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바오가 떠난 자리에서

 자본에 가려진 동물 전시를 넘어서서
▲왼쪽 상단부터 『아기 판다 푸바오』, 『전지적 푸바오 시점』,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 『푸바오, 언제나 사랑해』의 표지 ⓒ시공주니어, 위즈덤하우스

  2020년 7월 20일, 에버랜드 사육장에서 한 자이언트 판다가 태어났다. 이름은 푸바오. 행복을 주는 보물이라는 뜻이다. 이름대로 푸바오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안겨준 듯하다. 푸바오가 에버랜드에서 생활한 1,354일 동안 550만 명의 관람객이 푸바오를 보기 위해 에버랜드 판다월드를 찾았고, 에버랜드 유튜브의 판다 영상은 총 조회수 5억을 돌파했다. 푸바오가 중국 쓰촨성으로 떠나던 지난 4월 3일에는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버랜드 일대에 6천 명 이상의 배웅 인파가 모였다. 태어나 자라온 공간을 벗어나 새로운 터전에 적응해 살아가야 하는 푸바오의 처지를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있었다.

가히 신드롬이라 할 만한 푸바오의 인기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푸바오가 귀엽기 때문이다. 둥근 몸통과 짧은 팔다리, 검은 얼룩으로 둘러싸인 눈과 자그마한 코 등 판다의 외모를 살펴보면 귀여운 구석이 많아 보인다. 푸바오가 사육사와 팔짱을 끼거나 사육사의 다리를 붙잡는 모습을 볼 때면 푸바오의 ‘애교’에 속절없이 넘어가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푸바오의 귀여움 이면에는 중국의 판다 외교를 비롯한 정치경제적 현실이 놓여 있었다. 푸바오가 에버랜드에서 사랑을 듬뿍 받는 동안 다른 동물들이 동물원에서 탈출해 사살되거나 포획되는 일도 계속해서 반복됐다. 지금도 인간이 보기에 귀엽지 않은 동물들은 여기저기서 죽어가고 있다. 푸바오가 떠난 자리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시점, 푸바오 열풍을 돌아봤다.

아기 판다 푸바오

사실 푸바오는 처음부터 주목받을 만한 환경에서 태어났다. 판다는 중국에서 철저히 관리하는 멸종위기 동물인 데다 자연 번식이 어려운 종으로 알려져 있는데, 푸바오는 국내 최초로 동물원에서 자연 번식을 통해 태어난 판다였기 때문이다. 푸바오의 부모인 아이바오와 러바오는 2016년 3월 시진핑 중국 주석이 공동연구를 위해 한국에 임대했던 판다다. 멸종위기 동물인 판다가 국내에 발을 들인 것은 당시 22년 만의 일이었다. 국내에 입성했을 때 아이바오와 러바오도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에버랜드는 아이바오와 러바오를 성대하게 맞이하며 판다월드를 개장했다.

푸바오에 대한 관심이 급증한 시기는 에버랜드 유튜브의 쇼츠 영상이 화제가 된 지난해 5월이다. 푸바오와 강철원 사육사가 팔짱을 낀 상태에서 촬영된 ‘판다 할배와 팔짱 데이트’라는 제목의 30초짜리 영상은 2021년 6월 유튜브에 업로드돼 2024년 4월 기준 조회수 2,531만 회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푸바오가 사육사를 향해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귀여워하며 ‘용인 푸씨’라는 수식어를 붙여주고, 장난꾸러기의 줄임말인 ‘장꾸’를 활용한 ‘푸장꾸’와 같은 별명을 지어줬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강철원 사육사는 지난해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고, 푸바오를 소재로 한 책도 속속히 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왼쪽 상단부터 『아기 판다 푸바오』, 『전지적 푸바오 시점』, 『푸바오, 매일매일 행복해』, 『푸바오, 언제나 사랑해』의 표지 ⓒ시공주니어, 위즈덤하우스

