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를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의 노래가 나무로 만들어져서 참 다행이다.어떻게 그리도 잘 만들었는지 그저 비밀이 궁금할 뿐.내가 말한 적 없나요라며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를 채근하는 그의 달콤한 목소리는 얘, 앞산에 꽃이 피면 소풍 나가자며 유혹한다.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 소년이 먼 길을 돌아온 뒤 같이 걸을까라며 무대에 서서 소근 대는데 어느 누가 듣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까.

그의 노래가 나무로 만들어져서 참 다행이다.어떻게 그리도 잘 만들었는지 그저 비밀이 궁금할 뿐. 내가 말한 적 없나요라며 사랑은 어디로 갔는지를 채근하는 그의 달콤한 목소리는 얘, 앞산에 꽃이 피면 소풍 나가자며 유혹한다. 자전거 바퀴만큼 큰 귀를 지닌소년먼 길을 돌아온 뒤같이 걸을까라며 무대에 서서 소근 대는데 어느 누가 듣지 않고 이겨낼 수 있을까. 모든 과잉을 제거한 ‘나무로 만든 노래’를 들고 돌아온 ‘피리 부는 사나이’ 이적(笛). 이번 앨범의 노래 제목을 이으면 신기하게도 이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서울대생이 가장 좋아하는 가수’를 뽑는다면 1위를 할 것 같은 그! ‘피리 부는 사나이, 적군’을 지난 5월 14일 저녁, 『서울대저널』에서 만나봤다. 피리 부는 사나이, 笛스스로도 힘을 뺐다라고 얘기하는 이번 3집에 대해 일부 팬들은 ‘적군이 늙었다’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늙었다’란 표현은 좋지 않죠(웃음). 근데 이번 앨범은 그런 앨범이에요. 자연인 이적의 이런 저런 속내를 담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 글쎄, 제 음악이 요즘 세대가 듣기에는 어떤지 잘 모르겠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는 열광적인 반응이 오고, 20대 후반 팬들은 빨리 흡수하는데 어린 친구들한테는 잘 다가가지 않는 것 같아요. 사실, 포크를 들어본 적이 없는 세대이기 때문에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어요.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는 빨리 받아들이는 편인 것 같기도 하고. 가사는 애초에 쓰면서 ‘사랑노래가 좀 많아지겠다, 이래도 되는 걸까’라며 스스로도 의문을 가졌을 만큼 이전에 썼던 가사랑 포인트가 다르죠. 다른 식의 센 가사, 날이 서있는 가사를 써보려고 그러다가 음악이랑 전혀 안 맞더라고요. 이 앨범은 그렇게 만들었죠. 불필요한 과잉은 다 빼고. 편곡도 그렇고 노래할 때 힘 같은 것도 그렇고, 이 앨범은 그런 앨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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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은 그런 앨범이에요, 자연인 이적의 이런 저런 속내를 담은, 일상에 대한 이야기.”

앞에서 과거 자신의 음악을 ‘날 선 음악’이라고 표현했는데, 다음 앨범이나 차후 그룹 앨범에서 다시 그쪽으로 돌아갈 의향이 있으신가요.

의향의 문제가 아니라 그때 그때의 자연스런 내적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그때 그때 달라요~ (웃음) 진짜. 말 그대로. ‘이번엔 이렇게 해야지’라고 의도해서 곡을 만드는 게 아니라 언제나 ‘이렇게 하니까 지금은 이런 게 나오는구나’ 해서 앨범을 만들거든요. 김동률 씨랑 친하다고 익히 알려져 있습니다. ‘카니발 2집’이 내년 초에 결성 10주년 기념으로 나온다는 소문이 있는데 사실인가요. 카니발 2집은 이야기 중이에요. 어떻게 될지는 아직 몰라요. 97년 앨범이니 10주년이면 올해인데, 정식 앨범까지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하면 디지털 싱글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잘 모르겠어요. 사회학과 과방에서 기타치고 놀다가 ‘왼손잡이’를 작곡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웃음) 과방에서 놀면서 기타 친 건 사실이에요. 공강인 애들끼리 ‘메아리’ 책을 놓고 노래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왼손잡이’는 그 때가 아닌 나중에 만든 노래에요. 4학년 때는 거의 학교를 안 나왔었는데, 그때 만든 노래에요. 어렵겠지만, 스스로의 음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정색) 그건 못해요. 제 음악은 그 자체에요. 제 CD들이 제 음악이죠. 그 자체로. 본인의 노래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나만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왼손잡이, 뿔. 그리고 이번 앨범 음악들도 좋아해요. 이번 앨범은 아마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 좋아하는 음악이 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강의실 밖의 노래쟁이, 笛 관악에서 최초로 ‘자치문화부’라는 새로운 개념의 학생회 집행부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큰 웃음) 그렇게 말하면 되게 멋있잖아요. 그런 게 아니고 윤색된 거예요. ‘자치문화부’는 과 학생회 문화 분과로 만들어진 거죠. 제가 만들자고 해서 만든 것도 아니고. 다만 주위에서 문화 예술에 가장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 저였으니까 활동을 조금 한 거죠. 92년도 당시 1학년 때 술자리에서 민중가요 ‘청계천 8가’를 대학생이라면 마땅히 알아야 한다면서 불렀다는 소문도 있어요.(정말 큰 웃음) 전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아닐 텐데? 92년이면 내가 1학년 땐데 어떻게 오만하게 대학생이면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해. 그땐 다 민중가요 불렀으니까 그랬던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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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저 문화운동 합니다’라고 얘기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지금의 제가 보기에 그 안에는 과한 자의식이랄까 불필요한 우월감 같은 잔상이 남아있거든요. 어렸을 때는 그런 걸 의식을 못하고 썼겠죠.”

그때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도 민중가요를 대학생이 알면서 강의실 밖의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보시나요.

잘 모르겠어요. 지금의 대학 상황이 어떤지 잘 모르니까. 분명히 제 세대에는 강의실 밖의 공부가 굉장히 필요했어요. 그런데 지금 필요한지 어떤지는 학생들 스스로가 판단할 문제인 것 같아요.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훨씬 정보가 열려 있잖아요. 그때까지도 불온서적이라는 것이 존재했던 것에 비해 지금은 구하려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고. 한국 현대사에 관한 것도 지금은 고등학교 때 다 배우는 걸 그때는 아무도 못 배웠으니까. 지금과는 전혀 달리 그때는 절실하게 필요했던 상황이었죠. 지금은 관점이나 이런 것들을 여러 가지 중에 취사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 다닐 때 음악을 통해 문화운동을 했다고 말했는데, 지금도 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음악인 이적으로 남으실 생각이십니까.문화운동이라는 말을 제가 했었나요? 나름 의미가 있는 말인데, 참… 하지만 지금은 ‘저 문화운동 합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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