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배움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설날연휴, 귀성길 교통정체 상황과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퍼레이드로 화려하게 장식된 텔레비전 화면 속에 잠깐 얼굴을 비쳤다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바로 남한에서 설날을 맞게 된 새터민(북한이탈주민)들.강남 학원가는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막바지 걸음이 한창이고 KBS 드라마 이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속 공부법 효과를 분석하는 기사도 속출하고 있다.이렇게 남한의 교육은 영하를 기웃거리는 날씨에도 식을 줄을 모른다.

설날연휴, 귀성길 교통정체 상황과 밴쿠버 올림픽 금메달 퍼레이드로 화려하게 장식된 텔레비전 화면 속에 잠깐 얼굴을 비쳤다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남한에서 설날을 맞게 된 새터민(북한이탈주민)들. 강남 학원가는 겨울방학을 맞은 학생들의 막바지 걸음이 한창이고 KBS 드라마 이 인기를 끌면서 드라마 속 공부법 효과를 분석하는 기사도 속출하고 있다. 이렇게 남한의 교육은 영하를 기웃거리는 날씨에도 식을 줄을 모른다. 남한에 온 북한이탈청소년들의 교육은 어떨까? TV 속에 나온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 사람들과 똑같은 전통놀이를 하며 남한 사람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다. 설날의 전통놀이처럼, 교육에 있어 같은 정서를 공유할 수 있을까? 그들은 어떤 교육을, 어떻게 받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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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체육 축전, 장기자랑 한마당에 참여한 북한이탈주민들. 그들의 놀이 문화도 우리의 놀이문화와 비슷하다.