푸바오가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는 무엇보다도 에버랜드의 적극적인 마케팅 전략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푸바오의 출생이 코로나19 시기와 겹치면서, 에버랜드는 출생을 포함해 생후 100일 등 각종 기념일을 축하하는 영상을 유튜브에 게시해 푸바오를 적극적으로 홍보했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푸바오가 야외 방사장을 드나드는 일상도 지속적으로 공유했다. 에버랜드뿐 아니라 푸바오의 팬들, 일명 ‘푸덕이’들의 적극적인 콘텐츠 재생산도 푸바오의 화제성을 끌어 올리는 데 한몫했고, 〈SBS〉 프로그램 《동물농장》과 같은 기성 프로그램에서 푸바오의 일상이 여러 차례 재조명되거나 《푸바오와 할부지》 등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두드러졌던 것은 푸바오를 둘러싼 가족적인 구도였다. 에버랜드 정동희 동물원장은 〈매거진한경〉과의 인터뷰에서 ‘어미 판다인 아이바오의 모성애, 푸바오와 사육사들의 교감이 가족애의 모습으로 보인 것 같다’고 전한 바 있다. 아이바오와 푸바오를 포함한 실제 판다 가족, 나아가 푸바오를 돌보는 사육사들까지 푸바오의 가족으로 엮는 서사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강철원 사육사에게는 ‘강바오’, 송영관 사육사에게는 

‘송바오’라는 애칭이 붙여지기도 했다. 사육사들은 푸바오의 할아버지라고 불리며 푸바오를 마치 손녀처럼 대했다. 동물권행동 카라의 최인수 활동가는 “에버랜드는 판다 자체가 가진 고유한 특징을 십분 활용했다”며 “판다의 귀여운 외모나 행동, 친화성과 함께 사육사와의 교감을 통한 상호작용이 휴머니즘을 자극했다”고 푸바오의 인기 요인을 분석했다.

전지적 푸바오 시점

  에버랜드가 푸바오를 미디어에 적극적으로 노출한 전략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존재한다. 우선 푸바오 열풍이 근원적인 동물 전시 문제를 가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동물해방물결의 장희지 활동가는 “푸바오가 미디어를 통해 소비되며 많은 사람이 푸바오를 보기 위해 에버랜드를 방문했고, 이는 결국 동물을 가두고 착취하는 동물원 소비 증가로 이어졌다”고 비판했다. 장 활동가는 “동물원에서 갇힌 동물을 바라보는 경험을 통해 사람들은 인간과 동물 사이의 비대칭적 권력관계를 체득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의식을 덧붙였다.

  최인수 활동가도 “미디어를 통해 푸바오의 일상이 조명된 과정에서 동물원의 어두운 일면들은 사실상 편집됐다”고 말했다. 콘텐츠화된 푸바오의 일상에 시청자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장면은 담기지 않고, 마음껏 귀여워할 수 있는 푸바오의 모습이 강조됐을 뿐이라는 설명이다. 최 활동가는 “아무리 야외 방사장 환경이 좋더라도 동물원에 전시된 동물들은 관람객과 가까운 거리에서 상호작용할 수밖에 없다”며 “푸바오의 인기가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푸바오는 관람객들의 시선, 소리, 몸짓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남겼다. 푸바오가 전시 동물이었기에 받았던 고통이 분명히 있었으나, 그것이 미디어에서는 다뤄지지 않은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인간 중심적인 시각 또한 동물을 다루는 콘텐츠에서 주목해야 할 문제다. 에버랜드 자체 콘텐츠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는 푸바오의 행동을 인간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자막을 붙였다. 뿐만 아니라 에버랜드의 SNS에는 푸바오가 작성한 것처럼 꾸며진 게시글이 즐비한데, 해당 게시글들은 푸바오가 직접 팬들을 ‘이모삼촌’이라고 부르는 듯한 글과 함께 푸바오의 행복한 모습을 강조한다.

▲푸바오를 의인화한 SNS 게시글 ⓒ에버랜드

 인간의 시각으로 동물의 모습을 편집해 보여주는 콘텐츠를 수용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경희대 K학술확산연구센터에서 문화콘텐츠학을 연구하는 길혜빈 문화학자는 “편집된 동물 영상에 덧붙는 자막은 의인화된 주석이기에, 동물은 본연의 모습으로 존재하지 못한 채 철저하게 인간 관점에서 재조립된다”고 진단했다. 동물의 언행처럼 보이도록 자막을 쓰고 내레이션을 입힘으로써 시청자는 영상 속 상황을 오롯이 인간의 입장에서 이해하게 된다. 길 연구원은 “동물 영상은 대부분 동물들이 얼마나 인간 친화적이고, 의존적이며, 나아가 얼마나 인간과 유사하게 행동하는지에 초점을 맞춘다”고 꼬집었다. 특정한 방향으로 연출되고 편집된 영상에서 동물은 다시 한번 인간에 의해 전시되고, 또 소비되는 것이다.

