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든브릿지 본사 앞. 노조에서 걸어놓은 노란 띠가 바람에 휘날리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울시 서대문구 충정로 3가에 있는 골든브릿지증권 본사를 방문하면 골든브릿지증권 노조 파업 천막을 제일 먼저 만나게 된다.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노조는 ▲사측의 단체협약 정상화 ▲임금 인상 ▲복지 혜택 ▲노조 전임자 확대 등을 요구하며 지난해 4월 23일부터 파업에 돌입했다. 노조원들이 천막을 지킨 지도 거의 500일이 다 돼간다. 이 파업은 현재 국내 금융기관 파업 중에선 최장기간이다. 70명 남짓한 노조원들은 폭염 속에서도 자신들의 직장 앞 천막으로 ‘출근 도장’을 찍고 있다.

파업 478일 째의 골든브릿지 본사 앞 농성천막
‘황금다리’를 무너뜨리는 균열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사 간 갈등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현 ‘골든브릿지증권’의 전신은 ‘브릿지증권’이다. 영국계 투기자본 ‘브릿지인베스트먼트홀딩스(BIH)’는 한국에서 브릿지증권을 인수해 7년 동안 사업을 했다. BIH는 유상감자, 고율배당, 무리한 구조조정 등을 강행해 운영과정에서 국가의 자금유출논란이 계속 일었다. BIH가 한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유상감자로 유출시킨 돈만 3,150억 원에 달했다. 2005년 BIH는 사업 철수와 지분 매각을 발표하며 직원들에게 청산위로금을 제시하려 했으나 브릿지증권 노조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래서 매각을 포기하고 브릿지증권 노조에 새 인수자 추천권을 줬다. 이에 대해 사무금융노동조합 김호열 지부장은 “BIH는 회사를 청산하려 했지만 우리 노조가 가로막고 투쟁하자 포기했다”며 “BIH는 노조가 선정하는 곳에 매각하겠다고 해서 내가 이상준 회장을 소개해 줬다”고 설명했다.
골든브릿지를 맡게 된 이상준 회장이 서울대 출신이며 노동운동가로 활동했다는 점이 노조원들에게 좋은 인상을 줬다. 이 회장은 단체협약에서당시 생소했던 우리사주신탁(ESOP, 기업이 종업원의 동의를 받아 퇴직금과 성과급으로 주식투자 전용펀드를 설정해 자사주나 기타 주식에 투자한 뒤 이익이 나면 재직 중인 직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제도)을 도입해 노조와 공동경영을 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여기에 복지증진·고용유지 조항도 포함됐다.
그러나 사측은 이 조항들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ESOP도 3년 뒤인 2008년에야 시행됐다. 2011년 9월 골든브릿지증권은 노조 측에 ▲사규위반 시 해고 ▲고용조정 시 합의에서 협의로 변경 등으로 회사에서 개정한 단체협약을 맺을 것을 요구했다. 노조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2011년 10월 14일에 사측은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해지한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이는 노조법을 위반하는 행위였다. 노조는 계약이행과 상황개선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노조는 지난해 4월 23일부터 파업을 시작했다.
게다가 사측은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을 인수한 뒤, 자금난에 시달리자 2012년 골든브릿지투자증권의 내부자금 2백억 원을 빼내 저축은행을 우회적으로 지원했다. 자본시장법을 위반한 일이라 금융위원회에서 감사를 시행해 골든브릿지증권에 과징금 5억 7천만 원을 부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든브릿지는 2013년부터 계속 유상감자(기업이 자본금을 줄여 주주들에게 비율에 따라 돈을 지급하는 일)를 시행해 3백억 원에 달하는 자본 유출을 시도하고 있다. 유상감자를 하게 되면 회사의 자본이 유출돼 회사의 재정상태가 자연스레 부실해진다. 그렇게 되면 노동자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지게 된다. 사무금융노동조합 수석부지부장 이수창 씨는 “유상감자는 과거에 BIH가 저질렀던 불법행위들 중 하나였고 이로 인해 직원들의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며 “이런 일을 현 골든브릿지증권에서 똑같이 되풀이하고 있다는 것이 큰 문제다”고 설명했다.

