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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으로 사랑이 피어나는 책따세 로고. |
언제부터인가 시간경영법에 관련된 책이나 자기계발서가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오르기 시작했다. 대학생들은 방학을 맞아 책을 읽기 보다는 ‘스펙’에 도움이 되는 토플 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학생들의 손에도 한 두 권의 토익 책이나 고시 책이 들려있다. 우리의 감성에 자양분이 되는 책은 본의 아니게 우리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을 뿐이다. 좋은 대학을 위해 하루 열 시간 이상 책상에서 공부하는 중 고등학생의 사정은 더하다. 좋은 대학을 목표로 한 공부의 결과는 늘어만 가는 참고서와 문제집이다. 그들에게 책으로 따뜻한 감성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은 늘 부족하다. 이런 현실 속에 청소년에게 책을 추천해주고 올바른 독서법을 지도해주고자 하는 교사들이 뭉쳤다. ‘책으로 따뜻한 세상을 만드는 교사들의 모임(책따세)’가 바로 그 곳이다. 뜻을 공유하고 실천한다면 모든 곳이 책따세 겨울의 냄새가 완연히 사라진 따뜻한 토요일, 일산의 한 카페에서 ‘책따세’ 허병두 교사를 만났다. 기자의 조심스런 취재 요청에 ‘멀리서 오셨으니 밥이라도 함께 먹어야죠’하며 점심이나 저녁, 아무 때나 고르라던 그였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의 손에는 책 네 권이 들려있었다. 취재에 도움이 될만한 책따세 활동을 담은 책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취재를 위해 갔던 기자를 위해 가져온 책 선물이었다. 그의 마음에서 봄내음를 맡을 수 있었다. 책따세 창립멤버인 허병두 대표는 “처음에는 7명의 선생님들이 청소년 독서를 위해 일하기 위해 책따세를 만들게 되었다”고 회상하며 “처음에는 그렇게 소규모 교사 모임이었는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점점 모임의 덩치가 커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책따세의 취지는 간단명료하다. 청소년들에게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제시하자는 것. 대학생 또한 청소년이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책따세의 청소년은 1318로 규정해 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청소년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결정적인 시기로 보고 있다. 허 교사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을 배려하는 도서관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도서관은 성인 위주의 도서와 유아 위주의 도서 이분법적으로 나뉘어져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책따세는 청소년을 위한 ‘푸른 도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책따세는 매주 금요일, 신촌에서 모임을 갖는다. 도서관 건립을 위해 매 달 건립 기금 2만원 이상을 내면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된다. 매 주 참여하는 인원이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은 일단 오라”며 기자에게도 “학생은 웹진을 만들면 되겠다. 개강하고 책따세에 찾아오라”고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뜻을 같이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하지만 책따세에 항상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취지에서 벗어나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던 것. 그는 “책따세 도서관 건립 기금을 사적인 용도로 사용하자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책따세 모임을 ‘책을 좋아하는 교사들의 모임’으로 바꾸자는 교사들도 나타났다. 몇 년 전 그런 소모전을 치르면서 책따세를 사단 법인으로 바꿀 수 밖에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문화관광부 산하 사단 법인이지만 책따세는 문화관광부에서 그 어떤 예산 지원도 받은 적이 없다. 청소년들에게 도서관을 지어주고자 하는 사람들이 내는 기금으로만 단체를 운영하고 있다. 신촌 모임뿐 아니라 일산에도 책따세 모임이 있다. 앞으로는 대구에서도 책따세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설명. 그는 “책따세가 되기 위해 필요한 자격같은 건 따로 없다”며 “일산 지부도 독자적인 단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를 두고 ‘느슨한 연방제’라고 설명한다. 독자적으로 활동하되 책따세의 취지에 동의하고 모임에서 걷은 돈의 절반을 도서관 건립 기금으로 본부로 보내기만 하면 책따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청소년을 위한 푸른 도서관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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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따세 대표, 숭문고 허병두 교사 |