▲푸바오를 의인화한 방송 자막과 내레이션 ⓒ〈SBS〉

다른 한편 푸바오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며 판다의 사육 환경 전반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기도 했다. 최인수 활동가는 “푸바오를 통해 동물원의 사육 환경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고 언급했다. 최 활동가는 “푸바오라는 개체 하나에 대한 관심에서부터 시작해 판다라는 종, 그 종이 처한 상황,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처한 현실과 환경에 대한 관심까지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였다는 점에서 푸바오 열풍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푸바오가 중국에 반환되기 전, 검역을 위해 내실에 한 달간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했다. 내실, 실내 방사장, 야외 방사장을 오가며 생활했던 푸바오가 판다 방사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지하 내실에만 머물러야 한다는 점에 분노한 시민들은 시설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물보호단체 곰보금자리프로젝트는 ‘에버랜드는 푸바오 열풍으로 번 돈을 동물에게 돌려라’라는 성명을 통해 보전을 핑계 삼아 번식을 반복하면서도 전시하는 동물의 복지에 투자를 아끼는 에버랜드에 시설 개선을 요구했는데, 이 성명에는 시민 3천 7백여 명이 참여했다.

푸바오의 팬들이 푸바오를 사랑했던 방식은 실제로 동물권 인식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기도 하다. 이들은 푸바오를 인간과 친연성이 있는 존재로 여기고 고유한 행위성을 지닌 주체로 이해하며 푸바오의 귀여움을 소비했는데, 비거니즘 담론에서는 이를 의인화라고 부른다. 푸바오가 사육사 ‘할부지’를 향해 ‘애교’를 부리고, ‘떼’를 쓰고, 야외 방사장에 ‘출근’한다는 인간적 시각에서의 해석은 분명 사람들이 푸바오를 친숙하게 느끼고, 나아가 푸바오를 윤리적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당위를 느끼게 했다.

길혜빈 문화학자는 “인간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동물을 제시해 동물 복지에 대한 문제들을 마침내 거론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도 한다”는 점에서 의인화를 긍정적으로 평했다. 최인수 활동가 또한 “동물에게 관심을 갖고 의인화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일체화가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고 봤다. 최 활동가는 이러한 과정에서 “동물이 착취당하는 구조에서 받는 고통을 이해하고 동물 복지적 측면으로 관심이 확장될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인간이 ‘전지적 푸바오 시점’에서 푸바오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섣부른 의인화의 위험성을 경계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인화 과정에는 인간 중심적인 시각이 반영되기 마련이므로 다른 종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의적으로 동물의 행동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 최인수 활동가는 “자칫 잘못하면 동물이 갇힌 공간에서 사육되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 보이는 정형행동을 인간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왜곡해 인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제시했다. 장희지 활동가는 “의인화는 다른 종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인간 종의 경험을 활용하는 도구가 될 수 있지만, 그렇기에 동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결정이 동물의 이익에 부합하거나 반하는지 명확히 알 수 없다는 점을 주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인수 활동가는 특히 동물원에 산재한 문제를 가리기 위해 의인화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에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일례로 서울대공원에서 침팬지 광순이와 광복이를 해외의 체험형 동물원인 

‘따만 사파리’로 반출할 계획이 알려졌을 때, 서울대공원은 이러한 계획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광순이와 광복이도 새끼를 낳고 가족을 꾸려 행복하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냐’는 식의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실상은 광순이와 광복이가 유전적 보전 가치가 낮아 한국에서는 합사시킬 수 없으니 해외 사파리로 반출하려는 것이었다. 최 활동가는 “동물원에서 동물 복지를 저해하는 행동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의인화를 악용하는 것이 괘씸하다”며 “동물 복지가 침해되는 문제를 문제로 여길 수 없게 되는 의인화 전략은 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에버랜드는 매일매일 행복해

전지적 푸바오 시점에서 제작됐다고 여겨지던 일련의 푸바오 콘텐츠는 사실 에버랜드에 경제적 이득을 고스란히 안겨준 수단이었다. 에버랜드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푸바오와 에버랜드가 함께한 1,354일간 판다월드에 550만 명의 관람객이 방문했다. 에버랜드 관계자는 ‘성수기 기준 하루 평균 4천 명이 판다월드를 방문했다면, 푸바오가 있던 판다월드에는 약 8천 명에서 9천 명으로 입장객 수가 늘었다’고 밝혔다.