골든브릿지 본사 앞 곳곳에 걸려 있는 현수막들
골든브릿지+창조컨설팅=노조탄압
골든브릿지증권이 ‘노조 파괴 전문’이라 불리는 노무법인 ‘창조컨설팅’과 손을 잡고 노조와의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함에 따라 6개월 뒤인 지난 4월부터 ‘무단협’ 상태가 됐다. 사측이 용역을 동원해 직원들에게 욕설을 하고 폭력을 휘두르며 노조를 강제 해산시키려 한 일도 수차례 발생했다. 단체협약의 일방적 해지, 폭력 등은 노조법 위반으로 문제가 되는 부분이어서 검찰에서도 수사 중이다. 지난해 노동부가 창조컨설팅의 설립인가를 취소한 후 사측의 폭력적인 탄압은 줄었다.
사측은 파업에 참여하는 노조를 방해하는 일 뿐만 아니라 직원에 대한 부당징계를 가했다.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 직후인 지난해 5월 2일 16명의 지점장 및 팀장들이 노사 간 원만한 합의를 바란다는 내용의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러자 사측은 지난해 10월 5일부터 공동성명서를 낸 직원들에게 무기한 정직, 감봉 등의 징계를 내렸다. 직원 일부는 전화도 PC도 없는 지하실로 보내져 사측으로부터 2~3개월 동안 반성문 작성을 종용받았다. 결국 직원 몇 명은 압력을 견디지 못해 억지로 반성문을 쓰고 업무에 복귀했다. 남은 직원 몇 명은 회사의 명령을 거부하며 버티고 있다. 김호열 지부장은 “현재 무기정직을 받은 지점장과 팀장 중 2명은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고 다른 4~5명은 중앙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해놨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또한 김 지부장은 “직원들이 회사의 편을 안 들었다고 해서 징계를 가하는 건 지나치게 부당한 처사다”며 “우리가 회사에 고용됐다고 해서 개인의 가치, 양심, 삶까지 회사에게 좌지우지 되거나 강요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비판했다.
그 후에도 사측은 계속 노조를 감시하며 방해하고 있다. 사측은 새벽에 몰래 직원을 투입해 노조의 현수막을 훼손하고, CCTV를 설치해 파업 참여중인 직원들의 모습을 계속 촬영했으며, 이상준 회장이 설립한 자회사인 노마드와 골든브릿지투자증권 측 직원을 농성장으로 보내 노조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사측에 보고하도록 지시하기도 했다. 이수창 부지부장은 “CCTV를 일부러 농성장 앞에 설치해 녹화를 하는 건 집회를 방해하고 개인의 생활을 감시한다는 점에서 위법 행위다”며 “사측이 노조와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파업을 방해하며 노조를 망가뜨리려는 태도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노조의 농성은 본사 앞마당에서 매일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5시에 마친다.
노조원들이 구호를 외치며 하루의 농성을 마무리 하고 있다
노조의 반격
2012년 8월 30일,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과 ‘투기자본감시센터’는 골든브릿지 이상준 회장과 골든브릿지투자증권 남궁정 사장을 업무상 배임·횡령 등의 혐의로 서부지검에 고발했다. 고발 기자회견에서 “이 회장과 남 사장은 골든브릿지저축은행의 부실을 골든브릿지투자증권에 전가했으며 경영자문 인력이 없는 골든브릿지에 계열사 영업수익의 일정비율을 자문료로 이전했다”며 “이는 주주에 대한 업무상 배임”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들은 “이 회장이 회사 돈으로 조성한 펀드 소유의 리조트를 개인 주거용으로 사용하고 법인카드를 개인 생활비 용도로 쓰기도 했다”며 각종 비리와 의혹을 철저히 수사해줄 것을 검찰에 요청했다. 노조가 경영진을 기소한 항목은 ▲자본시장법 위반(부실계열사 부당지원) ▲경영진의 배임·횡령 ▲노동법 위반 항목 등 세 가지로 지금도 금융위원회와 검찰 수사가 이뤄지고 있으며 재판도 진행 중이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은 자본시장법 위반, 배임·횡령 죄목으로 진행된 1차 공판에서 업무상 횡령 및 배임 혐의에 대해서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사측 무혐의 판결에 대해 노조는 고등법원에 항고를 한 상태이며, 자본시장법 위반은 계속 재판을 진행해 8월 22일 2차 공판이 열렸다. 2차 공판에선 검찰이 골든브릿지증권 경영진의 자본시장법 위반에 대한 증거확정을 확인했다.
노조의 파업, 경영진 고발 조치에 대한 사측의 입장을 듣고자 했으나 골든브릿지증권은 “노조와 소송 중이고 회사 업무로 바쁜 상황이라 할 이야기가 없다”며 입장표명을 거부했다.

