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은 어떤 이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다. 치기 어린 마음에 나왔던 아이들과 달리, 정말 돌아갈 곳이 없어 머무는 아이들도 있다. 이들을 보호하는 유일한 공간인 쉼터는 최장 2년까지 울타리가 돼준다. 그 이후에 아이들은 혼자 살 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 은 중장기쉼터와 대안학교에서 자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가출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담아 보았다. 비즈공예 통해 희망 찾는 ‘고양열린쉼터’ 아이들경기도 고양시 탄현동에 위치한 ‘고양열린청소년쉼터(고양쉼터)’는 조금 특별하다. 아이들은 이곳에서 일종의 ‘가내수공업’을 하는 중이다. 가정집처럼 꾸며진 2층 거실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열심히 구슬을 꿰고 있다. “비즈공예를 하고 있어요. 원래 2시간씩 걸리는데 전 30분 만에 벌써 끝냈어요.” 올해 19살인 미혜가 자신이 만든 비즈공예 목걸이를 보여주며 자랑한다. 아이들이 만든 공예품은 고양시 농협 하나로마트와 온라인매장(www.ggumijune.com)에서 판매된다. 판매수익은 그리 많지 않지만 다들 배우는 과정에 의의를 둔다. 비즈뿐만 아니라 천연비누, 칠보공예 제품도 있다. 모두 아이들이 직접 만든 것들이다. 여자 청소년을 위한 쉼터인 이곳은 2002년부터 ‘레인보우 스쿨’이라는 일종의 대안학교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처음 아이들을 모아놓고 일렬로 줄을 세워보니 머리색이 빨간색, 노란색 등 제각각이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비즈공예를 시작하게 된 것은 레인보우 스쿨 직업교육의 일환이었다. 20살이 되면 자립 준비를 해야 하는데, 변변한 자격증하나 갖추지 못하게 될까봐 걱정이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것이 비즈·칠보·풍선아트 등 강사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프로그램의 제공이었다. 손재주가 있는 아이들은 곧잘 배웠다. 일을 하면서 용돈을 받게 되는 것도 좋았지만 공예를 통해 자연히 심리치료도 됐다. 아이들은 “비즈공예를 하면 집중을 하게 되니까 산만한 게 없어지고 성격도 좋아지는 것 같다”고 말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작품은 국회의사당이나 백화점, 인사동 등지에서 전시회를 가지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였던 가출청소년들이 무언가를 해냈다는 데 큰 의미가 있었기에 호응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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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에게서 비즈 공예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고양쉼터 아이들. |
고양쉼터에서 제공하는 프로그램은 공예 외에도 아이들의 특성만큼 다양하다.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못 견딘다는 19살 혜진이는 비즈공예 대신 밸리댄스 시간을 손꼽아 기다린다. 매주 한 번 수업을 통해 틈틈이 가꾼 춤 실력 덕분에 각종 행사에서 축하공연 ‘러브콜’을 받기도 한다. 아이들은 서울시청 앞에서 가수 윤도현과 공연을 한 적도 있다며 자랑스레 얘기했다. 가정에서의 방임과 폭력으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지금처럼 마음을 열게 된 것은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가출청소년들이 잠시 머물렀다 떠나는 단기쉼터와 달리 대부분이 6개월 이상 생활하는 이곳의 경우 소속감과 안정감을 주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래서 고양쉼터가 선택한 길이 아이들과 한 건물에서 하루 종일 함께 생활하는 것이었다. 사회복지사 양민영 씨는 “보육원의 경우는 근무자들이 3교대를 하곤 해요. 그러면 소속감을 느끼려다가도 선생님이 바뀌어 있으니 당황스러워하죠”라고 말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고양쉼터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아이들 곁에 다가갈 수 있었다. 아이들은 쉼터 원장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른다. 명절 때도 집에 못가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챙겨주고, 우울할 틈 없게 만든 사람도 엄마였다. 이곳에 들어와 어떤 점이 제일 좋으냐는 질문에 혜진이는 “여기 있으면 가족이 있다는 게 제일 좋아요. 집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다 받을 수 있으니까요”라고 대답했다. 쉼터에서 아이들이 얻은 것은 가족만이 아니었다. 