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8일 고등법원에서 김민수교수에게 승소 판결을 내린 후, 본부와 천막 사이의 소용돌이는 잦아들기보다는 점점 크게 회오리치고 있었다. 『서울대저널』에서는 유난스레 바람이 불던 지난 2월 22일, 천막 안의 김민수 교수를 찾아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서울대저널(이하 저널)ㅣ투쟁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끝을 향한 중요한 고비를 하나 넘었다.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힘이 되어준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민수ㅣ
정당함이다. 싸움이란 게 자신이 정당하지 못하다면 자기 스스로 감내할 수가 없는거다. 더군다나 이 사건 같은 경우에는 국가권력에 버금가는 조직적인 권력과의 싸움이었고, 내가 정당성을 담보하지 못했더라면 6년 반이란 기간 동안 정말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이 나 혼자만의,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였다면 또 여기까지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과거사 청산, 대학 민주화, 학문의 자유 쟁취라는 여러 가지 공공적 차원의 문제였기에 여러 단체나 개인들과 같이 싸워왔다. 학내에서는 410명의 교수, 학외에서 1500명에 달하는 교수들이 내 복직을 위해 서명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학생대책위원회가 나를 지켜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지켜줬던 힘을 말하자면 바로 무학점 강의에 들어온 사람들이고, 그런 힘들이 오늘까지 나의 투쟁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라 생각한다.
저널ㅣ이번 판결의 의의는 무엇인가.
김민수ㅣ애초에 우리 변호사 쪽에서는 이 문제가 사회적으로 몰고 올 파장을 생각해 이 사건을 개인사건이 아닌 공익사건으로 간주했다. 그 판단이 결국 적중한 것이다. 교수재임용제도라고 하는 법이 알다시피 1975년 독재 시절에 시국관련 교수들을 솎아내기 위해 시행 세칙도 없이 급조해서 만든 법이었다. 이제야 재임용 심사 절차와 내용에 있어서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이다. 재임용제도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1997년 대법원의 판정을 대법원이 스스로 뒤집게 된 초유의 사건이 이뤄지게 됐다. 재임용제도도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된다고 하는 판례, 그리고 이번 고법판결에서는 최초로 본안심리, 내용에 대한 다툼까지 이루어졌던 것, 이건 교육 민주화 차원에서 엄청난 진일보를 이룩했다 할 수 있다.
저널ㅣ이 판결이 이후 재임용제도 관련 사건들에 획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겠다.
김민수ㅣ그래서 나는 이 판례를 선례로 만들기 위해, 이번 법원의 원상회복이라는 뜻을 살리기 위해 더욱 노력하는 것이다. 이게 다음에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한테도 이어져야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새로운 판례 이후 협상 과정에서 당사자가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다음 사람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지금 현재, 재판부에서는 1998년에 내가 재임용 통과를 충분히 했기 때문에 재임용 탈락은 재량권 일탈 남용으로 위법하다란 판단을 한건데, 여기에서 내가 내 몸 편하자고 학교가 제시하는 재임용 절차를 다시 밟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저널ㅣ재임용제도가 악용이 되지 않는다면 존재가치가 있다고 보는지.

김민수ㅣ
교수들의 연구 진작을 유도한다는 면에서나. 취지는 좋다. 문제는 악용되는 순간에 소신 있는 교수들을 밖으로 몰아내는 전가의 보도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아무리 취지가 좋다고 해도 그것이 제도적으로 부실할 때, 또 그 운영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서 엄청난 폭력으로 사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재임용제도로 학생들이 욕하고 냉소적으로 보는 철밥통 교수들이 대학 밖으로 나간 적이 있는가. 서울대는 심지어 성희롱 교수 우대 정책을 쓰지 않나. 나 같은 경우에는 98년 당시 42명 중 한 명 탈락했다. 재임용 제도가 그동안 악용이 될 수 있는 소지가 많기도 했지만, 문제는 운영주체들, 대학 구성원들이다. 재임용 제도가 교수들의 지위나 신분 문제까지 연결됐다고 봤을 때 대한민국의 현재 기득권 지배 구조, 식민권력화된 교수사회에서는 그것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실현되기는 굉장히 어렵다. 특히 사립대학 같은 데선 말도 못할 폭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말도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재임용제도로 아인슈타인도 자를 수 있다고.
저널ㅣ‘식민권력화’라는 표현을 썼는데, 현재 교수사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김민수ㅣ나는 과거사 청산이 되지 못한 사회가 어디까지 와있는지가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데, 그게 일제 잔재가 청산이 안 된 결과다. 그런 식민권력화된 관계가 대학사회에 있는 일제 잔재인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에서 일심으로 대동아공영권 성전에 임하기 위해서, ‘황국신민사관’이라는 걸 만들어냈다. 동양의 유교주의를 교묘하게 제국주의와 결합시켜 천황을 정점으로 모든 국가의 지배체제 관계를 편성한 것이다. 그게 바로 천황제다. 그것이 해방 후에 친일파가 청산되지 않은 결과 가장 숨기 좋은, 은폐하기 쉬운 좋은 양질의 토양에서 성공적으로 알까기한 데가 바로 교육기관이다. 거기로부터 우리 사회 대학의 지배구조 또는 서열화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저널ㅣ98년 재임용 심사 탈락 당시 경제학부 교수였던 정운찬 총장이 다른 교수들과 김민수 교수 복직을 주장한 것으로 아는데, 총장이 된 후 그의 변화를 보는 심경은.

