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 수가 곧 자본의 가치로 환산되는 오늘날. 우리는 유튜브나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미디어에서 누구를 팔로우할지 선택한다. 대중들은 아주 손쉬운 클릭 한 번으로 누구를 소비하고 누구를 소비하지 않을지 표현할 수 있게 됐다.
소비될 것인가, 취소될 것인가. 너무 쉽게 취소되고 잊힐 수 있는 환경에 놓인 유명인들을 향한 캔슬 컬처(Cancel Culture)가 오늘날 우리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살펴봤다.
당신은 캔슬(cancel)되었습니다
A씨는 몇 년 전 좋아하던 가수의 계정을 언팔로우했다. 그가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팬덤 내에선 그를 계속 소비하겠다는 목소리와 그에 대한 모든 소비를 멈추겠다는 목소리가 분분했다. 그 가운데 A씨는 언팔로우를 통해 가수에 대한 실망감을 내비쳤다. B씨 또한 최근 자신이 좋아하던 연예인의 사생활 논란이 불거져 팔로우를 취소했다. 그의 행동을 지지하지 않는 마음을 가시적으로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언팔로우가 악성 댓글을 도배하는 공격적인 여론에 힘을 실어주는 것처럼 보일까 봐 불편한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이처럼 개개인은 특정 인물을 더 이상 소비하지 않거나 소비하고 싶지 않을 때 자연스럽게 팔로우를 취소한다. 그러나 이 움직임이 단 한 사람의 행동에서 그치지 않고 집단행동이자 운동으로서 기능하는 때도 있다. 특정 시기에 특정한 사건을 기점으로 많은 사람들이 한 유명인에 대한 팔로우를 동시에 취소하는 순간이다. 이는 해당 유명인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철회됐음을 보여주는 효과적인 방식이 됐고, 현재는 대중의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표명하는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것이 바로 캔슬 컬처다.

캔슬 컬처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팔로우를 취소하는 문화 전반을 일컫는다. 2019년 호주 국립사전연구센터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을 만큼 중요한 사회 현상으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 캔슬 컬처에 대한 일관된 개념 정의가 이뤄지진 않았다.
다만 많은 학자들은 캔슬 컬처가 단순한 개인의 소비 취소를 뛰어넘는 개념이란 점에 동의한다. 캔슬은 말 그대로 취소, 즉 행동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오늘날의 콘텐츠 소비자들에게는 행동하지 않음 역시 하나의 영향력 있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에서도 캔슬 컬처의 의미를 특정 인물에 대한 지지를 취소하고 거부하는 현상이라 파악해, ‘취소 문화’라고 직역하는 것이 아니라 ‘등돌림 문화’로 다듬어 번역하고 있다. 능동적인 거부의 성격을 감안한 것이다.
더불어 팔로우를 취소할 때 일부 소비자들이 자신의 거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히며 대규모 집단 행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도 캔슬 컬처는 일반적인 언팔로우와 차이점을 보인다. 추계예술대 천지영 박사과정생(문화예술학과)과 강은경 교수(문화예술학과)는 논문 「문화예술과 정치 관계에 대한 검토」(2022)에서 캔슬 컬처를 ‘비윤리적·비도덕적이라 판단한 대상에게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보이콧하고 지위나 직업을 박탈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캔슬 컬처의 주요한 특징은 팔로우를 취소하고 댓글을 다는 방식으로 타격을 가해 해당 인물의 언행을 질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캔슬 컬처는 행하는 주체도, 당하는 대상도 매우 광범위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모든 소비자는 캔슬 컬처의 행위자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움직임이 주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뤄지므로 주된 행위자는 소셜미디어 내 콘텐츠를 잘 활용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이다. 캔슬되는 대상의 범위는 미디어를 통해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팔로워를 모으는 존재 전반이다. 여기엔 개인은 물론 기업도 포함된다. 개인의 경우 일반적으로 연예인이나 정치인 등 유명인이 주 대상이었다. 하지만 미디어가 다양해지고 대중화되면서 1인 미디어를 운영하는 인플루언서나 심지어는 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일반인까지도 캔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들이 캔슬되는 원인은 무엇일까. 오늘날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캔슬 컬처의 용례들을 모아보면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캔슬되는 대상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캔슬될 수도, 무언가를 행했기 때문에 캔슬될 수도 있다. 루머에 대해 해명하지 않았거나 대중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특정 사안에 대해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을 때 유명인들은 ‘행동하지 않음’을 이유로 캔슬을 당한다. 반면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범죄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견 없이 비난받을 짓을 행했을 때는 ‘행동함’에 대한 캔슬을 당한다.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 개입되는 태도 논란이나 도덕·윤리, 정치적 입장에 따라 다르게 판단되는 언행까지도 캔슬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 일어난 ‘진자림 사건’은 주관적 도덕 판단에 근거한 캔슬 컬처에 해당한다. 진자림은 유튜브, 틱톡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인터넷 방송인이었으나 올해 1월 불거졌던 상도덕 논란 이후 캔슬의 대상이 됐다. 이미 영업 중인 탕후루 가게 바로 옆에 새로운 탕후루 가게를 창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는 법적으로는 문제 되지 않았지만 상도덕에 어긋나는 행위로 간주돼 구독 취소와 비난성 댓글이 잇따랐다. 결국 진자림의 유튜브 구독자 수는 지난 8월 기준, 기존 67만 명에서 62만 명으로 감소했다.
