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에 서울대학교 제2캠퍼스(가칭 집현캠퍼스)를 설치하는 안에 대해 교육과학기술부와 서울대학교 사이의 논의가 오가고 있다. 서울대학교 설치령은 ‘일부개정 2008.2.29 대통령령 제20740호’ 3조에 “서울대학교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로 한다. 다만, 일부 단과대학의 경우에는 그 시설을 경기도에 둘 수 있다”고 서울대학교의 위치를 명시하고 있다. 작금의 분위기를 보면 세종시가 경기도로 편입될 정도의 행정구역 개편 또는 대통령령 개정, 둘 중 하나는 곧 일어날 것 같다. 서울대학교 제2캠퍼스 설립의 과정 및 그 주장의 타당성, 그리고 실제 정책에 대한 적용까지 모든 것은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결정되고 통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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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운찬 총리는 자신이 총장을 지냈던 서울대학교에 대한 설득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
어디서부터 시작된 제2캠퍼스인가
모든 것의 시작은 세종시 수정법안 논쟁이었다. 여야 합의를 거쳐 9부 2처 2청을 옮기기로 했던 원안이 수정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지난 9월 21일 정운찬 총리 지명자는 인사청문회 당시 “원안을 수정하는 것이 내 소신이다”는 발언으로 수정안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당시 거론되던 수정안들 중 과학비즈니스벨트가 가장 유력한 대안으로 거론되면서 서울대 공대 이전설이 불거져 나왔다. 11월 들어 강태진 공대 학장과 안태식 경영대 학장이 각각 2일, 15일 ‘제2캠퍼스(가칭 집현캠퍼스) 설립안’을 대학 본부에 제출했다. 대학본부에서는 ‘아직 논의된 적이 없이 두 단과대가 독단적으로 제출한 것일 뿐’이라며 제2캠퍼스 설립계획을 전면적으로 부인했다. 이윽고 11월 19일, 교과부 김관복 대학지원관은 서울대 주종남 기획처장에게 서울대의 세종시 이전 초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한 본부의 응답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19일 열린 ‘세종시 제2캠퍼스 건립 문제 논의 특별 대책팀’(특별 대책팀)의 첫 회의에는 9대 단과대가 참여했다. 독자적으로 설립안을 제출했던 공대, 경영대 외에 암센터 등의 병원 신설을 추진하는 의대, 치의대만이 알려졌으며 나머지 5개 단과대는 알려지지 않았다. 대책팀의 팀장은 김신복 부총장이며, 팀원은 주종남 기획처장과 제2캠퍼스 계획과 관련된 최소 5개 단과대 기획실장들로 구성돼 있다고 알려졌다. 경영대의 한 교수는 “학교가 정부와 협상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교수 개개인이 목소리를 내는 것은 학교를 위해서 좋지 않다. 본부에서 교수들에게 언론과의 인터뷰를 함부로 하지 말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인터뷰를 거절했다.정치 싸움에 등 터지는 서울대 서울대학교의 캠퍼스 이동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1975년부터 시작된 서울대학교 종합화계획에 따라 동숭동과 공릉동 등에 있던 단과대들이 관악캠퍼스로 모이는 일이 있었다. 60학번으로 공릉동 캠퍼스에서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은 “전인교육을 위해 대학종합화는 필요했지만 꼭 관악캠퍼스일 필요는 없었다. 캠퍼스 이전의 시점이 당시의 격렬했던 서울대 문리대의 학생운동과 시기적으로 맞물리는 것을 오비이락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라며 당시 정권의 의도를 추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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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용경 의원은 “자생적으로 발전한 실리콘밸리와 과학비즈니스벨트를 연결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
세종시 제2캠퍼스는 당시의 대학종합화 계획과는 거꾸로 가고 있다. 이용경 의원에 따르면 공대만이 있던 공릉동 캠퍼스는 교양수업이 부족했다. 그는 “교양수업이 철학, 역사 등 일부 과목으로 한정돼 있었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특정 단과대 위주의 캠퍼스는 종합대학의 이점을 버리는 일”이라며 칼텍과 MIT의 예를 들었다. MIT의 경우 전인교육을 강조하며 하버드 등에서 전공 외 수업을 들을 기회들을 학생들에게 많이 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보장해주지 못한 칼텍의 경우 점점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한다. 일부 단과대만의 캠퍼스가 생긴다면 어떤 결과가 생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는 종합대학으로서의 효과를 위해 2003년 농생대 상록캠퍼스를 관악으로 옮긴 것과도 반대되는 방향이다. 현재 고가장비의 중복, 분산 투자 방지 및 공동 활용을 도모하기 위해 관악캠퍼스에 위치한 기초과학 공동기기원(NCIRF)이나 농생명과학공동기기원(NICEM) 등은 종합대학으로서의 이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학내 구성원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인들에 의해 학교의 정책이 결정되는 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도 나온다. 이현재(기계 05) 씨는 “정치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중 공대를 나온 사람이 없으니 그런 어이없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이공계에 대한 대우가 이 모양인데 숫자만 더 늘려서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다”며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익명을 요구한 공대 석사과정의 한 학생은 “세종시에 공대를 하나 짓겠다면 짓는거지 왜 서울대학교 캠퍼스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세종시에 있으면 서울대가 아닌 다른 이름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니냐. 왜 애꿎은 남의 학교 이름을 정치인들이 들먹이는지 모르겠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도대체 왜 만날 서울대만… 제2캠퍼스 건립 계획이 처음 ‘공대 이전설’로 학내에 소문이 퍼졌을 때의 반응은 뜨거웠다. 