직업교육 프로그램을 통한 자신감 향상도 큰 변화였다. 2007년 대학에 입학해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고 있는 21살 해주는 고양쉼터의 큰 자랑거리다. 고양쉼터가 설립된 이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진학한 경우가 처음이기 때문이다. 해주는 “예전의 저였다면 고등학교만 졸업하는 게 인생의 전부일거라 생각했을 거예요. 포기도 많이 했었죠.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라고 말한다. 해주의 꿈은 당차다. “청소년 복지 쪽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요. 그 친구들의 아픔이 뭔지 아니까, 더 잘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요?” “공정무역 커피로 바리스타의 꿈 키워나갈 거예요” “처음엔 의무감으로 시작했지만, 이젠 진심으로 커피에 대해 알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수진(19)이는 경력 6개월 차 초보 바리스타(Barista: 커피를 만드는 전문가)이다. 지난해 YMCA에서 제공하는 ‘바리스타 교육 프로그램’을 마친 그는 올 9월 가톨릭대학교에 개업할 커피전문점에서 일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지난 3년 간 생활했던 곳은 서울 구로구의 ‘성심디딤돌 청소년쉼터(디딤돌쉼터)’. 가출청소년의 자립과 교육을 도와주는 중장기쉼터이다. 현재 수진이는 언니와 함께 살고 있지만 일주일에 한번 정도는 함께 생활했던 수녀님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현재 생활인원이 4명인 작은 규모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가족 같은 분위기다. 수진이를 포함한 5명의 아이들이 바리스타 교육을 받게 된 것은 디딤돌쉼터의 김정미 수녀에게서 나온 생각이었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 대부분이 미성년자이고, 부모님 동의서를 받지 못해요. 게다가 검정고시 출신이다 보니 제대로 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 YMCA에서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왔고, 창업할 사람들에게 바리스타 교육을 시키는 프로그램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아이들에게 한 번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죠.” 커피 만드는 일은 금세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처음엔 교육장에 가기 싫어했던 수진이도 차츰 실력이 늘다보니 일에 재미를 붙이게 됐다. 교육을 받고 쉼터로 돌아와서 수녀님과 친구들에게 자신이 만든 커피를 맛보이기도 했다. 이제는 커피와 함께 곁들일 다과로 무엇을 만들어 판매할지 고민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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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빵교육의 일환으로 커피와 잘 어울리는 머핀을 만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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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 모습. 커피 한 잔을 만드는 손길이 조심스럽다. |
최근 디딤돌쉼터 아이들의 새로운 관심사는 곧 개업할 커피전문점의 상호를 짓는 일이다. 가장 많은 표를 얻은 이름은 ‘하이힐 신은 커피’다. 특이한 명칭에 보는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아이들은 “하이힐을 신었을 때 자신감이 생기는 것처럼 우리가 만드는 커피에도 자신감이 묻어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름을 지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김정미 수녀의 생각은 반대다. “하이힐을 신지 않아도 스스로의 존재만으로 세상을 자신 있게 살아가야한다”고 강조한다. 김정미 수녀는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은 지금 결과를 보려는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그는 “위기 청소년들에게는 일단 삶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 중 두 가지가 교육을 받고 기술을 익히는 거예요. 이것들이 없으면 다시 사회의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되죠. 바리스타 교육도 마찬가지에요. 새로 만드는 커피전문점이 처음부터 많은 수익을 낼 거란 생각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수익성이 아니라 직업훈련이에요. 분명 새로 생기는 커피전문점은 아이들이 자립하기 전 사회생활을 준비하는 하나의 ‘디딤돌’이 될 수 있을 거예요”라며 말을 맺었다. 