해당 사례에서 주목할 지점은, 탕후루 가게 창업 위치 논란 이후 진자림의 과거 행적들을 되짚어 보는 움직임이 일었고, 이 과정에서 진자림의 친모에 대한 사기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는 점이다. 논란이 된 인물에 대한 능동적인 거부의 강도를 높이기 위해 다른 사례를 끌어오고, 이로 인해 사건이 확장돼 가는 과정은 캔슬 컬처에서 빈번히 발견되는 양상이다. 이를 계기로 진자림에 대한 캔슬이 가속화됐고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진자림을 향한 살인 예고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진자림은 탕후루 가게 창업을 중단하고 사과문을 게재했지만, 3개월 전 사과 영상을 마지막으로 유튜브 활동은 중단한 상태다.
침묵의 클릭이 우레 같은 클락션이 되기까지
캔슬 컬처의 기원을 명확하게 짚을 순 없지만, 인종적 편견이나 성차별, 소수자 혐오가 담긴 언행을 한 사람의 SNS에
‘당신은 삭제됐다(You’re Canceled)’ 등의 메시지와 함께 해시태그를 다는 운동에서 시작됐다고 본다. 2017년 성범죄를 폭로하기 위해 등장했던 #MeToo 운동과 2020년 인종차별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했던 #BlackLivesMatter 운동 역시 전 세계적인 규모로 이뤄졌던 캔슬 컬처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문화 현상이 뿌리 깊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까닭엔 오늘날의 미디어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 경남대 장민지 조교수(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는 언론 전문 잡지 〈신문과방송〉에 기고한 칼럼에서 지금의 미디어 환경이 생산자와 수용자의 고정된 위치를 지우고 있다고 설명한다. 공유와 2차 생산, 재의미화 등 ‘생산과 소비를 동시에 수행하는 다면적 주체를 통해 텍스트의 생산과 유통, 배급 등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수용자들의 행위성이 미디어 확산의 관건이 되고, 수용자에게는 단순 소비자 이상의 힘이 부여됐다. 더군다나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활동하는 개인 인플루언서에겐 팔로워 수와 조회 수, ‘좋아요’ 수 등 소비자의 의사가 반영된 지표들이 곧 자본 가치로 계산되므로 소비자의 힘은 더욱 막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캔슬 컬처를 가동하는 내부 동력에는 소비자들의 다양한 심리가 결합돼 있다. 캔슬 컬처에 관여된 모든 소비자들이 동일한 감정 상태나 목적의식을 공유하고 있진 않다. 대거 이탈한 팔로워 중에는 도덕적 사명감이나 직관적인 분노 없이 논란에 대한 단순한 피로감에 지친 사람이 있을 수도 있고, 해당 인물을 지지한다는 오해를 사는 것을 피하기 위해 팔로우를 취소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소극적 취소 이상의 적극적인 발화를 행하진 않기 때문에 이들의 언팔로우마저 캔슬 컬처를 뒷받침하는 여론의 일부로 편입된다.