책따세 홈페이지에는 책따세를 ‘독서 교육을 실천하고자 하는 교사들의 모임’으로 정의해 놓고 있다. 기자가 왜 ‘교사’라는 단어를 고집하냐고 묻자 그는 “‘교사’라는 단어는 직업적인 교사의 개념이 아니라 가르치면서 아름다워지는 사람을 뜻하는 ‘정신적인 교사’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런 정신적 교사가 모여 푸른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책따세’의 궁극적 목표다. 그는 학교도서관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동시에 학교도서관을 벗어난 도서관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학교도서관 개발에 그보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도 없다. 학교도서관이 주목받지 못하고 있던 날들, 쥐가 나오는 모교의 창고에서 옛 서적들을 뒤지고 독서 프로그램을 기획해 창고를 교실 8칸 정도의 크기로 바꿔낸 사람도 그다. 하지만 도서관을 재정비하고 나니 도서관은 우등생을 위한 열람실이 되어 버렸다. 출판계에서도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좋아진 도서관은 공부 잘 하는 학생을 위한 공간으로 변해버리거나 신간소화 공간으로 이용되었어요.” 그가 씁쓸하게 말했다. 그래서 책따세는 학교도서관에서 벗어난 ‘푸른 도서관’을 최종 목표로 둔다. 그 어떤 제한도 없는, 청소년의 독서만을 위한 도서관이 푸른 도서관이다. 그는 푸른 도서관도 책따세처럼 ‘느슨한 연방제’로 운영될 수 있다고 말한다. 강제적·획일적·상업적이지 않으면서 청소년의 독서를 돕는 도서관은 푸른 도서관이 될 수 있다는 것. 책따세는 운영 초부터 2010년에 푸른 도서관을 건립하기로 계획했다. 계획은 이뤄졌다. “푸른 도서관의 형태는 어떤 것이라도 좋다. 전자 도서관, 스머프형 도서관, 독서카페형 도서관 등 형태는 다양하다”고 밝힌다. 현재는 전자 도서관 건립이 이뤄졌다. 하지만 전자책 회사에 부도가 난 바람에 현재는 지원불가상태. 계획은 수립됐지만 여건 상 정지돼 있다. 올바른 독서활동을 위한 캠페인 책따세에서는 카피기프트 운동을 펼치고 있다. 저작권 공개운동, 카피레프트에서 벗어나 저작권 나눔 운동을 펼치는 것이다. 현재 96명의 저자가 참여하고 있고 44개의 전자책이 등록돼 있다. “책의 내용이나 인터뷰의 내용을 보고 한 저자에게 연락했더니 거절하는 경우가 많았다. 책에 홍보가 될 것이라고 언질을 주니 그때서야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경우에는 그냥 연락을 안 해버린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렵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책따세에서는 여름, 겨울별로 추천 도서 목록도 만들고 있다. ‘권장 도서’는 어떻게 만드냐는 기자의 질문에 강압적인 느낌이 묻어나는 ‘권장’이 아니라 ‘추천’이라는 말을 쓴다며 정정해 주었다. 추천 도서 선정은 8주 동안의 절차를 거친다. 선생님들이 읽다가 학생들에게 권해 반응이 좋으면 다른 학생들에게도 권하는 식의 과정이다. 학생들의 반응이 좋고 교훈을 준다고 생각되면 추천 도서 목록에 올린다. 참여하는 학생 수는 정해져 있지 않고 현재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다. 책따세는 독서인증제를 반대하는 운동도 하고 있다. 현재 독서능력평가제에 들어가 보면 책따세가 링크되어 있다. 더 이상 독서인증제를 비판하지 않는 것이냐고 묻는 질문에 허 대표는 “우리도 이것을 모르고 있었다며 조만간 공문을 보내 링크를 내리라고 해야겠다”고 결연하게 말했다. 그는 독서가 입시를 위한 공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자유롭고 즐거운 독서가 진정한 독서라고 덧붙였다. 작년 여름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책 읽어주기, 시각 장애우를 위한 오디오북 만들기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에 담긴 정신은 ‘더함과 나눔’이다. 그는 “참여하는 학생들은 나누기 위해서도 더하면서 풍족해진다”고 따뜻하게 말하기도 했다. 책따세에는 창의적 체험활동도 반대한다. 창의적 체험활동은 새로운 교육과정에서 봉사활동, 체험활동, 독서교육활동을 아우르는 활동을 말한다. 학생들이 NEIS에 자신이 읽은 도서를 직접 올리고 이것을 입학 사정관제에 활용한다는 제도다. 책따세는 입시와 연관된 이 제도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다른 단체에서는 아직 창의적 독서교육활동에 관한 소식을 모르고 있다”고 허 대표는 말했다. 그는 기자에게 이 내용을 빨리 수첩에 적어두라며 재촉했다. 도서관을 시험공부의 장으로 삼는 대학생들에게 건네는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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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2회 책따세 청소년 전국 독서 캠프에 참여한 학생들과 선생님의 모습. |
허 대표는 도서관은 가장 능동적인 장소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요즘 도서관은 매우 수동적입니다.” 그가 걱정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나 책따세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만들 계획은 없다고 말한다. 책따세는 1318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이고, 대학교 도서관의 변화는 대학 학생처에서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공 도서와 고시 책과 원서에 찌든 학생들에게 ‘스펙을 쌓지 마라’고 한마디로 말했다. 열정을 갖고 살라고 말했다. “기자님은 돈을 벌어서 뭘 사고 싶냐”는 그의 말에 기자는 손을 꼽으며 옷, 가방, 신발, 집, 차 등을 말했다. 10개도 넘지 못했다. 허 대표는 웃으며 “성인들도 돈으로 사고 싶은 것을 말해보라면 20개도 말하지 못한다. 그것들과 인생을 바꿀 것인가”라고 말했다. “나는 독서의 중요성을 묻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독서가 밥 먹는 것과 옷 입는 것과 같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