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매년 초마다 전국의 대학들에선 본부는 등록금 인상을 밀어붙이고 학생들은 이에 반대해 시위 등의 활동을 펼치는 것이 관례화됐다. 그리고 이는 서울대학교의 경우에도 예외는 아니다. 비록 사립대들에 비해 낮은 액수의 등록금을 유지하고 있다고는 하나 인상률만큼은 타 대학들 못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올해의 경우 신입생에게 부과된 등록금 인상률이 두자릿수에 달해 한층 더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되짚어 보는 것은 향후 적정한 등록금 책정에 도움이 되리라 본다. 작년 11월 이장무 총장이 정례회의 때 ‘신입생 등록금 20% 인상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부터 등록금에 대한 논쟁은 불붙기 시작했다. 올해 1월 18일, 본부가 11%에서 13.7%의 인상률을 직접 제시하면서 학생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그러자 1월 22일 제26차 교육환경개선협의회(이하 교개협)에서 본부는 이전보다 낮은 신입생 12.8%, 재학생 5.4% 인상안을 제시했으나, 여전히 높은 수치로 인해 교개협에 참석한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 위원들의 반발을 샀다. 결국 합의를 보지 못한 채 회의가 종결된 1주일 후 29일, 본부는 등록금 인상을 강행하기 위해 기성회 이사회를 소집하였으나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등의 반발 때문에 정족수를 채우지 못하고 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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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29일 등록금 인상에 항의하기 위해 본부 앞에 모인 학생들 |
그러자 본부는 신입생들에게 등록금을 고지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을 들어 가책정안에 맞추어 등록금 고지서를 임의로 발부했다. 그리고 기성회 이사회를 2월 28일로 연기했다. 이에 대해 연석회의 측에서는 ‘신입생이 등록금을 납부하지 않으면 합격이 취소된다’는 사실을 본부가 이용하여 등록금 인상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연석회의는 교육투쟁 대토론회를 개최하고 민주납부운동 등의 대응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부는 왜 이렇듯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굳이 두자릿 수의 높은 인상률을 강행하려는 것일까? 본부, “등록금 인상은 필요하다” 본부측은 대학운영에 필수적인 기본경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는 반면에 국고에서 서울대학교에 지원하는 대학운영기본경비는 감소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고 있다. 물가 및 인건비 상승, 노후시설 증가 등도 재정압박을 가중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본부측은 현재 지원사업을 동결 또는 감축하는 긴축재정 운영을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본부가 등록금을 인상해야 하는 피치못할 사유로 드는 것은 신입생 정원 감축이다. 최근 몇년 간 서울대는 입학 정원을 수능응시생 등을 고려하여 줄여 왔고 이에 따라 등록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기성회비 이월금이 대폭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기성회비 상승이 필요해졌고, 따라서 등록금 역시 인상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편 본부측은 유독 신입생들의 등록금이 크게 오른 이유로 그들에게 부과되는 교육환경개선부담금을 들고 있다. 이는 말 그대로 ‘학교의 교육 시설 등을 보다 좋게 하는 데 쓰이는 비용’이다. 신입생들이 재학생들에 비해 환경개선에 의한 혜택을 더 많이 받으니 그들이 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 본부의 생각이다. 교육환경개선부담금은 교수 증원, 학자금 대출이자 지원, 맞춤형 장학복지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부족한 재정을 보충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같이 본부가 등록금 인상을 강행하는 데는 사실 나름의 사정이 있다. 한국 국립대학들이 정부로부터 받는 지원규모는 20여 %인데 반해 다른 OECD 가입국들의 지원규모는 평균 70여 %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대학은 모자란 부분을 학생들에게 부과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학생들, ‘등록금 인상은 부당하다.’ 그러나 이에 대해 우선 연석회의 측의 생각은 본부와 크게 다르다. 연석회의 일원이자 사회대 학생회장인 황덕일씨(사회복지 4)는 우선 “교육의 사회성 측면에서 바라볼 때 수혜자부담원칙은 오히려 정부나 기업에 해당된다. 우수한 인재를 통한 혜택은 결국 기업 등의 사회 구성요소가 받기 때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본부측이 서울대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재정확충이 필요하다면 모자란 부분은 기업 등이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 연석회의 측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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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부측의 인상안에 대한 반대입장을 이야기하고 있는 황덕일씨 |
