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쌀쌀한 3월말, 기자들은 ‘전국백수연대’(전백련)란 특이한 이름을 가진 NGO가 있다는 말을 듣고 홍대 근처로 찾아갔다. 비까지 오는 스산한 날씨에 혹시나 장난스러운 단체는 아닐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지만, 자신들의 상황을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해결하려는 ‘전백련’ 사람들을 만나자마자 그러한 의구심도 바로 풀렸다. “이름은 우스워도 ‘전백련’은 엄연한 N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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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국백수연대’ 대표 주덕한씨 |
‘전국백수연대’란 이름을 듣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그런 단체가 만들어졌냐?’ 또는 ‘그런 NGO도 있느냐’며 웃는다. ‘전백련’은 주덕한 씨에 의해 결성됐다. 백수 생활을 하던 주 씨는 97년 백수생활가이드북을 펴냈다. 이후 주 씨는 방송 출연도 하게 돼 많은 이들의 관심을 받았고 결국 98년 ‘전국백수연대’가 결성된다. 현재 ‘전국백수연대’는 정식으로 등록된 NGO다. ‘전백련’은 2004년부터 2년 동안 준비한 끝에 작년 7월 정식 NGO로 자리를 잡았다. 주 대표는 “2004년에 일본에 갔다가 작고 재밌는 NPO(Non Profit Organization : 비영리민간단체)를 많이 봤다. 처음에 NGO는 거대한 담론을 생산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닌 곳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전백련’을 NGO로 등록시킨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엔 ‘전국백수연대’라는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다. 또 그와 관련해서 생긴 에피소드도 많다. 아직 ‘전백련’이 NGO로 등록되기 전인 2004년, 당시 한나라당 홍사덕 의원이 탄핵 촛불시위 참가자들을 가리켜 ‘요즘 촛불시위에 나오는 많은 젊은이들, 30, 40대가 모두 단단한 직장을 갖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분노한 ‘전백련’에서는 성명을 냈고, 직접 ‘전백련’ 깃발을 들고 주 대표를 비롯해서 몇몇 회원들이 거리로 나갔다. 대다수 사람들의 반응은 달갑지 않았다. 주 대표는 “비록 정치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나름대로 진지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깃발을 보고 웃으면서 지나 갔다”며 이 당시를 기억했다. 그럼에도 아직 ‘전국백수연대’라는 이름을 바꿀 계획은 없다. 주 대표는 “이름만 거창하고 사람들은 잘 모이지 않는 단체들보다 이름은 우스워도 사람들이 쉽게 모이고,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단체라면 이름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백수라는 말이 희화화되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끼리도 ‘백수’라는 말이 잘 통한다”며 이름에 대한 애착을 나타냈다. ‘희망청’을 통해 희망을 보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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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단법인 ‘함께 일하는 사회’에서 위탁을 받아 ‘전백련’에서 운영하는 희망청. 현재는 ‘전백련’ 사무실로도 쓰이고 있다. |
비록 이름에서 백수라고 밝혔지만, 실제 ‘전백련’은 NGO로서 여러 활동을 하고 있다. ‘전백련’의 대표적인 사업으로 작년 10월에 개소한 ‘희망청’ 운영을 들 수 있다. ‘희망청’은 재단법인 ‘함께 일하는 사회’에서 지원하고 있는데, 현재 ‘전백련’이 위탁 운영하고 있다. ‘희망청’에는 고졸자나 저학력자, 니트족(Not In Education,Employment or Training : NEET)등 청년 실업자 가운데서도 특히 상황이 열악하다고 분류되는 층에서 많이 찾아온다. ‘희망청’에서는 청년구직자들을 위한 상담서비스와 일할 의욕을 잃은 청년층을 위한 사회성 함양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청년실업문제에 대해서 정보를 공유하고 연구하는 모임을 운영하는 중이다. 주 대표는 “인성문제를 떠나서 오랜 백수생활을 하다보면 생활이 나태해지고, 심하면 우울증도 걸리기 쉽다. 그러나 이를 전문적으로 상담해주는 곳은 생각보다 적다”고 말했다. 또 “대부분의 상담은 적극적인 구직 의지를 갖고 있다는 가정 하에 실시하고 있다. 따라서 구직 의지가 없는 사람들은 상담조차 받기 어려운 현실이다”라며 ‘희망청’에서 하는 주요 프로그램의 사회적 필요성을 역설했다. 또 그는 “다음 주에 ‘9시 클럽’이란 프로그램을 진행할 예정이다. 오랜 백수 생활을 하면서 생활 리듬이 깨진 백수들의 생활 리듬을 되돌려 놓는 프로그램이다”라고 ‘9시 클럽’의 취지를 설명했다. ‘희망청’은 단지 취업을 알선해주는 단체가 아니다. ‘희망청’에서는 청년 구직자들이 갖는 취업 실패의 좌절감과 분노를 극복하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계속 시도하는 중이다. 