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교육원에 재학 중인 외국학생 A씨는 한국어 수업이 모두 끝난 오후 1시, 한국어 도우미와 매칭된 후 첫 만남을 가졌다. 언어교육원 앞 판코(FANCO)에서 기다리고 있던 도우미와 식당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눴다. 서울대학교 학생과 처음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어서 좋았지만, 아직은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기만 한 A씨. 다음주에 다시 만나기로 한 날이 기다려진다. 한국어 도우미, 외국학생과 서울대생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한국어 도우미 활동은 1996년부터 서울대 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자발적인 소규모 봉사동아리 형태로 시작했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운영되지 못하던 중 2006년 가을학기에 기초교육원의 사회봉사과목 신설과 함께 제도적으로 정착됐다.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의 한국어 도우미 담당자 정연주 씨는 “한국어 수준이 개인별로 매우 다른 12~15명의 외국학생들이 한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 개별 수업이 필요하다. 외국학생들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현실을 파악하고, 한국어 도우미 제도를 실시했다”며 제도 실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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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교육원 한국어교육센터 정규 프로그램의 외국학생들을 위한 한국어 도우미 지원 현황. 봄·가을학기에 비해 여름·겨울학기의 도우미 수가 현저히 적다. |
한국어 도우미는 교내 교환학생을 위한 ‘스누버디’와 달리, 언어교육원의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외국학생들을 돕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언어교육원에서 수학 중인 외국학생들은 주로 중국, 말레이시아, 일본, 미국 출신이다. 이들은 국적뿐 아니라, 나이, 학력, 경제적 사정도 다양하다. 따라서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도 천차만별이다. 이에 정 씨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해와 경험 여부가 한국어 학습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도우미의 협조가 필요하다”며 도우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외국학생들의 한국어 도우미로 활동하는 서울대학교 학생 수는 2007년 178명에서 2008년 217명, 그리고 2009년 현재(겨울학기 모집 전)까지 248명으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매학기 한국어 도우미를 요청하는 외국학생 또한 점점 많아지고 있으나, 봄·가을학기에 비해 방학기간인 여름·겨울학기의 한국어 도우미의 수가 50% 정도가 채 안 될 정도로 부족한 실정이다. 그래서 도우미를 원하지만 소개받지 못하는 외국학생도 발생하고 있다. 대만에서 온 외국학생 진혜진 씨는 “도우미를 정말로 원하는 학생보다는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 순으로 도우미와 연결시켜줘 속상해 하는 친구가 있다”며 절실히 원하는 학생이 도우미를 만나지 못하는 일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이유는 달라도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언어교육원의 외국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우는 목적은 개인적인 호기심부터 최근 한류 열풍의 영향, 한국 대학 및 대학원 진학 등 다양하다. 이번 가을학기에 도우미로 활동 중인 장수연(사회과학 09) 씨는 “담당 외국학생이 가정이 있는 일본인 여성이라 한류 열풍으로 한국어에 관심을 갖게 됐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취업을 목적으로 한국어 자격증이 필요해 한국어 공부를 하더라”며 예상 밖의 학습동기에 대해 신기해했다. 진혜진 씨는 “미국 유학 중 만난 한국 남자친구와 결혼을 하게 돼 한국어를 배우게 됐다”며 색다른 동기를 소개했다. 브라질에서 태어난 교포 2.5세인 루카스 씨처럼 교포 2세대 이상의 한국인들도 상당수다. 중국 연변에서 온 청봉 씨나 일본에서 온 켄 씨의 경우에는 정부장학생으로 대학원에 입학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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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우미 김동연 씨(왼쪽), 한국정부초청장학생인 에두아르도 씨(가운데)와 톨티니 씨(오른쪽). 올해 9월 초에 한국에 와서 아직은 도우미와의 대화에는 한국어보단 영어가 편한 이들. |
