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족한 복지예산, 불투명한 장애연금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0년 총 복지 예산은 80조 3천억 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이 중 장애인 복지 지원 규모도 함께 증대되며 7년여 간을 끌어온 장애연금법 역시 입법이 예고됐다.그러나 장애인 복지 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심상치 않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10년 총 복지 예산은 80조 3천억 원 이상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이 중 장애인 복지 지원 규모도 함께 증대되며 7년여 간을 끌어온 장애연금법 역시 입법이 예고됐다. 그러나 장애인 복지 예산을 둘러싼 논란이 심상치 않다. 2010년 예산안과 장애연금법에 반대하는 장애인 단체 연대들의 활동이 계속되고 있으며 정부와 장애인단체의 입장 차는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장애인 단체, 예산 확보 위한 농성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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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단체 19개는 9월 장애인복지예산확보공동행동에 돌입하고 인권위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 11층에는 9월 14일부터 장애인단체 활동가들이 자리 잡고 있다. 19개 장애인 단체들이 2010년장애인예산확보공동행동(공동행동)을 구성, 인권위 점거 농성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공동행동에 참가하고 있는 장애인 인권 활동가 최강민 씨는 “현 정부의 기만적인 장애 복지 예산을 알리고 바로잡고자 공동행동에 참가하게 됐다”고 말한다. 지금은 공동행동에 참가한 장애인 단체들이 돌아가며 농성 장소를 지키고 있는 중이다. 공동행동은 향후 예산안 결산과 국회 처리 일정에 따라 다양한 활동을 통해 예산안 반대 목소리를 높일 계획이다. 예산안 확보를 위한 공동행동의 배경에는 예산안 책정을 둘러싼 정부와 장애인단체의 극명한 시각 차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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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인권 활동가 최강민씨가 2010년 장애 복지 예산안의 부당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선 중증장애인기초장애연금법(장애연금법)과 맞물려 중증장애인 장애수당의 폐지가 문제시 되고 있다. 장애수당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의 18세 이상 등록 장애인’에게 장애와 소득의 정도에 따라 생활 영위 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문제는 장애인 단체가 장애수당을 장애연금과는 별개의 기초생활보장제도로 보는 데 반해 정부는 장애수당과 장애연금을 중복되는 지원으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즉, 장애연금을 받게 된 사람은 장애수당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다. 기획재정부는 장애연금의 수령자에 해당하는 중증장애인의 장애수당을 2010년 예산안에서 폐지했다. 최강민 씨는 중증장애인 장애수당 폐지에 대해 “장애연금이 장애수당을 대체하는 형태로 지급될 경우 도저히 장애인의 삶이 나아질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예산안에 대한 논란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 중 하나는 ‘장애인 이동권’에 관련된 문제다. 이와 관련된 항목은 LPG 지원금과 저상버스 도입 예산이다. LPG 지원금의 경우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였으나 재정부담의 증가, 수급자와 비수급자 간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2010년부터는 전면 폐지된다. 삭감 금액은 1100억 원 가량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대표 박경석 씨는 “이 금액이 장애연금 등의 정부 홍보 사업에 투입 돼 결국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하며 LPG 지원금의 필요를 주장했다. 박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LPG 지원금은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에 대한 철학적 관점의 문제다.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등한 이동권을 보장받고 있지 않은 우리 사회의 제도를 반성해야 한다.” 또 하나의 이동권 문제는 저상버스 확보 예산안이다. 공동행동에서는 정부가 법으로 정해진 ‘교통약자 편의 증진 5개년 계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5개년 계획에 따르면 2011년까지 전국 버스의 50%가 저상버스로 교체돼야 한다. 그러나 교체 예산을 둘러싼 각 계의 입장은 제각각이다. 기획재정부에서 확정한 안에 따르면 올해 450대를 도입하기 위해 225억원이 책정 돼 있지만 공동행동에서는 3,713대 도입을 위한 1,856억원을 제시한다. 예산안 가운데 증액이 계획된 항목에서도 장애인 계와 정부의 발표는 입장 차이를 보인다. 활동보조서비스예산의 경우 내년도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받을 대상은 정부 집계로 27,000여명으로 추산돼 있다. 그러나 박 대표는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대상자가 이미 25,000명을 넘어섰고 매달 천 여명 정도의 증가 속도를 보이고 있다”며 “내년도 서비스 대상자는 35,000여명에 달할 것인데 현재의 예산 증액은 이 자연 증가 속도조차 따라가지 못하는 수준”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예산의 절대 금액은 증가할지라도 실질 서비스 측면에서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논란 속 입법예고 된 장애연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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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연금법은 공투단에서부터 입법발의, 행정부 각 부서를 거치며 축소돼 왔다.

