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28일 오전 8시 30분경, 경찰은 A학교 성폭력 사안 공익제보 교사 부당 해임에 항의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텐트 농성과 피케팅을 하던 시민 23명을 퇴거불응과 공무 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했다. 이들은 지난 26일부터 서울시교육청 앞에 ‘희망텐트’를 치고 학내 성폭력 사안 해결을 위해 애쓰다 부당 전보*를 당한 지혜복 교사와 투쟁을 이어왔다. 서울시교육청은 직원과 경찰을 동원해 집회 참가자들의 화장실 이용을 통제했다. 화장실 사용을 막은 것에 대해 참가자들이 항의하자 서울시교육청은 퇴거요청서를 발송하고 경찰을 불러 이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연행 과정에서 경찰과 교육청 직원의 폭력으로 공공운수노조 코레일네트웍스 서재유 지회장이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다.
*전보 : 같은 직급 내에서 다른 직무로 이동시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발생한 경찰의 폭력적인 연행은 민주주의 광장에 대한 명백한 탄압 행위였다. 진보 단일후보로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은 보궐선거 기간 중 A학교 성폭력 사안에 대해 공정한 조사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당선 후 이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작년 3월 지혜복 교사는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시작했다. 학교로 출근하는 대신 교육청 앞에서 피켓을 든 지 교사에게 서울시교육청은 복직이 아닌 해임을 통보했다. 1년 가까이 이어온 그 투쟁의 끝엔 ‘싹 다 잡아들여’라고 말하는 경찰이 있었다.
지혜복 선생님과 연대 시민들을 지금 당장 석방하라
3월 1일 오후 4시 서울경찰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인 ‘경찰은 민주주의 광장에 대한 공격을 멈춰라’가 열렸다. 참가자들은 “지혜복 선생님과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라”고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시작했다.

‘A학교 성폭력 사안‧공익제보 교사 부당 전보 철회를 위한 공동대책위(A학교 공대위)’ 명숙 집행위원은 해당 사태로 “진보 교육감이라고 하는 정근식 교육감이 학내 성평등 문제, 성폭력 문제, 교사의 노동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분명하게 드러났다”며 정 교육감을 규탄했다. 명숙 집행위원은 지혜복 교사의 공익제보를 인정하면 보수 단체에 직권 남용이라고 신고당할 수 있다며 면담을 회피해온 정 교육감이 “성폭력 해결과 교사 노동권 보장보다 자신의 안위를 생각하기 바빴다”고 비판했다.

지혜복 교사는 2023년 5월 학내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고 해결하려 위해 애썼으나 피해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가 발생했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조롱하고 협박했다. 결국 피해 학생들은 입을 닫았고, 교육청은 지 교사에게 전보를 통보했다. ‘공익신고자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신고 후 2년 이내에 신고자를 원치 않는 곳으로 전보하는 등 불이익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서울시교육청은 지 교사를 ‘공익제보자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부당 전보가 아니기에 전보를 철회할 이유 역시 없다는 뜻이다. 즉 이 사안은 A학교만이 아닌 교육청 전체가 연관된 문제기도 하다.
정근식 교육감은 2018년 총장 예비후보 시절 〈서울대저널〉과의 인터뷰에서 ‘권력형 인권침해 방지 및 대응과 관련해 어떤 정책을 구상하고 있냐’는 질문에 “갑질, 성폭력은 없어져야 한다”고 답한 바 있다. 정 교육감은 “큰 문제가 터지기 전에 징후가 있을 때 발견하고 경고해야 한다”며, 인권 보호를 위한 예방 경보 시스템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현 서울시교육청의 행보는 정 교육감의 발언과 완전히 반대된다.

학내 성폭력 문제를 묵인한 서울시교육청은 공공기관 앞에서 일어난 농성을 경찰에 진압해달라고 요청했을 뿐 아니라 전기를 끊고, 화장실 출입을 막았다. 연행 이후엔 공범 모의와 증거 인멸을 막겠다는 명분으로 변호사와 가족 외에 연행자에 대한 면회를 금지했다. 이에 세종호텔지부 허지희 사무장은 이에 “우리의 투쟁이 폭력은 아니지 않냐”며, “경찰의 행보가 계엄 선포 당시 군인들과 별반 다를 바 없다”고 소리쳤다. 교육청 텐트 농성에 참여했던 한 시민 역시 “직원들의 출퇴근에 방해되지 않게 피켓 들고 서울시교육청의 반인권적 행태를 비판하며 사과를 요청한 것”이 교육청에서 한 투쟁의 전부라며 연행된 모두를 석방할 것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정치하는 엄마들’ 김정서 활동가가 기자회견문을 낭독했다. 김 활동가는 노동자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시민을 일컬어 ‘말벌 동지’라고 부른다며, “경찰이 이들을 특정해 연행했다는 건 윤석열 탄핵을 넘어 한국 사회를 개혁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시민들의 목소리를 막은 것”이라고 목소리 높였다. 이어 “2월 28일 서울경찰청이 보인 행태는 역사적 탄압의 반복이자 윤석열의 계엄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모습”이라며 당장 연행된 이들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참가자들은 모두가 석방되고 지혜복 교사가 복직하는 날까지 더 적극적으로 연대할 거라고 밝히며 기자회견을 마무리했다.

