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의 상아탑’을 뒤로 하고

90년대 대학교를 입학했다가 졸업을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마지막에 정착을 했던 곳은 마산의 중소기계업체였다.기계노동자로 시작하여 해외영업팀장으로 올라선 후 대학졸업장이 간절하여 재입학을 했고, 이번 학기 졸업을 하면서 회사에 복귀했다.예전과 현재의 서울대학교를 비교하자면 지금은 모든 학생들이 공부만 한다는 것이다.상아탑이라는 말에 걸맞게, 대학교는 공부를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기에 올바른 현상일 수 있다.

90년대 대학교를 입학했다가 졸업을 하지 못하고, 이런저런 일들을 하다가 마지막에 정착을 했던 곳은 마산의 중소기계업체였다. 기계노동자로 시작하여 해외영업팀장으로 올라선 후 대학졸업장이 간절하여 재입학을 했고, 이번 학기 졸업을 하면서 회사에 복귀했다. 예전과 현재의 서울대학교를 비교하자면 지금은 모든 학생들이 공부만 한다는 것이다. 상아탑이라는 말에 걸맞게, 대학교는 공부를 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이기에 올바른 현상일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 후배들의 공부 목적이 ‘좋은 연봉의 안정된 직장’이라는 것에 안타까움이 생겨난다. 하지만 치열하게 자신만의 스펙을 연마하는 후배들의 모습들은 오히려 대견하고 멋지기도 했다. 누구도 다른 그 누구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나서주기에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현실이 도래됐기 때문이다. 97호 기획에 나오는 는 말들은, 오히려 내게는 그들의 심정이 더 절망적으로 와 닿았다. 이제는 모두가 힘들어져서 자신의 일이 아니고서는 관심은 물론 여유도 없다. 사회에서 소외된 소수는 물론 소외된 다수에 대해서도 학생들과 시민들의 관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을 텐데, ‘학생들의 도움이 절실하다’ 는 말은 노동자로 살아본 본인으로서 ‘저 사람들 잡을 지푸라기도 없구나’ 라는 느낌이 들게 했다. 저마다의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가끔 노동자의 이익 추구를 위한 것처럼 보이는 투쟁들이 부각되어 일반 사람들에게 보도되기도 한다. 하지만 97호에 실린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의 암담함은 ‘이익 추구’와는 무관한 ‘생존권 확보’를 위한 몸부림이다. 일부 대기업 정규노동직을 제외한 대부분의 노동직의 임금은 매우 낮다. 노동자들은 그것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으며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함께 일했던 노동자 선배들의 첫 번째 소망은 ‘인간 취급 받으며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것’ 이었다. 사회가 많이 힘들어져서 학생, 직장인을 비롯, 노동자들은 물론 중소업체 경영자까지 모두가 살아가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처해 있다. 저마다 힘든 상황에서도 모두들 자신의 이윤 추구에 여념이 없다. 조금이라도 배울 수 있을 때 많이 배워둬야 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더 벌 수 있을 때 벌어야만 앞으로의 험한 사회에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그러하기에 학생으로서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는 것은 현실에 있어서 불가능한 일들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서울대생으로서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요즘 몇몇 정치인들은 국민들보고 “너희들 잘 알지도 못하면, 함부로 말하거나 나서지 말라.” 고 한다. 그리고 국민들의 좌파적 시각을 개선할 수 있기를 바라며 언론정책을 비롯한 ‘대한늬우스’ 같은 납득하기 어려운 갖가지 교육에 힘쓰고 있다. 미리미리 공부해서 논리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교육을 시키는 정치인들이 되거나, 그 교육 대상이 되지 않는 지식인이 되기를 바라며 이만 후배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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