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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이 위쪽인지 알아 보시겠나이까? 거꾸로 뒤집어진 제 모습처럼, 광장의 의미도 거꾸로 뒤집어져 있나이다. |
옥체 미령하시옵니까. 소신은 팔월 초하루부터 백성들이 이 근처에 북적인 탓에 몸이 조금 불편하옵니다. 그 즈음부터 관리들은 제가 디디고 있는 이 곳을 ‘광화문광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하였지요. 쇠귀신들이 다니는 것만 보다가 오랜 만에 백성들을 가까이서 보니 반가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나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괴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면, 광장은 넓은(廣) 마당(場)이라는 뜻이지요. 하다못해 넓지는 못해도 백성들이 모일 수는 있어야 하옵니다. 모여서 의견을 나누고 목소리를 내는 곳이 광장이니 말이옵니다. 헌데 이 곳에서 백성들이 모이기 위해서는 한성부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이다. 거기에 쌀 아홉 섬과 맞먹는 돈까지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허락을 받고 돈을 내더라도 마음껏 소리 낼 수 있는 것은 아니옵니다. 한성부의 판단에 따라 허락이 무효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옵니다. 이런 일은 비단 경복궁 앞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니, 한성부 앞에 잔디를 심어 놓은 광장 역시 쇠귀신들로 둘러싸여 있사옵니다. 백성들이 다가가기 어려우니 이를 어찌 광장이라 할 수 있겠나이까. 심지어 청계천 위에도 조그마한 공터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광장이라 부르더이다. 허나 사람이 억지로 만든 광장에 백성의 목소리가 모일 수 있을 리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한성부는 광장에 잔디를 심고, 소라 모양의 쇠기둥을 세워 백성들을 호도하고 있사옵니다. 백성들은 그곳을 광장이 아닌 놀이터쯤으로 여기니, 한성부가 광장을 광장답지 않게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한성 판윤인 오세훈이라는 자는 “광장을 조성하며 역사성을 가장 중시했다”고 말하였다 합니다. 하지만 꽃과 물줄기로 채워 놓은 광장에는 역사가 없으니 통탄을 금할 길이 없나이다. 아마도 한성 판윤은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꽃과 물줄기가 역사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나 보옵니다. 역사는 광장에 모인 백성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않나이까. 일제를 무찌른 것도, 독재자를 물러나게 한 것도 모두 광장의 힘이니…. 하오나 모두에게 열려있어야 할 광장은 지금 굳게 닫혀 있나이다. 소신 충무공은 백성들의 목소리가 사라질 광장을 위해 왜란에서 피 흘린 것이 아니었나이다. 광장의 주인은 소신이옵니다. 그리고 당신이시고, ‘대한민국’ 백성이옵니다. 청계 이년 구월 모일에, 충무공 이순신 올림. * ‘쇠귀신’은 자동차의 옛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