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겨울 서울대 학생들은 한 해간 관악학생생활관(관악사)에 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며 입사를 신청한다. 관악사에 합격하지 못하면 자취 비용으로 큰돈이 나가거나 긴 시간을 통학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부는 학생들의 생활과 직결되는 관악사 관련 정책을 결정할 때 더욱 신중해야만 한다.
그러나 올해 본부의 관악사 입사 정책을 두고 학생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학생들은 ▲LnL 시범사업으로 신청할 수 있는 기숙사가 줄어들었고 ▲기숙사 경쟁률이 예년과 달리 과도하게 높아졌으며 ▲이미 살고 있는 기숙사가 재건축된다는 소식이 들려와 불안감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대체 관악사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LnL 시범사업, 신입생과 재학생의 엇갈린 반응
작년 LnL 시범사업이 906동에서 첫선을 보였다. LnL은 ‘Living and Learning’의 약자로, 신입생들이 1년 동안 관악사에 거주하면서 다양한 교과·비교과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기숙형 대학(Resident College, RC) 사업이다. 작년 LnL에 참여한 신입생들은 프로젝트를 자유롭게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재미를 느꼈다며 대체로 좋은 평가를 내렸다.
본부 측도 LnL 시범사업이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고 평가했다. LnL 시범사업단 최정권 운영단장(건설환경공학부)은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안하는 등 기대한 것보다도 훨씬 활발하게 활동해줬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본부 측은 올해부터 LnL 시범사업을 919D동까지 확대해 진행하기로 했다. 본부는 2022년 발표한 「서울대학교 중장기발전계획 보고서」에서 LnL 시범사업을 발판으로 ‘서울대형 RC’의 모습을 갖춰 최종적으로 약 3,000명의 학생을 수용하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하지만 LnL 시범사업을 바라보는 재학생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LnL이 기존 관악사 건물을 할애해 진행하다 보니, 재학생이 거주할 수 있는 공간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관악사 입주 경쟁률은 학부생 기준 1.6대 1로 1.3대 1이었던 작년보다 다소 높아졌다. 관악사 박정우 시설·기획 부관장(지구환경과학부)은 “올해 LnL 확대의 여파로 학부생활관 입사 경쟁률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한, 올해 1차 추가입주대상자로 선정된 학부생은 147명으로, 420명이었던 작년의 3분의 1 수준이다.
결국 지난 2월 관악사 자치운영위원회는 재학생 주거권 침해에 대응하기 위해 ‘관악학생생활관 LnL 확대 대응을 위한 특별위원회(TF)’를 신설했다. TF 측은 “신입생만을 대상으로 하는 LnL 사업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면, 관악사에 거주하는 재학생 수는 계속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신입생의 경우 LnL과 기존 관악사 둘 중에 선택해 신청할 수 있으므로 이를 고려하면 남은 자리를 둘러싼 재학생들의 경쟁률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TF는 RC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대학들의 사례를 들어 “연세대는 재학생 기숙사 정원을 유지하며 신입생 기숙사를 따로 마련했고, 한국교원대도 3, 4학년까지 모두 수용할 수 있도록 기숙사를 확대하려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LnL은 기존 재학생 수용에 무리가 없도록 기반을 마련한 뒤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LnL TF, 본부의 소통 태도 지적해
TF 측은 “LnL 사업과 관련된 우려를 지속적으로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측에서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며 본부의 소통 태도도 지적했다. 대표적인 소통 부재의 사례로 작년 LnL 시범사업을 진행했던 906동은 기존에 대학원생 기숙사로 사용되던 공간이었는데, LnL을 진행하기 위해 LnL 전용 동으로 리모델링했다. 당시 906동이 LnL 전용 동으로 바뀌며 대학원생이 신청할 수 있는 1인실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으나, 대학원생들은 이 사실을 관악사 입사 신청 공지가 내려오고서야 알 수 있었다.
작년 906동의 사례와 비슷하게, 919D동에 거주하던 학부생들은 올해 입사 신청 시기가 다가오자 ‘내년부터 919D동이 LnL에 사용돼 방을 고정할 수 없다’는 공지를 받았다. 관악사에는 연말에 진행되는 이듬해 기숙사 입사 신청에서 현재 거주하는 곳과 같은 기숙사 건물에 최초합격할 시 방학 중에도 거주하던 방에 계속 살 수 있게 하는 방 고정 제도가 있다. 그러나 LnL 사업으로 인해 방 고정이 불가능해지자 919D동에 거주하던 학생들은 급하게 동간 이동을 준비해야 했다. 학부생들이 항의하자 본부는 뒤늦게 대학원생 기숙사의 여석 중 일부를 기존 919D동 거주자에게 우선 배정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이조차도 여석이 생겨야만 학부생들이 입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으며 대학원생들의 기숙사를 뺏어 학부생들에게 제공하는 임시적인 조치에 불과했다.