통일되지 않은 용어와 규정, 북한이탈주민과의 통합 어렵게 해

탈북자, 새터민, 귀순자 등, 현재 북한이탈주민을 지칭하는 용어는 한 가지로 정해지지 못하고 뒤죽박죽이다. 그들을 규정하는 범위도 한 가지로 오래 버티지 못하고 쉽사리 바뀌고 있다. ‘우리는 남한청소년들과 다르다’는 북한청소년들의 인식까지, 그들의 정체성을 깊게 뿌리박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은 너무나 많다. 2005년 1월 9일, 통일부는 북한을 이탈한 주민들을 지칭하는 용어인 ‘탈북자’를 ‘새터민’이라는 용어로 바꿔 부른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탈북자들의 연합조직인 ‘북한민주화위원회’는 정치적 색채가 사라지고 경제적 이주민임을 강조하는 ‘새터민’이라는 용어에 대한 강한 반발을 드러냈다. 2008년, 통일부는 ‘새터민’이라는 용어를 가급적 쓰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지금까지도 ‘새터민’이라는 용어는 부드러운 어감 때문에 널리 쓰이고 있는 상황이다. ‘다문화 가정’이라는 개념도 불분명하다. 몇몇 학자들은 북한이탈주민 가정도 다문화 가정에 포함시키고 있긴 하지만 현재 법률로는 부모 중 한명이 외국인인 경우만 다문화 가정으로 묶고 있다. 2009년 제 2차 다문화 교육 전문가 협의회에서 이혜진(교육과학기술부 교육복지정책과) 사무관은 “북한이탈주민 가정이나 부모 모두 외국인인 경우는 다문화 가정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문화 가정의 불분명한 개념 규정은 다문화 학생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에 북한이탈청소년을 참여시켜야하는지 말아야 하는지에 관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다름’이 만들어낸 정체성 혼란 복잡한 것은 행정 용어와 다문화 가정을 규정짓는 범위뿐만이 아니다. 학계에서 북한이탈주민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다르다. 고려대 윤인진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을 ‘이주민’의 정체성으로 묶는 반면, 서강대 김영수 교수는 북한이탈주민을 통일에 중요한 역할을 할 ‘역군’으로 생각한다. 그들을 지칭하는 불분명한 용어와 규정들도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체성 확립을 방해하고 있지만 더 치명적인 방해 요소는 서로 다른 ‘언어’와 ‘가치관’ 사이의 괴리감에 따른 정체성 혼란이다. 북한이탈청소년과 다른 말을 쓰고 다른 생각을 하는 남한 학생들 사이에서 북한이탈청소년은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 북한이탈청소년 이혜연(가명) 양은 “나와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위축감이 들었다.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규정하기 힘들었다”며 “그런 감정들이 학업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남한 또래들에 비해 왜소한 체격도 문제다. 북한이탈청소년들은 왜소한 체격 때문에 종종 따돌림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남한에서 중학교를 다녔다는 북한이탈주민 김현욱(가명) 씨는 기자에게 학창시절 “키가 작고 몸이 말라서 남한 아이들과 잘 어울릴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통일연구원에서 발간한 에 따르면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적응하는 데에 3년 이상이 걸린다는 응답이 50%를 차지한다. 김씨는 “북한말을 써보라고 말하거나 탈북 과정을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어 학창 시절 힘겨웠다”며 “나를 같은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해 주지 않는 환경에서 힘든 사춘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흔들리는 정체성 속에서 북한이탈청소년은 과도한 음주, 흡연의 길로 빠져 방황을 하기도 한다. 청소년기 방황은 그들을 점점 공부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이는 다시 그들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악순환을 낳는다. 몸은 남한에 왔지만 아직은 뛰어넘기 힘든 학력 차, 그 원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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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교육 내용은 남한과 다르다. 소학교에서는 영어를 배우지 않아 북한이탈청소년들은 외래어와 외국어가 남발하는 남한의 교육에 잘 적응하지 못한다. 2007년 고등학교 과정을 중도 포기 했다는 이현지(가명) 양은 “나는 이름도 영어로 쓸 줄 모르는데 남한의 영어는 너무 어렵다”며 “도저히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가야대학교 전봉자 씨의 석사학위 논문(새터민 청소년: 사회적응력 제고를 위한 교육방안 마련 연구)에 따르면, 북한이탈 청소년을 가르친 91명의 일반고 선생님의 59.3%가 북한이탈청소년들이 학교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학습부진이라고 밝혔다. 탈북자 특별전형으로 비교적 좋은 대학에 진학한 대학생들 또한 뛰어넘기 힘든 학력 차로 힘들어하고 있다. 현재 평점 2.5 이상인 학생들에게 정부는 등록금 전액을 지원하고 있지만 이조차 넘지 못하고 등록금을 지원받지 못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대안학교가 ‘소그룹 과외’식으로 운영되어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그들을 가르쳤지만 대학 강의는 ‘보편적 눈높이’에 따른다. 한국말이 오가는 수업일지라도 대학 강의는 그들에게 어렵기만하다. 북한이탈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인 ‘셋넷학교’의 박상영 교장은 “휴학한 학생들과 복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을 위해 주 5일 수업을 준비하고 있다”며 “대학교 수업은 그들에게 ‘쇠 귀에 경읽기 식’이 되는 경우가 많아 우리가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몇몇 대학에서는 대학수업에 잘 따라오지 못하고 힘겨워 하는 북한이탈대학생을 위해 튜터링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나 프로그램이 폐지된 경우도 있다. 북한이탈대학생들이 자신의 신분을 알리기 꺼려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남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이 무서워 선뜻 자신이 북한이탈주민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어려워한다. 인터뷰 요청을 받았던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상당수는 요청을 거절했고, 수락한 이들도 모두 가명 게재를 요구했다. 당당히 사회에 나서지 못하고 숨어서 공부하는 북한이탈주민이 많아 그들에게 주어진 질 높은 정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해야 할 것’은 너무 많고 ‘하고 싶은 것’은 할 수 없는 사람들 현재 남한에는 여명학교, 셋넷학교, 하늘꿈학교, 한꿈학교, 하늘꿈학교(서울, 천안 캠퍼스) 총 다섯 군데의 북한이탈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가 있다. 이 곳들은 모두 비인가 대안학교기 때문에 학교를 졸업해도 검정고시를 쳐야 학력이 인정된다. 대안학교의 경우 일반 교과목 수업과 검정고시 준비, 여기에 남한 정착 교육프로그램까지 병행하려면 북한이탈청소년들은 주간수업 뿐 아니라 야간수업을 받아야 할 때도 많다. 남한에 사는 대부분의 청소년들이 학교수업을 마치고 부족한 과목에 시간을 할애해 따로 공부를 한다고 할 때, 북한이탈청소년들이 ‘해야만 하는 것’은 너무도 많은 실정이다. 북한이탈청소년들에게 주어진 ‘해야 할 것’은 그들에게 남한청소년들에 비해 낮은 성적을 안겨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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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열의에 넘치는 박상영 교장.

