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흥망은 비단 그 제작에 들어간 비용이나 CG 등의 특수효과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감독이 고민한 깊이와 주제의식의 탁월함, 그리고 많은 이들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정도에 달려있다. 윤종빈 감독이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학부생이던 시절 졸업작품으로 만든 는 특별한 컴퓨터효과나 스타캐스팅 없이 저예산으로 제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 칸 영화제의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받는 등 많은 이들의 시선을 집중시키며 성공한 독립영화로 평가받는다. 많은 남성들에게 군대에서의 불쾌한 경험을 환기시켜줌과 동시에 미필 남성 및 여성들에게는 군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는 데 일조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는 지훈. 지훈의 역을 연기한 배우는 다름 아닌 대학교 4학년이던 윤종빈 감독이다. 복학생이 그린 군대 이야기, 그 안에는 국방부가 이야기하는 낭만이나 우정보다 처절한 위계질서에 적응하는 다수 그리고 배제당한 소수의 이야기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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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의 더플백에 담긴 것은 비단 옷가지들만이 아닌 듯하다. |
군대의 경험들이 이어져나가는 사회
대한민국 남자라면, 적어도 신의 아들이 아닌 한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군대라는 특정한 조직을 거친 이들은 사회로 나와 군대에서 습득한 사고방식과 규율들을 퍼뜨린다. 는 군대를 다녀간 남자들만이 아니라, 그들이 영향을 끼치는 이 사회 전체를 다루는 영화다. 영화 초반에 나오는 군 생활의 단면들은 대다수의 남자들이 어떤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기법을 통해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한다. 상사의 말 한 마디에 속옷을 보여줘야 하고, 사회에서 돈 주고 사온 이른바 ‘싸제 빤스’를 입은 상병은 개념이 없다는 질책을 받으며 혹독하게 혼난다. 후임병들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며 자신의 고참에게 화장실에서 구타를 당한 상병은 체벌 후 건네받는 담배 한 개피에 억지로 웃음을 지어야한다. 제대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말년병장은 바로 앞에 있는 슬리퍼조차 자신의 손으로 가져다 신는 법이 없다. 군대에서 폭력에 시달리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인 일부의 사람들. 그들은 제대 후 과방에서 후배들에게 심부름을 시키고 개념을 운운하며 강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기피대상 복학생이 된다. 사회 진출 후에는 부하 직원의 얼굴에 서류를 집어던지는 상사가 된다. 위계질서를 철칙으로 여기며 그 안에서의 모든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은 대한민국 내무실의 특징이다. 그리고 그 특징은 고스란히 대한민국 사회의 특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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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살이 넘는 성인에게 속옷을 보여달라 명령하는 부사관. 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진다. “여기는 군대니까” |
태정과 승영의 군 경험
여기 두 병사가 등장한다. 태정(하정우 분)과 승영(서장원 분)이다. 태정은 군에서 요구받는 덕목들을 두루 갖추고 있는 데다 아랫사람들에게는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포스를 풍기며 내무실의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는 권력을 갖고 있으며 연륜과 인맥으로 무장하고 있다. 조직의 생리에 밝으며 어느 정도는 자신의 친구를 보호해줄 수 있는 ‘짬’을 지니고 있다. 승영은 어떤가. 그는 친구의 애인이 자신의 군복 사진을 폰카로 찍는 것조차 폭력일 수 있다며 거부하는 민감한 영혼의 소유자다. 선임의 부조리를 받아들이지 못해 말대꾸하다 싸우기 일쑤며 자신을 보호해주려는 태정조차 곤경에 빠트리고는 한다. 