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신촌 명물길 일대에서 ‘윤석열 퇴진! 세상을 바꾸는 네트워크’의 주최로 10개 청년‧학생 단위가 참가한 윤석열 퇴진 촉구 집회가 열렸다. 공동주관으로 참여한 ‘퇴진과 함께 평등으로 나아가는 청년‧학생 단위들’은 불안이란 키워드로 대표되는 청년 당사자들의 삶을 통해 윤석열 퇴진이 필요한 이유를 말하고자 했다. 사회를 맡은 정의당 서울시당 변현준 청년위원장은 “청년이 겪는 다층적이고 복잡한 삶의 이야기를 증언하고자” 본 집회를 기획했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겪는 문제를 함께 마주하고 연대로 나아갈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참가자들은 민중 의례 후 “윤석열 파면하고 평등으로 가자”는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시작했다.

첫 번째 발언자로 나선 동덕여대 졸업생 자몽 씨는 일상 속 평등과 민주주의의 실현을 위해 동덕여대의 투쟁에 관심을 갖길 촉구했다. 자몽 씨는 “동덕여대 대학 본부의 반민주적 행보가 재학생들의 불안을 조장했다”며, “동덕여대 투쟁의 핵심인 학원 민주화가 이뤄질 수 있도록 본부의 탄압에 연대해달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시작된 동덕여대 공학 전환 반대 투쟁이 해를 넘기며 이어지고 있다. 대학 본부는 지난 9일과 13일 재학생 10여 명에게 학교 건물과 집기를 훼손해 징계 심의 대상에 올랐다는 이유로 내용증명을 발송했다. 또한 본부는 지난해 본관 불법 점거를 이유로 총학생회를 비롯한 21명의 학생을 고소했으며 이를 철회하지 않겠다는 뜻을 고수 중이다. 본부의 비민주적 행보에 맞서 학생들의 투쟁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 발언자로 나선 중앙대 인권네트워크 소속 박다안 씨는 등록금 인상 반대 투쟁과 청소 노동자 투쟁 등 평등한 캠퍼스로 나아가는 과정의 어려움을 고백했다. 박 씨는 “대학만 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거라는 환상을 갖고 입시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막상 와본 대학은 취업 기관에 불과했다”며, “매일 어쩔 수 없는 일상을 딛고 불안정한 현실과 불평등한 미래와 싸워야 했다”고 말했다. 박 씨가 경험한 대학은 본부와 총학생회가 나서 성평등위원회를 폐지하고 축제에서 인권 부스를 배제하는 곳이자, 총장의 수십만 원에 달하는 식비는 허용해도 청소 노동자의 한 끼 2,700원 식대 인상은 거부하는 곳이었다. 해가 갈수록 오르는 등록금과 그대로인 청소 노동자의 임금 모두 잘못됐다고 투쟁을 외쳐야 하는 곳이며, 정상성의 굴레에서 삐져나와 “정신과 약을 먹지 않으면 하루라도 잠을 잘 수 없는 성소수자 친구들”이 자꾸 눈에 밟히는 곳이었다. 이러한 대학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평등은 불안정한 미래를 위해 포기할 것이 아닌 당장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보장해야 하는 가치였다.
대학 공간에 대한 참가자들의 발언 후 관악중앙몸짓패 ‘골패’의 공연이 진행됐다. 골패 조성윤(사회복지 21) 씨는 “우리는 윤석열이 없는 세상에서도 억압받던 존재들을 알고 있다”며, “광장의 주체로 등장한 청년들은 윤석열의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을 넘어 모두가 억압받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가고 싶다고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이 아닌 다른 이가 대통령이 되는 것만으로는 지금의 체제가 만든 불평등과 폭력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공연 이후 사전 신청자와 시민 발언이 이어졌다.