언어교육원은 한국어 수준에 따라 초급부터 고급까지 총 여섯단계로 분반해 학생들을 받는다. 외국학생들은 진단고사를 통해 알맞은 반에 입학하게 된다. 주중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매일 4시간씩 10주간 수업을 듣고, 중간·기말시험을 보면 수료할 수 있다. 캄보디아에서 올해 9월, 정부초청장학생으로 처음 한국에 온 톨티니 씨는 언어교육원 1급 과정을 수강 중이다. “한국어에 흥미가 없었지만, 한국 학생들과 친하게 생활하기 위해 배우고 있다. 그런데 언어교육원에서 4시간 동안 계속 수업을 받는 것은 매우 힘들다”며 집중적인 한국어 수업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아직 한국어가 익숙지 않은 코스타리카 출신 에두아르도 씨는 “언어교육원 프로그램은 좋지만, 처음 배우는 입장에서 가르쳐주는 속도가 너무 빠르고 연습할 시간이 부족하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며 도우미와의 추가 연습시간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어의 발음과 억양이 이렇게 중요한 줄 몰랐어요.”한국어 도우미는 사회봉사로 지원한 경우와 자원봉사로 지원한 경우가 있다. 도우미에 지원하면 언어교육원 측에서 제공하는 사전교육을 받으며 간단한 주의사항을 숙지한다. “사회봉사 과목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관을 살펴보다가 언어교육원의 한국어 도우미를 알게 됐다”는 장수연 씨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은 사회봉사 과목을 통해 도우미 활동을 알게 된다. 그러나 최병국(체육교육 06) 씨처럼 예전에 군대에서 한국어를 가르친 경험을 살려 봉사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최 씨는 “주로 외국학생이 한국어 수업을 들으면서 어려웠던 내용과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내용에 대해서 질문하면, 여러 예시를 들면서 설명해야 외국학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며 외국 학생과의 활동 경험담을 소개했다. 또한 남는 시간에 그는 주로 한국 문화에 대한 설명과 외국학생의 출신국가와의 차이가 있는 문화 등에 대한 주제로 이야기도 나누면서, 발음 교정도 도와주었다고 한다. 한편 일주일에 한 번 3시간씩 정기적으로 외국학생과 만난다는 장 씨는 “1시간 동안 숙제와 발음과 억양 공부에 치중했고, 그 이후에는 그림이 많이 나오는 회화 교재를 사서 이것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며 나이 차이가 있는 외국학생과 대화 주제를 찾기 위해 직접 회화 교재를 구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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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어교육원의 정규과정은 초급과정인 1급부터 고급과정인 6급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6급과정을 수료하는 학생들은 학사모를 쓰고 언어교육원 졸업사진을 남긴다. |
많은 도우미들이 외국학생과 만나면서 한국어의 문법이나 구조를 쉬운 한국어로 설명하는 것을 가장 어려워한다. 정연주 씨는 “도우미 학생들은 20여 년간 자연스럽게 습득해 의심 없이 사용해 오던 한국어를 외국학생들에게 문법적·논리적으로, 그것도 쉬운 한국어나 매개어로 설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며 도우미들의 호소에 공감했다. 이에 따라 언어교육원에서는 별도로 도우미들만이 가입할 수 있는 클럽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이 궁금해 하는 한국어 질문에 대해 선생님들이 직접 답을 해 주는 식으로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평소에는 각자의 담당 외국학생과만 활동하던 도우미들은 중간평가 모임에서 한 자리에 모여 어려움에 대한 고민을 나눈다. 최 씨는 “주로 외국학생의 모국어에 없는 개념이나 발음 등을 설명하기 어려웠고, 예시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 것도 가끔 한계가 있었다. 