물론 본부가 LnL 시범사업을 진행하며 학생들과 대화를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본부는 작년 말 일부 학생들을 초청해 ‘학생 기숙사 재건축, 신축 및 LnL 로드맵 설계를 위한 TFT 운영 회의’를 진행했고, 이번에 919D동으로 LnL을 확대하기 전 919D동 입사생 중 일부에게 향후 LnL 운영 계획에 대한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지우 TF장(수의학 22)은 “이러한 소통의 장은 모두 일회성에 그쳤다”고 지적했다. 이후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씨에 따르면 당시 회의에서 본부는 향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진행하겠다고 했으나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TF 측은 “LnL이 신입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 공부의 장이 될 수 있지만, 학교가 학생들의 의견을 귀담아듣지 않고 계속해서 독단적인 모습을 보인다면 기숙형 대학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가치조차 퇴색되고 말 것”이라고 지적했다. TF는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해 “학생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공유하고, 의견을 수렴해 학교 측과의 교섭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정권 운영단장은 “학생들 입장에서는 LnL 시범사업이 너무 급하게 진행됐다고 느낄 수 있다”며 “앞으로의 확장에 있어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계획에 대해서도 더 많이 공유하겠다”고 밝혔다. 최 운영단장은 이어 “앞으로 관악사와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신입생과 재학생 간의 비율을 적절히 조정해서 재학생 거주에 큰 영향이 가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관악사, 늘어난 수요에 비해 공간 적어
올해 LnL 시범사업으로 재학생이 신청할 수 있는 기숙사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관악사 입사 경쟁률이 이토록 높아진 것이 모두 LnL 탓이라고 할 수는 없다. 박정우 부관장은 “이전과 비교해 등록률이 높아져서 경쟁률이 높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해 첨단융합학부가 신설되며 신입생 정원이 218명 증가했고, 코로나19 유행이 잦아들면서 그동안 서울대에 오지 못했던 외국인 유학생들이 많이 찾아와 기숙사 거주를 신청하기도 했다.

▲서울대 기숙사 수용률 변화 ⓒ송나윤
관악사에 대한 수요는 계속해서 늘어났지만, 공급은 따라가지 못했다. 『서울대학교 통계연보 2023년판』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재학생 수는 계속 증가했음에도 기숙사에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이에 기숙사 수용률은 2021년 25.3%에서 2022년 25.1%, 2023년 24.5%로 계속 감소해 왔다.
따라서 신입생들에게서 좋은 반응을 얻어낸 LnL 시범사업을 확대하면서도 위태로운 재학생들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기숙사를 신축 또는 증축해 수용 인원 자체를 늘려야 한다. 하지만 캠퍼스의 빈터에 기숙사를 새로 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2022-2026』에서는 캠퍼스에 ‘건축 가능 대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빈터에 건물을 짓기보다는 ‘기존 사용하고 있는 건물을 철거하고 같은 부지에 건축하는 철거 후 신축을 권장한다’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구관 재건축, 아직도 미지수

▲구관의 모습 ⓒ관악학생생활관
결국 관악사 신축·증축의 필요성과 부족한 대지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현재로서는 ‘구관(921~926동)’을 재건축하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다. 구관은 관악사에서 유일하게 1980년대 초 지어진 기숙사로, 캠퍼스에서 가장 낡은 건물 중 하나다. 구관에 거주하는 재학생 A씨는 “방 곳곳에서 벌레가 나오고, 화장실에서 녹물이 나올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2022-2026』에서도 구관은 ‘건축 연한이 38년이 넘는 매우 노후화된 건물’이므로 ‘미관상으로 문제 될 뿐만 아니라 구조적으로 안전성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열악한 시설 탓에 구관은 학생들 사이에서 기숙사 신청 점수가 낮아 어쩔 수 없이 신청하는 기숙사로 취급된다.
본부는 이전부터 구관을 재건축하겠다는 의사를 표출해 왔지만, 실제로 이뤄지지는 않았다. 관악사 이정철 전 행정실장은 2014년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학생생활관(915~917동)’이 신축되면 잠시 재학생이 거주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구관을 재건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으나 무산됐다. 또한 본부는 이전 마스터플랜인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2017-2021』에 명시된 구관 재건축 계획도 실행하지 않았다. 당시 재건축을 착실하게 준비했었다면, 코로나19가 유행해 비대면 수업을 진행했던 동안 구관을 재건축할 수 있었다. 학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구관을 재건축할 수 있었던 적기를 놓친 것이다.
계속해서 미뤄진 구관 재건축은 올해 드디어 시작될 기미가 보이는 듯하다. 유홍림 총장은 작년 12월에 진행된 ‘On the Lounge: 총장과의 대화’에서 “2024년부터 구관 7개 동의 리모델링을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학교 캠퍼스 마스터플랜 2022-2026』도 마스터플랜 기간 내에 구관을 철거 후 신축할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그러나 올해 구관에 이미 학생들이 입사한 상황인데도, 본부는 학생들에게 재건축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유홍림 총장이 당장 올해부터 재건축을 시작한다고 예고했기에, 구관에 입사한 1,016명의 학생은 언제 기숙사에서 퇴거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감 속에 살고 있다. 구관에 거주하는 A씨는 “실제로 재건축이 올해부터 시작되는지, 구관에 살고 있는 학생들은 어떻게 되는지, 대책은 있는지 모두 불투명한 상태”라며 “본부는 재건축 계획을 학생들에게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LnL 시범사업부터 높아진 입사 경쟁률, 그리고 구관 재건축까지 관악사에 얽힌 여러 문제의 중심에는 본부의 소통 부족이 있었다. 관악사의 주요 구성원인 학생들은 본부로부터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고 관악사 정책에 의견을 낼 권리가 있다. 본부는 닫힌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학생들과의 대화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