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사회가 국정원 정치개입 사건에 전하는 경고

지난 7월 17일, 서울대 교수 128명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지난 대선에 국가정보원이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으로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글이나 댓글을 게시하고, 이에 대한 찬반 표시 등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한 사실이 검찰조사를 통해 밝혀졌다.이번 사태를 지켜본 대학 교수들은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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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7일, 서울대 교수 128명은 국정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지난 대선에 국가정보원이 인터넷상에서 조직적으로 특정 후보를 비방하는 글이나 댓글을 게시하고, 이에 대한 찬반 표시 등으로 여론조작을 시도한 사실이 검찰조사를 통해 밝혀졌다. 이번 사태를 지켜본 대학 교수들은 국가정보원의 국내정치 개입을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서울대학교 교수들 또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민교협)’ 소속 교수 33인을 시작으로 시국선언에 동참했고, 7월 17일에는 교수 128명이 ▲국정조사를 통한 사태 진상 규명 ▲검찰의 철저한 책임자 수사 ▲범정부적 차원의 국정원 개혁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또한 교수들은 “사건의 진실을 축소하려 한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과 관련된 경찰 책임자들도 엄중히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지난 2009년 6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뤄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교수사회가 이번 국정원 선거개입 사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교수사회, 이번 사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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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갑수 교수는 “이번 사건은 정치적 이념을 떠난 자유민주주의 수호의 문제”가 본질임을 역설했다.

서울대 교수 128명은 7월 17일 국정원 사태에 대한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교수들은 입을 모아 이번 사태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임을 경고했다. 시국선언을 주도한 백도명 교수(환경보건학과)는 “서명자 모집 기간이 불과 4일이었는데 128명의 교수님들이 서명을 했다”며 “서울대 교수 사회가 이 사태를 민주주의의 역행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교수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백 교수는 “내가 학교 다닐 당시 겪었던 중앙정보부의 활동들이 이번 사태에서 되살아나고 있다”며 국정원의 최근 행보에 우려를 표명했다. “우리 세대는 직접 중앙정보부의 폐해를 몸으로 느꼈다”며 “이번 사태는 역사를 거꾸로 돌려버린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대학시절 독재 정권하에서 정보기관의 반민주적 행태를 직접 경험한 세대인 교수들이 국정원 사태를 그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학생사회의 시국선언이 ‘비 정파성’을 표방한 것과 마찬가지로, 교수사회의 시국선언 또한 특정 정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최갑수 교수(서양사학과)는 “나는 진보주의자지만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훼손한 이번 사태에 대해서는 중도, 보수주의자들도 침묵해서는 안 된다”며 이번 사건이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문제가 아님을 강조했다.

시국선언은 민교협 소속 교수 33인의 주도로 시작됐지만, 이후 민교협에 소속되지 않은 교수들도 동참하면서 4일 만에 128명 규모로 확대됐다. 민교협에 소속되지 않은 A 교수는 시국선언에 참여한 동기를 묻는 질문에 “시국선언에 대한 입장은 시국선언문으로 대체하겠다”면서도 “정파성과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최갑수 교수는 “실제로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수들도 자유주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많다”고 말해 시국선언 교수들이 정치적 이념을 떠나 이 사태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서울대 교수사회만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교수들 뿐 아니라 전국 여러 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이 발표되고 있다. 국정원 정치개입 규탄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수 1,900여명은 ‘교수연구자 네트워크’를 조직해 8월 5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교수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사태 해결 및 사과 ▲ 국정조사 기간 연장을 통한 철저한 진상 규명 ▲불법 선거개입 책임자 엄중 처벌 ▲ 남재준 국정원장의 즉각 해임을 요구했다.

진상규명을 넘어 국정원 개혁으로 이어져야

교수들은 이번 사건이 진상 규명에 그치지 않고, 국정원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정원이 본연의 업무 범위를 넘어 국내 정치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관행이 되풀이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백도명 교수는 “댓글 내용을 보면 국정원이 대북 정보전을 하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불법 정치개입 활동이 들통 나자 이런 주장을 펼치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태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이 본연의 업무에서 벗어나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불법 대선개입 사건 논란이 일던 국정원은 ‘2007년 제2차 남북 정상회담 발췌본’을 불법으로 공개했다. 이는 국정원의 직무를 규정한 국가정보원법(국정원법) 제3조 제1항에 속하는 ‘국가 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 업무를 저버린 위법행위라는 지적이 있다. 이에 대해 백 교수는 “국정원의 정치개입 사건을 조사하다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정상회담 발췌본을 공개한 것 자체가 코미디”라며 국정원의 발췌본 공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또한 국정원법 제9조는 국정원의 정치 관여를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국내정치에 개입한 국정원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최갑수 교수는 “대북활동내역이나 국정원이 사용하는 예산 등을 비밀로 숨기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며 국정원 개혁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특히 그는 국정원의 활동내역을 객관적인 기준으로 정하고,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개혁이 시급함을 주장했다.

현재 교수사회는 국정원 정치개입 재발방지를 위해서 국정원의 활동 범위를 학술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시도를 하고 있다. 백 교수는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국정원이 비밀을 가져야 하는 근거와, 비밀의 범위가 완전히 자의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국정원의 활동 범위를 규정하는 학술적인 논의가 필요함을 주장했다. 교수들은 8월 30일, ‘국정원의 활동 기준’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벌이기로 했다. 교수사회가 국정원 개혁을 위한 학술적 논의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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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도명 교수는 “중앙정보부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국정원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며 시국선언을 주도한 배경을 밝혔다.

국정원 사태는 우리 사회의 후진적 병폐를 방증하는 것

국정원은 댓글 의혹 사건이 논란이 되고 있던 와중에 NLL 대화록을 공개하는 초강수를 뒀다. 백도명 교수는 “자기 입맛대로 범법행위를 저지르는 국정원은 마치 ‘조폭’과 같다”며 국정원을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이번 사태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 ‘조폭 문화’를 청산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가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며 국정원 사태에 드러난 병폐를 이번에 반드시 털고 가야한다고 역설했다. 국정원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는 단발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후진적 문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는 사람들에게 죄를 묻고, 국정원을 개혁하는 후속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정원 정치개입과 같은 사태가 재발할 것이라는 전망도 덧붙였다. 백 교수는 “이런 문화 속에서는 청년들이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한계에 부딪힐 것이다” 라며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식이 통할 수 있는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고 국정원 개혁의 중요성을 재차 언급했다. 교수사회의 시국 선언과 국정원 개혁 논의가 실제적 결과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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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정보는 국력? 국정원은 국가 기밀인 ‘정상회담회의록 발췌본’을 불법으로 공개해 파장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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