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벌사회의 중심에서 ‘NO’를 외치다

강준만에서 ‘서울대 폐지론’까지 학벌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강준만 교수학벌 논쟁이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은 강준만 교수의 저서인 ‘서울대의 나라’가 출판된 1996년부터다.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학벌’의 문제점을 파헤친다.그는 학벌과 관련해 “간판 하나로 모든 분야를 독식하려는 서울대 패권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준만에서 ‘서울대 폐지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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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시킨 강준만 교수

학벌 논쟁이 처음으로 공론화된 것은 강준만 교수의 저서인 ‘서울대의 나라’가 출판된 1996년부터다. 강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던 ‘학벌’의 문제점을 파헤친다. 그는 학벌과 관련해 “간판 하나로 모든 분야를 독식하려는 서울대 패권주의가 나라를 망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후 학벌 문제는 사회적으로 크게 논의되지 못하고, 몇몇 지식인들의 개인적인 반성만 있었을 뿐이다. 1999년 11월 홍훈, 김상봉, 김동훈 교수 등이 ‘학벌은 교육과 사회적 문제의 근원’이라는 뜻을 같이하면서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행동’을 만들었다. 이 모임은 처음에 ‘함께하는 시민행동’이라는 시민운동단체의 한 분과로 시작했으나, 2000년 6월에 독립하면서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모임’이 결성됐다. 그리고 2000년 10월 대표로 홍훈 교수, 사무처장으로 김동훈 교수가 맡게 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된다. 이 모임의 주요 활동으로는 사무처장 및 각 운영위원의 활발한 기고와 인터뷰, 방송출연, 강연 등과 아울러 학벌이슈와 관련된 외부인사를 초빙하는 월례공개토론회와 대안적 모색을 중심으로 하는 회원들의 공개세미나 등이 있다. 그러나 모임 내에서 기본 노선과 운영 방식을 둘러싸고 의견의 차이가 생기면서 2001년 5월 종래의 모임이 ‘학벌없는 사회 만들기’로 개편된다. 그리고 김상봉 교수와 홍훈 교수등이 위주가 된 ‘학벌없는 사회’도 결성된다.학벌에 관한 문제제기는 학외에서만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서울대 내부에서 서울대 학부제 일시적 폐지에 대한 논의가 최초로 나온 것은 2001년 당시 장회익 물리학과 교수에 의해서였다. 장 교수는 “똑똑한 사람들은 서울대에 가고 서울대에 가지 못한 사람은 똑똑하지 못하다는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편견을 없애야 한다”며 “이를 위해 10년 동안 서울대에서 학부생을 뽑지 말자”는 ‘서울대개방화 방안’을 주장했다. 그러나 장 교수의 이런 제안에 뜻을 같이한 교수는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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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7대 총선에서 ‘서울대폐지’ 공약을 내세웠던 민주노동당

정치권에서도 학벌 문제는 큰 화두가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2002년 9월 한 시민단체 토론회에서 “개인적으로 서울대를 없애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신문에 크게 실리기 때문에 없애겠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고 발언했다. 그리고 노무현 후보의 선거캠프에서 펴낸 ‘미래를 향한 희망과 도전’이라는 제목의 공약집에 ‘6. 적극적 차별시정 정책 시행’이라는 제목 아래 제일 먼저 학벌차별을 제시 했다. 2003년 12월 정진상 교수는 민주노동당 기관지인 ‘이론과 실천’에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구축’이라는 제목으로 전면적인 대학제도 개혁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이는 민주노동당이 핵심 교육 공약으로 채택하기로 결정하면서 ‘서울대폐지’라는 개념으로 불리게 된다. 민주노동당의 경우 2004년에 벌어진 17대 총선에서 ‘서울대폐지’를 정식 공약으로 채택했고, 원내정당으로 진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1997년 대선에서 ‘학벌 타파’를 공약으로 내세울 것을 검토했으나 시기상조라고 판단해 유보했다가, 17대 총선에서 정식 공약으로 내세운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학벌 문제는 대중의 관심을 크게 끌었고, 한동안 한국 사회에서는 학벌과 관련해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서울대에는 없다?! 학벌사회의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 내에서는 어느 정도의 ‘학벌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까. 그리고 만약 학벌에 관한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2000년 이후부터 현재까지 활동하는 학내 언론사인 「교지 관악」, 「대학신문」, 『서울대저널』, 「스누나우」(가나다순)의 기사를 비교, 분석해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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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지 관악」과 『서울대저널』의 경우 2000년 이후 작성된 기사 중에서 학벌에 관련한 기사가 거의 없거나 극소수에 불과 했다. 「교지 관악」의 경우 27호에서 ‘돈 많으면 공부도 더 잘한다’라는 기사를 통해 서울대학교의 입시제도인 ‘지역할당제’를 비판했다. 이 외에는 2000년 이후「교지관악」에서 학벌과 관련된 문제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27호에 실린 ‘지역할당제’와 관련한 기사도 엄밀히 말하면 학벌에 관한 문제 제기보다 서울대학교의 입시제도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서울대저널』 역시 2000년 이후에 나온 기사 중에서 학벌 관련 기사는 거의 없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002년 12월에 나온 56호에서 학벌 사회를 지속적으로 비판해 온 김동훈 교수의 저서인 ‘서울대가 없어야 나라가 산다’의 서평을 실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서평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김동훈 교수의 저서를 요약한 정도의 글이었다. 지난 2004년 4월에 나온 66호 기획 기사였던 ‘서울대를 없애자? 서울대 외부에서 제시하는 개혁안’이란 기사에선 서울대학교의 외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울대폐지론’과 민주노동당의 공약을 소개했다. 그리고 가장 옳은 해결책은 사회적 합의를 얻어야 한다는 교과서적인 결론을 내린다. 이 기사의 경우에도 ‘서울대폐지론’이 등장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 문제를 다뤘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단순히 ‘서울대폐지론’을 둘러싼 현상을 보여주는 기사라고 할 수 있다. 학벌과 관련해서 가장 큰 관심을 보인 학생언론은 「대학신문」과 「스누나우」다. 두 언론이 학벌과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다뤘던 시기는 2003년 후반기에서 2004년 상반기였다. 이는 학외에서 학벌문제가 가장 뜨겁게 다뤄졌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대학신문」의 경우 단순한 사실 관계를 나열하는 기사와 서울대폐지론과 관련한 교수와 데스크의 칼럼이 대부분이었다. 2004년 3월 27일 작성된 ‘민노당 공약 ‘서울대 폐지하자’‘라는 기사에서는 민노당 정책위원장의 인터뷰와 그와 관련한 교수와 학생의 인터뷰를 차례대로 실었다. 그리고 2004년 12월 6일 작성된 ’서울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기사의 경우, 총학생회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나왔던 주장들을 나열한 기사에 불과했다. 교수나 데스크가 쓴 칼럼의 경우 ’서울대폐지론‘을 계기로 삼아 더 나은 서울대학교를 만들자는 주장과 ’서울대폐지론‘을 고민해보자는 주장의 칼럼으로 나뉘었다.「대학신문」의 경우 학벌과 관련한 기사는 대부분 ’서울대폐지론‘이란 주제로 수렴하기 때문에 순수하게 학벌을 고민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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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누나우」에서 실시한 학벌의식 설문조사 결과 기사.