금융위원회 앞에서 시위 참여 중인 김호열 지부장. 지난 5월 7일부터 금융위원회 앞에서도 농성을 시작했다
ⓒ 골든브릿지 노조
길어지는 파업, 골든브릿지를 지키는 사람들
2012년 4월 23일부터 골든브릿지 증권 노조가 파업을 시작한지 거의 500일이 돼간다. 무임금과 파업의 장기화로 인해 생계의 곤란을 겪는 와중에도 노조는 어떻게든 끝까지 파업을 이끌어 회사의 재정이 부실해지는 걸 막고 부도덕한 경영진으로부터 회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현재 노조는 네 곳에서 농성을 하고 있다. 골든브릿지 본사 앞과 금융위원회 건물 앞에선 천막 농성이 진행 중이고, 중앙지방검찰청과 서부지방법원 앞에선 매일 1인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 5월 7일부터 금융위원회 앞에서 시작한 농성에 대해 김호열 지부장은 “금융위원회가 골든브릿지가 저축은행을 부실지원을 하고 법을 위반한 점을 조사하고 있다”며 “현재 골든브릿지가 또 유상감자로 회사 자금을 빼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금융위가 이를 승인하지 못하도록 우리의 뜻과 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곳에서도 농성을 시작했다”고 이유를 밝혔다. 중앙지검 앞에서 1인시위에 참여 중인 방영갑 씨는 “이곳은 골든브릿지증권 경영진이 저지른 주가조작에 대해 합수부에서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며 “검찰이 엄격하게 수사에 임해 제대로 밝혀달라는 의미에서 1인 시위에 동참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1인시위 참여 중인 노조원 방영갑 씨. 지난 7월 말부터 중앙지검 앞에서 1인 시위가 시작됐다
파업이 길어짐에 따라 파업에 참여중인 노조원들의 어려움도 지속되고 있다. 김호열 지부장은 “같이 농성중인 사람들은 대출을 받기도 하고 심지어 차를 팔아서 돈을 마련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로 다들 고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조원들은 생활고만 겪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을 한다. 가족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가정불화도 겪는다. 이수창 부지부장은 “부부가 같이 파업에 참여하다 보면 지치기도 하고 서로 의견이 안 맞아서 싸우기도 하는데 애들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애들도 상처를 받게 되니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심정을 내비쳤다. 또한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동료와 마주칠 때면 마음의 고통도 겪는다. 이 부지부장은 “어제까지 같이 일하던 동료들이 하루 새 완전히 딴 길을 가게 됐으니 마음도 안 좋고 안타깝기도 했는데 시간이 꽤 지나다보니 서로 무덤덤해졌다”고 설명했다.
산 넘어 산, 넘을 방법은?
파업이 1년을 넘긴 시점에서 노조는 파업이 이렇게 길어지리라 예상했을까. 이수창 씨는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노동조합을 깨려는 금융기업은 골든브릿지밖에 없을 것이다”며 “격변하는 금융시장 속에서 더 좋은 이익을 낼 방법을 강구해 좋은 위치를 선점하려는 노력은 안 하고 회사 내부의 일로 인력과 시간을 낭비하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비판했다.
지난 8월 13일, 노조는 파업의 장기화에 따른 파업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골든브릿지 희망나눔채권’을 발행했다. ‘골든브릿지 희망나눔 채권’은 파업 종료 1년 후부터 2년 이내에 상환하는 연대채권으로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조가 지급보증을 선다. 김호열 지부장은 “연대채권은 단체와 개인 모두 구입할 수 있으며 채권 기금은 파업 중인 조합원들의 최저 활동비와 투쟁기금으로 사용된다”고 설명하며 “길어지는 파업 속에서 포기하지 않고 반드시 회사를 지켜내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거라 생각하면 된다”고 미소 지었다.

골든브릿지 노조가 발행한 ‘희망나눔채권’의 내용 ⓒ 골든브릿지 노조
이 사태를 해소하기 위해 노조에서 사측에 바라는 점은 명확하다. 사측의 범법 행위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단체협약의 일방적인 요구 철회와 정상적인 체결 촉구 등이다. 그러기 위해선 사측에서 법으로만 해결할 게 아니라 우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진정성 있는 대화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직원들의 바람이다.
노조원들은 한 번의 여름과 겨울을 나고 두 번째 여름을 맞아 폭염 속에서도 매일 천막으로 나온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파업으로 지칠 만도 한데 천막에서, 검찰청 앞에서 만난 노조원들은 결연한 모습이었다. ‘외국계 투기자본과도 싸워서 회사를 지켜냈으니 이번 에도 반드시 회사를 지켜내겠다’는 노조원들의 의지가 파업을 굳게 지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