장애연금법은 장애로 인한 소득감소를 보완해주는 복지 예산 법률로서 지난 정부 초기부터 끊임없이 요구돼 왔다. 장애인 단체들은 2007년 장애인연금법제정공동투쟁단(공투단)을 구성해 장애연금법 제정을 요구해 왔다. 이명박 대통령은 23차 라디오 연설을 통해 ‘일하는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일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장애연금을’이라는 입장을 밝혀 이러한 요구에 응답했다. 그러나 7월 장애연금법이 입법예고 된 뒤 장애인단체들은 거센 반대 성명을 발표했다. 장애인단체가 현 장애연금법 제정안에 반대하고 입법을 저지하려는 이유는 제정안이 연금 금액, 예산 책정 방식, 수령 대상 등에서 장애인단체의 기존 요구사항에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강민 씨는 “장애연금이 기존의 중증장애인 장애수당 폐지와 맞물려 실질적으로 1,2만원만을 추가 지급하면서 마치 장애인 생계를 보호하는 연금으로 포장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가 실질적인 연금 예산을 확보하지 않은 채 장애 복지가 개선됐다며 홍보만 하는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실제 공투단이 기존 장애연금으로 제시한 금액은 약 25만 원 선인데 비해 기획재정부가 확정한 안은 약 13만 원 선에서 연금액을 차등적으로 정하고 있어 차이를 보인다. 박경석 대표는 “기본급여와 부가급여를 구분 하는 연금액 책정 방식에 큰 문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연금안에는 법률로서 정해지는 9만 1천원의 기본급여가 있고, 여기에 추가로 부가급여가 주어지는데 이 부가급여라는 것이 대통령령으로 행정부 자의에 의해 조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예산 책정 방식이 “현실에 부합하는 수준의 연금액도 보장할 수 없으며, 행정부의 의도에 따라 고무줄 연금을 낳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공투단은 기본급여와 부가급여로 나뉘지 않는 최저임금의 25%수준을 정률 연금으로 입법화 할 것을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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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장연 대표 박경석씨는 장애연금액을 매년 최저임금의 25%수준으로 입법화할 것을 주장한다.

