노동자의 얼굴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정희 연구원은 “영화 《국제시장》의 ‘윤덕수’가 표상하는 70년대 노동자”, “87년 세대”, “드라마 《미생》의 ‘장그래’가 보여주는 IMF 이후의 세대” 등 우리 사회에선 시대에 따라 노동자의 표상이 계속해서 바뀌어왔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러한 변화가 “스스로 일터 내에서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연대감을 느꼈고, 어떤 분노와 투쟁을 함께 했는지에 따라 당연히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오늘날 표상되는 ‘MZ세대’ 노동자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이 연구원은 “현재의 MZ세대 노동 담론이 청년노동자를 선별적으로 호명하고 있어 결코 모든 청년노동자의 표상이라 할 수 없다”며, 한 집단의 특성을 내부 구성원이 아니라 외부에서 규정하고 재단하고 있는 세대 담론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일깨웠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김우식 연구위원은 “청년세대의 다양한 양상이 하나로 포괄되면서 세대 내부의 갈등과 차이도 은폐된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문제는 MZ라는 이름의 부적절한 호명이 정부 정책에도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 정책에서 청년을 세대론적 구분으로 계속해서 호출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종강 교수는 이를 “기존 노동 운동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지닌 청년층과, 기득권 세력이라 할 수 있는 보수 정권의 공통분모를 이용하려는 시도”라고 분석했다. 김우식 연구위원 역시 “(MZ세대론의 부각이) 청년 집단 전체를 이질적인 존재로 만들어 세대 간의 갈등을 더 과장하기 위해 이용되는 경향성이 있다”고 봤다. 특수한 정치적 목적과 의도 아래 세대가 호명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연구원은 청년층 일부의 지향성과 보수 정권의 정치적 방향의 일치점이 “언론이나 정치적 발언을 통해 과장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위원은 주 69시간제 논쟁에 대한 청년층의 거센 반발을 들며 “주 5일제가 당연한 시대에 태어난 청년층이 주 6일을 근무할 수도 있다는 개편안에 어떻게 동의할 수 있겠느냐”고 언급하기도 했다. 현재 호명되는 ‘MZ세대 노동자’는 사실상 일부를 지나치게 부풀린 데다, 그들의 노동에 대한 의사마저도 제대로 포섭하지 못한 프레임인 셈이다.

노동하는 MZ, 그 실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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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6일 서울고용노동청 앞에서 열린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 없는 이정식 장관 공개 토론회’의 참여자 일면이다. 전국특성화고노동조합 김미성 조합원이 발언하고 있다. ⓒ윤성은 사진기자

  세대론적 프레임으로는 모든 청년을 포괄해낼 수 없다. 구체적으로 청년 노동의 어떤 장면들을 누락하고 있을까. 청년노동자들은 뿌연 노동 현실을 어떻게 부유하고 있나. 

  먼저 청년 일자리 실태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최근 문제로 부상한 플랫폼 노동자 대부분이 청년층이다. 대개 프리랜서나 비정규직, 계약직의 형태로 근무하는 이들은 일하는 노동 환경이 안전하지 않은 데다 임금도 낮다. 대표적인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들이다. 노동시장 진입을 위한 예비적 성격을 띠는 인턴십에 참가하는 청년노동자 또한 법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아 법제적 고립에 처해있다. 어린 나이에 노동현장으로 뛰어드는 특성화고 출신 노동자도 마찬가지다. 미흡한 직무 교육, 현장 실습 중 발생하는 인명사고, 실습생에 가해지는 성인 근로자에 준하는 업무 부담 등에 법적 안전장치 없이 노출돼 있다. 사각지대의 노동자 집단에 대한 지표는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 미래노동시장연구회도 권고문에서 플랫폼 종사자 등 소외된 노동자에 대한 논의가 필요함을 짚긴 했으나, 여전히 정책적 움직임은 없다.

  노동개혁 정책 과정에서 지속해서 소환되며, 다각화된 신(新)노동시장의 대표 주자처럼 그려지는 IT·게임업계 역시 노동 환경이 열악하기는 매한가지다. IT·게임업계에서는 개발 프로젝트 마무리를 위해 높은 강도로 집중근무하는 태도를 가리키는 ‘크런치 모드(Crunch Mode)’라는 용어가 있다. 2021년 7월 윤석열 대통령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개발자들이) 게임 하나 개발하려면 한주에 52시간이 아니라 일주일에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이후에 마음껏 쉴 수 있어야 한다”며 마치 이 ‘크런치 모드’가 IT·게임 업계 종사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크런치 모드는 오히려 업계의 혹독한 근무 방식이 만연함을 보여주는 나쁜 업무 관행으로 여겨진다는 점에서 윤 대통령의 발언은 착오적이다. 2017년 게임 회사 넷마블에서는 업무 과중으로 인해 한 해 3명의 근무자가 과로사로 추정되는 죽음을 맞아 이를 규탄하는 노동 투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윤자호 연구위원은 게임업계뿐 아니라 노동시장 전반에 걸쳐 “2명이 할 걸 1명이 하는 문제”가 이어지고 있다고 짚었다. 장시간 노동과 인력 감축이 동시적으로 이뤄지면서 한 노동자가 짊어져야 할 업무의 양이 이미 과다한 상태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청년층의 활발한 이직 또한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로부터 기인한다고 분석한다. 2017년 경제활동인구조사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청년노동자의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9개월이고, 1년 유지율은 62%에 불과하다. 첫 일자리를 그만둔 원인으로 절반 이상(51.4%)이 근로여건 불만족을 꼽았다. 청년층에게 평생직장 혹은 장기간 근속은 이제 유효하지 않은 개념이 됐다. 김우식 연구위원은 “ *조용한 사직이나 이직 문화는 열악한 노동 환경이 청년에게 영향을 준 결과”라고 보았다. 