하루에도 수십 개의 글이 스누라이프에 올라오며 정권과 정운찬 총리, 그리고 한나라당 및 서울대 이전을 주장하는 일부 언론인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 서울대를 보낼거면 서울 내 대학들 중 지역발전 효과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국공립 및 사립 8개 대학을 한 번에 보내라’는 냉소적인 글도 올라왔다. 학생들의 분노가 모이는 지점은 하나였다. “왜 우리 학교만 갖고 이러냐. 우리가 봉인가.” 이공계에 대한 사회적 대우와 평상시 서울대에 대한 언론의 보도경향에 대한 불만까지 합쳐져 학생들의 분노는 극에 다다랐다. 이용경 의원은 “서울대는 국립대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사립대의 경우는 협상 등을 하면서 많은 부분을 조율해야 한다. 하지만 국립대는 법만 바꾸면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관악캠퍼스의 설립 과정에서도 ‘국립대의 특성’이 이용되기는 마찬가지였다. 이용경 의원의 말마따나 종합화계획이 꼭 필요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 장소가 굳이 서울의 외곽에 위치한 관악캠퍼스일 필요는 없었다. 결국 정부의 정책 및 지향에 따라 국립대학교인 서울대는 자신의 운명을 교육과학기술부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의원은 “카이스트의 경우 교육부에 휘둘리기 싫어서 예전 과학기술처 소속으로 들어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명박정부 들어 교육과학기술부로 통합되며 카이스트 또한 서울대와 마찬가지로 세종시에 들어올 운명에 놓였다. 11월 21일 에 따르면, 교육과학기술부 김관복 대학지원관이 “19일 서울대 주종남 기획처장에게 세종시 이전 초안을 마련하라고 요청했다”며 “지금 계획으로는 세종시에는 서울대와 고려대, KAIST 등 3개 대학이 입주할 것”이라고 밝혔다고 한다. 서울대의 운명이 교육부에 의해 좌우됐던 지금까지의 전례를 보면 무시할 수 없는 대목이다. 요청이 요청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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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9동 기초과학공동기기원. 이공계 실험실들이 공동으로 이용하는 기기들이 있다. |
기대와 우려, 엇갈리는 학내 반응들
제2캠퍼스 설립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 및 예상은 단과대별로 엇갈리는 편이다. 전공 특성상 설비 및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는 공대의 경우 효과 및 실현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이경우 교수(재료공학부)는 “만일 제2캠퍼스를 만든다면, 그 곳에서도 최소한 현재 공과대학 수준의 교육이 제공돼야 하는 것을 전제로 가능하다”며 운을 뗐다. “제2캠퍼스는 서울대학교가 보유한 풍부한 자원이 있을 수 없다. 다양한 분야가 한 곳에 있는 종합대학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마 학생 한 명당 현재 공과대학에서 투입하는 비용의 1.5배는 돼야 비슷한 수준의 교육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며 막대한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따라서 이러한 막대한 투자를 정부가 할 수 있을 것인지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정치 논리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국가 정책의 큰 방향이 어떻게 잡히는 것인가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용경 의원도 “정부에서 말하는 실리콘밸리와 같은 벤치마킹 모델은 세종시의 선례가 될 수 없다. 실리콘밸리는 기업과 연구기관들이 모여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사례다. 세종시 과학비즈니스벨트처럼 미국에서도 정부가 주도한 과학연구단지 조성사업은 실패로 돌아간 사례가 있다”며 설령 제2캠퍼스가 신설되더라도 성공적인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문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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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협상의 여지를 통해 파격적인 지원을 받을 수도 있다”는 이호석(경영 석사과정) 씨 |
반면 이호석 씨(경영학과 석사과정)는 “지금 본부가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다면 정부와 협상의 여지가 생겨 많은 인센티브를 따낼 수 있을 것이다”며 “교수 신규채용 및 시설지원 그리고 법인화과정에서의 자율권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2캠퍼스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 “더욱이 경영대의 경우 정원확대를 절실히 원하지만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 마음대로 정원을 늘리지 못한다. 세종시에 새로운 캠퍼스가 생길 경우 경영대 정원을 새로이 확충함으로써 지금보다 더 나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제2캠퍼스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나타냈다. 다만 이유진(경영 05) 씨는 “단순히 새로운 캠퍼스를 짓고 학생들 숫자만 늘리는 것이 얼마나 경쟁력의 향상에 기여할지는 모르겠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김무성(의예 07) 씨의 경우도 제2캠퍼스와 함께 세종시에 들어올 병원건물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세종시에 새 병원이 생길 경우 기존에 존재하던 서울대학교 병원의 일자리 외에 새로운 자리들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제2캠퍼스에서 신규학생을 어떤 형태로든 받아도 새 병원에서 당장 일할 인원의 공백이 생길 것이다.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는 말을 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 여전히 세종시 민관합동위원회의 일부 위원들은 일부 단과대 캠퍼스의 신설이 아닌 현재 관악캠퍼스에 있는 서울대 전체를 세종시로 옮기는 방향을 검토하고 있다. 논의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서울대학교의 모든 구성원들은 정치인과 기성언론의 입만을 바라보는 형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