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대선주자 시절 안동대에 방문해 학생들에게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공학과 자연과학 분야가 취업하기 좋다”며 “인문학은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를 공부하면서 병행해도 된다”고 조언했다. 윤 대통령의 발언은 학문의 가치를 폄하했다며 당시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어쩌면 현재 대학의 상황을 잘 나타내는 말일지도 모른다. 대학에서 인문학을 비롯한 기초학문의 영역은 계속 줄어들고 있으며, 대학은 점차 학문이 아닌 취업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다. 무엇이 대학을 변하게 했는지, 그리고 변화 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잃었는지 알아봤다.
학문의 가치는 어디에
정부는 산업 수요가 많은 분야의 정원을 늘리고 대학 재정지원 사업에서 취업률과 충원율을 주요 지표로 반영하는 등 대학의 학과 구조조정을 주도해 왔다. 대학이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취업률을 높여야 하므로, 그간 대학들은 대학 내 기초학문 분야를 축소하는 동시에 취업률을 높일 수 있는 학과들을 신설했다.

▲대학 입학정원 증감률(2003~2022) ⓒ송나윤
이러한 학과 구조조정의 결과는 통계로도 드러난다. 대학교육연구소가 조사한 대학 입학정원 변화를 살펴보면, 지난 19년간 인문·사회·자연계열 입학정원은 총 34,469명 감소했다. 반면, 같은 기간 공학·의약계열 입학정원은 총 19,632명 증가했다. 세부 학문별로 보면 학문의 편중화는 더욱 심하다. 지난 19년간 언어·문학 계열 입학정원은 36.1%, 수학·물리·천문·지리 계열 입학정원은 49.4% 감소한 반면, 정밀·에너지 계열 입학정원은 720.17%나 증가했다.
이에 더해 정부는 전체 입학정원의 30% 이상을 입학 후 전공을 선택하는 ‘무전공 입학제’로 선발하겠다고 발표하며 학과 구조조정을 가속하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 “전공 벽 허물기는 이미 시작됐다”며 무전공 입학제를 도입해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확대하겠다고 예고했다. 하지만 정부가 주장하는 ‘전공 벽 허물기’는 ‘기초학문 허물기’가 될 우려가 크며, 확대하겠다는 전공 선택권은 오히려 좁아질 전망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임은희 연구원은 “과거에 비슷한 제도가 시행됐을 때 전공 소질과 무관하게 취업이 잘 되는 인기 학과로 학생이 몰리며 기초학문 학과들이 폐과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이형대 교수(국어국문학과)는 〈한국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초학문은 당장의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응용학문의 근간과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기초학문의 붕괴는 응용학문의 근본 동력을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며 경제성에 매몰돼 장기적으로 필수적인 기초학문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대학은 정부의 도구인가

하지만 정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6월 국무회의에서 “교육부의 첫 번째 의무는 산업 인재 공급”이므로 “교육부가 스스로 경제부처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교육부는 과학기술 인재를 공급하는 역할을 할 때만 의미가 있다”며 대학을 정부 정책과 국가 산업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기조를 명확히 했다.
이러한 정부의 기조는 곧바로 대학 교육 정책으로 나타났다. 윤석열 대통령은 작년 8월 “반도체 핵심 전문 인재 15만 명을 육성할 것”이라고 밝혔고, 교육부는 올해 4월 ‘2024학년도부터 첨단 분야 학과 정원을 1,829명 증원한다’고 발표했다. 정부의 정책에 따라 서울대도 첨단융합학부를 설립해 이번 입시부터 218명의 학생을 추가로 모집하게 됐다. 서울대가 입학정원을 늘린 것은 30여 년만의 일이다.
물론 대학과 학문도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바뀔 필요가 있지만, 전문가들은 기업의 수요에 의존하는 변화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유행하는 학문에 급하게 투자해 그 결실을 피우기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경제사회연구원 노정태 전문위원은 〈신동아〉에 기고한 글에서 ‘고도의 기술이 적용되는 분야는 발전이 빠르고 예측이 어렵다’며, 그렇기에 ‘대학에서 미리 예측하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육성한다는 것은 허황된 소리’라고 말했다. 대학은 당장의 유행을 좇기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첨단 분야 학과 증원에서도 유행에 영합한 정부주도적 교육 정책이 낳은 문제점이 드러났다. 더불어민주당 김영호 의원의 자료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전국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는 총 1,421개였는데, 이 중 69.2%인 984개 학과에는 전임교수가 한 명도 없었다. 또한 지난해 정부의 반도체 인재 육성 계획 발표 후 반도체 관련 학과는 76개나 신설됐으나, 학과 신설을 유도하기 위해 전임교원 기준을 완화한 결과 전임교원의 수는 오히려 19명 감소했다. 이처럼 안정된 학문적 기반 없이 단순히 산업계의 수요에 따라 입학정원을 조정한다면 대학들이 교육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학과 수와 입학정원에만 집중하게 돼, 학생들이 받는 교육의 질은 그만큼 떨어지게 된다.
기업으로 전락한 대학
정부가 대학을 국가정책의 도구로 사용하려 한다면, 대학은 학문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맞서야 한다. 그러나 대학은 극심한 재정난 속에서 이윤 논리에 휩쓸려, 학문의 가치를 포기하고 국가의 기조에 동조하며 하나의 기업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반 사립대학 교비회계 적립금 추이 ⓒ송나윤
교육부 보도자료에 따르면, 2022년 일반 사립대학의 교비회계 적립금은 8조 3,518억 원으로 전년보다 2,165억 원 증가했다. 교비회계 적립금이란 사립대학이 나중에 진행할 사업에 쓰기 위해 축적하는 돈으로, 적립금이 늘어나는 것은 현재 대학 재정에 여유가 있음을 뜻하지만, 정작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은 더욱 무거워지고 있다. 대학교육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23학년도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은 전체의 44.6%다. 교육부는 적립금의 중장기 사용계획이 없는 경우 가급적 교육비에 투자할 것을 권장하고 있으므로 교비회계 적립금이 계속 늘어나는 현재 상황은 그만큼 교육비에서 손실이 발생함을 의미한다.
하지만 저출산과 지역 소멸이 극심해지며 앞으로 대학 재정난이 확대될 것이 분명해졌기에 사립대학들은 뚜렷한 사용계획 없이 안전자산을 쌓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성균관대 양정호 교수(교육학과)에게 의뢰한 연구보고서는 현재 상황이 계속 유지된다면 2040년에는 50% 이상의 대학이 신입생을 채울 수 없을 것이라 진단했다.
임은희 연구원은 “학교가 이윤 중심으로 운영될 때 학생들의 교육활동이 위축된다”고 말했다. 대학교육연구소 측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사립대학 수입 총액의 53.3%는 등록금으로 얻은 수입이므로, 사립대학의 재정난이 극심해질수록 등록금을 인상하는 선택이 불가피해진다. 또한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 대비 2021년 교내장학금은 1,339억 원, 실험 실습비는 446억 원, 도서 구입비는 285억 원 감소했다. 사립대학의 재정 여건 약화가 곧바로 학생에게 제공되는 교육의 질 약화로 이어진 것이다.
임은희 연구원은 “교육의 공공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대학의 재정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2020년 기준 GDP 대비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비율은 0.7%로, OECD 평균인 1.0~1.1%에는 한참 모자란 수치다. 더불어민주당 서동용 의원은 GDP 대비 정부의 대학 재정지원 비율을 1.1%까지 끌어올려야 하며, 이를 위해 정부 지원금을 8조 2,623억 원 증액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사립대학의 재정난을 해결하기보다는 이를 틈타 대학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해 대학을 도구화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지난달 서울대에 방문해 “내년부터 대학에 대한 혁신지원금을 무전공 입학제의 시행 여부에 따라 지원”하겠다고 예고했다. 사립대학의 재정난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정부의 대학 정책에 철저히 복종해 지원금을 받는 대학만이 살아남으며 학문의 자율성은 침해될 수밖에 없다.
대학은 어디로