에버랜드 유튜브 구독자 수는 135만 명까지 치솟았고, 푸바오 굿즈는 양산됐다. 인형, 머리띠를 비롯해 약 400종 이상의 판다 관련 굿즈가 제작됐고, 푸바오 관련 굿즈 판매량은 330만 개에 달한다. 지난해 11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더현대 서울에 푸바오 팝업 스토어가 설치됐을 때는 13일간 2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방문하며 총 10억 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에버랜드는 작년 9월 푸바오 가족을 뜻하는 ‘바오 패밀리’의 상표를 출원하며 상표권 지정상품으로 의류, 화장품, 음료, 장난감 등 총 21개 류를 기재했다.

▲푸바오와 함께한 기록 ⓒ에버랜드

  물론 판다월드에서 푸바오를 키우며 에버랜드가 지출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일단 푸바오의 부모인 아이바오와 러바오의 임대료를 에버랜드가 지불하고 있다. 판다 보호 기금 명목으로 에버랜드가 중국 야생동물보호협회에 지급하는 액수는 매년 100만 달러, 약 13억 7천만 원이다. 해당 기금은 판다의 생육 및 연구, 중국의 판다 보호기지 운영 등에 쓰인다. 푸바오와 같이 새로 태어난 새끼 판다에 대해서는 추가 기금을 지불해야 해, 에버랜드는 푸바오가 태어난 2020년에 50만 달러, 약 6억 8천만 원을 추가로 중국에 지급했다. 또한, 푸바오가 에버랜드에서 먹은 대나무의 양은 총 8,400kg인데, 에버랜드 관계자는 ‘대나무 사료 비용은 연간 1억 원 정도’라며 ‘국산 대나무를 공수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은 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푸바오는 에버랜드가 지출하는 비용을 압도할 정도의 수익성을 가졌다. 최인수 활동가는 “에버랜드가 푸바오를 극진히 대하고 사육사들 또한 푸바오에게 큰 애정을 준 것이 사실”이지만, “에버랜드가 푸바오를 캐릭터로서 활용한 방식은 지극히 상업적이었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이 푸바오에게 보였던 애정도 물론 진실한 것이었지만, 그 이면에 자본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음은 명백하다. 장희지 활동가는 “에버랜드가 푸바오를 내세워 이익을 취한 구조는 결국 인간의 유희와 이익을 위해 동물을 도구화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푸바오가 국가 간 외교의 수단으로 쓰였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는 사실이다. 장희지 활동가는 푸바오와 그의 가족이 애초에 왜 에버랜드에서 생활하게 됐는지, 동물원에 갇힌 삶을 살아가라고 하는 것이 동물의 입장에서 정말 옳은 일인지 재고해야 한다고 말했다. 푸바오 덕에 매일 행복했던 사람들이 있지만, 푸바오의 입장에서 실내와 야외 방사장, 내실을 오가는 생활이 정말 행복했을까. 아무도 ‘전지적 푸바오 시점’에서 푸바오를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감히 헤아릴 책임이 요구된다.

언제나 사랑하려면

동물원수족관법에 따르면 동물원과 수

족관은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고 생태와 습성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국민에게 제공하며 생명존중의 가치를 구현함으로써 야생생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동물원과 수족관이 종의 다양성을 보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지, 동물원이 동물을 온전한 생명으로 대우하고 있는지는 의문스러운 실정이다. 장희지 활동가는 “법에서 말하는 종 보전은 원래 서식지가 어딘지와는 상관없이 동물을 한데 모아 수집하는 지금의 동물원에서 효율적으로, 윤리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장 활동가는 동물원이나 수족관에서 동물 생태를 교육한다는 것 또한 어폐가 있음을 짚었는데, 동물의 행동 생태에 대한 교육이 “가장 정확하게, 비파괴적으로 이뤄지는 곳은 동물원이 아닌 자연”이기 때문이다

