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서울대학교의 문을 두드린 수많은 새내기들 중, 그 누구보다 열심히 입학을 준비한 두 명의 새내기가 있다. 시각장애를 딛고 음악대학에 입학한 김상헌(기악 10) 씨와 근이양증을 견뎌내며 사회과학대학에 입학한 하태우(사회과학 10) 씨를 만났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이 세상에서 ‘손’과 ‘귀’로 세상을 보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가 있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위해 끊임없이 공부를 계속해온 김상헌 씨를 만나기 위해 한빛맹학교를 찾아갔다. 한창 김연아 선수의 경기가 진행되던 시간 만난 김상헌 씨는 환하게 웃으며 인터뷰에 응해줬다. 밝은 모습에 반갑게 인사를 건내자 “새내기가 돼서 정말 좋아요. OT도 하고, 제부도로 새터도 갔다 왔는데 모두들 정말 잘 챙겨줘서 너무 고맙고 즐거웠어요. 이제야 평등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불평등하다고 느껴왔던 것일까. “실기시험을 보고 합격발표가 날 때까지는 학교 걱정을 많이 했거든요. 한빛맹학교를 한빛예고로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예고는 도시에 있고, 레슨도 많은 돈을 들여서 할 수 있잖아요. 저는 계속 한빛에서만 살아왔으니까, 예고 학생들만큼 공부를 많이 못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점이 불평등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합격했단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소외된 느낌이 들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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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입시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했다. 남과는 ‘다름’이 ‘장애’가 된 것은 아닐까. “입시기간에는 무엇보다도 맹장수술도 하고 신종플루도 걸렸었고, 아파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 외에는 점자 악보를 해독해가면서 피아노를 쳐야하는 게 제일 힘들었죠. 점자는 눈으로 보는 게 아니고 손으로 만지는 건데 피아노도 손으로 치니까 외워서 쳐야 되잖아요. 그것도 국내에 없는 악보가 많아서 복지관에 악보를 점자로 변환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분량이라도 배우는 시간은 훨씬 많이 걸려요. 이런 오해를 받을 수가 있어요. 너 왜 이렇게 느림보냐고. 그런데 저는 아니거든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빨리 하고 있는 거거든요.” 서울대에 입학하면서 생긴 언론의 큰 관심에 대해 묻자 그의 쓴 소리가 이어졌다. “저는 언론의 태도가 관심이라고 하기가 힘들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만 타오르다가 곧 식어요. 궁금한 것뿐이죠. 순간의 흥미는 관심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냄비’라는 말이 있잖아요. 냄비가 아니라 뚝배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순간 확 타오르지는 않지만, 꾸준히 관심을 이어가는 뚝배기요.” 그는 방송 준비를 모두 끝마치고 있었는데 방송 직전에 취소 전화가 와서 정말 화가 난 적도 있다고 토로했다. “아, 이 사람들은 그냥 궁금한 거구나, 배려가 없구나. 정말 화가 났어요.” 한빛맹학교로 화제를 돌리자 김상헌 씨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저는 교장선생님께 스카우트 돼 한빛맹학교에 오게 됐어요. 교장선생님께서는 제가 서울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셨죠.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분이 있는데, 저한테 5년동안 피아노를 가르쳐 주신 신현동 선생님이세요. 가르치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으셨을 텐데, 끝까지 저를 가르쳐 주셨어요.” 김상헌 씨가 6살 때 어머니가 그의 재능을 발견하면서 피아노를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그가 피아노를 진심으로 하기로 결정한 것은 한참 뒤였다. “시작은 어릴 때 했지만, 스스로 피아노를 정말 쳐야겠구나 하는 심정적인 변화가 온 건 입시기간이에요. 피아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가르침을 받다 보니까, 피아노가 단순한 피아노가 아니라 어떤 소리를 표현해 낼 수 있는 매체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 때 진심으로 피아노를 쳐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런 그에게 피아노는 어떤 의미일까? “무엇보다도 제 감정을 맘껏 이입할 수 있는 절친한 친구죠. 저는 리스트의 곡을 좋아하는 데요. 서글프고 슬픈 감정을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그 슬픈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바로 피아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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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시간 이어지는 인터뷰 중에도 김상헌 씨는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
