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학생회는 무너지나

① 누가 감히 ‘여론’을 말하는가② 누구를 위하여 학생회는 무너지나③ 대학본부, 투쟁과 참여 사이에서 학생회 운영의 문제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학생회의 위기’가 이야기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그럼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위기라는 말조차 이젠 식상한 담론이 됐다.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학생회 관계자들조차 학생회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전학대회, 비효율의 극치 “전학대회요.필요하긴 하지만 너무나 비효율적이죠.

① 누가 감히 ‘여론’을 말하는가② 누구를 위하여 학생회는 무너지나③ 대학본부, 투쟁과 참여 사이에서

학생회 운영의 문제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학생회의 위기’가 이야기된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럼에도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진짜 위기라는 말조차 이젠 식상한 담론이 됐다.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는 학생회 관계자들조차 학생회에 무관심하다는 것이다.전학대회, 비효율의 극치 “전학대회요? 필요하긴 하지만 너무나 비효율적이죠. 쓸데없이 너무 시간을 오래 끌기 때문에 별로 가고 싶지 않네요.” 농생대의 한 대의원은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매 학기 정기적으로 열리게 돼있는 전체학생대표자회의(전학대회)는 회칙 개정, 주요 사업 인준 및 7천여만원에 달하는 학생회비 집행을 심의하는 자리이다. 그러나 비효율적인 회의 진행은 참석 의무를 진 대의원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 9월 28일에 열린 전학대회는 예정시각을 5시간이나 넘긴 밤10시에 시작해 다음날 아침 8시가 돼서야 끝났다. ‘1000분 토론’이라는 자조 섞인 한숨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문제는 이게 지난 전학대회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2005년 하반기 전학대회에서는 정족수가 차는 데만 6시간이 걸렸다. 한 대의원은 “항상 늦게 시작하니 일찍 가면 손해라는 생각에 다들 지각하고, 그러다 보니 악순환이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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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나 유엔 등에서는 분과위원회별로 안건을 심의해 미리 결론을 내리고, 총회에서는 표결만 하는 방식으로 회의 진행의 효율을 도모한다. 반면 전학대회에서는 안건마다 질의·응답과 찬반 토론이 이어져 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한성실(미학 03) 인문대 학생회장은 “전학대회는 결정의 자리이므로 그 전까지 토론을 마치고 안을 다듬는 게 맞다”며 “공청회, 총운영위원회(총운위)나 단대운영위원회(단운위)가 그런 자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운위를 통한 안건 검토는 커녕 공지조차 제대로 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제가 대의원이라구요?” 『서울대저널』은 9월 24~25일간 과/반 학생회장 22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22명은 단대 학생회장단을 제외한 전학대회 대의원 56명의 40%다). 조사 결과 하반기 전학대회 안건을 대충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5명에 불과했다. 4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숫자다. 전학대회가 3일 앞으로 다가왔는데도 대의원들은 안건 검토조차 하지 않은 상태였던 것이다. 22일에는 공청회가 있었지만, 참석했던 과/반 학생회장은 전체 대의원 중 4명뿐이었다. 설문 대상자 중 참석자는 2명이다. 나머지 20명에게 공청회 개최를 알고 있었는지 질문한 결과 8명(40%)이 몰랐다고 대답했다. 총운위-단운위-과/반운위로 이어지는 연락 체계가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청회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불참한 12명에게 불참 사유를 물은 결과 ‘다른 개인적인 약속이 있어서’라고 대답한 사람이 5명이었다. 학생회 활동은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다. ‘별로 관심이 없다’고 대답한 사람도 2명이나 있었다. 이 외에도 ‘과/반 행사와 겹쳐서’가 2명, 질병이나 수업 때문에 불참한 경우가 3명 있었다. 전학대회가 열린다는 사실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13명(65%)이나 됐다. 기자가 일시와 장소를 알려줘야 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전학대회에 불참하겠다는 사람이 10명(45.5%)이었다. 선약, 과외, 수업 등 이유는 다양했다. 과/반 회장이 되면 전학대회 대의원이 되고, 개인 시간은 어느 정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회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이 사실을 몰랐을까? 10명(45.5%)의 대의원이 ‘몰랐다’고 대답했다. 이공계열 과/반 회장들의 경우 이런 현상이 특히 심했다. 