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일 오후 5시,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비서공)이 63동(학생회관) 530호 ‘전국대학노동조합 서울대지부(대학노조)’에서 ‘생협 식당 인력 충원, 왜 필요한가?’를 주제로 서울대 생협 노동자와 함께하는 열린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생협 노동자 7명과 20여 명의 학생이 참석했다. 간담회는 지난 3월 18일부터 22일까지 5일간 진행된 학생회관식당에서의 피케팅 이후 생협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처음으로 만든 자리다. 비서공 측은 생협의 노동환경과 노동자의 권리 보장을 위해 대학이 나아갈 방향을 논의하고자 간담회를 열었다고 밝혔다.
일손이 부족하니 울고 싶을 정도로 바빠
간담회의 포문을 연 대학노조 이창수 부지부장은 지난 피케팅 이후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에 대해 발언했다. 현재 학생회관식당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는 25명으로,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7년 52명이었던 것에서 27명이 줄어든 수치다. 코로나19로 인한 인원 감축 이후 재계약과 대체 인력 고용을 하지 않아 직원 수가 감소했고, 코로나19 종식 이후 조리 인력을 증원해달라는 요청에도 생협이 인원을 보강하지 않은 결과다. 식당 이용객 수는 회복되었으나 조리 인력은 그대로이기에 노동자들은 심각한 노동 강도를 견디며 일한다는 것이 이 부지부장의 설명이다.
이는 학생회관식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원관식당에서 근무하는 A씨는 “일할 사람이 없어서 정말로 울고 싶을 정도로 바쁘다”고 증언했다. 동원관식당의 평균 식수는 하루 1,200명이다. 점심 운영을 위해 노동자들이 아침 7시부터 10시까지 화장실 한 번 못 간 채 일해야 한다고 말한 A씨는 “배식이 끝나고도 설거지 등 할 일이 많은데 낮에만 장사한다는 이유로 인력 충원을 해주지 않는다”며 인력 부족이 전체 식당의 문제라고 호소했다.
인원이 적으니 한 사람이 여러 일을 맡게 돼 명확한 체계를 세우기 힘들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바쁜 시간대에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냐는 참석자의 질문에 노동자 B씨는 “사람이 적으면 적은 대로 인원을 맞춘다”며 “더 채워주지는 않을 테니까 한 사람이 배식과 설거지를 반복해서 하고, 반대로 손님이 많을 때는 배식하다가도 나와서 설거지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배식 시간만 일하는 단시간 노동자는 “배식 외에도 할 일이 많은 상황”에서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이 그만큼 더 힘드니까
1인당 노동량이 많고 노동 강도가 높은 급식실에서는 한 명이 빠지면 다른 이에게 전가되는 부담이 상당하다. C씨는 “인원이 여유 있다면 내 일을 맡겨놓고 가는 건데 내가 빠지면 다른 사람이 와서 그 일까지 해야 한다는 걸 모두가 안다”며 “그러니까 서로 미안해서 못 간다”고 아파도 매일 출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몸이 아픈데도 도저히 남은 노동자들끼리 일할 수 없어서 퇴근하지 못한 사례도 있었다. C씨는 “지난주에 D씨가 허리가 너무 아파서 서 있기도 힘들었는데 (D씨가 가면) 배식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아 못 보냈다”고 말했다. “필요한 인원이 채워지지 않으니 갑자기 환자가 발생해도 보낼 수가 없다”고 설명한 C씨는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표했다. D씨는 결국 다음날 출근하지 못했다. 근로자들이 아파도 퇴근하거나 결근할 수 없는 데는 인력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가 있다. 아파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일한 시간은 계속 누적돼 노동자의 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힘들다고 아무도 안 와요
현재 생협 식당의 일이 고되 인력 충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입 노동자를 채용한다고 하더라도 인력 부족 문제가 바로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단체급식 특성상 모든 노동자가 손발을 맞춰 정해진 시간에 일을 완수해야 하는데, 여기에 신입 노동자를 교육하는 시간이 들어가며 기존 노동자의 휴식 시간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칼질을 담당하고 있는 노동자 E씨는 자신의 업무를 하지 못하고 신입 노동자를 교육하러 다니느라 필연적으로 일이 밀린다는 점을 강조했다. E씨는 “흔한 된장찌개를 끓이더라도 레시피를 직접 가르쳐야 한다”며 한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없는 신입 노동자임에도 현장에 투입되는 순간 한 사람으로 계산되기 때문에 겉으로만 인력이 충원된 것처럼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 강도는 예전보다 더 심해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요리 경험이 거의 없는 신입 노동자가 들어오면 “하나부터 열까지 다 가르치다 화장실도 못 갈 때”가 많다고 E씨는 덧붙였다. 경력이 있는 노동자가 들어오면 이러한 어려움이 해소되겠지만, 생협 식당의 높은 노동 강도가 외부에도 알려져 인력 충원이 쉽지 않다.