기초장애연금법에서 금액 수준과 책정 방식 이외에도 문제가 되는 것이 연금 수령 대상이다. 현재 정부의 연금안은 장애 등급 1,2,3급에 해당하는 중증장애인만을 수령 대상으로 한다. 반면 공투단은 장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 대표는 “경증장애인이라고 해도 만성적인 실업상태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하며 경증장애인이 연금에서 배제되는 것이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러한 입장 차에 대해 조흥식 교수(사회복지학과)는 “기본적으로 경증과 중증장애인을 나누는 구분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상적인 장애인 복지를 위해서는 “장애정도에 따른 지급이 아닌 기본적인 연금을 지급하고, 장애 정도에 따라 추가 지원이 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조 교수는 “한 번에 증액될 수 있는 복지부의 예산에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예산 부족 자체가 경증장애인을 배제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도 진단했다.고질적 예산 부족 해결이 선결과제 장애인 단체와 정부, 언론들은 2010년 예산안과 장애연금법을 둘러싼 논란의 근본적 문제로 예산의 한계를 지적한다. 박경석 대표는 “저상버스 예산의 경우 기획재정부의 내년 계획은 약 230억 원 정도로 공동행동의 요구액인 1800억 원과 1500억 원 이상의 차이가 난다. 실질적으로 정부가 약속한 수준의 복지 개발을 고려한다면 230억원 증액이 아니라 1500억원의 감액이라고까지 볼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활동보조서비스 예산 역시 정부의 216억 원 예산 증액과 공동행동의 1280억 원 요구에서 천억 원 정도의 차이를 보인다. 박 대표는 “현재의 몇 배 수준의 예산 증액을 요구하는 것이 비장애인의 시선에서 터무니없이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이는 지금까지 장애인 복지 예산이 얼마나 터무니없이 낮은 수준에서 책정돼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이라며 현 예산 상황의 열악함을 역설했다. 조흥식 교수는 “매 해 반복되는 예산안 논란은 결국 복지부 예산, 그 중에서도 장애인 예산의 절대적 부족에서 기인한다”며 복지 예산 확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 예산은 전체 GDP의 0.28%수준으로 OECD 평균인 2.73%의 10분의 1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조 교수는 “정부의 복지 예산이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중 대부분이 사회보험과 공공부조에 투입되는 금액이다. 장애인, 노인, 아동 복지와 같은 사회복지서비스에 지원되는 금액은 오히려 실질 감소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조 교수는 복지 예산 확보를 위해 “정부가 감세 정책을 통해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려는 노력 대신에 오히려 증세를 통한 분배에 집중함으로써 복지와 일자리 창출을 추구해야한다”고 말했다. 그는 덧붙여 “불로소득과 지하경제의 탈세를 강력 단속할 것”을 주장했다. 한국의 지하경제 규모는 OECD 국가들 중 3,4위에 해당한다. 그는 “대규모의 부당 탈세만 엄중 단속해도 복지 예산에 필요한 금액을 상당 부분 확보할 수 있음에도 정부가 근절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공동행동의 최강민 씨 역시 장애인 권익을 위해 복지 예산안 확보의 중요성을 주장한다. 그는 “우리나라도 좋은 취지의 복지 정책들이 있지만 실질적인 예산 확보가 없으니 장애인 권익에 대한 논의들이 공허할 뿐이며 이는 장애연금도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장애인 복지를 보는 인식 개선돼야 정부 예산의 확충에 추가적으로 지적되는 것은 복지를 바라보는 정부의 패러다임 자체가 변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조흥식 교수는 “장애인 복지는 현재의 소비가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설명하고 “정부가 현 정권에서 당장 효과를 볼 수 있는 경제 정책 뿐 아니라 수 년 후부터 긍정적 효과를 낼 수 있는 장기적 복지를 계획해야 한다”고 방향성을 제시했다. 박경식 대표는 “장애인 인권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어울려 살아가기 위한 제도들은 반드시 갖춰져야만 하며 이러한 방향 속에서 예산안 논란이 있는 것”이라며 시민사회의 공감을 촉구했다. 또한 박 대표는 예산안의 최종 책임자로서의 정부의 책임있는 태도를 요구했다. “정부가 말과 행동이 다른 행태를 보이는 것은 복지를 장애인의 인권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친서민·친복지’라는 정치 슬로건으로써 장애인 복지를 필두로 이용하기 때문”이라는 비판이다. 최강민 씨는 대학생들이 주변 사회를 둘러볼 것을 당부한다. 그는 “선진국에서는 이미 19세기에 장애인 시설에 대한 인권 문제가 제기 돼 지역사회에서 장애인들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제도들이 구축됐음에도 한국에서는 21세기 현재에도 5만여 명의 장애인들이 시설에 갇혀 있다”고 현실을 개탄했다. 최강민 씨는 “장애인 복지가 바로 서려면 일반 시민과 학생들의 관심이 필요하다”며 “학교 시설에서 장애인이 겪을 어려움, 저상 버스가 다니지 않는 지역의 부당함 등을 인식해 달라”며 말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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