이와 더불어 여론이 갖는 특수한 성격 역시 캔슬 컬처의 구심력이 된다. 정치학자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이 제시한 침묵의 나선 이론은 고립에 대한 공포를 가진 개인들이 어떻게 여론을 형성하는지 설명한다. 자신의 의견이 사회 구성원들의 의견과 다를 시 고립 혹은 배제되는 것에 대한 공포를 내재한 개인들은 자신의 의견이 여론에 속하면 강하게 표현하고, 소수 의견으로 판단되면 침묵하려고 한다는 이론이다. 캔슬 컬처에 적극 동조하는 목소리들이 중심 여론으로 부각되고, 여론에 힘을 싣는 목소리들만이 더 강하게 표현되는 것이 반복되는 구조 전반 속에서 캔슬 컬처의 강한 동력은 계속 유지된다.
이처럼 자연스럽게 형성돼 자리를 잡은 캔슬 컬처는 소비자에게 정치적 효능감과 더불어 더 단단한 목소리를 부여하기도 한다. 장민지 조교수는 칼럼에서 ‘이전까지 소수, 혹은 약자의 위치에 고정돼 있던 수용자들의 의견이 권력자의 위치에 놓여있던 유명인이나 콘텐츠, 브랜드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캔슬 컬처가 지닌 민주적인 가능성을 전망했다. 일개 소비자가 아닌 발언력 있는 여론의 위치에서 수용자들은 유명인의 문제를 꼬집고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는 설명이다.
유튜브 채널 피식대학이 경험한 캔슬 컬처는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해당 채널은 지난 5월 ‘메이드 인 경상도 시리즈’ 중 한 영상으로 ‘경상도에서 가장 작은 도시 영양에 왔쓰유예 [경북 영양]’ 편을 업로드했다. 영상 속 세 출연진은 영양이란 지역 전반을 비하하고 특정 음식점이나 음식에 대한 무례한 평가를 일삼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보였고, 이후 이를 문제 삼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논란 초기에 피식대학 측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영양군 공식 유튜브 채널도 이후 업로드한 영상에서 속상한 심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냈으나, 세 출연진과 유튜브 채널 모두 별다른 입장문을 내놓지 않았다. 이런 대처는 캔슬의 분위기를 가열하는 데 한몫하면서 318만 명을 웃돌던 채널 구독자 수를 287만 명까지 떨어지게 만들었다.
여론의 심각성을 인지한 피식대학은 논란 일주일 만에 사과문을 올렸다. 그러나 사과 이후에도 채널 조회 수는 이전과 비교해 확연히 저조해진 상태에 머물렀고, 이에 피식대학은 최근 영양 수해에 5천만 원을 기부하고 영양군과 협업해 영양 홍보 영상을 촬영하는 등 반성의 행보를 이어 나가고 있다. 소비자들의 불만이 콘텐츠 제작자들의 적극적인 피드백을 이끌어냈을 뿐만 아니라 이후 콘텐츠 제작의 방향성까지도 바꿔버린 것이다.


현실에서 주목받기 어려운 목소리가 캔슬 컬처를 통해 조명될 수도 있다. 그 덕에 소수자 의제나 국제적 사안이 알려지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이뤄졌던 대표적인 캔슬 컬처의 사례인 #MeToo 운동, #BlackLivesMatter 운동 모두 사회적 소수자의 목소리에 힘을 더했다. 지난 5월에는 미 패션계 최대 행사인 ‘멧 갈라’에 참석한 유명인들을 대상으로 캔슬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참상에 대해 침묵했다는 게 이유였다. 가자지구에선 민간인들이 사망하고 있고 미 전역 대학가에선 경찰과 친팔레스타인 학생 시위대가 충돌하며 생사에 대한 논의가 시급한 상황인데, 해당 문제에는 입을 열지 않은 채 화려한 패션쇼를 즐기는 것에 대한 반발 심리가 작용한 것이다. 패션쇼에 참석해 네티즌들의 차단 목록에 오른 유명인들은 하루 평균 수만 명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잃었다.