검정고시만을 준비하는 경우에도 학원 수강과 별도의 학습지도가 필요하다. 이 비용을 대느라 북한이탈청소년은 무리하게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한다. 몸이 피곤하니 공부에 충실하기도 힘들다. 에서 인터뷰한 북한이탈청소년 최O천은 다음과 같이 실상을 전했다. “학원비와 차비로 한달에 15만원이 드는데, 대부분 형편이 어려워 자기 스스로 벌어서 학원비 대느라 학원 자꾸 빠지고, 거의 잠을 못자 학원에 나와도 잠을 잤다. 그래서 한 친구가 검정고시에 떨어지자 공부를 포기하고 노가다를 하고 있다.” 성적에 대한 중압감 때문에 북한이탈청소년들은 사교육에 눈을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이 기초수급대상자인 북한청소년들에게 부족한 과목을 사교육으로 메우기란 재정적으로 힘든 일이다. 취업 교육 부분에서는 국비지원교육이 존재해 학생들의 부담을 일부 덜어주고 있지만 이마저도 교육비 전액 지원이 아니기 때문에 교육을 받는 것을 망설이는 학생이 많다. 그들은 예체능 분야의 교육을 받을 기회도 얻기 힘들다. 남한 학생이 한 번쯤 배우는 피아노와 미술은 그들에겐 취미를 위한 ‘사치’로 다가간다. 대안학교의 재정, 열정에 비해 턱없이 부족해 대안학교가 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는데도 재정적 어려움이 존재한다. 당산동에 위치한 ‘셋넷학교’는 종교 단체에 소속되어 있지 않아서 오로지 개인 후원금과 공공사업 프로젝트에 의존하고 있다. 상근 길잡이 교사 4명 외에 일주일에 한두 번 오는 자원교사가 수업을 진행한다. 부족한 재정 상황으로 상근 길잡이 교사에게 주는 월급은 일정치 않다.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은 “가장 힘든 것이 재정이다. 한 선생님은 50이 다 되어 가는데 100만원 남짓 월급밖에 못 주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학생들은 매 달 5만원씩의 등록금을 낸다. 그러나 90%이상 출석이 인정되면 학생들이 낸 등록금 전액을 장학금으로 돌려주기 때문에 실제로 ‘셋넷학교’의 교육비는 무료라고 할 수 있다. 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셋넷학교’ 교사는 허리띠를 졸라매고 재정확보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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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 한 켠에 자리하고 있는 셋넷학교 현판.

기독교의 후원을 받고 있는 다른 학교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안정적인 재정확보가 어렵긴 마찬가지다. ‘한꿈학교’는 남양주시의 배려로 별내면사무소 지하실에 둥지를 틀었다.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한 방 한 칸짜리 공간이 학교의 전부였다. 하지만 그마저도 작년 몰아친 재개발의 열풍 때문에 바닥에 나 앉을 지경에 처해 어쩔 수 없이 거처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침수피해까지 입어 컴퓨터 등 학습기자재가 망가져버리기까지 했다. 현재는 교육과학기술부 공모 사업 대상에 기적적으로 선정돼 의정부시 장암동 아파트 단지 지하상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하지만 기적이 아니었더라면 그들에게 갈 곳은 없었다. 흔히들 남북한은 ‘말은 같지만 서로 떨어져 사는 한민족’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셋넷학교’ 박상영 교장은 북한 학생들이 가장 취약한 과목이 ‘국어’라 말한다. “영어가 학생들에게 아킬레스건이라고 말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에겐 국어가 가장 취약한 과목”이라며 “한민족이기 때문에 국어가 가장 쉬울거라 예상하지만 대학 수업에 들어가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오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몸은 왔지만 마음은 아직 오지 못한 사람들. 한국말을 쓰지만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 질 높은 교육의 수혜자인 대학생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아야 할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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