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계절학기?

기나긴 방학의 달콤한 도피처, 계절학기 인기 과목인 ‘인간과 종교’ 수업 장면.이번 하계 계절학기에도 개설이 결정되어 150명의 정원을 모두 채웠다.“너 이번 여름방학에 뭐해?” “나 그냥 계절학기 들으려고.”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요즘 캠퍼스 곳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대화다.1984년도 30과목 30강좌, 수강인원 597명으로 시작한 하계 계절학기는 2009년 현재 376강좌로 양적으로 크게 팽창해왔다.

기나긴 방학의 달콤한 도피처, 계절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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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과목인 ‘인간과 종교’ 수업 장면. 이번 하계 계절학기에도 개설이 결정되어 150명의 정원을 모두 채웠다.

“너 이번 여름방학에 뭐해?” “나 그냥 계절학기 들으려고.” 여름방학이 다가오는 요즘 캠퍼스 곳곳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대화다. 1984년도 30과목 30강좌, 수강인원 597명으로 시작한 하계 계절학기는 2009년 현재 376강좌로 양적으로 크게 팽창해왔다. 2001년에는 계절학기의 수요가 크게 늘면서 기존 5주였던 강의 기간을 8주로 연장했고, 수강 신청 가능 학점도 6학점에서 9학점으로 확대했다. 2007년부터는 학생들의 요구로 동계 계절학기도 실시됐다. 방학 동안에 계절학기를 수강하는 학생들의 수강 이유는 다양하다. 졸업을 앞둔 김경찬(사회 03) 씨는 “계절학기 수강을 통해 부족한 졸업 학점을 채우려고 한다”며 “방학동안 마냥 쉬는 것 보다는 수업을 듣는 것이 효율적일 것 같다”고 말했다. 임지수(교육·윤리교육 09) 씨는 “계절학기 수강을 통해 나의 가치를 높이고, 학교에 지속적으로 나올 유인으로 삼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학사과 계절학기 담당 황수진 사무관은 “계절학기는 기존 정규학기의 보조수단으로 시작됐다. ‘대학국어’나 ‘대학영어’, 핵심교양 같은 졸업 필수 과목을 들어야 졸업이 가능한 예비졸업생들과 제2전공 의무화가 적용된 학생들에게는 계절학기가 효과적일 것”이라며 그 의의를 설명했다.전임교수 비율도 낮고 교양에 치우쳐 그런데 계절학기가 시작하기도 전에 학기 중에 실시된 수요조사 반영 문제로 시끄럽다. 학생들이 계절학기 개설을 희망한 과목들이 아예 개설되지 않은 것이다. 실제로 계절학기 수요조사에서 1위를 차지한 ‘영어(법학)’와 2위를 차지한 ‘민법총칙’은 개설되지 않았다. 황수진 사무관은 “수요조사가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았고 학생들의 참여도 적었다. 한 과목에 투표한 학생이 많아봤자 20명 정도인데 그 결과에 따라 강의를 개설하기에는 한계가 따르지 않겠냐”고 해명했다. 현재 계절학기의 개설은 각 단과대학의 학과 단위에서 개설 강의를 결정하고 이것이 단과대학의 학장의 승인을 받으면 학사과에서 개설하는 구조다. 사범대학 김인수 사무관은 “수요조사 결과를 단과대학 행정실에서 각 과로 보내긴 하지만 단과대학 차원에서 강의 개설을 강요할 수 없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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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 중에 실시된 계절학기 수요조사의 결과. 그러나 몇몇 과목들은 높은 순위를 차지했으나 아예 개설되지 못했다.

