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퍼스에 불어오는 공안탄압의 바람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인 부산대 이원기 총학생회장이 지난 7월 15일 오전 기자회견 직후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고려대 총학생회장 정태호 씨는 지난 6월 19일 집행부들과 시국집회를 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 연행될 뻔했다.그는 “경찰들이 길을 막고 택시에서 집행부들을 끌어내린 다음 나를 연행하려 했다.자신의 소속과 신분도 밝히지 않고 영장제시도 없이 ‘태호야 가자’라고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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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의장인 부산대 이원기 총학생회장이 지난 7월 15일 오전 기자회견 직후 경찰에 체포되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장 정태호 씨는 지난 6월 19일 집행부들과 시국집회를 하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 도중에 연행될 뻔했다. 그는 “경찰들이 길을 막고 택시에서 집행부들을 끌어내린 다음 나를 연행하려 했다. 자신의 소속과 신분도 밝히지 않고 영장제시도 없이 ‘태호야 가자’라고만 말했다. 지나가던 시민과 고려대 선배가 도와줘서 다행히 연행되지 않았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건국대학교 총학생회장 하인준 씨와, 정치대학생회장 이태우 씨, 생활도서관장 어광득 씨는 7월 5일 각각 다른 장소에서 연행됐다. 잘 짜여진 작전이었다. 연행돼 향한 곳은 홍제동 대공분실이었고, 명목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도로교통법 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였다. 하인준 씨는 “휴대폰이 추적당하고, 인터넷에 게재한 글과 이메일이 모두 다 정리돼 있었다. 연행되기 전 한 달간은 미행도 당했다는 것을 알게됐다”면서 대공분실에서 느낀 당혹스러움을 ‘전국학생행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리기도 했다.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은 연행과 수배 속에서 시대의 좌표를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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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명여대 총학생회장(왼쪽), 고려대 총학생회장(오른쪽) 모두 고려대 학생회관에서 수배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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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에서 7월은 대학생 운동단체들에게는 악몽과 같았다. 불법집회에 참가했다는 등의 혐의로 여러 대학의 총학생회장과 학생회 간부들에게 대거 소환장이 날아오고 강제 연행과 수배가 이어졌다. 8월 이후로 대학생에 대한 연행 사건은 뜸해졌지만, 여전히 고려대와 숙명여대, 덕성여대의 총학생회장은 언제 끝날지 기약 없는 수배생활을 지금까지도 계속하고 있다. 촛불집회와 용산참사,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 주요 사회적 이슈 때마다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대학생에 대한 공안탄압이라는 비판 여론도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올해, 집시법으로 대학생 126명 연행 대학생에 대한 연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3월 말부터였다. 지난 5월에는 ‘고대녀’로 알려진 김지윤 씨가 연행됐다. 그 이후에 성공회대 부총학생회장, 건국대 학생회장을 포함해 건국대 학생회 간부 3명, 고려대 부총학생회장 등이 줄줄이 연행됐다. 최근 경찰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2009년 1월에서 8월까지 집시법의 위반 혐의로 연행된 대학생은 중복 연행과 대학원생을 포함해 총 126명에 달한다. 이들의 혐의는 2008년 촛불집회, 용산참사와 관련된 집회 등 각종 불법집회에 참가했다는 것이다. 연행이 아니라도 대학생들에게 대거 소환장이 발부되기도 했다. 그러나 소환장을 받은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경찰의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3차에 걸친 소환장을 받고도 출두하지 않으면 수배가 되지만, 소환장 발부 자체를 학생 운동권에 대한 정치 탄압이라고 보고 출두를 거부하는 것이다. 숙명여대 총학생회장 박해선 씨는 “출두 자체가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소신에 따라서 수배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 연행에 대처하기 위해 ‘대학생 다함께’, ‘대학생 사람연대’,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등 8개 단체가 지난 3월 말 결성한 ‘공안탄압대학생대책위’에 따르면, 현재 수배된 학생은 고려대, 덕성여대, 숙명여대 총학생회장이다. 여기에 작년 한대련 의장까지 총 4명이다. 이들은 경찰로부터 소환장을 발부받았지만 3차까지 출석하지 않아 수배를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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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보안수사 인력의 확대와 함께, 대학생에 대한 경찰보안수사 의혹도 커지고 있다.