이렇게 가르친 신입 노동자들도 일이 힘들다고 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F씨는 “사람이 나가면 사무실에서 신입 노동자에게 뭐라고 했냐고 묻는다”며 기존 노동자들이 신입 노동자에게 부적절한 말을 한 것처럼 돼 괜히 사무실의 눈치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자 G씨 또한 “신입 노동자가 들어오면 사무실에서는 인원이 충원됐다고 얘기하니 그 인원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 신입 노동자가 나가지 않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신입 노동자의 부담을 덜고자 자신들이 더 일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증언했다. 그럼에도 짧은 기간 동안 노동자들이 숱하게 들어왔다 나가며 발생한 피해는 고스란히 노동자들의 몫으로 남는다.
일찍 끝나는 날은 병원 가요
높은 노동량과 복잡한 노동과정은 노동자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몸 상태는 어떠냐는 질문에 노동자들은 앞다퉈 아픔을 호소했다. 한 노동자는 “재작년에 70~80kg의 통을 들다가 연골이 파열돼 수술하는 바람에 6개월을 쉬었다”며 주방에서 무거운 조리도구를 들고 움직이다 보니 허리와 무릎에 자주 부상을 입는다고 증언했다. 디스크가 터져서 쉬는 경우도 잦을 뿐 아니라 보호 장비로 끼는 비닐 앞치마가 무릎에 감겨 무릎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2021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한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단체급식 조리실 노동환경 및 건강 영향실태 조사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81%의 노동자가 근골격계 증상을 호소했다. 어깨를 사용해 재료를 썰고 배식 과정에서 무거운 음식을 나르는 등 허리와 상체에 부담을 주는 일의 특성이 근골격계 질환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밥을 혼자서 1,200개 정도 푸는데, 자고 일어나면 어깨가 안 움직인다”는 H씨의 말처럼 정해진 시간 내에 배식을 완수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노동자들은 여러 업무를 되풀이하며 높은 노동 강도를 견디고 있다. 밥을 푸는 노동자의 경우 종일 15kg에 달하는 밥솥을 반복해서 옮긴다.
또한 26.9%의 노동자가 급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사고로 병원 치료를 받았으나, 이들 네 명 중 세 명은 병원비를 본인이 부담했다. 노동자들은 사고가 나도 산업재해 신청을 하기 어렵고, 크지 않은 사고는 병원에 가서 자신이 치료비를 내고 치료받는다고 답했다.
나 욕먹었어, 신고한다고 하더라고
손님을 응대하며 입은 정신적 피해에 대한 증언도 이어졌다. 노동자 I씨는 “매번 바쁘게 배식하다 보니 손님을 제때 응대하지 못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 막말이 돌아오는 경우도 많다”고 증언했다. I씨는 “높은 업무 강도와 정신적 스트레스를 모두 감내하며 일하는데, 일과가 끝난 뒤에도 손님에게 들었던 폭언이 생각나 마음이 힘들다”며 정신적 피해를 호소했다.
I씨는 “응대가 늦어지면 앞치마에 달린 명찰을 보고 게시판에 이름과 함께 불친절하다는 말을 써 놓는다”며 사람이 없어서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몸과 마음을 계속 다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토로했다. 노동자들은 오시는 분마다 모두 인사하며 응대하고 싶지만, 눈 한 번 마주칠 시간이 없다고 강조하며 응대할 여건조차 되지 않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덧붙였다.
이번 피켓 시위를 하면서 처음으로 일하는 동료들의 모습을 봤다는 L씨는 배식하는 모습이 마치 기계 같다고 했다. 그는 “기계도 그렇게 돌리면 고장이 난다”며 “우리는 사람인데 고장이 안 날 수가 없다”고 말한 L씨는 모두가 더 나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력 충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창수 부지부장은 간담회를 마치며 “노동 강도가 줄어서 서울대학교 생활협동조합 식당이 구인 광고를 내면 누구든 와서 일하고 싶은 직장이 되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것임을 밝혔다. 또한 “피켓을 들어야 하는 일이 또 생긴다면 그때 여러분이 함께 해주셨으면 좋겠다”며 학내 구성원의 연대를 촉구했다. 생협 노동자의 권리는 결국 식당을 이용하는 학내 구성원의 복지와 연결된다. 모두가 매일 받는 식판 뒤에, 울고 싶을 정도로 바쁜 노동자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