영화는 두 병사가 겪었던 군대의 이야기와 그 이후 상병이 된 승영이 사회인이 된 태정을 만나는 사회의 이야기가 시간을 넘나들며 엮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이들이 군대에서 겪은 경험들을 어떻게 지니고 살아가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군대에서 바람직한 인간형으로 잘 적응하던 태정은 정작 사회에 나와서는 그다지 인정받는 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 변변한 직장은 없고 한량처럼 놀러다니며 여자친구 앞에서는 과장을 섞어가며 자신의 군 생활 무용담을 펼쳐놓기 바쁘다. 그러나 정작 그것을 듣는 여자친구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녀에게는 군복을 입은 승영의 모습조차 신기해서 폰카에 저장해놔야 하는 대상일 뿐, 그 안에서 그들이 겪는 생활 따위는 관심도 없다. 오랜만에 만난 승영에게 어물어물 자신의 직업을 둘러대는 태정의 모습은 위풍당당하던 병장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군대에서 왕고참으로 군림하다가도 사회에 던져지면 그대로 별볼일없는 인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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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전화 받을 때 말을 그렇게 느리게 하면 도움을 줄 수가 없어. 몇 대 맞을래?” “…한 대 맞겠습니다.” |
군대에서 적응하지 못한 승영의 경우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속해서 불안한 표정과 목소리로 태정에게 밤에 같이 있어달라고 요구하는 승영. 태정의 여자친구 앞에서는 말 못할 비밀을 가지고 휴가를 나왔다. 자신이 다른 고참들로부터 감싸주던 고문관(어리버리한 행동으로 주위 동료들에게 짜증을 불러일으키는 사병을 가리키는 군대 속어) 지훈이 자살한 것이다. 태정이 뒤를 봐주던 군 생활 초기의 삐딱선과는 달리, 보호막이 없어진 이후 군에서 요구하는 인간형으로 변해가던 승영은 점점 고문관 지훈의 행동이 못마땅해지고 참을 수 없어서 ‘딱 한 대’ 때리고 욕했을 뿐이다. 다만 그 딱 한 대가 지훈의 가장 힘든 시기에 일어났다는 것이 문제다. 여자친구가 떠나고 실의에 빠져 고립된 부대에 갇혀있는 지훈에게,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었던 승영의 폭력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승영은 지훈의 죽음을 자신이 불러일으켰다는 죄책감에 태정을 붙잡고 위로를 받으려 한다.맞은 놈과 때린 놈 군대에서의 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따로 나누지 않는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고 이른바 ‘짬’을 먹게 되면 폭력의 대상에서 그것을 행하는 주체가 된다. 태정 또한 힘든 ‘쫄따구’ 시절을 보냈을 것이며 그 밑에서 주구장창 얻어맞기만 하는 상병 대석도 나중에는 결국 병장이 된다. 승영의 케이스는 좀 다르다. 그 힘든 이등병 시절을 내무반장 태정의 비호 아래 별 다른 행동의 제약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렇게 폭력으로부터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던 승영이었기에 태정 앞에서 “나는 내 후임 들어오면 때리지도 않고 정말 잘 해줄꺼야” 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는다. 실제로 그를 자유롭게 만든 것은 폭력을 막아주는 더 큰 폭력, 태정의 힘이었음을 승영은 과연 몰랐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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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살 직전 승영에게 얼굴을 맞은 지훈. 믿었던 승영에게 맞은 후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
승영은 불가능한 상상을 했고 그것을 시도했다. 자신은 군대의 문화를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태정에게 큰소리치며 실제로 다른 선임들과 달리 지훈에게 잘 대해주기 시작한다. 물통도 직접 들고 화장실에서 담배도 몰래 주며 무엇보다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 대한다. 하지만 개인의 힘으로 시스템을 바꾼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한 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조직이라 일컬어지는 군대는 더더욱 그러하다. 어쩔 수 없이 승영은 다른 가해자들과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 그러나 그것은 서서히 물든 폭력이라기보다는 준비되지 않은 우발적 폭행에 가깝다. 