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당하게 외쳐라, “강요하지 마!”

나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과, 반, 동아리 등 여러 공동체에서 술자리를 가져봤다.모두가 즐거운 술자리가 되면 좋겠지만 술의 흥을 못이기는 분이 한 분쯤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과음을 한 나에게 “내가 주는데 이거 안 마실 거야?”라며 술 한 잔을 더 권하는 그 사람, 순간 나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 나는 분위기를 깰까봐 힘겹게 잔을 받아든다.

나는 대학생활을 하면서 과, 반, 동아리 등 여러 공동체에서 술자리를 가져봤다. 모두가 즐거운 술자리가 되면 좋겠지만 술의 흥을 못이기는 분이 한 분쯤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과음을 한 나에게 “내가 주는데 이거 안 마실 거야?”라며 술 한 잔을 더 권하는 그 사람, 순간 나에게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 나는 분위기를 깰까봐 힘겹게 잔을 받아든다. 다음날 아침, 방에서 머리를 부여잡고 ‘그때 힘들어서 못 마시겠다고 말했다면…’이라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이번 호를 준비하면서 우리 사회는 생각이 다른 사람은 곧 분위기를 깨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 국정원에게 야당 지지자들은 술자리 분위기 브레이커, 해군에게 해군기지 반대 주민들은 사회생활도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도취돼서 다른 의견은 깡그리 무시하는 그들의 태도가 내게는 인상을 쓰며 한 잔을 권하던 바로 그 사람 같았다. 국정원의 불법행위에 촛불을 든 사람들, 해군 기지에 반대하며 6년이 넘는 시간을 투쟁해온 그들의 모습과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받아들던 내 모습이 겹쳐 지나간다. 모두가 하나같을 것을 강요하는 분위기 속에서 나는 그 강요에 저버렸지만,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었다. 촛불을 든 사람들도, 6년 4개월을 투쟁한 사람들도 어쩌면 분위기를 맞춰줄 수 있었다. 눈 한 번 꼭 감고, 다음날 머리 잡고 끙끙 앓으면 그만인 것이다. 문제를 제기한 순간 돌아올 따가운 시선들과 같아질 것을 강요하던 사람의 찡그린 얼굴이 그들이라고 두렵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번 122호를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은 용감하게 ‘싫어’를 외쳤다. 지금 그 사람들은 ‘싫어’라는 말의 무게를 감당하고 있다. 지친 몸을 누일 수 있는 시간에 시청으로 나가고 있으며, 경찰과 부딪치며 연행되고 재판을 받기도 한다. 그냥 한 번 눈을 감고 국정원의 부정에 눈 감았으면, 집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해군기지가 지어지는 것을 그냥 동의해줬다면 범법자라는 낙인을 부여받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강요를 거부할 수 있었던 용기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나는 다른 것을 틀리다고 생각하는 사회를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진건의 단편소설 ‘술 권하는 사회’에서 주인공은 자꾸만 자신에게 술을 마시게 하는 사회를 개탄한다. 지금 이 순간도 사회가 자꾸 술을 마시게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부당함에 맞섰지만 강요만이 반복되는 현실은 사람들에게 자꾸만 술을 권하는 것이다. 현진건의 소설에서 주인공의 아내는 자꾸만 술을 마시는 남편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 사람들을 만나서 이해하고 같이 술을 마셔주고 싶다. 아니, 당당하게 ‘강요하지 마’를 외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싶다. 강요하는 누군가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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