김민수ㅣ정총장은 지금은 마치 이 문제의 해결사인 것처럼 행동한다. 한 인터넷언론 인터뷰를 보니 격노를 했다고. 그동안 자기는 법의 절차에 따르겠다고 이 문제를 조속히 해결하라는 학내 여론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고수해 왔는데 미대가 법의 판결에 따르지 않겠다고 사표 제출한 거에 대해서 아주 격노를 했다고 한다. 경향신문 2월 2일인가 3일자에서는 김민수 교수 일을 해결하는 게 서울대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다. 그랬으면 대법원 판결났을 때 해결을 해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또 그 전에 행정법원 1심에서 이겼을 때도 기회는 있었다. 몇 번의 기회가 있었던 걸 무시하고 결국 여기까지 온거다. 총장뿐만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결국 완장을, 포지션을 잡고 있을 때 그 사람이 하는 일에서 그 사람의 진가가 드러난다. 나는 ‘결리사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자신에게 이로운 일이 왔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그 사람의 본심이 드러나는 거고 그릇이 드러나는 것이다. 사람의 운명이란 건 매순간의 선택이고, 그게 바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그랬을 때 자신이 뭘 선택했느냐에 대한 건 자신이 책임을 져야하는 거고. 과거에 내가 논문에 교수의 친일 행적을 언급하느냐 마느냐는 내 몸 편한 쪽으로 해서 안 쓸 수도 있었을 문제였다. 그런데 나는 그건 학문하는 자세는 아니라고 본다. 나중을 위해 자신의 처신을 미리 생각하기 보다는 서울대의 상황이 이러했을 때는 당연히 써야 되는 것이 본분이고, 그 시기에 해야 할 역할이었던 것이다. 난 그 선택을 했었던 거고. 그 선택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었다. 중요한건. 그런 데에 내가 나를 팔지 않았다는 그 정당성이 내가 6년을 버티게 해준 힘을 준 것이란 사실이다. 만약에 내가, 미대 학장이 논문의 그 부분을 삭제하라 했던 그 때, 삭제했다고 가정해보자. 내가 이렇게 싸울 수 있었을 것 같나.
저널ㅣ대책위원회 학생들에 대한 감회가 남다를 것 같은데.
김민수ㅣ그렇다. 기가 막히는 얘기다. 98년 탈락 당시부터 대책위가 존재했는데, 세월이 지나가면서 졸업하고 나가는 사람도 있다. 지금 학생 대책위는 박사과정에 있는 학생부터 새로 들어온 신입생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학년에 걸쳐있는 동아리같은 구조로 되어있는데, 한때는 단 한 명 남았었던 때도 있었다. 다들 마음은 같이 하지만 실질적으로 동력이 되긴 힘들었던 때. 대책위에게는 너무너무 감사하다. 하지만 나는 늘, 내가 감사해야 할 문제는 아니라고 얘기해왔다. 이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봤기 때문에 학생들도 계속 모이고 가고 하면서 대책위가 이어져온 것이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이번 승소 판결에 대한 기쁨도 다같이 공유할 수 있는거다. 내 사건의 원인 자체가 대학사회의 식민권력화된 부분에 있다고 할 때. 그 식민권력화라는 건 노교수와 젊은 교수 간의 또는 교수와 학생 간의 주정관계로 이뤄져 있는 부분들을 말하는 건데, 나는 대책위 활동에서 학생들과 동지로써의 관계를 맺어왔다. 대책위 학생들은 이 사건이 끝나도 계속 유지될 평생의 동지로 생각하고 있다.
저널ㅣ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김민수ㅣ학생들이 서울대에 오는 이유는 그리 많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단지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대학이라고 하는 것, 저기 가면 멋진 미래가 보장될 것이라고 하는, 몇 가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서울대에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단 여기에 와서 이 학교의 역사라든지 이 학교가 어디로 가야하는가에 대해서는 전체 공동체 속에서, 학생이라고 해서 무관할 수는 없는 책임의식을 가져줬으면 한다. 곶감 빼먹듯이 이 학교를 자동차운전면허학원처럼, 그냥 면허 하나 따 가면 나가서 사회에서는 질주도 맘대로 해도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 사회에서 왜 기득권의 지배구조의 정점으로서 서울대가 왜 욕을 먹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하면서, 자기 스스로 도량을 닦아나갔으면 한다. 이 땅에 태어나서는, 청년실업자가 많다고 하지만 사람이 노력을 하면 먹고 사는 문제는 그럭저럭 되지 않겠나. 그 이전에 우리가 이 땅에서 태어난 것에 대한 의미도 생각해보고, 다음에 자신이 누군가의 선배 또는 어른이 됐을 때 다음에 뭘 보여주고 뭘 가르쳐줄까에 대해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누리는 것만 말고 책임감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