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은 갯벌이다’ 지난 4년간 새만금의 변화상을 기록해 온 시민생태조사단에서 발행한 생태도감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말이다. 새만금은 그간 각종 정치논리와 경제논리 속에서 갯벌, 생태계, 자연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왔다.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공약 속에서, 서해안 시대의 청사진 속에서 새만금은 개발에 따른 경제적 가치와 전북의 표심을 향한 정치적 가치만으로 평가 받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새만금 갯벌은 굳이 간척을 통해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그 자체로 많은 역할을 한다. 서해 연안 어장 어류의 70%가 갯벌에서 알을 낳고 성장기를 보내며, 새만금 갯벌은 전북 갯벌의 65%를 차지할 정도로 큰 규모이기에 그 중요성은 더욱 주목할 만 하다. 또한 갯벌은 물고기나 게, 조개들의 서식지이자 철새들의 휴식처이며 육지의 오염물을 걸러주는 정화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본래의 가치만으로도 충분한 새만금을 굳이 매립해 서해안 시대의 중심지로 만들겠다던 야심찬 개발 계획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개발을 통한 새로운 경제적 이익 창출’ 을 목적으로 하는 새만금 사업에 문제점은 없는지 한번 짚어보자. 간척 사업을 둘러싼 동상이몽 1991년 11월, 새만금 사업 기공식에 참석한 노태우 전 대통령은 “새만금 평원의 임해공단은 21세기 한국산업을 이끄는 중심지역이 될 것이며 고군산군도에는 새만금 국제항이 들어서 서해안의 새 관문이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새만금 사업은 오랫동안 국민들에게 ‘복합산업단지’로 인식돼 왔고, 특히 전북 도민들에게는 상대적으로 낙후된 전북을 발전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사업 주체인 전라북도와 농림부의 생각은 달랐다. 농림부는 1991년 사업 시행 당시 매립 목적 자체가 농지 위주 개발, 즉 논을 만드는 사업이었다고 1998년 새만금 감사에서 밝혔다. 반면 유종근 전 전북 도지사는 새만금 사업이 복합 산업 단지 개발을 위한 사업이라고 주장하다 국정 감사에서 의원들이 이를 질책하자 “본인의 희망 사항인데, 중앙 정부 안에 따르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내놓기도 했다. 사실 새만금 사업과 관련해 전라북도가 가지고 있는 권한과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다. 사업 주체가 농림부이며, 전북은 농림부의 위임을 받아 보상업무만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년 간 각종 선거에서 정치인들이 내놓은 장밋빛 청사진과 전북지역 언론의 일방적인 보도 등으로 인해 대다수 전북 도민들은 새만금 사업을 일종의 낙후 탈피를 위한 대규모 개발 사업으로 인식하게 됐다. 전북은 새만금 감사 이후 농지 개발을 통한 ‘식량 안보론’ 을 들고 나와 새만금 사업 추진의 당위성을 주장했으나 2000년도 당시에 이미 남아도는 쌀의 보관비용만 연간 1,000억원이 넘은 상태며, 정부에서는 2002년 남아도는 쌀을 가축용 사료로 처리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더욱이 새만금에서 쌀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 전체 생산량 0.7%에 되지 않는 상태에서 농지 개발이라는 명목 역시 설득력이 떨어진다. 박홍수 농림수산부 장관은 2007년 1월에 가진 인터뷰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새만금 간척사업에 대해 세세한 밑그림까지 그릴 필요는 없으며, 후세에 유산을 물려준다는 생각으로 간척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상 새만금 간척사업이 현재 구체적인 상을 가지고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 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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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만금-호남평야의 새로운 도시구조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담긴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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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업의 주체는 세 곳으로, 전라북도는 보상업무만 담당한다. |
과연 ‘친환경 개발’ 인가
정부는 2001년, 3년간 중단됐던 새만금 사업을 재개한다고 발표하면서 ‘환경 친화적인 간척 사업’ 을 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1998년 취임한 농림부 김성훈 장관이 “공업단지 등은 추진하지 않고 생태 마을과 농지를 조성하는 등 ‘환경 친화적’ 으로 추진하겠다” 고 밝힌 데서 유래했다. 그러나 간척지 개발로 인해 갯벌이 사라지고 생태계에 지각변동이 일어난다는 점은 변함이 없다. 1996년 시화호의 썩은 물을 서해에 방류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새만금의 수질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새만금이 방조제로 막히면 국내 최대 규모였던 시화호의 두배에 이른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기 때문이다. 농촌공사는 상류에 하수처리장을 완벽히 건설하고 금강 하류에 연결 수로를 만들어 새만금 물을 희석시키는 등 수질을 유지시키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하수처리장에서 제거할 수 있는 오염원은 2~30%밖에 되지 않는데다가 금강 하구의 수질이 급격히 악화돼 무용지물 대책이 되어 버렸다. 1999년 초 유종근 전 전북 지사가 제안해 활동했던 민관공동조사단의 보고서는 새만금호의 만경 수역이 환경 기준인 4급수를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기존에 새만금 갯벌에서 살던 게들은 부지런히 유기물을 먹는다. 바지락 한 마리가 1시간 동안 정화해내는 물의 양은 18리터에 달한다. 이렇게 새만금 갯벌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화 능력은 전주의 하수종말처리장 40개와 맞먹는다는 견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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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갯벌의 죽음은 새들의 죽음을 불러왔다. |