혜진(지리교육 02) 사범대 학생회장은 “대의원들 중에는 과/반이 좋아서 회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총학생회 대의원으로서의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진 않은 경우도 많다”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등 자기 일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총학생회에서 해당 과/반 학생들의 의사는 제대로 대표될 길이 없는 셈이다.총운위, 합의와 타협이 사라졌다 총운영위원회는 총학생회장 및 단대학생회장들이 참여하는 학생회의 최고 운영기구다. 한 학기에 한 번 열리는 전학대회와 달리 1주일에 한 번씩 열리는 총운위는 학생회 사업에 있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그러나 토론과 타협이라는 민주주의 원리가 가장 지켜져야 할 총운위에서, 이런 모습은 어느 샌가부터 사라졌다. 최종현(47대 총학 교육개혁국장) 씨는 “‘학교로’ 학생회가 활동할 당시 총운위의 운영 원칙은 절대로 다수결이 아니었다. 표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으며 모든 사안은 합의로 처리한다는 관례가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재 회의의 모습은 토론과 설득이 오간다기 보다는 각자의 입장을 말한 후 수를 헤아려 가·부결을 결정하는 식이다. 다수결의 전제는 충분한 토론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운 대목이다. 최 씨는 “의견이 다른 양측이 정면 대립하게 되면 현 회칙상으로는 총운위가 마비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 예전보다 대화의 경험들이 없는 것 같다. 타협의 전통을 세워야 한다. 무작정 대중을 상대로 여론전을 벌이는 것은 문제”라고 조언했다. 탄핵 이후 학생들의 정치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총운위(또는 단대회장단회의)를 참관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다. 평범한 학생들의 참여는 회의 진행에 긍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재호(디자인 04) 미대 학생회장은 “참관인이 있으면 아무래도 운위원들도 긴장하게 되고, 좀더 논리적으로 발언하며 서로 타협을 이루려는 노력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의 관심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다. 제도가 아니라 사람이 결정한다 현재 학생회 운영은 제도보다는 어떤 사람이 들어오느냐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능력 있는 사람이 벌여놓은 사업이 다음 대가 되면 이어지지 못한다. 학생회 구성원은 매년 바뀌기 때문에 경험의 축적도, 연속성도 보장되지 않는 셈이다. 최종현 씨는 “‘학교로’는 2003, 2004년에 연속해서 수권했지만 역량이 축적되는 건 별로 없었다. 사람이 바뀔 때 과거의 경험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것은 물론, 기본적인 교양을 갖추기도 벅차다”며 “학생회의 비전을 구상할 시간보다는 온갖 행정 잡무를 처리하는 데 업무시간의 70% 정도가 쓰였다”고 당시 경험을 회상했다. 47대 총학생회는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학생회비 고지서에 회비 사용내역을 첨부해 발부한 적이 있었다.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지만, 48대 총학생회에 이어지지는 못했다. 이에 대해 정화 48대 총학생회장은 “미처 생각해보지 못했다”고만 대답했다. 전 학생회의 평가와 계승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도대체 왜 학생회에 계십니까? 학생회로 모이는 사람은 점점 줄고 있다. 투표함을 지킬 사람이 없어서 선거도 제대로 치르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정석(전 생협 학생위원장) 씨는 원인을 이렇게 진단한다. “예전의 운동권 학생들은 학생회를 통해 자신들의 운동을 하려고 했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학생회를 잡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이제는 학생회에 대해 헌신할 이유(commitment)가 없다. 운동권은 신입생이 들어오지 않아 고학번만 남아있고 비권은 학생회에 대한 비전이 없다. 지금은 ‘비권’이라는 키워드로 모여있지만 운동권이 사라지고 나면 함께 활동할 이유가 사라진다. 누가 학생회에 남을지 의문이다.” 지금까지 ‘학생회의 위기’에 대한 담론은 수없이 나왔다. 위기의 진단만큼이나 다양한 대안들이 제시됐다. 네트워크 학생회, 허브 학생회, 감사위원회 설치, 학생회의 조합조직화 등. 하지만 무엇이 학생회를 ‘구원’할 수 있을까. 혜진 사범대 학생회장은 “학생회 체계는 일을 맡은 사람들의 도의적 책임에 의존하고 있다. 스스로 일하지 않는 한 강제할 방법이 없다. 제도 개선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아무리 판을 짜놔도 학생들이 관심이 없는 지금 상황에선 뭘 해도 힘들다”고 고민을 토로한다. 총학생회 집행국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2명에게 월 30만원, 3명에게 월 20만원의 봉사장학금이 지급된다. 총·부총학생회장과 집행국장에게는 학생회비로 매달 약간의 활동비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학생회 활동을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은 어떤 이유에서 학생회에 관심을 갖고 있는가, 혹은 갖고 있지 않은가. 이에 대한 대답을 찾지 못하는 한 학생회의 위기는 영영 극복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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