경찰은 지혜복 동지와 이학수 동지를 내놔라

1일 오후 6시 30분경 지혜복 교사와 금속노조 거통고지회(거통고) 이학수 조직부장을 제외한 연행자 모두가 석방됐다. 이에 오후 8시 30분경 성북경찰서에서 두 사람에 대한 영장 청구를 규탄하고 석방을 촉구하는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경찰서 앞 도로를 메웠다.

명숙 집행위원의 사회로 시작된 기자회견엔 석방된 이들이 차례로 나와 자신의 경험을 나눴다. 거통고 조합원 A씨는 “나와 내 동지들은 정당한 행동을 했고 나는 내가 한 모든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공익제보자와 연대 시민을 위험한 존재로 규정하고 무력을 행사한 경찰을 비판했다. 다음으론 베라 씨가 경찰에게 뺏겨 부러진 깃발을 들고나왔다. 베라 씨는 28일 오전 “끌려가는 동지들을 보고 달려가자 경찰들이 나를 붙들고 끌고 갔다”며, “내 발로 걷겠다고 소리를 질러도 들어주지 않고 사지를 붙들어 경찰 버스 바닥에 내쳤다”고 당시의 상황을 고백했다. 베라 씨는 “같은 여자라면 모욕적으로 바지춤을 잡아당겨서는 안 되는 게 아니냐”며 대한민국 경찰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밝혔다.
이에 참가자들은 “과잉 진압 경찰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자회견을 이어갔다. 자신을 학원 강사라고 밝힌 B씨는 “지혜복 선생님께서 학생들을 지키려고 한 행동이 교사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는 걸 안다”며, “왜 서울시교육청과 정근식 교육감은 그걸 알지 못하냐”고 분노했다. B씨는 지혜복 교사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경찰의 폭력 연행만 지적한 전교조(전국 교직원 노동조합)를 향해 “왜 지혜복 선생님과 연대하지 않냐”며 “그러고도 민주 노조라고 할 수 있냐”고 물었다.

