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저널〉에서 기사를 쓰는 것은 이것으로 마지막이다. 이젠 다시 독자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선언처럼 지면에 남겨두지 않으면 언제고 다시 미련스럽게 뒤를 돌아볼 것 같아서, 이번 호의 기자수첩 지면은 꼭 내게 달라고 욕심을 부렸다. 그런데 막상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지 막막하다. 멋들어진 작별의 글을 쓰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궁색하고 초라하게 됐다. 이 글은 아마도 내내 시시한 글이다. 다음이 없다고 생각하니 그저 솔직한 마음만 남아서 어쩔 수가 없다.
안타깝게도 지지난 여름부터 지금까지 12권의 제호에 기사를 싣는 동안 실력이 늘진 못했다. 2년 내내 수습기사를 쓰는 마음이었고 끝까지 형편없는 글쓰기에 시달렸던 듯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우리가 이렇게 말할 수 있고, 글 쓸 수 있다는 것. 믿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언제나 기뻤으니까. 그러는 동안 삶은 더 삶다워지곤 했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견딜 수가 없었던 부당한 세상사에 그만 질려버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이 모든 걸 함께한 근사하고 사랑스러웠던 동료들과 어떻게 작별하지. 이들 앞에서 더 나은 사람이고만 싶어 조급했던 날들은 어떻게 떠나보내지. 기획회의 한 번에 백 장이 넘어가던 기획서와 안건지, 기사 한 편 고치는 데 덕지덕지 붙여 쓴 수천 개의 메모, 한쪽 전부를 긋기도 한 빨간 줄들, 마감하던 주 학생회관 618호 편집실에서 먹고 자느라 지는 해와 뜨는 해가 구분이 안 됐던 어떤 일주일. 이 모든 걸 어떻게 잊지. 내게 세례처럼 잠겨든 그 모든 것을 두고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머로는 저널리즘의 위대한 성취로 여겨지는 그의 방송 《시 잇 나우(See It Now)》에서 조지프 매카시와 당대의 극단적 반공사상, ‘매카시즘’에 언론답게 맞섰다. 매카시즘을 종말시킨 특집 방송 막바지에 에드워드 머로가 남긴 말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려워하며 비이성의 시대로 끌려가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믿음을 파고들어, 우리가 겁쟁이들의 후손이 아님을 기억한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글을 쓰고, 발언하고, 연대하며, 소수의 대의를 옹호하기를 두려워했던 겁쟁이들의 후손이 아닙니다.”
〈서울대저널〉을 하는 동안 때때로 떠올리던 말이라고 한다면 너무 거창하고 비장한가. 그래도 마지막이니만큼 지면에 실어본다. 차분하지만 날카롭게 시선을 가다듬고 사회 곳곳을 찾아다녔던 〈서울대저널〉도 자주 이런 풍경들을 맞닥뜨렸다. 취약한 사람들이 계속 죽고 다치는데 불평등의 격차는 벌어지고, 대다수 사람은 참여나 연대하기보단 무심히도 세상을 냉소한다. 위정자들은 어느 때보다 득세하고 포용과 이해는 힘을 잃은 극단주의만이 대안인 양 행세한다. 바로 지금 이 시대가 품은 거대한 악의나 무정함을 체감하고 마주했음에도 〈서울대저널〉이 무언가 해냈다면, 그건 모두 우리가 담대하게 쌓아온 용기와 의지 덕분일 테다.
〈서울대저널〉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이 제 삶을 가누는 모습들에 누구보다 애착을 갖게 됐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못 한 말, 들리지 않은 말, 비명에 가까운 말, 울음 같은 말을 품고 산다. 그런 말들에 길게 지는 그림자들을 계속해서 따라가야 한다. 장면을 놓치지 않고 바라보고, 그다음 말과 글로 옮기고, 그것으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덜 슬프게 만드는 일, 이것이 내 저널의 전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