  최인수 활동가는 “국가에서 진행하는 토종 여우나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 같은 경우 보전된 동물들이 원래 생태대로 살아갈 환경이 한국에 존재”하는 반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대부분 한국 토종이 아닌 외래종”이라는 문제를 짚었다. 한국에서 특정 동물을 데려와 번식시키더라도 생태에 맞는 자연을 찾아 방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현재 동물원들이 종 보전을 표방하고 있더라도 동물원에서 살게 된 동물과 번식을 통해 태어난 새끼까지 자연 방사를 목표로 할 수 없고, 결국 전시된다는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2022년에 서울대공원이 침팬지 광순이와 광복이를 반출하려고 했을 때, 서울대공원은 광순이와 광복이가 교잡종이라 자신들의 시설에서 합사하고 번식할 보전적인 가치가 없다고 봤다. 멸종위기종임에도 불구하고 광순이와 광복이는 동물원이 표방하고 있는 잘못된 종 보전 논리에 의해 동물 체험형 사파리로 반출될 뻔했던 것이다. 최인수 활동가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해 있다는 이유로 한국의 동물원에 동물을 가둬서 키우고 번식시키고 전시하는 것이 보전학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제한된 면적에서 인간의 이익을 위해 팔리고 교환되고 결국 전시돼 살아가는 동물들은 지금도 온전하게 생영할 수 없다. 작년만 하더라도 갇혀있던 공간에서 동물들이 탈출을 감행한 사건이 다수 발생했다. 대구 달성공원 사육장에서 탈출한 침팬지 루디는 마취총을 맞고 생포된 후 회복 과정에서 기도가 막혀 사망했고, 경북 고령군의 민간 목장에서 탈출한 사자 사순이는 생포조차 시도되지 않고 죽임당했다. 서울 어린이대공원의 얼룩말 세로는 탈출 후 생포돼 다시 동물원에 감금됐다.

  동물의 여생을 책임지기 위한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장희지 활동가는 “인간을 비롯한 그 어떤 동물도 폐쇄적인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며 “동물원 전시 피해 동물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동시에 국가적 차원의 보금자리 마련이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활동가는 “보금자리가 동물의 생태적 습성을 완벽히 충족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동물이 자신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윤리적 기능의 공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생물 다양성을 보전하는 대안적 형태의 동물원을 상상해야 할 때다. 최인수 활동가는 동물원이 생추어리로서 역할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생추어리는 위험에 처한 동물을 구조해 안전한 환경에서 살 수 있도록 조성한 안식처인데, 종 보전이나 교육적 측면을 강조하는 동물원과는 달리 동물이 평온하게 여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최 활동가는 “심정적으로 모든 동물을 자연으로 해방하고 싶다고 해도 야생에서의 생존 능력이 크게 떨어진 동물들을 무작정 내보낼 수는 없다”며 “인위적인 보호가 필요하다면 동물의 습성에 맞게 복지를 증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청주동물원은 일반적인 동물원에서 야생동물이나 구조 동물을 보호하는 시설로 바뀌고 있다. 아직 더 갖춰야 할 것이 많지만, 오갈 곳 없는 동물들을 보호하는 시설로 변모하기 위해 준비를 거듭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 활동가는 청주동물원의 사례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청주동물원에 설립된 천연기념물 동물치료소 ⓒ청주동물원

최인수 활동가는 “동물이 인간의 수단으로 쓰이는 것에서 나아가 말 그대로 존재 대 존재로서 관계 정립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결국 푸바오에 대한 논의가 도달하는 지점은 인간과 동물의 관계맺음이다. 푸바오는 운이 좋게도 인간 사회에 잘 편입돼 귀여움을 듬뿍 받은 동물이었지만, 그렇지 않은 동물이더라도 모든 동물은 생명인 자체로 존엄하게 살아가 마땅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마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동물과의 마주침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장희지 활동가는 “공고한 인간중심사회에서 인간과 동물의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만남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며 “우리가 동물을 어디서 어떻게 만나느냐에 따라 그 동물과의 연결감이 달라진다”는 점을 짚었다. 장 활동가는 “동물을 살리는 일부터 시작한다면 인간동물과 비인간동물의 새로운 관계를 설정하는 것의 중요한 이정표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푸바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이유는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푸바오가 귀엽기 때문이다. 그것도 다른 종들에 비해 무척이나.

그러나 한 개체가 외교의 수단으로 쓰이는 모습을 볼 때, 태어났던 곳을 떠나 새로운 터전에서조차 전시되는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할 때, 귀여운 판다는 에버랜드에서 캐릭터화되고 보호받는 사이 다른 동물원이나 생태 체험시설의 동물들은 곳곳에서 쓰러지는 것이 보일 때, ‘귀엽지 않은’ 동물들이 인간에 의해 식재료로, 실험 도구로, 또 단순 유희의 목적으로 쓰이고 죽어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가 정말로 윤리적인 존재라면 멈춰 설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행복을 주는 보물, 푸바오가 떠난 자리에서 멈춰 선다. 다른 종을, 소중한 타자성을 끌어안기 위해서. 상호 침투하는 우리의 다름을 사랑하고 같이 살아가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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