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란 (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 상임활동가)
2007년부터 반올림에서 활동해 오고 있습니다. 아픈 노동자들 산재 신청을 돕고,
산재보험제도 개선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습니다.
jongran2011@gmail.com
하루 아니 반나절만 손에서 떨어져도 불안이 밀려오는 것, 바로 휴대폰이다. 편리함의 맛을 쉽게 끊을 수 없는 인간의 심리를 이용해 자본은 반도체 기반의 첨단사회를 만들어냈고, 그 중 휴대폰은 우리 생활과 가장 밀접한 기기가 됐다. 그런데 우리가 매일 들여다보는 휴대폰이 누구의 노동을 통해 우리 손에 쥐어졌는지, 이것을 만드는 동안 그는 과연 안녕했는지 알 길이 없다. 기업의 이윤이나 소비가 중심이 되는 사회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생산의 지점, 거기에 누군가의 소중한 삶과 생명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쓴다.
휴대폰을 생산하는 삼성, 애플 등 초국적 기업들은 노동인권이나 환경 규제를 피하고,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이윤축적을 위해 중국, 베트남 등에 생산기지를 둔 지 오래됐다. 삼성전자도 스마트폰 생산량의 50%가량을 베트남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들 원청 대기업들은 1차, 2차, 3차 식으로 다단계 하청(협력)업체들을 두고, 소재와 부품, 장비를 공급받아(소위 ‘공급망’ 이라 함) 휴대폰을 만든다. 우리가 사용하는 휴대폰들은 이러한 국제적 분업 구조 속 해외노동자들의 손에서 탄생하고 있다. 단지 먼 나라 이야기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그런데 올해 2월 말 베트남 삼성전자 휴대폰 부품 생산업체 (삼성전자의 2차 협력업체)에서 무려 37명의 노동자가 ‘메탄올’ 급성 중독 판정을 받았다. 새 알콜(메탄올)을 쓰자마자 많은 노동자들에게 건강이상이 발생했지만 회사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베트남 현지 언론에 따르면 메탄올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혼수상태에 빠져 병원에 실려 갔는데 16세, 19세 등 10대 후반 노동자 3명은 안타깝게도 시신경 손상으로 눈을 실명당했고, 심각한 뇌 손상까지 나타났다. 또 다른 한 분의 여성노동자 응우옌 티 H님(42세)은 상태가 악화돼 그만 목숨을 잃었다.

⑤ 구멍난 ‘관리의 삼성'” 에 실린 베트남 현지 방송 자료 화면.
지난 3월 15일 베트남 모 방송은 휴대폰 부품 공장에서 여성노동자 한 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사망하고, 3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피해를 입은 사실을 보도했다.
메탄올이 너무 새로운 물질이라, 그 물질의 독성을 몰라서 발생한 사고가 결코 아니다. 메탄올(메틸알코올)은 이미 오래전부터 독성이 밝혀지고 각 국가에서 관리대상 유해물질로 지정한 물질이다. 메탄올을 섭취하거나 증기에 노출되면 특히 눈에 치명적이고,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 있기에 대체물질(에탄올 등)을 사용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대체물질이 아니라 그대로 메탄올을 취급하는 기업은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배기와 환기, 보호구 등 철저한 예방 관리조치를 해야 한다. 베트남에도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주의 의무를 명시한 산업안전보건법이 있을 테지만, 기업을 감시하고 노동법을 지키게 만들 노동조합이나 시민사회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사이에 노동자들은 겨우 10대의 나이에 눈이 멀고 억울하게 죽어간 것이다.
삼성은 이미 같은 사고의 경험이 있다. 2016년 한국에서도 똑같은 메탄올 사고가 있었다. 인천, 부천 등에서 삼성·LG전자 스마트폰의 부품을 만드는 하청 공장들을 다니던 청년노동자 7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었다. 중간착취를 허용하는 구조인 파견노동은 제조업에서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만 현실은 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불법파견이 횡행하다. 메탄올 실명 피해자도 파견노동으로 일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심지어 어떤 피해자는 아르바이트 삼아 일한 지 불과 보름 만에 메탄올에 무방비로 노출돼 평생 눈이 멀게 되었다.
정부는 메탄올 대신 대체물질로 ‘에탄올’을 사용하라고 권고하고 있으나, 에탄올보다 메탄올이 더 싸다는 비용 논리는 강력했다. 이를 규제해야 하는 정부는 전자산업의 다단계 하도급 생산구조에서 직접 감독 정책에는 한계가 있음을 실토하기도 했다. 메탄올 사고 후 노동부는 “삼성, LG가 1차 협력사에 메탄올 사용금지 조치를 하였고, 3차 협력사까지 관리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고 했다. 국내 사업장뿐만 아니라, 삼성전자는 국제사회가 기업에게 요구하는 글로벌 구매 행동규범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담았다고 선전하며, 공급망 안전보건관리를 철저하게 하고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삼성의 선전은 말뿐이었음을 이번 베트남 메탄올 사고가 보여주고 있다.
