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서울대 법대 설립 57년 만에 처음으로 여교수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바로 이번 2학기부터 법여성학 강의를 하게 되는 양현아 교수(43)가 그 주인공이었다. 개인적으로 기자를 만나 직접 인터뷰를 하는 것은 서울대저널이 처음이라고 밝혀, 본 기자들은 영광이었다. 여름 햇볕이 쨍쨍하게 내리쬐는 8월의 오후, 창가에 화초가 가득한 교수연구실에서 양현아 교수를 만났다. 본지의 소개와 함께 내민 과월호를 훑어 보시고는 표지들이 모두 여성들이라 기분이 좋다는 인사와 함께 이야기를 시작했다. – 이번에 법대설립 57년만에 처음으로 여성으로서 교수가 되신 것에 대해 축하드립니다. 비법대 출신으로 알고 있는데, 법대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언론에서는 첫 여성교수라는 점을 많이 부각시키고 있는데 – 정말 많이 들었어요(웃음),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의 관심은 오로지 연구와 법여성학 발전에 있습니다. 법학과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가족법에 관한 논문을 쓰면서입니다. 뉴스쿨에서 ‘전통과 근대성의 교차로에 선 한국 가족법을 통해서 본 법여성학의 전망’이란 박사논문을 쓰게 되면서 법학과 중요한 인연을 맺었습니다. 2000년에는 일본 동경에서 ‘일본군 성노예 전범 여성 국제법정’에서 남북한 공동검사단의 검사로 활동하면서 다시 법학계와 접하게 되었지요. 서울대에 2003년 3월에 BK21 법학연구단, 공익인권법 연구센터에 들어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 재외동포법 등 소수자 인권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고, 법여성학을 계속 공부해 왔습니다. 학부 뿐만 아니라 시간강사와 계약교수까지 이 곳에서 보낸시간이 많아서 정식 교수로 임용되고 나니 제 집에 돌아온 것 처럼 편안하고 안정된 느낌이 든다는 양현아 교수. 80년대 부터 학교가 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산 증인이기도 하다. – 법여성학이란 학문이 아직은 생소하고, 제대로 소개가 되어있지 않은 것 같은데, 어떤 학문인가요? 법여성학은 전통적 법률관인 법 앞에 인간은 평등하다는 시각에서 벗어나 여성의 시각으로 법을 해석하는 학문입니다. 기존 법제안에 암묵적으로 들어있는 남성중심적인 요소를 비판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페미니즘 분야에서 선진적인 대학이 많고, 제가 다녔던 뉴스쿨도 그러한 학교 중 하나입니다. 그렇다고 페미니즘 즉 여성주의 학문이라고 해서 그 이론적 틀로만 한정된 학문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유연해서 학제교류가 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요. 페미니즘을 법학, 사회학, 문화사회학 등과 연계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법여성학도 그러한 연계연구 중 파생된 학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 국내에는 이화여대 쪽에서 연구가 활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 그러면 법여성학에서 주로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오셨나요? 그리고 앞으로의 연구계획은 어떠한가요? 제 경우는 법여성학 연구를 페미니즘 이론과 법학, 한국만의 특별한 역사적 상황을 연계해서 하고 있습니다. 한국가족법, 즉 호주제 관련 문제라던가, 군위안부문제 등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예전부터 군위안부 증언작업도 꾸준히 해 오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주제이기도 하지요. (그 산물인 얼마전 출판된 책과 시디롬 등을 보여주었다.) 90년대 들어와서 호주제 등 식민지유산이 부각되어오고 있는데, 탈식민지 페미니즘이 지금 제 연구를 대변해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소수자와 관련한 부분의 연구를 계속할 계획입니다. – 소위 직장에서 ‘여성’의 성공을 위한 가이드 북 같은 것들을 보면 그 안에서도 여성차별이 꽤 존재하던 것 같던데, 외국에서 공부하실 때 어떻게 느끼셨나요? 물론, 외국에서도 그러한 성차별적 요소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한국사회 보다는 적은 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에서도 여성평등에 관한 문제들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는 남녀평등이 어느정도 달성된 사회에서 더욱 여성운동이 활발한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공감이 크다는 이야기지요. 그러한 활발한 움직임은 그 사회의 역량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공부하던 곳에서는 여성교수님들도 많은 편이었고 단순히 페미니즘이 아니라 여러 갈래로 보다 전문화된 페미니즘이론을 공부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는 것이 한국에서처럼 생소하거나 유별난 것이 아닌 매우 자연스러운 분위기였습니다. 여교수님들이 많았던 외국 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느낌이란 한국에서 공부할 때와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의례 남자들이기 마련이었던 교수들 사이에서 벗어나 여교수님들 사이에서 공부하는 느낌이란 ‘아, 이렇게 좋은 느낌이었구나, 이렇게 편한 느낌일 수도 있구나’ 였다고. -‘여교수 쿼터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제도에 대해 교수사회에서는 일부 역차별 의견도 있다고 알고 있는데요. ‘여교수 쿼터제’는, 꼭 쿼터제가 아니라 ‘여교수 증원’이라는 명목으로 실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역차별 의견은 이러한 여교수 증원이 여성에게 특혜라는 의견이겠지요? 그러나 여교수 증원에 대한 반대의견은 납득할 수 없습니다. 이제까지의 성차별적 관행이 너무 큽니다. 이것은 최소한의 법적 구제, 조처라고 생각합니다. 성별로 남녀 교수를 생각해보면, 남자는 보편화되어 그냥 교수라고 칭하지만, 여자는 성별화되어 그냥 교수가 아니라 ‘여’교수라고 칭합니다. 저도 이번에 교수가 되어 뉴스에 난 것도 ‘여’교수라고 나 있지요. 그래서 말인데 저는 이번에 임용된다는 언론의 기사를 접하면서 100% 여성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어디서나 여성으로 호명되니까 말이지요. 