실제로 계절학기 강의 개설은 수요조사의 결과보다는 강의할 교수가 있는지의 여부로 결정된다. 교원들이 계절학기 강의 개설을 희망하지 않으면 강의는 개설되지 않는다. 방학동안 재충전과 연구, 해외 출장 등으로 시간을 보내려는 전임교수들은 계절학기의 개설에 큰 유인이 없다. 뿐만 아니라 계절학기의 강의 시간이 전임교수가 채워야하는 강의 책임시간으로 포함되지 않는 것도 기피의 이유다. 때문에 전임교수가 담당하는 것이 의무인 핵심교양은 담당할 교수가 마땅치 않아 올 하계 계절학기에는 12개의 강좌만 개설됐다. ‘문학과 예술’, ‘역사와 철학’, ‘사회와 이념’ 분과의 과목은 개설됐으나 ‘자연의 이해’가 분화된 ‘자연과 기술’과 ‘생명과 환경’ 분과에서는 한 과목도 열리지 않았다. 전체 하계 계절학기 교양과목이 171개인 것을 감안하면 핵심교양 과목은 전체 교양과목 중 7%에 불과하다. 기초교육원 이향숙 사무관은 “핵심교양을 들어야 졸업이 가능한 학생들을 위해 각 분과별로 강의를 하나씩이라도 개설하려고 노력하지만, 맡아줄 교수를 찾는 것도 사실 어렵다”며 “교수가 강의를 하겠다고 해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이 계절학기 핵심교양의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향숙 씨는 “그렇기 때문에 저번 하계 또는 동계 계절학기에 강의가 개설됐다고 이번 계절학기에 강의가 또 개설될 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전했다. 전공과목이 개설되기 힘든 것도 마찬가지다. 2003년 서울대학교에서 실시된 ‘계절학기 운영 개선방안에 관한 연구’(계절학기 개선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전임교원 중 71.4%가 “방학 중에도 질 높은 수업을 요구하는 서울대 학생들을 위해 전임교수 담당 비율을 상향시켜야 한다”고 응답했으나 기타 의견을 통해 “8주로 연장된 하계 계절학기는 일반 학기 사이의 제3의 학기”라며 계절 학기 개설의 부담감을 표했다. 2002년에는 하계 계절학기에 개설된 300개 과목 중 전공과목이 11%인 37개를 차지해 정규학기의 전공과목 개설률의 5%에도 미치지 못했다. 2009년 하계 계절학기도 개설된 전체 376과목 중 전공과목 41개인 10.9%로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학기 중에 실시한 계절학기 수요조사에서 1위부터 10위까지의 과목 중 6과목이 전공과목인 것과 대조된다. 더불어 학사 행정 전산화 이후인 1999년부터 2002년 까지 4년 연속 전임 교수 담당율은 29%에서 16%로 꾸준히 줄어들었다. 이번 하계 계절학기에도 전공 필수 과목인 ‘미시경제이론’, ‘거시경제이론’, ‘경제사’, ‘경제통계학’을 포함한 경제학부 개설 7개 과목이 모두 시간강사에게 맡겨졌다. 계절학기가 일반교양 과목와 시간강사가 개설한 과목에 치우치는 현상이 학생들의 선택권을 침해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익명을 요구한 한 학생(국사 06)은 “핵심교양과 전공이 다양하게 개설되지 않아 선택하기도 곤란했고, 얼마 되지 않는 핵심교양과 전공에 학생들이 몰려 수강신청도 매우 어려웠다”며 일반교양 과목에 치우친 강좌 개설에 불만을 토로했다. 수업의 질도 보장하기 어려워 사정이 이렇다 보니 얼마 열리지 않는 졸업 필수 과목에 예비졸업생들과 방학 때 수업을 들으려는 재학생들이 몰리고 있다. ‘사회와 이념’ 분과에 유일하게 개설된 심리학과 ‘행복의 과학적 탐구’는 정원을 60명 이상으로 늘리지 않는 핵심교양임에도 100명의 정원을 받았다. 학생들의 수요를 반영하지 않은 강의 개설 때문에 개설된 강의에 수강생 수를 크게 늘리는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50명이 정원이었던 생명과학부의 ‘생물학’ 강의 역시 초안지를 모두 받아 265명의 수강생을 받았다. 생명과학부의 강호영 사무관은 “지금 강의를 맡아주신 교수도 명예교수고, 더 이상 강의를 맡아줄 교수를 찾지 못해 ‘생물학’ 강의을 새로 개설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생명과학부의 졸업 필수 과목인 만큼 초안지를 받아주지 않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생물학’ 수업은 자연과학대학의 대형 강의실로 자리를 옮겨 진행된다. 중형 강의실에서 진행되어야 할 수업이 대형 강의실로 옮겨져 수반되는 강의 형태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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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학교 학생 커뮤니티인 ‘스누라이프’에서 듣고 싶었던 계절학기 과목을 신청하지 못한 학생들의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무조건적으로 학생들의 수요에 맞추기도 어렵다. 강호영 사무관은 “저번 동계 계절학기 때도 ‘생물학’ 강의을 수강 신청한 학생이 270명에 달해 새로운 강의를 개설했지만 학생들이 수강료를 내지 않거나 수강신청을 취소해 결국 140명만 남았다”며 “아무리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많이 해 놔도 얼마나 수업을 취소할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어서 강의를 새로 개설하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대학영어’도 마찬가지다. 