억울하게 희생당한 노동자들의 존재를 알리고, 원청 기업의 책임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3월 29일 반올림(반도체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과 IPEN(국제 환경 단체) 등 시민단체들은 서초동 삼성사옥 앞에서 “공급망 내에서 메탄올 전면 사용 금지, 피해자에 대한 책임과 지원, 위험의 외주화 중단 등”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23년 3월 29일, 서초동 삼성본관앞에서 반올림, IPEN, 노동건강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이
‘삼성전자 베트남 공장 협력업체 메탄올 중독 사망 사고 규탄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반올림
당시 반올림은 마침 삼성 안전관리자의 내부고발로 알게 된 베트남 박닌 휴대폰 공장에서의 악취문제 등 유해물질 관리실태의 심각성을 〈뉴스타파〉 보도 등을 통해 세상에 알리는 중이었다. 대기 및 수질 오염을 수년간 알면서도 방치했으며, 사용 화학제품의 48%는 발암성, 돌연변이원성, 생식독성 성분을 포함하고 있고, 독성 화학물질이 차폐되지 않은 상태로 사용되는 등 심각한 문제들이었다.
“버젓이 환경안전 문제를 저지르고 있지만, 삼성전자 지속가능보고서를 보면 환경법규 위반이 0건이에요. 이건 완전히 거짓말이잖아요. 왜 분명한 사실을 기록해야 하는 지속가능 경영 보고서에 거짓을 기재했나요. 그건 삼성 당신들이 지속 불가능한 삼성이라는 거죠.”
(전 삼성전자 환경안전 관리자 강 모 씨 진술,
3월 16일 〈뉴스타파〉 “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 ① 안전 관리자의 고백”)
삼성은 공급망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했지만 〈뉴스타파〉 보도에 따르면 2016년 메탄올 사건 후에도 삼성전자 74개 베트남 협력사에서 메탄올을 계속 사용했고, 그중 14개 협력사는 국내 사건과 동일한 세척 용도로 메탄올을 사용했다. (3월 22일 뉴스타파 “글로벌 삼성의 위험한 공장 ④ 이전된 위험”)
베트남 메탄올 사고에 삼성의 책임을 촉구하는 우리의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안타깝게도 한국의 메이저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대신 많은 경제지들이 마치 삼성 홍보지라도 되는 듯이 삼성의 납품사기 주장에 힘을 싣는 기사를 쏟아냈다. “베트남 2차 협력사 ‘가짜 에탄올’ 피해…삼성전자는 무슨 죄일까”라는 선정적인 기사 제목도 보였다. 삼성도 납품 사기를 당했는데 왜 삼성보고 나무라느냐는 것이다.
1차 하청업체뿐 아니라 공급망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한 약속을 잊은 것인가? 삼성은 자신들의 입김에 맞는 언론플레이 공세만 있으면 약속이고 무엇이고 중요하지 않단 말인가? 사람이 죽고 10대 노동자들 여럿이 실명을 당하고 수십 명이 다친 문제다. 법적 책임을 떠나 휴대폰을 판매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는 중이라면 그 휴대폰을 만든 노동자들의 안전사고에도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불법 파견의 무책임한 구조를 통해, 한국에서 메탄올 실명 사고가 발생한 것과 같은 원리로, 베트남에서 원청 삼성전자의 무책임한 하청 구조 속에서 소중한 생명과 건강이 훼손됐다. 삼성은 더 드러나지 않고, 최소한의 규제도 피해 갈 수 있는 곳으로 옮겨서 결국 위험을 키웠다. 위험을 외주화한 것이다. 삼성은 이번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사과하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다시는 같은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공급망 내에서 메탄올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이를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어쩌면 급성중독으로 인해 수면 위로 드러난 메탄올 중독만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삼성 반도체 백혈병, 뇌종양, 암 등의 직업병 사태로 번지지 않기 위해서는 ‘위험의 외주화’를 정말 중단하고, 화학물질 안전의 가장 중요한 원칙인 사용물질과 배출물질의 유해성 정보를 지역사회와 노동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메탄올 사고이든 삼성 백혈병 등 직업병 사태이든 더 이상 노동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한 휴대폰과 전자제품을 쓰는 일이 없도록, 왕성한 소비자인 우리 자신부터 기업 감시에 대한 목소리를 내보자고 다짐한다.
돌아가신 응우옌 티 H님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