눈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그가 입시기간을 거치며 넘겼던 수많은 고비로 화제가 넘어갔다. “사실 학교 다니는 것에 대해서 걱정이 많아요. 건물도 오래된 것 같고, 길도 대체로 비포장이에요. 다녀보니까 주변에 배수로도 막 드러난 것 같아서, 발이 빠지면 어떻게 해야 되나 걱정이에요.” 장애우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학교에 불만은 없을까. “배려가 물론 필요하겠죠, 후배들을 위해서요. 하지만 지금은 제가 너무 나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음대에서 장애우를 받는 것이 이번이 처음인데, 제가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면 안 되잖아요. 학교가 점자라는 것을 알기나 할까요?” 김상헌 씨는 장학금을 받고, 수강신청을 복지관에 부탁해 처리하며 여러 가지 고비를 넘겼다. 이제 입학만이 남은 그에게 아직도 넘어야할 고비는 수없이 많다. “교재도 점자로 변환해서 써야 되는데, 다행히 학교 근처에 점자로 변환해주는 복지관이 있어요. 그래도 아직 음악이론은 많이 배우지 못했는데, 예고에서 입학한 동기들에게 많이 뒤쳐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네요.” 많은 어려움이 남았지만, 여전히 밝게 말을 이어가는 그에게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부탁했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지만, 장래에는 유학을 가고 싶어요. 그리고 그 뒤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연주도 하고 싶습니다. 또, 제가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장애인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에 알릴 수 있는 좋은 계기요.” 주어진 많은 고비를 넘기고 또 다시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모습이 믿음직스럽다. 2월 23일 오후, 서울대저널 편집실에 웃는 얼굴의 새내기가 들어왔다. 해맑은 표정으로 자신을 소개한 이는 난치병인 근이양증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새내기가 된 하태우 씨였다. 심리학과를 지망하며 입학했다는 그의 이야기들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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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에서 코 베일 일은 없다는 기자의 대답에 환하게 웃는 하태우 씨의 파릇파릇한 표정은 천상 새내기의 모습이다. |
인터뷰를 시작하며 신체적인 한계때문에 공부하는 데 힘들지는 않았는지 질문을 던졌다. 하 씨는 손사래를 치며 쌓인 얘기들을 풀어놨다. “기회가 되면 말하고 싶었는데, 기존 언론의 기사에 왜곡된 것이 많습니다. 인터뷰가 처음이라 몰랐는데, 이야기를 만들어내려고 하더라구요. 솔직히 공부는 앉아서 하기 때문에 특별히 신체적으로 힘든 건 없는데 신문에서는 그런 부분들에서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그냥 다른 고3들처럼 정신적으로만 힘들었어요.” 자연스레 여느 새내기들에게 물어보듯이 새터 이야기를 꺼내봤다. 아쉽게도 참여하지 못했다며 그 전에 가졌던 고민들까지 풀어낸다. “반 선배에게 새터 연락을 받고 처음에 좀 망설여지긴 했어요. 2박 3일 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까다로운 부탁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올까봐요. 숙소 가면 저를 침대에 눕힌다든지 하는 상황이 오는데, 또 맨 정신으로 있는 것도 아니고 다들 술 마시고 놀 것이라고 생각해서 많이 걱정했어요. 그런데 한 09학번 선배님이 당연히 와야 한다고, 오면 그런 걱정하지 말라고 해주신 말씀이 많이 고마웠어요. 결과적으로는 아쉽게도 못 갔어요. 새터가 19일부터 시작됐는데, 16일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상을 치렀습니다. 앞으로는 모임에 자주 나가도록 노력할 거예요.” 그렇다면 고등학교 때도 놀러가는 데에 제약이 많았을까. “고등학교 때는 놀러가는 것도 걱정이 없었어요. 친구들이 수능 끝나고 술을 먹는다든지 어디 놀러갈 때는 항상 도와줬거든요. 그런 모습이 굉장히 자연스러워서 걱정이 없었어요. 