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를 추억하며

‘개나리투쟁’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개나리투쟁은 교육투쟁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이는 교육투쟁이 개나리 피는 봄에만 반짝하고 곧 시들어 버린다하여 붙여졌다.학생사회에서 교육투쟁의 의미는 크다.학생들은 교육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치’의 경험을 얻는다.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이곳 학교에서, 피부에 맞닿은 직접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 교육투쟁이다.

‘개나리투쟁’이라는 말을 들어봤는가. 개나리투쟁은 교육투쟁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이는 교육투쟁이 개나리 피는 봄에만 반짝하고 곧 시들어 버린다하여 붙여졌다. 학생사회에서 교육투쟁의 의미는 크다. 학생들은 교육투쟁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자치’의 경험을 얻는다. 자신이 발 딛고 서있는 이곳 학교에서, 피부에 맞닿은 직접적인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 교육투쟁이다. 학기가 시작하는 3월 초는 매년 교육투쟁이 가장 활발한 시기다. 그러나 올해는 교육투쟁이 없다. 2005년 아크로에서 천칠백명의 학생이 모여 비상총회를 하던 모습도, 2007년의 등록금 인상을 반대하던 일만인 서명도, 작년 학교를 뒤덮었던 색색의 현수막도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자보조각조차 없으며, 교육투쟁을 주도할 세력도 없어 보인다. 그야말로 개나리의 꽃망울조차 보기 힘든 상황이다.교육투쟁이 힘들지 않았던 적은 없다. 항상 극소수의 사람이 주도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교육투쟁은 항상 ‘실패했다.’ 교육투쟁이 실패하면, 교육투쟁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반성한다. ‘지난 번 교육투쟁은 그것이 문제였고, 이 번 교육투쟁은 이것이 문제다.’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똑같은 반성과 똑같은 실패가 되풀이됐다. 그럼에도 항상 봄이 오면 교육투쟁은 있었다. 그래서인지 교육투쟁의 불씨조차 찾을 수 없는 올해 봄 관악은 씁쓸하다. 이는 그 동안의 교육투쟁이 ‘등록금인하’에 지나치게 집중했기 때문이다. 등록금이 동결된 올해, 교육투쟁이 사라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착이다. 교육투쟁을 주도하던 학생정치조직들이 교육투쟁의 새로운 의제 발굴에 실패한 것은 명확해 보인다. 문제는 아직까지 ‘교육권’이 온전하지 않다는 데 있다. 투쟁해서 쟁취해야 할 권리들은 산더미다. 동결됐지만 비정상적으로 높은 등록금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장애 친화적으로 구성되지 않은 캠퍼스나 아직도 남아있는 반여성적 강의실 문화는 학생들이 싸워야할 대상이다. 명확한 비전 없는 법인화 문제도 가시화되고 있다. ‘등록금’은 교육투쟁의 핵심적인 의제가 되기엔 부족하다. 등록금을 책정하는 본부와, 그것에 반대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학생. 그 공고한 권력관계에 변화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비록 실패뿐인 역사였지만, 그 간의 교육투쟁은 학생의 권리를 높여왔다. 봄이 지나면 꽃 지듯 시들어버린다 해도, 교육투쟁이 중요한 이유다. 확실히 어려운 문제다. 누구 하나가 나서서 정답을 제시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다. 다만 매년 봄마다 찾아왔던 ‘교육투쟁’이 전설 속 옛이야기가 되지 않기 위해서, 예전의 실패들이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음을 알아야 할 때다. 이 글이 너의, 나의, 우리의 교육권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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