신입생 인원감축 때문에 등록금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데 대해서도 연석회의는 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입학정원을 줄이기 이전에 그에 따른 재원 감소를 고려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거치지 않은 채 막상 재정이 어려워지자 부족분을 학생들에게 떠넘기는 것은 부당하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연석회의는 계속하여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편 황 씨는 향후의 계획에 대하여 “연석회의를 교육투쟁특별위원회(이하 교투위)와 선거관리위원회로 나눈 후 교투위를 통해 등록금 문제를 계속 논의할 계획이다. 물론 신입생들에 대한 홍보, 각종 타단체들과의 협의도 진행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이 문제는 비단 학생회뿐만 아니라 학부모와 학생들의 상당한 반발을 사고 있기도 하다. 사회과학계열 06학번 학생을 두고 있다는 한 어머니는 “신입생에 비해 덜 올랐다고는 하지만 200만원이 넘는 등록금이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마찬가지다.”라고 털어놓았다. 가장 높은 인상률에 부딪힌 07학번 새내기인 김 모씨(인문 1) 역시 ‘신입생에게만 유독 높은 인상률을 부과한 것은 지나친 듯하다’라고 밝혔다. 본부의 태도에서 논란 쏟아져 본부측의 주장이 학생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의결 절차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데 있다. 학교의 주인이자 등록금을 납부하는 이가 학생인 만큼 결정 과정에서 학생들의 의견은 존중돼야 한다. 그러나 본부는 연석회의 측의 반발로 인상 과정이 여의치 않자 이사회를 거치지 않고 독단적으로 등록금 고지서를 신입생에게 발부했다. 본부는 이에 대해 입학행정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라며 해명했지만 연석회의는 예치금 제도를 활용할 수 있었다는 점을 들어 이에 대해 반박하였다. 예치금 제도란 등록금의 일정액을 받아 학교에 입학할 의사가 있음을 확인한 후 등록금이 최종 결정되면 그만큼의 차액을 추가 청구하는 제도를 말한다. 본부가 내세운 다른 근거들도 그 부적절함이 지적되고 있다. ‘학생 수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안에 대해선 “학생수를 감축하기에 앞서 그에 따른 등록금 인상률을 고려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교육환경개선부담금을 그 혜택을 많이 받는 신입생에게 징수한다는 부문도 ‘신입생이 딱히 높은 혜택을 받는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이 많다. 박 모씨(경영 06)는 “작년에 그리 크게 환경 개선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기성회 이사회의 존재 의미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그동안 등록금은 기성회 이사회에서 인상안이 결정되고, 이에 따라 등록금 고지서가 발부되는 형태를 취해 왔다. 그러나 올해에 이 순서가 뒤바뀌면서 사실상 기성회 이사회는 유명무실하게 돼버렸다. 그리고 이마저도 재학생들의 등록금 납부가 끝난 이후인 2월 28일로 소집일을 연기해 놓은 상태다. 서울대학교 기성회 규약 11조에 2항에 따르면 이사회는 사업계획과 수입, 지출예산 및 결산을 의결한다. 이 규약에 따르면 본부의 올해 행적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런데 동 규약 제15조에는 ‘확정된 사업계획에 대한 예산편성을 총장에게 위임할 수 있다’는 조항이 있다. 따라서 금년의 학교운영계획에 따라 등록금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권한을 총장이 보유할 수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 조항에 따르면 이번 본부측의 행동은 규약상으로는 아무 규제가 없다. 그렇지만 이렇게 된다면 기성회 이사회는 아무 의미없는 존재가 될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등록금 의결 절차의 비민주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연석회의 측은 다양한 활동을 모색 중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민주납부’다. 황덕일 씨는 “재학생 등록금을 연석회의 계좌를 통해 받음으로써 학우들의 부당 인상에 대한 생각을 보여주려고 한다. 이는 학칙에 위반되지도 않으며 후에 등록금 인하를 이끌어 내면 그만큼을 반환해 드릴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반면에 본부측에서는 ‘이는 학교에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 계좌에 등록금을 납부한 학생의 경우에는 미등록자로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 향후 귀추가 주목된다. 갈등은 계속돼 왔다 이와 같은 등록금 인상과 관련된 갈등은 비단 올해만의 일은 아니다. 2001년에는 교육부의 권고를 통해서야 등록금이 하향 조정됐으며 2002년에는 등록금 인상분을 장학금의 형태로 환원하기로 합의했으나 부분 이행에 그쳤다. 2003년과 2004년에는 교개협이 결렬되기도 했다. 작년에는 본부측의 등록금 인상에 반발해 교투위측이 동맹휴업 총투표를 제안했다. 이렇듯 기성회비 인상이 학생과 본부 간의 합의를 통해 결정된 경우는 근래 거의 없었다. 본부는 꾸준히 기성회비 인상률을 매년 ‘통보’했고 그로 인해 매년 학생들의 반발을 불렀다. 그러나 본부는 학생들의 생각을 들으려 하기보다는 내세웠던 인상률을 유지하기에 급급했다. 올해도 처음에는 교개협을 통해 학생들과 대화를 시도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곧바로 신입생들에게 우선 고지서부터 발부하고 그 후 이사회를 강행하는 변칙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본부 측에서 제시한 인상률이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본부의 선택항은 하나 뿐이다. 바로 민주적 절차에 따른 학생과의 등록금 합의다. 그러나 지난 2월 28일, 결국 기성회 이사회에서는 등록금 인상안이 의결됐다. 관악의 등록금 논쟁은 3월이 와도 끝이 보이지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