학벌 문제에 가장 큰 관심을 보였던 학생언론은「스누나우」였다.「스누나우」에서는 당시 서울대 강사였던 김상봉 교수와 인터뷰에서 학벌과 관련한 김 교수의 생각을 들었다. 또 2003년 11월 12일 학벌토론회를 개최하면서, 토론회의 앞서 학벌 필요론과 폐해론을 대변하는 칼럼을 홈페이지에 개제하기도 했다. 그리고 주목할 점은 같은 해 2003년 11월 4일 작성된 기사에선 교내 학생 807명을 대상으로 벌였던 ‘학벌의식조사’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 사회에서 학벌로 인한 폐해의 심각성을 묻는 질문에 매우 심각하다고 대답한 이가 118명(14.6%), 심각하다고 답변한 이가 528명(65.4%)으로 전체의 80%에 달하는 이들이 학벌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고 답변했다는 점이다. 이 외에도 여러 설문 문항이 있어 서울대인이 학벌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다.그러나 안타까운 점은 이런 기사가 계속 생산되지 못했다는 것이다.「스누나우」의 내부적인 사정도 고려해야 하지만, 사회적 분위기와는 별도로 학내에서 학벌 문제에 대한 여론을 조성하지 못한 것은「스누나우」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언론들도 반성해야 할 점이다. 학내 사안과 관련한 기사를 생산하는 것이 학내 언론의 주요 임무다. 분명히 학벌 문제는 주요한 사회적 이슈임과 동시에, 서울대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무엇보다도 큰 학내 구성원들의 사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학생 언론이 학벌 문제에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은 어떤 이유인가?‘학벌’도 학내 사안 중의 하나학내 언론이나 학생들이 관심을 갖는 정보는 따로 있다. 때가 되면 돌아오는 총학 선거나 본부에서 내놓은 계획안 등은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서울대학교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겪을 학벌과 관련한 이야기는 어찌 된 영문인지 학내 언론과 학생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 내세운 ‘서울대 폐지론’은 자극적인 이름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한창 논의됐다. 그러나 학벌 문제에 대한 관심은 금세 사그라졌고, 학내에서도 잠깐이나마 고민했던 흔적들이 사라지게 됐다. 학내 언론이나 학생들의 여론이 자연스럽게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는 것을 감안하면 학내에서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가 전무한 사실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서울대학교’가 가지는 공간적 특수성은 학벌과 관련한 문제 제기를 자연스럽게 줄어들게 만든다. 학벌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학교의 경우, 학벌 때문에 겪는 손해가 다른 집단에 비해 현격히 작기 때문에 학벌 문제를 고민할 필요성이 크지 않다.그러나 학벌 문제는 해결을 위한 걸음마를 이제 갓 떼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다. 비록 지금은 학벌을 논의하는 목소리가 예전 같지 않지만 언젠가는 모든 사회 구성원이 고민해야 할 문제다. 그러므로 학벌에 대한 문제제기는 고이 묻어두기 보다는 논의의 장으로 꺼내가야 한다. 또한 학벌의 정점에 위치한 서울대학교에서 학벌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제기를 한다면 한풀 꺾인 시민단체의 활동이 다시 불붙어서 약간 주춤했던 사회적 논의도 새롭게 시작될 거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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