대학생이 되고 나니 모르는 상태에서 쉽사리 부탁을 하기가 쉽지 않아요. 또 지방에서 올라와보니 서울사람들이 좀 무섭기도 해요. 코를 베어 간다는 이야기도 있고……” 여기서 기자는 절대로 그럴 일이 없다고 하태우 학생을 안심시켜줬다. 이후에도 대학에서의 인간관계에 대한 그의 걱정은 계속된다. “어쨌든 처음에 시간표 짤 때도 점심시간 비우는 게 좋다고, 사람들 많이 만나야 한다는 조언을 들었어요. 그래서 최대한 비우려고 했는데……모임이라는 것도 누가 날 휠체어를 밀어주며 데려가야 참석할 수 있잖아요. 그게 힘들다면 그냥 듣고 싶은 과목이나 제대로 수강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말도 많고 낯가림도 없어서 친구 사귀는 데에 딱히 걱정은 없었는데, 앞으로 모임에 참여하는 게 약간 걱정이 되네요.” 대학에서의 전공 선택은 어떤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나중에 임상심리 쪽으로 공부할 생각을 하며 심리학과를 지망한다는 그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고등학교 때 문과를 선택한 이유가 오직 심리학과였어요. 요새 문과는 길이 없다느니 그런 얘기가 많았지만 그래도 심리학을 공부하고 싶었어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제가 말하는 걸 좋아하거든요. 임상 심리 쪽으로 공부해서 사람들과 자주 상담하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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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년 즈음에는 이 곳에서 심리상담사가 된 하태우 씨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항상 휠체어를 타야되기 때문에 이 넓은 관악캠퍼스를 돌아다닐 생각을 하면 어떤 생각이 들지 궁금했다. 넓은 학교에 대한 고민 외에도 미흡한 학교당국의 장애학생 지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이전부터 서울대가 넓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왔지만 예상보다 더 넓어요. 저 같은 경우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전동휠체어를 타야하는 상황이에요. 장애지원센터에 계신 이동 도우미도 공익근무요원 한 분 뿐이거든요. 지체장애 학생도 많은데 한 사람 한 사람 다 도움을 주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현재 서울대에 지체장애 학생이 30여 명인데 학교에서 대여해주는 전동휠체어는 한 대 뿐이더라구요.” 30여 명이 넘는 장애학생들을 위해 운행되는 특수 셔틀도 한 대 뿐이라 모든 학생의 시간표를 맞춰주기 힘들 것 같다며 걱정하는 하 씨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 마산에서 온 하태우 씨는 어머니, 막내동생과 함께 가족생활동에 입사할 예정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일 때문에, 그리고 고3에 올라가는 또 다른 동생은 고3이라 전학이 안 된다네요. 고3 동생은 공부를 잘 하니까 아마 내년에는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해서 같이 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다만 아버지 일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1년 정도 더 걸릴 수도 있구요.” 진로라든지 앞으로의 포부를 물어보기 위해서 물어본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에서 예상 밖의 대답을 들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용돈을 직접 벌고 싶어요. 서울 와서 집이 두 개로 나눠지니까 집안에 생활비 부담이 갈 것 같아요.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제한되어 있어서 걱정이에요. 수능이 끝난 후 친구들은 다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저는 못 했어요. 하다못해 편의점 일을 하면, 물품 진열하고 창문도 닦아야 하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카운터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 밖에 없어서 좀 고민이 돼요.” 약관의 나이에 집안 사정까지 신경 쓰는 너른 생각의 품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말에는 주위 사람들에 대한 당부와 어머니에 대한 마음을 전했다. “사람들이 저를 선입견 없이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또 저 때문에 친구들 모임도 자주 못 나가시고 항상 저를 챙겨주시는 어머니께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김상헌, 하태우 씨를 비롯해 2010년 서울대학교에 들어온 모든 새내기들의 희망찬 대학 생활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