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영화 《지옥만세》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의 포스터다. 위쪽에 빨간색으로 '지옥만세'라는 제목이 적혀 있고, 아래쪽에는 배우들의 이름과 '2023.08.16'이라는 개봉일이 적혀 있다. 중앙에는 영화의 두 주인공인 '선우'와 '나미'의 사진이 있다. 사진 설명 끝." width="1200" height="1200" style="vertical-align:middle;" />
▲ 《지옥만세》 포스터
학교폭력은 이제 한국 미디어에서 흔하게 다뤄지는 소재가 됐다. 올해 상반기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더 글로리》(2022)가 대표적이다. 지난 8월 개봉한 《지옥만세》(2023)도 학교폭력 피해자들의 복수를 다룬 영화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학교폭력 서사와는 차이를 보인다. 영화는 통쾌한 권선징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선과 악을 모호하게 만든다. 임오정 감독의 첫 장편인 《지옥만세》는 평범하지 않은 영화다. 학교폭력과 자살 시도 등 어두운 소재를. 정면으로 다루면서도 밝고 경쾌하게 연출됐고, 인물들의 대사는 해학적이고 가볍다.
하지만 영화를 보고 남는 따뜻한 힘만큼은 진지하다. 임오정은 사는 게 죽는 것보다 더 힘들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주인공들이 살아가는 세상이 지옥이 아니라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않는다. 그 대신 그런 현실에서도 일어나 살아가게 하는 힘에 대해 말한다. 《지옥만세》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향한 응원과 애정으로 가득 찬 영화다.

복수 없는 복수극
주인공 나미와 선우는 동반자살을 시도하는 고등학생들이다. 두 사람이 자살하려고 하는 이유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밧줄에 목을 매기 직전, 둘은 과거 자신들에게 학교폭력을 저질렀던 채린이 서울에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며 복수를 결심한다. 나미가 제안한 복수 방법은 채린의 얼굴에 커터칼로 흉터를 만드는 것이다. 채린을 죽이면 충분한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나미와 선우가 채린에게 복수하기 위해 상경하는 내용까지가 영화의 도입부다.
하지만 그들이 서울에서 찾은 채린은 사이비 종교에 입교한 상태였고, 이미 자신은 회개했다며 나미와 선우에게 용서를 구한다. 당황한 둘 앞에서 채린은 자신에게 어떤 짓이든 해도 좋다며 무릎까지 꿇는다. 채린을 믿지 못하는 선우와 달리 나미는 채린의 사과에 마음이 흔들리고, 채린의 얼굴을 칼로 긋지 못한다. 결국 영화에서 채린에 대한 복수는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영화가 복수는 무의미하다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화의 주제는 복수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것에 가깝다. 결국 살아갈 이유는 가해자의 파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일상에서 찾아야 한다.

용서는 누구 마음대로
《지옥만세》를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용서’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잘못을 모두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채린의 행동은 관객이 용서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가해자가 일방적으로 죄를 반성하고 사과해도 되는 걸까? 피해자가 용서할 준비가 되지 않았을 때도? 채린의 회개가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것이 어디까지나 본인을 위한 회개이기 때문이다. 사이비 종교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선행을 통해 점수를 쌓으면 낙원에 갈 수 있다고 믿는다. 채린이 회개하는 이유는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낙원에 가기 위해서다.
반면 나미는 용서가 피해자의 몫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인물이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나미도 과거 선우를 향한 폭력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나미 또한 사과할 일을 가진 인물인 것이다. 하지만 나미의 사과는 채린의 사과와 다르다. 나미는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채린의 부탁을 모두의 앞에서 거절한다. 이 장면은 나미의 성장을 보여준다. 나미는 본인이 채린을 용서할 자격이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말은 채린의 위선을 깨닫고 용서의 의미를 알게 된 나미가 선우에게 건네는 사과이기도 하다.

사이비 종교라는 은유
영화의 또 다른 특징은 학교폭력을 다루면서 사이비 종교라는 이질적인 소재를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언뜻 보면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이 병치는 일종의 소격효과를 발생시킨다. 같은 단어가 서로 다른 맥락으로 사용되는 장면에서 유사성과 괴리를 동시에 느끼게 되는 것이다. 채린과 사이비 종교 사람들은 속죄, 용서, 구원 같은 단어들을 입에 달고 살지만, 거창한 어감과는 다르게 이들의 말은 공허하다.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하는 이런 단어 사용은 사이비 종교의 폐쇄성과 비합리성을 드러내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하지만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맥락에서 채린을 바라볼 때, 이 단어들은 새로운 무게로 다가온다. 채린은 자신이 속죄해야 낙원에 갈 수 있다고 말하지만, 신과 인간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에서 속죄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구원이란 무엇이고, 이들의 구원이 가능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결국 서로를 구원하기
영화의 마지막에서 나미와 선우는 결국 삶을 선택한다. 자살을 시도하다 실패하는 영화의 첫 장면과 대비되는 결말이다. 두 주인공은 왜 지옥 같은 세상에서 삶을 선택했을까? 나미와 선우가 서로를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 보여주는 것처럼, 지옥을 같이 살아갈 친구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옥만세》는 학교폭력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는 영화는 아니다. 물론 사이비 종교와 폐쇄적인 공동체에 대한 영화도 아니다. 《지옥만세》는 지옥 같은 삶을 살아가던 두 인물이 일련의 사건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살아갈 힘을 찾는 이야기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현실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던 나미와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무기력에 빠져 있던 선우는 서로를 구원한다.
서로를 구원하는 건 두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여성 인물 간의 연대를 강조한다. 선우는 사이비 종교에서 학대당하는 혜진을 구해내고, 나미는 복수의 대상이었던 채린을 돕는다. 그리고 이런 연대는 어른들과 대비되는 청소년들만의 것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성인들이 구원을 위해 자녀를 학대하거나 독선적인 신념으로 마녀사냥을 저지르는 등 어두운 현실을 재현하는 데 비해, 청소년 인물들은 선의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2022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가 공개된 이후 임오정 감독은 영화에 대해 “세상의 모든 외톨이에게 위로를 건네는 영화”라고 말했다. 《지옥만세》는 바닥까지 내려가는 우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지옥 같은 세상에 분노하면서도, 장난스러운 웃음과 따뜻함을 잃지 않는 위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