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4월 2일, 55대 총학생회 재선거의 공동정책간담회에 갔다. 넓은 28동의 강의실은 황량할 정도로 텅텅 비어있었다. 후보 두 명, 선본원 한 명, 선관위장, 속기자, 기자 두 명, ‘방송연구회(SUB)’ 회원 세 명, 기자 두 명이 끝이었다. ‘총’학생회를 책임지겠다고 나온 선본의 정책을 검증하는 자리의 풍경이었다.#2 4월 4일, 의 총학선거 특집호가 발간된 뒤, 학내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후보 자기소개와 인터뷰를 각각 게시했다. 두 글을 합쳐 조회수가 700도 되지 않았다. 총학 선거 유권자가 약 16000명이고, 선거가 성사되려면 약 8000명의 표가 필요한데 도대체 선본의 정책에 대해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된단 말인가.#3 선본이 한 개인지라 ‘선거 분위기’ 자체를 내는 것이 이번 선거의 성사의 관건이 됐다. 이에 선관위에서 여러 가지 파격을 시도했다. ‘학생회: 나얼만큼 사랑해?’, ‘답답하면 니들이 투표하든가’ 등의 장난스런 문구를 담은 현수막이 캠퍼스 곳곳에 걸렸다. ‘스누라이프’에서 이 현수막이 불편하게 느껴졌다는 글은 조회수 4000을 돌파하고 공감추천도 80개에 육박했다.작년 총학 선거가 27%의 처참한 투표율로 무산돼 선거관리위원회에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노란색 선관위 점퍼를 맞추고, 정책자료집과 함께 손수 만든 기표도구 모양의 ‘달고나’도 나눠줬다. 그러나 학생들의 ‘관심’ 자체를 끄는 데 가장 성공적이었던 것은 논란이 됐던 현수막들이었다. 이들 현수막에 활용된 문구는 인터넷 공간에서 소위 ‘드립’이라 불리는 어구들에서 따온 것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불필요하게 도발적이었다는 데 있다. ‘나얼만큼 사랑해?’는 모 연예인의 과거사를 이용해 언어유희를 한 것으로 전후 맥락을 전혀 모르던 사람에겐 단지 띄어쓰기를 안 한 문장에 불과했다.더 문제인 것은 ‘답답하면 니들이 투표하든가’였다. 반말로 말을 걸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내용도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고 있었다. 이는 총학생회가 없어서 답답해하는 학생들을 자극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학생들은 총학생회가 없든 말든 답답함을 느끼지 않는다. #1와 #2에서 학생들은 총학생회 선거에 누가 나와서 어떤 정책을 내놓든 그다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학생들이 반말로 따지는 말을 들으며 책임을 져야할 주체인 것은 아니다. ‘서포터즈’ 선본은 중앙도서관 1~3열을 외부인에게 개방하는 것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내놨다가, 관악구과 본부가 체결한 계약 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 인터뷰 과정에서 알게 돼 공약을 철회했다. 이미 홍보지에 나간지라 ‘서포터즈’ 선본은 선관위로부터 ‘최종 제출된 원고에 잘못된 정보를 수록’했다는 이유로 주의를 받았다. 정책 내용으로 선본이 징계를 받은 것은 드문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선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잘못된 정보’는 없었지만 학생들의 요구를 치밀하게 파악해 내놓은 정책은 없었다.학생들의 관심이 미약하지만 아예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 위안이면 위안이다. #3은 역설적으로 학생들이 아예 등을 돌린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선관위의 본래 의도와는 달랐겠지만 문제의 현수막들이 학생들의 최소한의 관심을 건드린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것이 마지막 끈을 붙잡고 있던 학생들을 노하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장난은 상호 사이가 좋을 때에만 유효하다. 관계가 틀어진 사이에서 장난은 독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