영어영문학과는 2008학년도 하계 계절학기에 ‘대학영어’를 듣기위한 초안지가 정원 240명과 거의 버금가는 222명 이여서 추가로 8반을 개설했다. 그러나 많은 수의 학생들이 수강을 중도 포기해 수업 진행이 어려웠다. 대학영어주임 김명환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마이스누 공지를 통해 ‘학생들이 계절학기의 대학영어 강의가 정규학기보다 부담이 덜하다고 판단하여 선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고, 정규학기의 강좌가 대량 폐강되는 부작용 등이 생길 수 있다’며 ‘계절학기 대학영어 강의를 추가로 개설하지 않겠다’고 단언했다. 8주 내외의 짧은 수업 기간이 계절학기 수업 내실화의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다. 지난 계절학기에 기계항공공학부 전공 수업을 수강한 채정헌(기계항공 05) 씨는 “짧은 기간 동안 강의를 마쳐야 해서 진도 나가는데 급급했고, 시험에 쫓기는 듯한 기분이 들어 수업을 듣는 것 같지가 않았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계절학기 개선방안 설문에 응답한 한 교수 역시 “계절학기가 부실해 지는 것을 막기는 어렵다. 교수자나 학생 모두에게 벅찬 일이었다. 계절학기의 내실화를 위해서는 12주 정도로 기간을 연장하거나, 정규학기 개설 과목과는 다른 ‘집중 코스’를 개설해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실제로 지난 동계 계절학기 때 ‘자연과학 글쓰기’를 개설한 담당 교수는 ‘자료조사가 많이 필요하고 과제가 많은 글쓰기 수업 특성상 단기간인 계절 학기에 강의를 개설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이번 하계 계절학기부터 개설을 중단했다. 졸업예정자들을 위해 수강신청을 제한하여 ‘대학국어’를 개설하는 국어국문과 역시 공지를 통해 ‘매일 강의가 진행되는 계절학기에는 정규학기보다 교수와 학생 모두에게 강의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며 되도록이면 재학생들은 수강 신청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적절한 보완책 필요하나 여전히 제자리걸음 본부 측에서는 2003년에도 ‘계절학기 개선방안’ 등의 보고서를 기획하며 계절학기 수업의 질을 개선시키기 위한 필요성을 제기했으나, 계절학기의 상황은 특별히 나아진 게 없다. 계절학기의 수업환경이 열악하다는 것도 고질적인 문제점이다. ‘계절학기 개선방안’ 따르면 교원 중 57.1%는 “계절학기 수업 환경이 열악하다”고 대답했으며, 그 중 “냉방시설 확충이 필요”하다고 대답한 교원이 80%, “기자재구비가 필요”를 답한 교원이 13.3%였다. 보고서에 따르면 ‘강의실 낙후 문제는 계절학기 때 특히 문제가 되고 있다’며 ‘학교 시설의 개선은 이후 정규학기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학생들에게 좋은 교육환경으로 환원되므로 투자를 아끼지 말고 점차 개선시켜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으나 다른 현안에 밀려 시설 면에서 이렇다 할 발전은 이루지 못했다. 대표적으로 사범대학 9동은 이번 하계 계절학기 수업이 개설될 예정이나 에어컨 설치가 안 돼 있어 불편을 겪는 강의동 중 하나이다. 본부는 보고서를 통해 점차 전임교수 강의를 확충시켜 정규학기와 같은 질을 유지하기 위해 교수들과 학생을 위한 행정 조치와 수업 환경을 개선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계절학기에 전임교수들의 강좌 개설을 유도하기 위해 ‘계절학기 담당시간에 대한 책임시간 인정’, ‘연구학기 확대’, ‘교원 처우 개선’등을 제시했으나 특별이 변화된 것은 없다. 6년이 지난 지금에도 계절학기 담당할 교수를 찾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보고서는 특히 ‘계절학기 담당시간을 책임시간으로 인정’함으로써 ‘서울대생들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켜야만 한다’고 제언한다. 황수진 사무관은 “여전히 교수들의 계절학기 책임시간 인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고, 학생들이 낸 수업료의 일부를 교수에게 강의료로 지불하는 방식으로 계절학기가 진행된다”고 설명했다. 교수들의 계절학기 기피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기초교육원 이향숙 사무관은 “계절학기 강의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구조상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계절학기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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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학기 과목들의 질적 개선을 위해서는 대학본부의 노력과 관심을 바탕으로 한 제도적 개선이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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