▲시대별 서울대 인기 학과 ⓒ송나윤
예로부터 대학은 항상 출세를 위한 도구로 사용돼 왔다. 진학사가 시대별 서울대 인기 학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1964학년도에는 외국어교육과가 인기였다. 세계화로의 흐름 속에서 외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증가해 사회가 많은 수의 외국어 교육자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또한 산업계의 수요가 컸던 공학계열 전공이 의예과를 밀어내고 최상위권을 차지했다. 2023년 오늘날 성공이 보장된 의료계와 일자리가 많은 첨단 분야로 학생들이 몰리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이렇게 사람들이 대학을 성공의 도구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사회가 대학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비롯한다. 지금의 사회는 대학의 인력 공급 기능만을 강조하며 산업계의 필요에 따라 대학의 학문 구조를 재단하고 있다. 학생들은 이러한 사회적 풍토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부가 설계한 대입 제도와 입학정원 속에서 경쟁한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도 정부의 요구와 부족한 지원 때문에 무너져 가는 학문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보게 된다. 사실상 사회 환경이 학생들에게 ‘남들이 하는 학문’, 즉 ‘돈이 되는 학문’을 선택하라고 강제하는 꼴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학생들의 선택은 정부가 만든 환경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으므로, 학문의 주체인 학생들의 선택권은 진정으로 보장되지 못한다.
학문을 할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는 요즘 대학에서, 학문은 그 빛을 발할 수 없다. 김지현 교수(기초교육원)는 〈지식의 지평〉에 기고한 글에서 ‘사회를 위한 대학’은 고등 교육기관으로서의 대학이 갖는 고유한 의미와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보장하는 ‘교육을 위한 대학 교육’, 나아가 ‘대학 교육을 위한 사회’의 모습과 공존할 때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학생과 교수가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 자체에 충실해 교육적 가치를 향유’하고 그 결과가 ‘사회에서 유의미한 것으로 기능해 낼 때 최적의 가치를 창출’한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대학에 대한 사회의 지배력을 키워 대학을 필요에 맞추려는 현재의 사회적 경향을 바꿔야만 한다. 김광억 명예교수(인류학과)는 〈지식의 지평〉에서 ‘대학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자율성과 다양성을 보장받아야 한다’며 ‘이러한 교육과 지식을 수용하고 지원하는 사회의 역량이 제고’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학이 자유로운 환경 속에서 생산하는 풍요를, 사회가 인정하고 제대로 누릴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학과 사회는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대학은 사회에 도움이 되는 가치를 생산하고, 사회는 그런 대학을 지원하며 상생한다. 하지만, 사회가 대학을 집어삼켜 둘 사이의 균형이 깨진다면, 대학은 제 기능을 해내지 못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학문을 위해, 대학이 가져다주는 가치를 계속 누리기 위해, 대학의 자율성을 지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