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5월이 2007년 5월에게
사르코지 당선과 프랑스 젊은이들의 불안
'종간'을 맞이하는 '패자부활전'

사르코지 당선과 프랑스 젊은이들의 불안

지난 5월 6일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어려움을 ‘더 많이 일함으로써’ 해결하자고 주장한다.프랑스는 법정근로시간이 주 35시간으로, 기업이 추가 근무를 시키면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사르코지는 이 세금을 감면해 기업활동을 촉진시키면 내수가 진작돼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유권자들을 설득했다.프랑스 역시 우리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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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6일 프랑스 대통령에 당선된 니콜라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어려움을 ‘더 많이 일함으로써’ 해결하자고 주장한다. 프랑스는 법정근로시간이 주 35시간으로, 기업이 추가 근무를 시키면 기금이라는 명목으로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 사르코지는 이 세금을 감면해 기업활동을 촉진시키면 내수가 진작돼 경제가 활성화된다고 유권자들을 설득했다.프랑스 역시 우리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문제다. 젊은이들 중에는 경쟁과 효율을 강조하는 그의 공약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있지만, 동시에 의문을 표하는 이들도 많다. 선거 기간에는 ‘사르코지가 아니면 누가 부자들의 이익을 보호해 줄까?’라는 풍자적인 홍보물이 나돌기도 했고, 그의 포스터에는 ‘파시스트’라는 낙서가 종종 쓰여 있었다. 개표 후에는 사르코지의 당선에 불만을 품은 군중들이 새벽까지 바스티유 광장에 모여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프랑스에 더 많은 시장경제적 요소를 도입해 경쟁력을 향상시키고 청년실업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인 내게도 이 나라 젊은이들의 문제는 너무 복잡해 보인다. 노숙자가 점령한 파리의 광장2월이었던가. 밤 10시쯤 시내 중심에 있는 퐁피두 센터를 지나는 길이었다. 퐁피두 센터 앞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삼삼오오 밤 늦게까지 앉아있곤 하는데, 걔중에는 좀 불량한 사람들도 있다. 술을 마시던 두 남자가 나를 불렀다. 한 명은 좀 많이 취했는지 내게 쓰러졌는데 애써 긴장을 드러내지 않으며 밀쳐냈다. 불량한 청년들은 상대하지 않는 게 최선이라고 들은지라 서둘러 그들을 지나쳤다. 파리에서는 이런 사람들과 종종 마주친다고 들었지만 막상 당해보니 겁이 났던 게 사실이다. 파리 곳곳의 광장이나 공공건물 근처에는 젊은이들이나 노숙자들이 밤늦게까지 배회하며 행인들에게 돈이나 담배 등을 요구한다. 직장이 없거나 학교에 다니지 않는, 안정된 생활이 없는 사람들이 이런 식으로 밤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파리에서 전철을 타면 음악가들의 공연을 자주 볼 수 있다. 바이올린을 켜는 사람, 색소폰 연주를 하는 사람,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고, 커다란 스피커를 들고 랩을 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들은 공연이 끝나면 승객들에게 공연비(?)를 요구한다. 그런데 한 젊은이는 연주가 아니라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은 노숙자이고 직장을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얘기였다. 몇몇 승객들이 약간의 돈을 주었고, 한 젊은 남자는 담배 한 개비를 건네 주었다. IMF 이후 대거 등장한 노숙자는 이제 우리에게도 친숙한 모습이 됐지만, 파리에는 노숙자가 정말 많다. 내가 파리에 도착한 지난 1월, 방송과 신문에서는 ‘돈키호테의 아이들’이란 단체의 활동을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었다. 이 단체는 세느 강변에 250여 채의 텐트를 치고 노숙자들(이곳에선 SDF라 부른다)과 노숙을 경험하려는 신청자들을 재워준다. 노숙자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이 이들의 목적이다. 노숙자들 가운데는 사회에 갓 진출한 젊은이들도 많다. 직장을 구하기도 힘들고, 직장이 있다 해도 보증금으로 6개월에서 1년치 정도의 월세를 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빈곤, 청년실업, 이민… 프랑스에는 대안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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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청년실업은 심각한 문제이다. 지난해 3월 정부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에 반대해 시위를 벌이고 있는 낭트 시 학생과 노동자들.