또한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기존 생태계 파괴가 엄청나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새만금 갯벌은 100만 마리의 철새가 쉬어가는 곳이며 백합, 동죽, 농게 등을 비롯한 각종 갯벌생물들이 서식했으나 2006년 4월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진행되면서 지금은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2003년 12월부터 새만금 갯벌 ‘죽음의 과정’을 관찰하고 있는 시민생태조사단의 백서에 따르면 물새, 식물, 저서생물, 문화 등의 다방면에서 새만금은 과거의 풍부했던 생태계 보고의 모습을 거의 잃어버린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 사업은 단순히 새만금 연안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서해안 전체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지난 여름 고사포와 변산해수욕장 앞바다는 물론 대항리 해변까지 새만금 방조제 배수갑문을 통해 나온 누런 거품이 넓게 퍼져 밀려왔다. 방조제 내측에서 죽은 생물들의 썩은 액체와 적조생물의 시체가 만들어낸 거품이 근처의 해수욕장에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한 동진강, 만경강 인근의 논이 적은 양의 비에도 침수돼 농민 피해가 일어나는 등, 새만금 문제는 단순히 새만금 갯벌에 국한시킬 수 없는 광범위한 파괴력을 생태계에 미치고 있다.방조제는 생존권을 위협한다 현재 새만금 갯벌은 두 개의 배수갑문에 의존해 해수를 유입, 방류하고 있다. 배수갑문의 개폐는 농촌공사가 담당하고 있으며, 물의 수위가 높아지고 낮아짐에 따라 어민들의 생계가 좌우된다. 채취 도구인 그레를 이용해 직접 손으로 생합을 채취하는 어민들은 물이 들어왔을 때 갯벌에 나가지 못하고 어선을 이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에는 생합 잡이를 위해 갯벌에 나갔던 어민이 배수갑문 조작으로 달라진 물의 깊이를 예측하지 못해 익사하는 등, 농촌공사가 배수갑문 개폐 시간이나 여부에 대해 사전에 어민들에게 통보하지 않아 애꿎은 어민이 사망하는 인재(人災)가 발생하기도 했다. 갯벌을 생존의 터전으로 삼아왔던 어민들에게 새만금 방조제 설치는 생계를 위협하는 사건이다. 갯벌 생태계가 변화한 후 예전만큼의 소득은 꿈도 꾸기 어려워진 탓이다. 특히 그레를 이용해 맨손으로 생합을 잡는 어민들은 대부분 여성들인데, 부안 계화도 여성들은 “남편 없이는 살아도 그레 없이는 못 산다”고 말할 정도다. 갯벌 어업으로 평생 생계를 이어온 어민들에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새만금 사업은 큰 부담이다. 방조제 안쪽을 완전한 농지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년으로 예측되고 있으며, 그마저도 정확한 토지이용계획이 나와야 명확히 알 수 있다. 개발패러다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 한국 정부의 환경정책은 세계경제포럼 2005 환경지속성 지수 평가에서 146개국 가운데 122위였을 만큼 문제투성이로 드러났다. 대형 토목사업이 개발이냐 보존이냐는 양극의 싸움 사이에서 많은 갈등을 낳은 예는 새만금 뿐만 아니라 천성산 등 최근 몇년간 이슈가 된 환경문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무수히 많다. 이는 정부의 환경정책이 단순한 개발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하나의 이슈를 놓고 의견이 달라지는 개발 진영과 보존 진영 사이에서 적절한 대안을 찾기 위한 시도가 부족했음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는 비단 정부 정책만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해 있는 구조적 문제를 보여준다. 새만금 역시 토목사업이 곧 성장과 개발로 이어진다는 과거의 사고방식이 드리운 그림자에 다름 아니다. 대규모 토목 사업은 1980년대 들어 그 규모가 더욱 커졌는데 이는 당시 중동 건설 경기 퇴조에 따른 유휴 장비 활용이라는 건설업계의 요구와 맞아 떨어지면서 붐을 일으켜 석연치 않은 구석을 남겼다. 등 새만금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은 이강길 감독은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환경은 돈이라는 가치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개발사업은 환경을 경제논리로 재단해 얼마나 이득이 될 지를 판단하는 사업인데, 이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행이다” 라고 말했다. 그는 또한 “우리나라가 경제 지표상으로는 세계 11위이지만 그 현실이 얼마나 성숙해 있는지는 새만금을 보면 알 수 있다. 경제 대국이라는 곳에서 돈 걱정, 집 걱정 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지 않느냐” 며 새만금이 새마을 운동과 한치도 다르지 않은 대표적인 개발논리의 결과물이라고 비판했다. 서해안 갯벌은 세계 5대 갯벌 중의 한 곳으로 꼽힌다. 굳이 성장과 개발이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려 하지 않아도 이미 어민들은 그곳을 자연이 내린 황금밭이라고 부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