주 대표는 “기존의 노동부나 다른 단체를 계속 벤치마킹하려고 한다. 계속적으로 새로운 파일럿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희망청’만의 새로운 프로그램을 보여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희망청’은 계속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에게 아직 알려지지는 못하고 있다. 일상적으로 ‘희망청’에 참가하는 사람들보다는 프로그램별로 참가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 또한 프로그램별로 참여의 편차가 있다는 것도 ‘희망청’이 고민하는 내용이다. 주 대표는 “요즘에는 인터넷이 발달해서 굳이 ‘희망청’까지 찾아오지 않아도 할 수 있는 게 많다. 사회에 맞는 서비스 위주로 가야할 것 같다. 현재 노동부에서도 비슷하게 준비한다고 알고 있다”고 말했다. 백수의 이익을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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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늘 새롭고 신나는 무언가가 넘쳐나서 젊은 친구들에게 힘이 되는 그런 공간을 만듭시다” |
NGO로 등록되기 전, ‘전백련’은 거대한 온라인 모임과 활발한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던 단체였다. 당시 ‘전백련’은 집 안에만 ‘숨어’있던 백수들을 모이게 했고, 같이 모여서 취업과 진로에 대해 고민했다. 그러나 NGO가 된 현재 ‘전백련’은 과거와 같이 단순한 친목모임으로 남아있을 수 없게 됐다. 주 대표는 “‘전백련’이 친목모임에서 NGO로 바뀌면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는데 이에 책임감을 느낀다”며 “비록 백수지만 실업정책의 피드백 과정에서 당사자들이 목소리를 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전백련’의 지향을 설명했다. 또 그는 “온라인 카페에 가면 취업에 실패하고 비관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올라오는데 이에 대해 거대한 담론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일어나는 일에 대해 고민할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백수의 왕’이라는 별명답게 주 대표의 꿈은 단지 국내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그는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전백련’이 해외 다른 단체와 연대해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했으면 한다. 가까운 일본을 방문해보니 교류할 만한 여지가 많았다. 청년실업 문제는 더 이상 국내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인 고민거리다. 같이 연대해서 고민한다면 외롭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며 앞으로 ‘전백련’이 국내 단체로만 머무르기 보다는 세계 여러 단체와의 연대를 통해 배워나갈 것임을 밝혔다.그는 ‘전백련’의 입장에서 본 현 정부의 문제점도 지적했다. 비록 정부에서 지원하는 단체를 운영하고 있는 주 대표지만 “정부가 전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실시하고 있는 여러 가지 사업들에 대한 캠페인은 부족한 실태다. 또한 정책과 관련한 피드백 과정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실제 당사자들의 모임이 내고 있는 제안을 모니터하는 과정이 없다. 또 간담회를 실시하면 나오는 의견을 과감하게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한다”며 정부의 청년 실업 문제 정책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했다. 사회 각 계층 간 연대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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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희망청 프로그램과 여러 활동을 다른 세력과 연대했으면 좋겠다” |
비록 청년 실업자들이 주축이 돼 만든 NGO지만, 주 대표는 ‘전백련’이 다른 계층과의 사회적 연대를 활발히 하는 것을 꿈꾸고 있다. “현재 희망청 프로그램과 여러 활동을 하고 있는데 학생이든 단체든 다른 세력과 연대했으면 좋겠다. 연대라고 해서 거창한 것은 아니고 같이 밥 먹으면서 고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 “시민들이 노동유연화를 겨냥한 새로운 고용법에 대해 연대해서 시위하는 모습이 인상깊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대학생들이 청년 실업 문제를 자기 문제로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혔다. “개인의 토익 점수나 학점도 중요하지만, 이타적인 생각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도 나중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놓지 마시고 같이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