클릭 한 번, 댓글 하나와 같은 소비자들의 작은 움직임들이 어느새 우레와 같은 클락션이 돼 세상의 사방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망각을 통한 사망 선고가 내려진다는 것
캔슬 컬처의 엄청난 위력에도 불구하고 캔슬은 너무 쉽게, 자주 벌어진다. 단기간의 집단적 행동에서 비롯되는 캔슬 컬처의 특성상 논의는 매우 짧게 지속되고 말 뿐이다. 이로 인해 사실이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논란의 중심에 놓인 인물은 곧장 ‘나락’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설령 억울한 지점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하여 논란에 대해 해명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밝히더라도 해당 인물에게 이미 벌어진 피해는 전혀 복구되지 않는다. 캔슬 컬처의 핵심은 해당 인물에 대한 소비를 멈추는 것에 있으므로 이미 소비자로부터 망각된 이들의 발언이 힘을 얻기란 매우 어렵다.
캔슬 컬처가 무엇을 캔슬하고 있는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상황이다. ‘사상 검증’, ‘○○ 의혹’, ‘인성 논란’ 등의 표현에서부터 비롯된 수많은 캔슬이 만연하지만 정작 해당 사안이 누군가를 단죄하고 삭제할 만큼 심각한지에 대해선 전혀 논의되고 있지 않다. 과거 양궁 선수 안산과 가수 아이린 등 여러 유명인을 향해 이뤄졌던 페미니스트 의혹 제기들은 실상 근거가 희박한 논란이기도 했으나, 누군가의 정치적 견해 자체가 캔슬의 이유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오늘날 만연한 캔슬 컬처는 입장과 견해 차이에서 비롯돼 명백한 시시비비를 나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견해 차이가 누군가를 향한 무조건적인 비난과 혐오를 정당화할 순 없다.
결국 캔슬 컬처의 만연화는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면 침묵해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해외에선 ‘멧 갈라’ 참석 유명인에 대한 캔슬 컬처와 같이 침묵하는 자에 대한 캔슬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한국의 경우 침묵해야 하는 상황에서 발언한 자에 대한 캔슬이 주를 이룬다. 유명인을 정치적 멸균 상태로 남기고 싶어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따라서 유명인이 정치적인 발언을 했다고 간주될 시, 그 발언의 방향성과는 무관하게 질타가 가해지는 수준으로까지 상황이 악화됐다.
일례로 배우 정우성은 유엔 난민기구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난민 연대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몇 년간 비난의 목소리에 시달려야 했다. ‘일개 배우가 사람들을 가르치려 한다’, ‘본업에 충실하라’ 등 난민 문제 자체에 대한 견해차보다 정 씨가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에 대한 불만이 주를 이뤘다. 이처럼 유명인을 향한 발언권의 박탈은 유명인과 일반인, 미디어 생산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는 오늘날의 상황에서 모두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넥슨 게임 메이플스토리 캐릭터 홍보 영상 제작에 참여했던 애니메이터 C씨가 게임 캐릭터 엔젤릭버스터의 동작 속에 ‘집게손’ 모양을 집어넣었다는, 일명 ‘넥슨 집게손 사태’가 불거졌다. C씨가 과거 소셜미디어에 적었던 발언들이 조명되면서 페미니스트 애니메이터가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는 용도로 ‘집게손’ 장면을 의도적으로 삽입했다는 여론이 더욱 거세졌다. 일부 남초 커뮤니티에선 C씨의 신상을 공개하거나 살해 협박, 성적인 모욕을 가하는 등 극단적인 캔슬을 감행했다. 사건 발생 후 한 달간 C씨 측이 확인한 모욕성 발언은 1,200여 건에 달했다. 논란이 된 장면 콘티를 그린 건 C씨가 아니라 외주를 받은 40대 남성 작가였던 게 밝혀진 이후에도 C씨를 향한 혐오적 발언들이 이어졌다. C씨가 소속된 스튜디오 뿌리 측은 대대적인 사과와 해명을 반복해야 했고, C씨의 명예 회복을 위해 여러 여성·시민단체가 나섰지만 갈등은 쉽사리 잦아들지 않았다. 사실 확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해당 사건은 일반인마저도 폭력적인 검열의 손아귀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여실히 보여줬다.
캔슬된 존재들, 나락 그 이후는
캔슬되는 듯 보이는 존재는 매우 다양하지만, 정작 실제로 캔슬되는 건 방패막이 전혀 없는 피권력자가 대부분이다. 넥슨 집게손 사태 때 C씨는 스튜디오 뿌리에서 해고될 뻔 하는 등 생계의 위협을 경험했다. ‘저스틴 사코 사건’ 역시 캔슬 컬처의 이러한 일면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2013년, 미디어 기업의 홍보 담당이었던 저스틴 사코라는 미국인 여성은 남아프리카공화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트위터 개인 계정으로 인종차별적 글을 올렸다. 그의 계정은 170명 남짓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었으나, 유명 기자가 해당 글을 재게시해 전 세계에 공유됐다. 불과 11시간이란 비행시간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세계적인 캔슬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그는 열흘 동안 220만 번이나 검색됐고, 엄청난 비난 여론과 함께 회사에서도 해고됐다.