‘투쟁’ 깃발 기수로 자신을 소개한 C씨는 구금 당시 경찰이 ‘공부나 열심히 하고 운동은 자제하라’거나 ‘현장에서 말하는 건 먹히지 않으니 공부해서 교육감 돼라’고 말했다며, 무작정 훈수를 둘 게 아니라 “어린 학생들이 왜 추운 겨울날 교육청 앞에 나가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알려고 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물었다. 또 C씨는 “광장과 연대장에 나온 시민을 어린 학생 취급하지 말라”며, 어린 사람을 아랫사람으로 취급하는 문화를 비판했다. 자신을 비건(vegan)이자 동물권자라고 밝힌 D씨는 “경찰서에 가자마자 닭알이 섞인 볶음밥이 나와 속이 울렁거렸다”며, 식사로 나온 김밥에서 햄과 맛살을 골라 먹은 기억을 나눴다. D씨는 “비건은 취향이 아닌 사람의 생을 건 신념”이라고 호소했다.
마찬가지로 연행됐던 A학교 공대위 백종성 집행위원장은 정근식 교육감이 SNS에 ‘연행된 집회 참가자의 건강과 심리적 안정에 대한 배려를 당부하고, 법령 안에서 가장 관대한 처분을 요청했다’는 내용의 입장문을 게시했다며, “문제의 본질에 대해 사과하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온정을 베푼다는 식의 태도”라고 지적했다. 백 집행위원장은 정 교육감이 “문제를 바로잡았을 때 자신에게 올 피해만 걱정하는 비겁한 사람”이라고 힘줘 비난했다.
우리에겐 더 많은 지혜복이 필요하다
오후 10시경 지혜복 교사와 이학수 조직부장의 면회가 허락됐다. 면회 결과를 기다리며 경찰서 앞에 모인 이들은 자유 발언을 이어갔다. 자신을 학교폭력 피해자라고 밝힌 E씨는 “폭력 피해자에게 잔인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고 싶다”며, “지혜복 선생님을 지키고 싶다”는 결의를 밝혔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린 학생들이 학교에서 유일하게 기댈 수 있었던 사람이 지 교사였다. 그가 부당 전보를 받아들이지 않고 교육청 앞에서 투쟁을 이어온 건 아직 학교에 있을 피해 학생들의 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어 발언대에 오른 F씨는 “성폭력 피해를 당하고 경찰서에 걸어가기까지 한 달이 걸렸다”며 폭력 피해자가 예상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고 설명했다. F씨는 고소장을 제출한 사실을 알렸을 때 “잘했다”며 손을 꼭 잡아주던 지 교사를 회상했다. 위기 지원 센터를 찾고 심리 상담소에 전화한 그 모든 순간 F씨의 곁엔 광장에서 만난 동지들이 함께했다. “그 친구들이 나의 또 다른 지혜복 선생님”이라는 F씨는 “그렇기에 모든 지혜복이 나를 살렸고 지혜복이 모든 나를 살렸다”고 밝혔다. 지 교사를 비롯해 광장에서 만난 이들은 서로를 계속해서 구했다.
면담 신청을 거부당한 청소년 동지의 편지를 대독하기 위해 올라온 이도 있었다. 편지엔 “혜복쌤처럼 착하고 저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신 선생님은 두 번 다시 못 만날 것 같아요”와, “제가 만약 성폭력이나 성추행, 성희롱을 당했을 때 혜복쌤 같은 분이 저를 도와주셨는데 경찰한테 잡혔다면 진짜 삶이 막막하고 이 나라의 교육에 대한 신뢰가 사라질 것 같아요”라는 솔직한 생각이 담겼다. 지 교사가 A학교로 돌아가는 건 개인의 복직을 넘어 학내 성폭력을 방조하지 않고 성평등한 문화를 가꾸겠다는 다짐이나 다름없다. 학생들 역시 이러한 사실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오는 3월부터 교직 생활을 시작하는 G씨는 학교폭력 피해자로 어른들의 방관과 2차 가해 아래 보낸 어린 시절이 너무 힘들었다며, “내가 교사를 꿈꾼 건 역설적이게도 학교가 내게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G씨는 그럼에도 학교가 “갈 곳 없는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울타리”이기도 하다며, “나처럼 못나고 골칫덩이고 시끄럽고 이상한 교사가 있다면, 이런 사람도 어떻게든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 어린 시절의 나 같은 이들이 조금 나을까 싶어서 공교육에 투신했다”고 말했다. “지혜복이 되고 싶었다”는 G씨의 말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집회 현장에서 플룻을 불어 ‘플룻 동지’로 불리는 H씨는 학창 시절 자살 시도를 했으나 비밀 보장이 되지 않는 ‘위클래스(교내 상담 공간)’에 이 사실을 말할 수는 없었다며, “믿을 만한 좋은 선생님을 만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혔다. H씨는 “고등학생이 돼서야 나를 도와주는 선생님을 만났고 성인이 돼선 지혜복 선생님을 만났다”며, “날 도와준 선생님과 어른들을 떠올리다 이젠 내가 다른 이를 돕고 싶어 거리로 나왔다”고 고백했다. 비밀 보장이 되지 않아 우울증 진단을 받기조차 꺼리던 중학생은 몇몇 어른의 진심을 통과해 “믿을 만한 어른은 학생에게 정말 중요하다”고 외치며 광장을 누비고 있다.
이어 발언대에 오른 I씨는 경찰서에서 제대로 된 비건식이 제공되지 않은 일을 언급하며 “비건은 동물에게도 인간에게 먹히는 고기가 아닌 다른 삶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물권자”라며, 이들에게 논비건 음식은 “죽음의 흔적”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비건식 제공이 단순히 식단 선택의 문제가 아닌 동물권 및 인권과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사람들은 “동물 해방, 인간 해방”이라는 구호를 함께 외쳤다.
‘민주동덕’이 쓰인 깃발을 들고 참가한 동덕여대 재학생 J씨는 “서울시교육청의 행태가 일방적으로 면담을 취소하고 학생들의 말을 묵살한 우리 학교와 비슷하다”며, “지혜복 선생님과 동덕여대, 그 밖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일어나는 모든 투쟁에 연대해주길 바란다”고 간곡히 부탁했다.
오후 11시에 가까워진 시각 3시간가량의 기자회견을 마무리한 건 면회 보고였다. 거통고 지회장과 A학교 공대위 집행위원은 면회를 통해 지혜복 교사와 이학수 조직부장이 무사함을 확인했으며, 영장 청구 및 탄원서 작성과 관련한 추가 대응을 위해 기자회견을 마무리한다고 알렸다. 참가자들은 “지혜복을 석방하라”와 “이학수를 석방하라”를 외치며 11시 반경 해산했다.
이후 검찰의 영장 기각으로 2일 오전 1시 50분경 지혜복 교사가 석방됐다. 이어 오후 4시경 재판부는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이학수 조직부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조직부장의 영장 청구 기각을 위해 급히 받은 탄원서엔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9,400명이 연명했다. 석방된 이 조직부장의 곁으로 그를 기다리던 말벌 동지들이 우산을 들고 몰려들었다. 이들은 돌아오는 7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지혜복 교사 부당해임 규탄, A학교 성폭력 사안 온전한 해결을 위한 9차 집중 집회’를 열겠다고 예고했다.
지혜복 교사가 복직하지 못한 학교에서 성폭력과 2차 가해가 없는 성평등한 문화를 일궈낼 수 있을까. 평화롭게 집회를 했을 뿐인데 경찰력을 동원해 연행하는 나라에서 민주주의는 바로 설 수 있는가. 진보를 주창하며 당선된 정근식 교육감이 지켜내려는 학교엔 누가 있는가. 공익제보 교사를 해임하고 2차 가해를 묵인하는 학교에선 결코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