자신을 ‘투명가방끈’ 회원이자 대학 비진학자로 소개한 성윤서 씨는 대학 진학이 유일한 답인 것처럼 모두를 입시 경쟁으로 몰아세운 고등학생 때의 기억을 공유했다. 성 씨는 “대학을 가지 않으면 입시를 망칠 것 같아서 불안했다”며, 자신의 불안은 사회적이자 보편적이라고 주장했다. 명문대 진학을 입시의 유일한 목표로 삼는 한국 사회에서 청소년은 대학 비진학의 길을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대학 진학 이후의 삶에 대해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 성 씨는 “대학에 가라는 이들은 학자금 대출이 좋은 대출이라고만 말하며 대학생이 지는 빚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명문대 진학이 순전히 노력을 통해 얻은 공정한 결과라고 말하는 이들은 “평범한 사람은 공부할수록 더 가난해진다”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병이나 장애가 있다면, 또는 돈이 없는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다면, 대학 진학을 위한 ‘노력’이 모두에게 동등한 무게일 수 없다는 지적이다. 성 씨는 학력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며 발언을 마무리했다.

시민 발언에 나선 서은솔 씨는 대학원생이 처한 열악한 현실을 짚었다. 서 씨는 “대학원생은 지식을 생산하는 연구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로 인정받지도, 폐쇄적인 위계 구조 속에서 보호받지도 못한다”고 말했다. 교수의 개인 일정에 동원되거나 하염없이 응답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부기지수인 대학원생은 기초 생활조차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서 씨는 “내 선택으로 공부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맞으나 사회적 안전망에서 벗어나기까지 선택한 것은 아니다”라고, 또 “미래를 위한 투자니 힘들어도 견디라는 것이 극단의 불안까지 당연히 견뎌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라고 외치며 사회가 대학원생이 누릴 최소한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수와의 관계가 대학원생의 미래를 좌우하는 현재의 구조 속에선 불안 역시 각자의 몫으로 남겨질 뿐이기 때문이다.

청년 세입자 당사자 연대인 ‘민달팽이 유니온’의 가원 씨는 “전세 사기 특별법 제정 이후 피해자로 인정받은 이의 74%가 2030 세대인 만큼 청년에게 전세 사기 문제는 눈앞의 공포”라고 주장했다. 가원 씨는 “누구든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집과 평등한 땅을 청년의 이름으로 요구하자”며 참가자들의 호응을 이끌었다. 주거권 보장 역시 청년의 삶과 뗄 수 없는 중요한 의제다.
이외에도 청년들은 보호를 핑계로 장애인을 아이처럼 대하는 현실과,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아 미래를 꾸려나갈 권리를 박탈당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나눴다. 청년 성소수자 문화연대 ‘큐사인’의 박형대 씨는 “내가 원하는 내 모습대로 살아가는 게 불가능하지는 않을까”와 “내 친구와 동료들이 언젠간 세상을 떠나지 않을까”와 같은 불안이 없는 사회를 만들고 싶다고 호소했다. 이 발언을 마지막으로 청년 당사자 8명의 발언이 마무리됐으며, 이후 마이너리티 풍물패 ‘퀴얼’의 공연이 진행된 후 집회가 종료됐다.

신촌은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씨를 댕긴 이한열 열사 최루탄 피격이 있었던 장소다. 이날 가지각색 깃발을 내세워 신촌에 등장한 청년들은 불안이란 키워드를 통해 각자가 처한 다종다양한 삶의 양태를 드러내고자 했다. 무지갯빛 투쟁 머리띠를 쓴 집회 참가자 A씨는 “남태령에서 이어진 연대의 물결에 동참하고자 오늘 집회에 참가했다”며 “성소수자 당사자인 나를 비롯해 많은 소수자가 광장에 모일 수 있어 기쁘다”는 소감을 밝혔다. 청년이며 동덕여대 학생이며, 노동자이며, 대학 비진학자이며, 대학원생이며, 세입자이며, 장애인이며, 성소수자인 이들이 모였다. 청년이라는 단일한 정체성을 넘어 세상의 많은 존재를 호명한 이들의 목소리에 담긴 다채로운 빛깔의 평등이 그날의 광장을 물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