또한 무의식적으로 외국학생이 편한 발음으로 잘못된 발음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활동 결과를 평가했다. 설문조사에서 도우미들은 외국학생에게 설명하기 어려웠던 예들을 공유하기도 한다. ‘공부하다’는 ‘공부하는 학생’, ‘공부한 학생’ 둘 다 가능한데, ‘편하다’는 ‘편하는 신발’이 아니라 ‘편한 신발’만으로 사용하는 문법적인 이유나, ‘맨날’과 같이 사전에 나오지 않는 단어를 설명하는 방식 등이 있다. 앞으로 언어교육원이 ‘도우미를 위한 한국어 문법 설명 가이드라인’을 준비 하고 있어서 도우미들이 한국어에 대한 설명방법에 체계가 잡힐 전망이다. 도우미 활동 중에는 꼭 한국어만 써야 하나진혜진 씨에 따르면 정규과정의 초급인 2급 학생들부터 도우미와 연결이 가능하다. 2급 학생의 도우미는 한국어교사를 하려고 준비 중인 사람들이다. 서울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도우미를 소개 받을 수 있는 외국학생들은 3급 이상이다. 따라서 어느 정도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어 서울대학교 학생인 도우미가 외국학생과 한국어로 대화하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 언어교육원은 ‘도우미들은 외국학생의 한국어 말하기, 한국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가능한 한 한국어를 사용한다’라고 주의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제시한 주의사항에 어긋나게 활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존재한다. 김동연(식품영양 06) 씨는 “3명의 도우미로 활동하고 있는데, 이들 대부분이 한국어에 익숙지 않아서 주로 영어로 설명을 해준다”고 한다. 그러나 정연주 씨는 “간혹 근본적인 언어 소통의 문제, 예를 들면 몽골어·러시아어·동남아시아 언어 및 기타 흔히 사용하지 않는 언어를 사용하는 학생들은 도우미와의 의사소통에 가장 큰 어려움이 있다”며 영어로의 소통조차 가능하지 않을 경우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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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급과정을 수료한 후 뒷풀이 중인 외국학생들. 이들의 한국어 실력은 외국인인지 아닌지 헷갈릴 정도다. 왼쪽부터 켄, 모순수, 진혜진, 청봉, 이은상 씨. |
그러나 이러한 어려움이 따른다고 해서 한국어 사용 권고를 무시할 것만은 아니다. 정 씨는 “이런 선호도에 따라 비인기 언어권 학생들은 도우미를 만나기 어려울 때가 종종 있다. 따라서 최소한의 영어 매개어 사용과 쉬운 한국어 사용 권고 등을 통해, 도우미 학생들의 언어권별 쏠림 현상을 적절히 안배하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언어교육원에서 제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어 도우미들 대부분이 영어나 일본어, 최근 들어서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외국학생과의 교류를 선호하는 반면,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필요로 하지 않는 언어권 학생들과 만나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서강대학교의 언어교육원에서 한국어 도우미를 만났던 켄 씨는 언어권별 쏠림현상에 대해 “도우미들은 대개 서양인들을 원한다. 그러나 이 현상은 한국에서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라며 자신의 출신지역인 일본인들의 성향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상부상조하는 좋은 친구 사이가 될 수 있도록외국학생과 도우미가 서로 시간 약속을 지키지 않아 오해가 생기는 경우가 발생하기도 한다. 중국 출신 모순수 씨는 “도우미와 매칭한 후 연락이 없어서 속상해한 친구가 있다”며 서울대 학생들이 도우미 활동을 하기로 결심했으면 약속을 잘 지켜주기를 부탁했다. 도우미 제도에 대해 최 씨는 “도움이 많이 됐든 적게 됐든 먼 곳까지 와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고 했다. 그리고 “외국학생들과 이야기하면서 그 친구들의 사고방식이나 우리와 다른 행동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어 도움이 됐다”며 도움을 주고자 시작한 도우미 활동을 통해 그는 오히려 얻은 것도 많다. 또한 모순수 씨는 “지금까지 두 명의 도우미를 만났는데 모두 지금까지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는 좋은 친구로 남았다”며 도우미 제도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