가출청소년, ‘청소년 잡지’를 만들다 ‘시식코너’, 언뜻 보기엔 요리잡지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는 현재 ‘들꽃피는 학교(들꽃학교)’에서 야심차게 밀고 나가고 있는 청소년 잡지의 이름이다. 들꽃학교 아이들이 직접 제작하며, 가출·성 문제 등 십대 때 누구나 하는 고민들을 담아 하나의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목표다. 들꽃학교는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도시형 대안학교다. 가출 청소년이나 탈학교 청소년을 대상으로 학습과 직업교육을 동시에 제공해주는 곳이다. 들꽃학교에 입학한지 2년째인 18살 민정이는 올 3월부터 ‘시식코너’ 제작에 참여하는 인턴 일을 하게 됐다. 많은 액수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월급도 받는다. 민정이가 요즘 하는 일은 자신과 같은 가출청소년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얘기를 듣는 것. 잡지 창간호의 주제로 가출청소년의 얘기를 다루게 됐기 때문이다. “우리의 주 독자는 청소년 혹은 청소년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에요. 넓게 보면 가출한 아이의 부모님도 될 수 있어요. ‘내 아이가 왜 가출을 했을까’라는 질문에 대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민정이를 비롯한 잡지제작팀의 세 사람은 수많은 가출청소년을 만나고 다녔다. 아이들은 ‘가출’이라는 하나의 단어로 묶이긴 했지만 그 사연도, 경험담도 천차만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안산에서 제주도까지 간 친구도 만났다고 한다. 집은 나왔는데 잘 곳이 없어 산에서 흙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하룻밤을 보냈다는 얘기를 들을 땐 마냥 웃을 수만은 없었다고 했다. 아이들은 잡지 제작에 하루를 꼬박 쏟는다. 그 자체가 하나의 수업이기 때문이다. 번듯한 팀 이름도 있다. ‘뜨자!’. 세상과 한 판 뜨자는 의미도 될 수 있고 한 번 멋지게 떠 보자는 뜻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서서히 자립을 준비하게 된다. 들꽃학교 윤은정 교사는 “세상에 나가서 어떤 일을 하게 되던지 그 기본은 같기 때문에 충분히 의미 있는 활동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들꽃학교에서는 잡지 제작과 같은 문화사업 외에도 의식주 분야에서 다양한 자립 활동을 지원한다. ‘의(依)’ 분야에서는 ‘옷감(感)가게’를 운영하고, ‘식(食)’ 분야에서는 ‘생태텃밭’을 가꾸고 있다. ‘주(住)’ 분야는 목공수업과 함께 ‘나무공작소’라는 작업장을 갖추고 있다. 학생들은 난타, 밴드와 같은 동아리 활동에도 열심이다. 들꽃학교는 5~6명의 아이들이 한 집에서 생활하는 ‘그룹홈’ 형식의 ‘들꽃피는 마을’과 함께 운영되고 있다. 재학생들 대부분은 그룹홈에 살면서 동시에 학교에 다닌다. 때로 편견에 부딪힐 때도 있다. 민정이는 “어떤 사람들은 들꽃학교를 날라리 학생들만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그들에게 이곳은 오히려 상처가 있거나, 가정형편이 좋지 않은 아이들이 모여 지내고 공부를 배우는 곳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민정이의 꿈은 ‘거리학교’를 만드는 것이다. 거리의 아이들이 한 장소에 모여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며,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4월, 민정이는 더 바빠진다. 오는 23일 여행 수업에서 라오스로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경비는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통해 마련했다. 거창한 일은 아니었다. 세차를 하고, 학교 내에 운동화를 세척해준다는 전단지를 붙였다. 교무실에서 선생님들의 심부름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을 가지고 들꽃학교 친구 셋과 10일 동안 떠나는 것이다. 여행 계획을 말하는 내내 민정이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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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선생님과 아이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들꽃피는 학교의 ‘생태텃밭’ 수업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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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난타를 할 때면 답답한 마음도 사라져요.” |
*위 기사에 등장하는 청소년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처리 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