지난 3월 27일 파리 북역(Gare du Nord)에서는 200여 명의 젊은이들이 경찰과 대치하는 폭력 소요가 일어났다. 3시간 여의 소요 후 10여 명이 연행됐고 그 와중에 역내 상점들은 컴퓨터를 비롯해 많은 물건을 도난당했다. 한 젊은이가 표 없이 역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을 관리원이 제지한 게 소요의 발단이었다. 관리원이 무임승차자를 강압적으로 끌고 간다는 소문이 역 안에 퍼지자 젊은이들이 몰려들면서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된 것이다.나는 이 뉴스를 보며 사실 이해가 안 갔다. ‘역에 무슨 커뮤니티가 있나? 소문은 어떻게 퍼졌고 사람들은 어떻게 모인 거지?’ 아닌게 아니라 역에 커뮤니티가 있다고 할 만한 상황이었다. 파리는 근교의 지역들과 함께 생활권을 이루고 있다. 북쪽 근교는 이민자들을 비롯한 빈곤층이 많이 거주한다. 이 지역의 젊은이들은 안정된 직장을 구하지 못하거나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경우가 많고, 그래서 파리 중심부의 공공건물 등에 와서 시간을 보낸다. 그런 한 젊은이를 공권력이 제지하자 이에 대응해 집단적으로 분노를 표출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 운동 기간에 일어난 이 사건은 사회 치안 문제, 청년실업 문제, 이민자 정책 문제 등 프랑스가 직면한 문제들의 단면을 보여줬다. 이 사건을 보며 가장 즐거워했을 사람은 아마도 배외정책을 주장해온 극우파 국민전선(Front National)의 르펜 후보가 아니었을까. 내가 사는 건물은 좀 오래된 건물이라서 얼마 전 건물 외관을 보수했다. 창틀을 손보러 온 노동자가 내게 어디서 왔는지를 물으며 말을 걸었다. 내가 불어로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그는 영어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했다. 그러나 나는 끝내 그에게 어디서 왔는지는 묻지 못했다. 아랍인으로 보이는 그에게 혹시나 실례가 될까 지레 걱정이 돼서였다. 지금의 프랑스에는 많은 이민자들이 노동력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프랑스가 살기 좋은 나라만은 아닌 것 같다. 3월과 4월, 극장에서는 영화를 상영하기 전에 ‘그들을 여기에서 자라게 하시오’라는 2분 짜리 영상물을 보여줬다. ‘국경없는 교육망’이라는 단체가 영화제작자들과 만든 이 영상물에는 ‘서류 없는’(Sans Papiers) 아이들, 즉 불법체류자의 자녀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학교에 갈 때면 잡혀갈까봐 겁이 나요’, ‘부모님이 일하러 갔다가 잡혀가지 않을까 걱정돼요’라고 담담히 말한다. 나는 쓴웃음이 나왔다. 프랑스 정부는 합법 이주노동자의 자녀들에 대해 2, 3명까지 지원을 하고있다. 프랑스 입장에서는 단기적으로 손해보는 장사라 하겠다. 합법 이민자들을 감당하는 것만도 힘겨워하는 프랑스가 불법체류 청소년들을 자라게 할 아량이 있을까. 아니, 그럴 능력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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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대통령으로 당선된 사르코지는 프랑스의 국가 정체성을 강조, 외국인들에게 불안을 주고 있다.

이미 경쟁에 포위된 프랑스 사회

몇 달 간의 파리 생활 동안, 이런 일들을 접할 때마다 나는 지쳐있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보는 것이라 생각했다. 결선투표를 4일 앞둔 마지막 양자토론에서 사회당 세골렌 루아얄 후보는 이렇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처음 사회에 진출할 때, 벌써 그들은 은퇴 후를 걱정합니다.’ 프랑스 상공업 고용협회(UNEDIC)에서는 실업률이 12%라고 밝혔고, 그나마 직장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우리나라처럼 비정규직 신세다. 이런 경제적 어려움이 젊은이들을 짓누르고 있다. 정규직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기성세대들, 초엘리트 교육기관인 그랑제꼴 출신들과의 격차, 이민자들로 인한 구직의 어려움과 그 자신이 이민자로서 겪는 사회적 불평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이다. 자유 경쟁의 확대를 외치는 사르코지가 이미 전 사회적 경쟁상태에 포위돼있는 프랑스 젊은이들을 구해줄 수 있을까. 프랑스에 체류하고 있는 한국인들 중에는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불안해하는 이들도 있다. 선거기간 내내 프랑스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한 사르코지가 어떤 정책을 펼지 걱정스러운 것이다. 그는 선거 운동을 하며 자주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를 활용했다. 당선 축하행사에서도 그는 기쁜 얼굴로 대중들과 함께 라 마르세예즈를 불렀다. 그는 프랑스 전체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프랑스에 우리같은 ‘제3자’를 위한 자리는 얼마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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