자본과 권력 속에서 안전히 자리 잡고 있는 권력자의 경우 캔슬 컬처로 일시적인 위협을 받더라도 그 타격의 정도는 확연히 약하다.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J.K.롤링의 경우, 트랜스젠더에 대한 혐오 발언으로 성소수자 커뮤니티 일각에게 캔슬됐으나 여전히 부와 명예를 쥐고 있다.
오히려 비판받아 마땅한 상황에 놓인 권력자들이 캔슬 컬처란 표현을 남용하며 도망칠 구멍을 만들거나 캔슬 컬처의 실질적인 의미를 무화시키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송지우 교수(정치외교학부)는 이와 관련해 “영어권에서도 캔슬 컬처가 과격하고 비합리적인 운동을 지칭하는 용어로 인식되는 흐름이 생기면서, 혐오 발언을 한 이들이 이 용어를 자기방어의 구호로 활용하는 경향이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작 캔슬됐다고 주장하는 유명인 가운데 실제로 발언의 플랫폼이나 활동 영역에서 결정적 타격을 입은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캔슬돼 나락에 간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캔슬된 존재들은 기본적으로 사과문이나 해명문 등의 방식을 통해 대중에게 응답하고, 개선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캔슬됐기 때문에 다음 행보들이 주목받기란 어렵다. 연예인의 학교 폭력 논란의 경우 상황에 따라 자숙, 부분 인정, 완전 부정 등 여러 방식의 대응이 등장하지만, 어느 쪽도 이미지의 완전한 회생에 실패한다. 대중은 캔슬된 존재들을 시야와 기억에서 지워나갈 뿐, 다음 행보에 어떤 변화가 있을지 끈기 있게 주목하진 않는다.

반성과 변화의 촉구가 아닌 처벌과 응징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 역시 캔슬된 존재들에게 다음 기회를 주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다. 장민지 조교수는 ‘캔슬 컬처에 대한 많은 논란 중 하나가 바로 낙인효과’이며 ‘초반의 문제화 됐던 발언이나 행동 등은 삭제되고 당사자에 대한 비난에만 경도되는 경향 또한 심각하다’고 설명한다. 이로 인해 반드시 논의하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의제들은 잊히고 사이버 괴롭힘만이 남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2019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누군가를 잘못됐다고 판단하는 것은 시민운동이 아니’라며 캔슬 컬처가 유효한 논의 없이 괴롭힘으로 나아감을 지적했다.
이렇듯 캔슬 컬처가 마녀사냥의 방향으로만 나아갈 경우, 캔슬된 존재와 해당 사안에 대한 정치적 논의는 불가능해진다. 캔슬하는 사람들의 입장과 다른 입장은 곧 응징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수용자가 진정으로 목소리를 내는 문화가 자리 잡기 위해선 캔슬과 같은 간접적인 의사 표현보다도 스스로의 성대를 울려 만들어낸 직접적인 발화가 필요하다. 다름이 틀림으로 읽히는 시선 속에서 만들어진 캔슬 컬처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로 나아갈 수 있는 지속성도 논의 가능성도 내포하지 못하는, 유행과도 같은 보복행위에 멈출 뿐이다. 마치, 매우 거대한 소음을 만들어내지만 아무 의미도 함의하지 못한 채 모두를 고통스럽게 만드는 공허한 우레처럼.
캔슬 컬처가 지닌 힘은 자명하다. 한 존재를 자신의 소비 목록에서 취소해 버린다는 것, 그리하여 해당 인물의 존재 자체를 취소해 버린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그러나 클릭 한 번과 댓글 하나로 손쉽게 캔슬해 버리는 것이 일상화된 오늘날, 세상은 너무 많은 것을 손쉽게 캔슬해 버리고 만다. 취소의 끝에 진정으로 남는 것은 무엇인지,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생각을 거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