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에 한국군이 파병될 예정이다. 특전사 중심으로 구성될 한국군 350여명은 6월에 선발대, 7월에 본진이 파병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파병지는 레바논 남부 해안의 티레 인근으로 결정됐으며 진지구축 작업도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연말 이라크 파병 재연장 동의안에 ‘묻혀’ 함께 통과된 레바논 파병안이 착착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 파병이 이대로 기정사실화돼도 좋은가에 대해서는 심각한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파병결정무엇보다도 레바논 파병을 결정하는 과정은 기본적인 민주적 절차도 무시했다. ‘국회가 동의했는데 무슨 말인가’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국가의 민주적 정책결정이 단순히 국회의 동의 여부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공청회 한 번 제대로 하지 않고 ‘슬쩍’ 처리해버린 파병안을 민주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정보도 제대로 제공되지 않았다. 우리 국민들은 유엔 PKO(Peace Keeping Operation, 평화유지활동)를 위해 군을 파병한다는 것 이상으로는 알고 있는 것이 없다. 작년 10월과 올해 1월 두 번에 걸쳐 파견된 현지조사단의 보고서는 군사기밀이라는 이유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우리 국민들은 자국의 군대, 자국의 젊은이들이 파병되는 지역의 현지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도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는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파병과 파병연장 과정의 똑같은 반복이다. 당시에도 정부는 정보 공개를 극도로 꺼렸다. 그런 결정 과정이 낳은 비극이 고(故) 윤장호 씨의 죽음이다. 한국군이 레바논에 가서 어떤 역할과 임무를 수행할지도 분명치 않다. 정부가 밝히고 있는 한국군의 임무는 통상적인 PKO 활동이다. 물론 이것이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분쟁지역의 평화유지 또는 평화 회복을 돕는 전통적인 PKO 활동인 것은 아니다. 이는 정부 또한 인정하고 있다. 오히려 무력사용의 가능성이 있는 PKF(Peace Keeping Force, 평화유지군) 활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도 특전사를 중심으로 파병부대를 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문제는 레바논에 배치된 유엔 PKF의 역할에 ‘무장해제’가 포함돼 있다는 점이다. 한국군이 파병될 티레 지역은 ‘블루 존(blue zone)’으로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접경지역이고, 반 이스라엘 무장저항조직인 헤즈볼라와 이스라엘의 무력충돌이 빈번히 발생하는 곳이다. 작년 여름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의 주요 대상도 이 지역이었다. 현재 이 지역은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라 이스라엘군은 자국으로 물러난 상태에서 헤즈볼라가 활동하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서 무장해제라 함은 결국 헤즈볼라의 무장해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즉 유엔 평화유지군으로서 한국군이 파병돼 이스라엘의 침략에 대항해 무장한 헤즈볼라를 무장해제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무력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지만, 일방적으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만을 수행하게 된다면 그 공정성에 있어서도 큰 문제를 내포하게 되는 것이다. 유엔은 레바논에서 정말 평화유지활동을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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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에서 한국군의 역할과 임무가 이런 모순을 갖게 되는 것은 레바논에 대한 유엔의 평화유지 활동 자체가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 여름 이스라엘의 헤즈볼라 공격으로 시작된 레바논 전쟁은 미국과 유엔의 ‘중재’로 잠시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주도한 유엔 결의안은 레바논의 상황을 정확히 반영하지 않고 있고, 형평성을 잃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즉 유엔 결의안이 통과된 후에도 이스라엘의 레바논 폭격은 계속되고 있고, 특히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대 이스라엘 테러’가 있다면 언제든지 보복공격을 할 태세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 결의안을 ‘정전 결의안’이라고 볼 수는 없다. 더욱이 유엔 결의안은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만을 일방적으로 요구해 이스라엘을 편들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현 상황을 정확히 반영했다면 오히려 침략국 이스라엘의 불가침을 강력히 요구하고, 이스라엘을 ‘제재’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미국이 주도한 유엔 결의안은 ‘이스라엘 예외주의’가 또다시 반영되고 만 것이다. 형평성을 상실한 유엔 결의안에 따라 파병된 유엔 평화유지군과 한국군을 중동 지역의 주민들이 어떤 눈으로 볼 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 스스로도 ‘이라크 파병 등으로 친미적 이미지를 갖게 된 중동지역에서의 한국의 이미지 제고’를 목표 중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한 정부의 목표는 이루어지기 어려울 듯하다. 특히 헤즈볼라-레바논 정부-이스라엘, 그리고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이해각축장이 돼버린 레바논의 ‘블루 존’에 군대를 파병하는 것은 분쟁의 평화적 해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분쟁에 휘말릴 뿐이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레바논에 이르는 파병결정 이전에, 국제사회의 평화를 위한 노력에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것인가에 대해 먼저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는 문제제기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군대를 통한 분쟁의 해결, 군사력에 기반한 평화가 아닌 다른 길은 없는지에 대한 질문이 먼저 있어야 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