여성을 ‘여성’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사회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은 부족한 것 같습니다. (법대 교수들 중에서 혼자만 여자 인것이 불편하지 않냐는 질문에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다며 너털웃음을 지어보였다) – 법여성학 강의는 어떤 내용과 형식으로 채워지게 되나요? 기존 법 안에 녹아있는 가부장제적 요소를 찾아내어 비판하는 시간이 될 거에요. 가족법 중에는 호주제, 성씨제도 등이 대표적인 성차별 법이고, 형법상 낙태죄, 간통죄 등도 그러한 요소가 있는 대표적인 항목입니다. 90년대 들어서 제정된 여성 관련 특별법을 다루면서 여성의 시각을 대변해주는 현상도 살펴볼 것입니다. 법제정과정, 현실여성의 고통을 알아보고, 법사회학적 시각을 강조할 것입니다. 법사회학적 시각은 기존 법조문 해석과는 다른, 역동적인 해석의 틀을 제공해줄 거에요. 그리고 이러한 법조문을 해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직접적으로 사례, 사건에 적용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더불어 법관들의 가치관을 새롭게 하는 것에도 법여성학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제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대 문화를 바꾸는데 일조를 하고 싶고, 사회를 바꾸는 인재를 배출하고픈 욕심이 있습니다. – 학교생활이나 수업 중 토론을 하다보면 관악의 남학우들 중에도 일부 보수적인 의견을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호주제 같은 경우 이미 한국사회의 전통이 되어있다는 식으로 반박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페미니즘을 반박하는 논리로 전통적인 측면을 언급하는 것은 남녀차별을 전통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편적으로는 남녀평등 등의 개념을 수용하고 있으면서 그것을 원리로만 수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역사적 사건이나 현실에는 적용하지 않는 것이지요. 보편원리(페미니즘, 남녀평등 등을 칭하는 듯)로 구체적인 우리역사를 비판해야 합니다. 물론 원리로서만 머물러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역사에 대한 내재적인 비판, 역사와 문화에 대한 내재적인 비판이 접목되어야 하겠죠. 여성인권에 대한 법조문의 내재적 분석 등이 계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 학내에 관악여모 등 여성단체에 대해서는 알고 계십니까? 이러한 여성연대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성운동을 하는 단체가 있다는 것은 대략 알고는 있어요. 하지만 자세히는 잘 모릅니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줄 생각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학내 뿐만이 아니라 여러 여성운동의 연대 자체는 찬성합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정보교환, 힘이 되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의 연대활동을 보면 구호에 그치거나, 내부싸움에 힘을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이러한 연대, 멤버쉽을 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숙하고 세련된 생각을 하는 훈련이 필요할 것이고, 둘째로 비합리적인 단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경향을 피해야 할 것입니다. 예전 가르쳤던 여학생들이 선생님 하면서 자신들이 만든 ‘나는 페미니스트다’라는 책을 자신에게 내밀었을 때 왠지 찡한 마음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한국에서 그렇게 명료하게 페미니스트라 자신을 지칭할 수 있는 상황도 그랬고 물론 그렇게 지칭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여러가지 힘든 상황을 감수해야 하는 가운데서 그런 선언을 한 그 학생들이 대견하기도 했기 때문인 것 같다고. – 페미니즘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입문 정도로 권해주고 싶은 책을 권해주신다면?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칼 맑스나 미셸 푸코 등 사회과학 서적 등을 읽으면서 기초를 쌓는 것도 중요하지만, 문화행사 등을 보면서 감수성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페미니즘 이론에 대해서 개괄적인 정리를 해 놓은 책들보다는 개별이론가들이 쓴 책들을 직접 읽어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책 중에서는 [다른 목소리로], [모성적 사유] 등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행되고 있는 나다, 여성신문, 이프 등의 여성주의 매체는 우리사회의 문제와 현황을 접하는데, 현실의 문제를 체감하고 인식하는데 매우 유용할 것 같네요. (이 때 직접 다이어리에 평소 적어놓은 듯한 메모를 찾아 이야기해주었다.) – 여성후배들, 제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아직도 여성으로서 한국사회를 살아가기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많습니다. 가부장제적 요소와 성차별적 요소가 사회에 널려있지요. 이러한 세상에서 힘과 이상, 용기를 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애초 30분정도 시간을 내어준다던 양현아교수는 기자들의 질문이 시작되자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개의치 않고 질문이 끝날 때까지 성의껏 대답하고 이야기해주었다. 거의 질문이 끝나갈 즈음 전화벨이 울렸고, 그 전화를 받고 그녀는 “언니~ 웬일이세요~” 하며 가까운 지인인 듯한 목소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눈짓과 몸짓으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의자를 정리한 후 자리를 나왔다. 서울대 교수 중 전임강사 이상인 여성 비율은 지난 1학기 전체 1574명 중 125명으로 겨우 7.9%를 차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야 법대에 처음으로 여교수가 채용되었다는 것은 이러한 현실을 바로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다. 양현아 교수의 여성에 대한 애정과 의지가 느껴지는 이야기들이 법여성학 강의에서는 좀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펼쳐질 것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