  하지만 청년노동자의 업무 성향에 영향을 준 열악한 노동실태에 대한 주목보다, MZ세대에게는 근태나 일터에 대한 충성심 부족, 자아실현에만 집중하는 가치관 등의 비판만이 가해지고 있기도 하다. 앞서 언급된 「MZ 오피스」에서는 MZ세대 노동자가 사무실에서 무선 이어폰을 착용한 채 일하거나 개인 SNS용 동영상을 촬영하는 등 근무 분위기를 저해하거나 안하무인으로 자신의 권리와 의견을 표현하는 식의 상황을 그려냈다. 이는 언론 보도나 방송이 MZ세대의 이미지를 부정적으로 과장한 대표적인 사례다. 윤자호 연구위원은 스테레오타입 조성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MZ세대에 다양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는 건 맞지만, 이제 막 취업해 조직 문화를 잘 몰라 저지르는 실수나 어긋남 등이 포용되지 않는 상황”을 짚어냈다. 마치 사회의 어엿한 중추로 그려지는 청년노동자가 한편으론 이제 막 노동시장에 진입한 사회초년생이란 지점이 사회적으로 공유되지 않고 있을 뿐더러, 취약하고 서툰 점을 세대의 부정적인 특성으로 치환해버릴 위험이 있다는 분석이다.

* ‘조용한 사직’은 실제로 퇴사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맡은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는 업무 태도를 뜻한다. SNS상에서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번진 신조어다.

  한편 흔히 언급되는 ‘MZ세대의 권리의식’도 유명무실한 얘기다. 청년들은 일터에서의 권리를 찾기 위해 가입한 노조에서도 위축된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이 발표한 노조 내부 청년 조합원의 세대갈등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청년노동자가 노동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노조에 가입해도 노조 내에서 청년노동자의 권리의식을 실현하기 위한 투자나 발언권을 잘 부여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우식 연구위원은 이런 현상이 “기성세대와 청년세대의 실제적인 조직 내 갈등”인 동시에, “정치권이든 노동권이든 청년의 의사결정 권리를 명확하게 보장하지 않은 상태에서 청년을 호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노조를 벗어나 바깥에서도 청년이 목소리를 낼 공간은 넉넉지 않아 보인다.

  MZ를 위한 노동 정책이라고 등장한 주 69시간제에 가장 크게 반발했던 것은 오히려 2030 청년층, 즉 ‘MZ세대’로 통칭되는 그들이었다. 근로시간을 마음대로 선택할 자율권이 허상이라는 현실 인식과 청년 노동 현실에 시급한 과제는 따로 있다는 문제의식에서였다. 청년노동자는 바깥이 규정한 틀 안에서, 혹은 틀 바깥 소외지대에서 나름대로 꿈틀대고 있다. 불안정한 노동시장을 표류하는 청년은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만 할까.

  전문가들은 입 모아 ‘연대’를 얘기했다. 일하는시민연구소·유니온센터 김종진 소장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세대가 중요하다”며, “외부에 의해 세대 주체의식을 세우는 게 아니라, 청년세대 스스로가 타 세대와 구분되는 가치관을 구축해 사회에 목소리 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세대론적 구분에서 지적된 청년세대의 객체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윤자호 연구위원은 “청년 내 존재하는 계층, 젠더, 경험 등의 차이를 무화하지 않으면서도 최소한의 합의 지점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저마다 위치는 달랐지만 ‘너무 많이 일하느라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되는 사회로 가야 한다’는 최소한의 문제의식을 청년층 대다수가 공유했던 것이 주 69시간제 반대 여론의 한 주축을 담당한 것처럼, 인간다운 노동을 위한 최저선의 출발점을 함께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우식 연구위원은 조직 내뿐만 아니라 정치권이나 노동 사회 전반에서 “청년을 쓰고 버리는 패가 아니라 발언권, 의사결정의 권리 등을 부여한 존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얘기했다. 호명되고 호출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직접 정책 논의 과정에 참여하고 토론하는 주체적 존재로 나설 수 있는 환경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이요, 잘못된 호명도 중지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각화된 노동 양태만큼이나 곳곳에서 청년노동자의 가치관과 지향성은 다채로워졌고, 청년 내부의 갈등과 이견도 깊어졌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삶을 다루는 정책 논의에서 청년은 ‘청년’이란 단어 바깥에 있다. 지금도 쏟아져 들어온 새로운 톱니바퀴는 프레임에 은폐된 채 닳아가고 있다. 원하는 모양대로 길들지 않도록, 완전히 마모되어 헛돌지 않도록 잠시 맞물림을 멈추고 고개를 맞대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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