모자를 벗고 담배를 피며 계단을 올라간다는 이유로 상병 대석에게 멱살을 잡힌 지훈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 “씨발.” 그것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 여긴 승영은 처음으로 상소리를 한다. 사실 처음은 아니다. 이전에 말년 병장에게 자신의 편지를 빼앗아서 훔쳐봤다는 이유로 욕을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더 큰 충격은 욕을 한 승영보다는 욕을 먹은 지훈이 받았다. 끝까지 자신의 보호막이 되어줄 것이라 믿었던 승영에게 폭력을 당한 지훈의 충격은, 화장실에서 집합당한 후 태정에게 처음 맞았던 승영의 충격보다 컸을 것이다. 그나마 승영은 태정에게 맞은 후 위로라도 받았지만, 폭력을 처음 행사해보는 승영은 지훈을 위로해줄 깜냥도 되지 않았다. 결국 자살한 지훈의 일을 괴로워하던 승영은 태정에게 자신을 위로해주길 기대해보지만, 그 마지막 위로를 받지 못한 채 자신 또한 여관의 욕탕 안에서 이어폰을 꽂은 채 손목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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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첫 장면. 지훈의 자살 이후 태정에게 찾아가는 승영의 귀에 꽂혀있는 이어폰은 그가 자살할 때에도 꽂혀있었다. |
누가 누구를 용서할까
끝내 승영은 지훈에게 자신이 행한 폭력에 대한 용서를 구하지 못한다. 승영은 그저 모든 것이 혼란스럽다. 자신에게 폭력을 가했던 태정에게 죄의식을 느꼈는지 넌지시 물어보지만 태정은 그저 여자친구와의 잠자리를 방해한 휴가 나온 군바리 승영이 짜증날 뿐이다. 결국 승영은 자살을 통해 자신의 죄책감에서 벗어나고, 태정은 그런 승영의 시체 옆에서 멍하니 상념에 빠져 있다가 경찰 조사를 끝마친 후 일상생활로 복귀한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발톱을 깎고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게 요리를 먹는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어제 만난 군인 친구 부대에 잘 들어갔어?”라고 묻는 여자친구의 한 마디에 태정은 화장실로 돌아가 자신에게 주문을 건다. “잘 들어갔어. 잘 들어갔어.” 그것은 아마 망각과 길들여짐의 주문일 것이다. 자신이 행했던 폭력도 그리고 그것을 용서받지 못했던 지난 밤도 다 잊기 위해 되뇌이는 주문. 주문을 외우는 태정은 죄책감을 느낀다기보다는 승영처럼 폭력에 민감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합리화하고 재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생각에만 사로잡혀있다. 그리고 태정은 실제 군 제대 이후에도 군대에서 얻은 습성을 버리지 못했다. 집에 가려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대라며 강압적으로 밤늦게까지 붙잡아두는 태정의 태도는 흡사 화장실에서 상병 대석을 두들겨패던 병장 태정의 모습과 같다. 태정은 굳이 자신의 행동에 대한 용서를 구하려고 시도나 할까. 군대에서 폭력을 행했던 많은 이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 이들이 승영과 같이 죄책감에 몸부림치다가 손목을 긋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할까. 아니면 달인 김병만 선생처럼 “가보지 않았으면 말을 하지 말라.”며 지금 이 순간도 자신의 과거를 정당화시키고 있을까. 마치 화장실 거울을 보며 주문을 외우는 태정처럼 말이다. 진정 안타까운 것은 지금도 태정과 승영의 이야기가 수십만 청년들 속에서 알게 모르게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조직임에도 개인이 그것을 피할 수 없는 굴레, 군대. 도대체 군대가 뭐길래 오늘도 이십대 초반의 청년들은 신검 결과에 웃고 우는지, 그렇게도 싫어하던 조직을 다녀오면 자신의 과거를 폄훼하기 싫어서 의미를 부여하고 거짓 합리화를 시도하는지···영화 뒤편에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한 이후 윤종빈 감독은 육군으로부터 고소를 당했다. 외부에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군 내부 폭력의 고리를 폭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는 이들은 의문을 가질 만도 하다. “저런 영화가 어떻게 군 부대의 촬영 협조를 얻었지?” 그렇다. 윤 감독이 군 부대에 촬영협조를 구하며 제출했던 시나리오는 “군인들의 사랑과 우정을 그리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였다고 한다. 2005년 고소당한 이후 윤 감독은 2006년 육군에 사과문을 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