경찰이 한대련을 견제하고 있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 우선 한대련 간부에게 집중적으로 소환장이 날아오고 있다. 그리고 지난 7월 5일 건국대 총학생회장의 연행이 이뤄지고 나서 경찰은 ‘한대련 간부 3명을 연행했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건국대는 한대련 소속이 아니었다. 경찰이 처음부터 한대련을 의식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셈이다. 박해선 씨는 “학생 운동의 중심에 한대련이 있었기 때문에 한대련을 조직적으로 위축시키고 활동에 제약을 가하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강도높은 대응방침 세워둬이렇듯 각종 학생회 간부 등 대학생들이 무차별적으로 연행되는 상황은 올해들어 더욱 강경해진 경찰의 대응방침에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다. 지난 4월 1일 경찰청은 일선에 ‘2009년 집회시위 관리지침’을 하달했다. 이 지침은 ‘불법폭력이 우려될 경우, 집회 신고단계와 초반부터 강도 높게 대응하고, 기자회견과 촛불문화제 등을 빙자한 변형된 불법집회에 더욱 철저히 대응할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이런 방침은 즉각 경찰의 집회시위 관리 양상의 변화로 나타났다. 4월 10일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등록금 인하 촉구 삭발 기자회견이 열렸다. 여기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는 이유로 경찰은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로 간주하고 대학생 49명을 강제로 연행했다. 당시 삭발식에 참여했던 박해선 씨는 “당시 경찰은 해산을 유도하기보다는 잡아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무전으로 ‘누구누구 잡아’라고 하며 학생들을 표적 연행했다”고 말했다. 국가보안법과 관련한 보안수사 또한 그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보안사범의 검거 건수도 작년 한해 40명이었던 것이 올해는 8월 말까지 53명으로 급격히 늘었고 국가보안법을 다루는 보안수사대 인력 또한 감소에서 증가추세로 돌아섰다. 또한 지난 4월 2일부터 경찰은 ‘안보 위해 사범 100일 수사계획(100일 수사)’을 실시했다. 인터넷 친북 게시물 게재, 이적단체 구성, 간첩행위 등을 수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수사의 대상이 넓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시민단체와 학생 운동진영에서는 건국대 총학생회장의 연행은 일반 집시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 보안수사대가 무리하게 개입했다고 보고 있다. 통상 집시법 위반혐의 피의자는 경비부서에서 수사하지만, 건국대 총학생회장 등은 국가보안법을 다루는 보안국에서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집시법 위반으로 연행한 다음에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까지 수사하는 것은 영장주의에 어긋난다는 지적도 있다. 한국진보연대의 황순원 민주인권사무국장은 “100일 수사는 구조조정 압력에 몰린 보안 경찰의 실적 올리기일 뿐 아무 의미도 없다. 진보진영에 재갈을 물리기 위한 탄압”이라며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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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순원 민주인권사무국장은 경찰의 ‘100일 수사’가 진보진영에 대한 재갈 물리기라고 비판한다.

“정부의 촛불 공포증이 근본적 문제”

그렇다면 왜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이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정태호 씨는 “단순히 분절적으로 학생운동만을 탄압하는 것이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 저항하는 세력에 대한 일련의 탄압의 과정 속에서 이해를 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이 독재적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라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장덕진 교수(사회학과) 역시 “지금의 상황은 민주화와 변혁운동의 중심에 섰던 80년대의 학생운동에 대한 탄압과는 다른 문제”라면서 “지금은 학생운동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줄어든 만큼, 사회에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정부의 저항세력에 대한 견제 중 하나”라고 해석했다. 대학생에 대한 경찰의 연행과 수배가 계속되는 데에는 소통을 두려워하는 정부의 근본적인 자세가 문제로 꼽힌다. 대학생이 집회를 통해 정권을 향한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는 것이다. 이는 집회 시위의 자유를 제한하는 최근의 경찰의 태도에서도 나타난다. 강희락 경찰청장은 지난 4월 29일 기자 브리핑을 통해 “불법 폭력시위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집회시위에 대해서는 금지를 통고하고 금지통고된 집회를 강행하거나 문화제 등을 빙자해 불법집회를 시도할 경우 집결을 원천차단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사실상 집회의 성격을 경찰이 자의적으로 판단해서 허가제로 운영하겠다는 내용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장덕진 교수는 “작년 촛불집회 이후 임기 초반의 이명박 정부는 어떤 정책도 제대로 시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 그 이후로 정부는 촛불에 대한 공포증을 가지고 있다”며 “최근에 ‘중도실용’, ‘서민유화’ 등의 제스처를 통해 지지율이 회복되면서 정부가 자신감을 얻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촛불집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그래서 법치를 강조하면서 처음부터 국면 재전환의 불씨를 끄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배로 학생사회 분위기는 싸늘학생회 지도부에 대한 수배와 강제연행 사건은 심리적인 공포감을 조성해 학생사회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학생회 간부들도 계속되는 연행사건이 학생사회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은 아닐까 긴장하고 있다. 정태호 씨는 “예전에는 집회 자체가 부담스러워서 못나가는 학생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잡혀가거나 맞을까봐 무서워서 못나가겠다는 말이 더 많다”면서 “학생들이 수배되고 연행되면서 공포스러운 분위기가 조장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혜연(성악과 09) 씨는 “대학생들이 연행되고 수배되는 사건이 계속된다면 집회 활동이 위축될 것 같다. 스스로도 집회나 시위같은 활동들을 자제하고 더 조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서울산업대에 재학 중인 정한나(건축학과 08) 씨는 “이런 일이 생기면 집회에 나가는 것은 물론 실명을 적어야 하는 서명운동조차도 망설여진다”며 집회 뿐 아니라 다른 일에도 부담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당분간 수배생활을 하는 학생들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정태호 씨는 “수배가 풀리려면 밖에 나가서 잡혀가거나 정권이 바뀌길 기다리는 수밖에는 없다. 이런 상황이 답답한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찰에서는 수배자들의 생활에 대해서 다소 무책임한 태도다. 수배자들에 대한 경찰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경찰청 대변인실 관계자는 “경찰이 의도적으로 수배를 한 정책적인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경찰이 학생 수배자들에 대해서 특별한 입장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했다. 장덕진 교수는 “학생회 간부가 연행되면 단기적으로는 학생들이 정치 참여가 위축될 수는 있다. 그러나 학생 운동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훨씬 더 큰 탄압에서도 학생 운동은 계속 이어져왔다”면서 “정부는 모든 사람이 정부 말을 잘 따르는 조용한 세상을 마치 통합된 사회라고 생각하지만 그런 사회는 세상에 없다. 시민사회나 학생사회의 정치적 목소리를 억압한다면 오히려 대규모의 폭력적인 갈등만을 키울 것이다”라며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일침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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